테라다 토라히코 - 길가의 풀(路傍の草)

테라다 토라히코(寺田 寅彦)


  1. 차상車上 

'삼상三上'이라는 말이 있다. 침상枕上 안상鞍上 측상厠上을 합쳐서 삼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괜찮은 생각을 발효시키는데 적합한 세 가지 환경'을 대립시킨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제법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 중국인들이나 굉장히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면 현대에서는 저 말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삼상을 삼상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이 세 가지 환경은 모두 육체적으로는 부자유하게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삼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대단히 자유롭고 해방된 고마운 환경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이라면 바깥에서 여러 가지 일이 들어올 걱정에서 면제되기 때문이다. 육체가 속박당하는 대신에 정신이 해방된다. 두뇌의 활동이 바깥쪽으로 향하는 것이 멈추므로 자연스레 안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현대 일반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 삼상은 다소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일단 '침상'을 보면, 매일매일 일에 쫓기고 밤늦게까지 일에 시달리다가 겨우 잠자리에 누운 많은 사람에게는 침상은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러고도 잠들지 못하는 경우는 병이 있는 것이므로, 제대로 된 생각은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측상'은 사람에 따라서는 현재도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 그런 것 같을 정도로 장시간 이 환경에 안주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늦잠을 자서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급히 용무를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도 또한 명상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마지막 하나인 '안상'은 우리와는 좀 연이 없다. 이것을 대신할만한 인력거나 자동차도 최소한 도쿄 시내에서는 침착한 기분이 되는 데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자가용이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자가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단 하나 남은 문제가 전철의 '차상車上'이다.

전철 안에서는 평범한 의미의 한적함은 맛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신 극도의 혼잡함에서 오는 자포자기적 침착함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는 것도 아니다. 승객은 모두 돌멩이고 자신도 그중의 한 돌멩이가 되어 주변 돌멩이의 속박에 체념하는 부분에 절로 '삼상'의 환경과 서로 통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따라서 만원 전철 안은 의외로 명상에 적합하다. 책상 앞이나 실험실에서는 떠오르지 않는 좋은 아이디어가 전철 안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삼상'을 삼상이게끔 하는 요소에는 육체의 구속에서 오는 정신의 해방 외에도 한가지 요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당한 감각적 자극이다. 안상이나 측상의 경우에는 이것이 명백하지만 침상의 경우에는 이것이 명백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베개나 침대의 감촉 외에도 눕기 때문에 전신의 혈압분포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실로 이것에 걸맞은 듯하다. 문제의 '차상'의 경우에는 이 조건이 충분히 만족되어 있음은 명백하다. 다만 오히려 자극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병약하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차상'의 효력은 발생하기 힘들다. 이 자극에 적당히 마비된 사람이 가장 '차상'의 효율을 올릴 수 있을 듯하다.

 

2. 탁상연설

최근 여러 종류의 연회에서 이른바 디저트 코스에 들어간 후에 탁상연설을 하는 것이 유행하는 듯하다. 그건 연설을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모처럼 식욕을 만족시킨 후에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맛보며 기분 좋게 즐기려 할 때 연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별로 재미도 없고 때로는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한 연설을 참으며 듣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고 쳐도, 가끔 간사라든지 신세를 진 사람에게서지명이라면서 억지로 뭔가 말을 해 보라고 강요당한다. 그래도 완강히 버티면 나중에 연설하는 사람의 연설에서 공격당한다. 성가신 일이다.

그건 어쨌든 역시 서양 사람을 흉내 내서 일어난 일임은 틀림이 없다. 불행히도 서양 사교계에 얼굴을 비친 적도 없으며 나간다 한들 언어를 잘 모르니 서양의 탁상연설이 얼마나 악랄한지 바보 같은지는 알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일본의 탁상연설과 비교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맨 처음 그런 짓을 시작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것을 발명한 것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기분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뭔가 경구(警句) 같은 것을 뱉어내어 손님들을 감탄시키거나 쿡쿡 웃게 하는 것은 제법 그럴듯한 향락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런 걸 하기에는 이른바 디저트 코스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극히 적절한 시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즉 일종의 생리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접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요리라면 싫은 요리는 안 먹으면 되지만 이 연설만은 억지로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탁상연설이 너무 유행하면 무심코 탁상기분을 탁상 이외로 확장하는 듯한 관습을 조장해서, 탁상사상이나 탁상예술의 유행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식자(識者)의 일고(一考)를 기대해본다.

 

3. 라디오포비아

처음으로 라디오를 들은 것은 우에노의 S()이었던 것 같다. 네다섯 명이 식사를 한 후, 객실에서 느긋하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기이기이기이기이하고 네 번 이어서 묘한 소리가 났다. 마치 닭의 목이라도 조르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그리고는 같은 목소리로 뭔가 이어서 얘기를 하는 듯했는데, 뭘 말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어서 동행자에게 물어보니 ‘JOAK, 여기는 도쿄방송국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음악인지 뭔지가 시작해서 가-가 하는 소리와 윙윙 울리는 샤미센 소리에 우리들의 담화는 완전히 착란 되어 버렸다. 그 후에도 가끔 여러 장소에서 이 JOAK에게 습격당했다. 익숙해지니 과연 JOAK로 들린다. 제에 오오 에에 케에이로 묘한 억양을 붙여서, 그리고 억지로 서양인처럼 내는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 네 개의 알파벳의 조합 자체가 뭔가 불쾌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거나, 아니면 가장 처음 들었던 소리의 불쾌한 인상이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환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에 밝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음식점이나 가게 앞에 있는 확성기가 불완전하여서 이런 소리가 나니 잘 조절된 기계에서 광석검파기(鑛石檢波器)를 쓰고 귀에 대는 수화기를 쓰면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에 금속 그릇을 써 가면서까지 듣고 싶은 것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여름 휴가 중 어느 날 M 군과 둘이서 시모타카이도(下高井戸: 도쿄도 스기나미 구의 쵸명) Y()이라는 곳에 가서 한나절을 대단히 느긋하게 놀고는 저녁을 먹었다. 마침 우리 말고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믐 달밤은 더할 나위 없이 한적했다. 식사도 끝나서 슬슬 돌아가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계단 아래에서 JOAK가 시작됐다. 이런 교외까지 JOAK가 쫓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날 밤은 마침 트리오로 차이콥스키의 가을의 노래 등도 있었다. 주위가 조용해서인지, 아니면 기계가 좋은 건지, 내 머리가 어떻게 됐던 건지, 그 트리오만은 좀 재미있게 들렸기 때문에, 계단 위에 앉아서 끝까지 들었다. 이 정도라면 라디오도 그리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후 어느 휴일 오후, X심포니의 방송이 있었을 때, 긴자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봤다. 역시 무리였다. 모든 악기가 단지 일색의 잡음 덩어리가 되어, 바깥을 달리는 전철의 울림과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곡의 겉모습이라도 알기 위해서 참고 듣고 있으니,점원이 뭔가 좀 고쳐보려고 했는지 플러그를 멋대로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하는 통에 모처럼의 심포니는 무참히 끊겨 버렸다.

이런 이유로 자연히 라디오라는 것에 대해 일종의 공포를 느끼게 되어 보니, 저 집집들의 옥상에 널려있는 안테나에 대해서도 동정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없더라도 아마도 저것은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장대 같은 것에 흔들흔들 휘는 철사를 박아놓은 것은 묘하게뭔가를 바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런 식으로 안 해도 괜찮은 방법이 있다고도 한다.

라디오를 만지고 있다가 자기도 방송을 하고 싶어져서, 마침내 장난방송을 시작했다가 잡힌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현상의 본성에 관한 충분한 지식 없이, 그저 전기 테크닉의 겉 부분 만을 대충 아는 것만으로 완전히 라디오 통이 되어버린 이른바 팬이, 전파(電波) 전파(傳播) 현상을 조금도 신기하게 여기지도 않고 만사를 이해한 듯한 얼굴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한 물리학자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물리학자 자신도 방심하면 비슷한 물리학 팬이 되어버린다. 상대성이론 팬, 양자론 팬이 될 우려가 좀 있다. 이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4. 침입자

교외의 시골에 약간의 땅을 얻어서, 휴일마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머리를 식히기 위한 집을 지었다. 어느 땅에는 꽃이라도 심어서 화원을 만들어 보려는 아름다운 꿈도 꿨지만, 그것은 그냥 꿈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겨우 꽃의 싹이 트게 되자, 아마 마을의 아이들일 텐데, 집 지키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뜯고 파버린다. 알뿌리 종류는 뜯기도 쉽겠지만 작은 새싹마저도 정성껏 뽑아서 근처에 버리고 있다. 세세하게 밀집되어 난 묘상(苗床)을 짚신인지 뭔지로 짓밟기도 한다. 완전히 실패하고 나서 다음 해에는 특별하게 화단을 만드는 대신에 곳곳마다 잡초 사이의 눈치채기 힘든 곳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기도 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누군지도 모를 침입자는 놀랍도록 예민한 감각으로,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찾아내는지 거의 남김없이 뽑아내 버렸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나 채송화가 아직 작을 때, 씨를 뿌린 당사자라도 찾아내려면 고생을 해야 할 정도로 구석진 곳에 숨어있더라도 어느샌가 뽑혀 있는 것에 놀랐다. 이만큼 섬세한 일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아이 같다. 어느 날 혼자서 갔을 때, 정원 쪽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려서 유리창 너머로 봤더니 13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네다섯 명이 대나무 막대기로 잡초 안을 찌르고 있었다. 내가 있는 것을 눈치채더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서는 별로 놀란 것 같지도 곤란해 하는 것 같지도 않은 듯한 모습으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침입자들이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두는 몇 종류인가의 화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코스모스와 개양귀비, 그리고 앵초다. 접시꽃이나 나팔꽃 등이 아직 새싹일 때라도 발견되어 뽑혀버리는데 이 세 종류만은 어째서인지 약탈을 면하고 기세 좋게 증식한다. 2, 3년간 완전히 주변을 덮어서, 이제는 도저히 아이 몇 명이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 꽃들이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흔해서인가 하고 생각도 해 봤지만, 사실은 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개양귀비는 이 근처의 민가의 뜰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일초가 오히려 정성스레 뽑혀나갔다. 또 코스모스는 흔하지만 뽑혀나가지 않는 쪽이었다.

혹은 이 세 식물의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침입자들이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도 너무 끼워 맞추는 식의 설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꽃이 여러 가지 나비나 벌레를 끌어들이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마도 아직 인간이 잘 모르는 신비로운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와 같이 여러 가지 화초가 아이들의 약탈취미를 자극하는 효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아직 간단한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법칙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곤충의 연구자가 나비나 개미를 연구하듯이, 이 작은 약탈자들의 습성을 연구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면 필시 재미있고 또 유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여유도 정열도 없다. 다만 1, 2년 더 지나서, 우리들도쿄 사람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반감이 한참 감소했을 때에 다시 한 번꽃밭의 꿈을 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5. 풀베기

저택 안에 풀 한 포기도 없는 자각을 향수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고용해서까지 뒤뜰의 구석구석에서 깨끗하게 풀을 뽑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기분이 적어도 어릴 적에는 몰랐다. 왜 풀이 자라서는 안되나 하고 아무래도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땅에서 나는 식물 중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처럼 자란 것이 깨끗하게 뽑혀 나가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옛 성터나 다른 황무지에 기세 좋게 자란 잡초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곳에 드러누워 새의 노래, 벌이 윙윙거리는 것을 듣는 것은 유쾌했다. 유화의 풍경화 등에서도, 부서진 울타리, 과일나무의 앞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듯한 제재(題材)는 지금도 가장 마음을 끌어당긴다.

도쿄에 집을 가지고 나서의 일이다. 어느 날 순사가 찾아와서는, 앞 담장에 풀이 너무 나 있으니 뽑도록 주의하고 갔다. 보아하니 과연 검게 썩은듯한 담벼락의 뿌리 부분에 여러 가지 풀이 새파랗게 무성하고, 개중에는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것도 있었다. 딱히 더럽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담장보다도 그 앞의 수채보다도 이 풀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경찰관이 하는 말이니 그 말대로 풀을 뽑아버렸다.

남들처럼 화초의 씨를 스스로 뿌려보고, 비로소 잡초의 안 좋은 부분을 좀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두면 모처럼 오래 살려보려고 한 화초가 모두 지고 마니까, 이렇게 되면 안타깝지만 잡초 쪽을 뽑을 수밖에 없다. 잡초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교외에 집을 구했다. 초봄부터 여러 가지 풀이 난다. 그중에는 꽃이 피면 꽤 아름다운 것도 있다. 하지만 또 멋대로 불어나 버려서 걷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마침내 집 안까지도 침입할 것 같은 기세를 보인다. 이렇게 되니 과연 잡초의 위협이라는 것을 느껴서, 마침내 풀베기를 할 결심을 했다. 풀을 베는 낫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낫 쓰는 법, 낫 가는 법도 농부의 전수를 받아서 마침내 달라붙었다.

베기 시작해 보니 몹시 힘들었다. 제법 벤 것 같아도 일어나서 보면 손바닥만큼밖에 진행되지 않아서 실망했다. 하지만 하는 중에 점점 풀베기 자체에 흥미가 생겨서 결과를 재촉할 기분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잘 드는 낫으로 베면 상쾌함을 느낀다. 또 풀뿌리를 팍팍 베는 것도 통쾌하다. 가려운 곳을 긁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러 가지 풀뿌리 뻗는 법에 각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것들의 목적론적 의의를 생각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같은 면적을 계절에 따라 다른 잡초가 교대로 점유하는 순서도 재미있고, 해에 따라 가장 많이 번식한 풀의 종류가 달라지거나, 그것이 인간의 간섭 때문에 영향받는 모습이나, 좀 더 깊이 연구해 보면 일종의잡초학이 성립될 것 같다. 그것을 여기에 쓰면 끝도 없으니 생략하겠다. 그저 한가지 염두에 둘 문제만을 간단히 써 둔다.

잡초 중에는 우리가 재배하는 오곡이나 야채나 관상식물과 아주 닮은 것이 매우 많다. 혹시 이러한 잡초를 특히 아끼고 배양하고 교육해 가면, 몇 대 후에는 오히려 현재의 유용한 식물들보다 유용한 것이 생겨날 가능성은 없을까?

오랜 기간 인간이 눈엣가시로 보고 학대받으면서도 강인한 저항력으로 생존해온 고양이풀이나 왕바랭이등을 갑자기 온실 안의 옥토로 옮기고 온갖 유효한 비료를 준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때에 따라서는 비료 식중독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가난할 때는 딱딱했던 것이 부자가 되어 갑자기 부드러워지듯이 어쨌든 부드러워질 것 같다. 그 대신 그 풀들의 열매가 점점 발육, 진화하여 쌀이나 보리보다도 좋거나 혹은 적어도 동등한 곡식이 되지는 않을까.

혹시 배양하는 법에 따라서 강인한 저항력을 보존하고, 또 열매는 충실하게 될 수도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을까.

누군가, 속는 기분으로 이 실험에 착수해 볼 사람은 없을 것인가.

 

6. 지푸라기가 솜이 된다는 이야기

지푸라기에 어떤 약품을 가해서 삶기만 하면 솜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방법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며, 몇몇 자본가들에게서 돈을 모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사기라고 하여 검거되어, 경시청의 관계자들 앞에서실험을 해 보이게 되었다. 반나절을 삶아서 펄프 같은 것이 생겼다. 다음날이 되면 솜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지나도 되지 않아서 사기라고 결정이 났다.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났다는 것이다. 신문기사니까 실제 사건의 진상은 잘 모르겠다. 단지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있는 일이다. 어떻게 신비적인 방법으로 괜찮게 돈을 벌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서 그것을 찾아다니는 자본가 앞에, 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출현하는 것이다. 악마라도 불러낼 것 같지 않은 사람 앞에는 그렇게 버릇없게 나타나지 않는다.

속이는 쪽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속는 쪽도 이 현상의 첫 번째 원인으로서의 책임은 있다. 혹시 현대과학을 이해하고 있는 오오오카 에치젠노 카미(大岡越前守:오오오카 타다스케(大岡忠相), 에도시대의 인물로 공정한 재판관으로 알려짐)가 이 사건을 재판한다면, 속은 쪽도 꾸짖음 정도는 들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다만 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경시청에서 실험을 시작해서, 계속해서 실험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설사 그때까지는 펄프와 솜을 바꿔치기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더라도, 그 때는, 하고 있는 중에 혹시나 정말 펄프가 솜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기분을 스스로 고무시켜서 비커 속을 휘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다.

하고 있는 중에 입회한 관계자들의 눈을 속여서 바꿔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상식적인 해석으로,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을지 어떨 지가 문제인 것이다.

거짓말도 계속 하다 보면 종국에는 스스로도 그것을믿게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여러 가지기적’, 예를 들면 천리안, 투시 등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조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정말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심해지면 자기 혼자서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수년간 계속해서지그스와 매기’(미국의 신문연재 4컷 만화인 ‘Bring Up Father’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 만화 자체의 별명이기도 했음.)를 그리고 있는 화가는, 결국에는 살아 숨 쉬는 지그스와 매기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게 되겠지만, 그것과 닮은 머릿속의 미혹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인가.

비커의 펄프가 솜으로 바뀔 때까지 있는 도중의 중요한 경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 별거 아닌 것에 눈을 감아주면, 확실히 지푸라기가 솜이 된 것은 틀림없다. 고구마가 장어가 되기도 하는사실도 이와 같다. 점점 이사실에 익숙해지면 결국에는 그 이른바별거 아닌경로를 생략해도 같은 결과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냉정한 상태에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해도, 절박한 사태에 놓여서 머리가 놈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는 의외로 있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보기에 따라서는 멍청한 장난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범죄심리학자의 연구 자료라도 된다면, 과학적 인식론의 선생이 인과율의 강의를 할 때의 재료도 될 수 있다.

인과를 잇는 뜨개질의 고리는 딱 하나만 빠져도 연이 끊어진다. 이 명백한 진실을 우리들은 곧잘 잊거나 속이거나 하는 일이 있다. 우리의 잘못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온다. 철도나 비행기의 고장도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것이 많다. 풍기문란, 풍속퇴폐 같은 현상도 대부분은 이것과 비슷한 일이 근본원인이다. 무심코 이 서툰 마술사를 비웃을 수는 없다.

(타이쇼 14 11, 추오코론(中央公論))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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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의 공부법(わが中学時代の勉強法)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내 출생지는 고치현(高知県)으로, 처음 중학교[각주:1] 입학시험에 응시한 것은 14세, 딱 고등소학교[각주:2] 3학년 때였다. 그 중학교란 지금의 고치현립제일중학교(高知県立第一中学)이다. 평소부터 그다지 건강하지는 않고, 게다가 공부도 변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그 때의 입학시험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났다. 하기는 성적에 대해서는 뭔가 뜻밖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부른 것인지, 당시의 나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3학년 때 시험을 쳤기로서니 실패하는 것은 역시 분하고 원통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리 공부도 하지 않았던 나도 다소 짜증을 내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빼어난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규칙바르게 학과(學課)의 복습, 수험 준비에 힘쓴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무난하게, 평범한 것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다음 해에 다시 시험을 쳐 보니 성적은 의외로 좋았다는 듯 1년 월반하여 한번에 2학년에 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한번 실패한 것도 만회하였으므로 연령이라는 점에서 봐도 그 전 해에 들어간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되었다.

  개중에는 1년 월반해 왔으니까 영어등은 좀 고생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이도 나는 고등소학교 2학년때부터 옆집에 사는 어느 선생님 댁에 가서 영어만은 배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던 소학교에서는, 3학년 때 부터 이미 영어를 가르쳐서, 4학년을 끝냈을 쯤에는 독본 셋 정도는 읽었기 때문에, 비교적 어렵다고 들은 영어과도 각별한 고생은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나는 시골의 외동아들로 말하자면 어떤 고생도 없이 느긋하게 자란 쪽이다. 따라서 이것이 공부법이라고 해도, 특별히 뭔가 새로운 구상도 없고, 그다지 힘들여서 공부한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내 학생시대를 회고하면, 고학(苦學)이라기보다 낙학(樂學)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물건이 필요하다. 저런 책을 사고싶다고 하면, 부모님은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 사 주셨다. 딱히 까다로운 잔소리를 듣지도 않았고, 공부에 대해서도 어려운 제한같은 것이 붙지도 않았다. 이것은 지금도 내가 부모님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부분이다.

  중학교에는 집에서 다녔는데, 그동안 집안일을 도와서 시간의 속박을 받은 등의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돌아와 그 날의 학과의 복습이나, 내일의 예습을 정확한 시간을 정해서 일정 범위 내에 일정한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라, 그 날 그 때에 맞춰서 일정한 시간은 자연히 정해지는 지극히 느긋한 방법을 취했다.

  일요일등이라도, 평소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와 같이, 정해진 공부도 하지 않고, 정해진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시골이니까 가끔은 친구 두셋과 놀러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즐겨서 놀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대체로 나 좋을대로 하며 자유롭게 보냈다.

  이런 식이었으니, 따라서 밤은 늦게까지, 아침은 일찍부터 기상해서 공부에 매달리는 등의 예(例)는 없고, 게다가 우리 집은 극히 평온, 원만한 가정이라서 언제든지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때에는 어떤 장애도 없이, 조용히 한가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어서, 특별히 공부의 시간을 정해 조바심을 내며 할 필요는 없었고 고통을 느끼면서 책상과 마주하는 것 같은 일은 더욱 없었다. 따라서 내 공부법은 가장 불규칙적이고 또 결코 대단한 노력가인 것도 아니었다. 환경도 역시 고학(苦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종일관 낙학(樂學)한 경우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부터는 이미 부모 슬하를 떠나있었고, 또 하나는 나이와 함께 사상도 조금씩이나마 굳어져 왔으므로, 중학교 시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공부도 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달리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 특별히 심한 공부나, 질서바른 독서법 등을 실행한 것은 아니다.

  소학교 시대부터 나는 학교 교과서 이외에 여러가지 잡다한 책, 잡지등을 마구 읽었다. 이것은 딱히 다독하는 것이 대단히 좋다고 자각해서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막연히 독서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쪽 일은 확실히 모르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책을 자주 보았다. 소학교에 있을 때는, 옛날 하쿠분칸(博文館)에서 나오던 '니혼쇼넨(日本少年)'을 비롯하여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외 그런 잡지나 책을 자주 읽었던 것이다. 부모님도 또 말하는 대로 사 주셨다.

  중학교에 가게 되고 나서는 소책자로 된 자연지리학, 지리서 같은 것을 수많게 읽고, 또 소설 등도 많이 읽었다.전술한대로, 나는 공부하는데도 제멋대로의 방법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학에 대단한 흥미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들리지만, 그다지 그렇지도 않았다. 단지, 이런 것에서 얻은 것인지, 작문은 학교에서도 제법 재주가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친척이 있어서, 거기에 가면 언제나 책을 내서는 손닿는대로 읽곤 했다. 그 중에서도 '핫켄덴(八犬伝)', '삼국지', '초한지'등은 대단히 힝므가 있어서 대부분은 통독하였다. 이것 덕에 스스로도 독서력이 대폭 증진했다고 생각했다. 뒤죽박죽 읽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독서력은 대단히 길러졌다. 폐해도 있으면 또 그것에서 오는 이익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책을 될수있는 한 빨리 읽고, 그래서 이해력을 키우는데는 꼭 많은 책을 읽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내 중학교 시절에 있어서의 성적은 3학년쯤 까지는 일단 중간 정도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좋은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목에 대해서도 딱히 호오는 없었고, 꽤 일정한 점수를 얻었지만, 단지 습자(習字)만은 아무리 해도 서툴렀다. 이래서 습자를 배우는 중에는 평균점수상 성적 쪽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상급생이 되면서 습자가 생략됨과 함께 성적도 확실히 좋아졌다. 그 외에 딱히 싫어하는 것도 없었던 대신에 또 각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중에서 지리만은 중학교 시절부터 특별히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될수 있는 한 이것을 어디까지든 연구해보자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어느 만큼은 고등학교에서는 공과(工科)에 들어가, 3학년 때 다시 물리로 옮겨, 이리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억에 도움이 되도록,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발췌쓰기라는 것을 자주 했다. 발췌쓰기라는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교과서 안의 중요점을 발췌하여 교과서의 바깥부분등에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 안에도 동물, 식물, 광물, 지리, 역사, 화학 처럼 주로 암기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나. 잠깐 예를 들어보면, 교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질문을 받았을 때, 전부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해도 아무리 해도 그 질문에 응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슴에는 떠오르지만 좀 정리되어 입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 주요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발췌하여 그 중요점만을 충분히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근본적인 사항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에 따라오는 지엽적인 것등은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나타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개략만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으면, 사상은 일관해서 비교적 정확한 답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혼자서 이 발췌쓰기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나는 교사가 자주 칠판에 도해로 보여주는 그림등도 그대로 직접 교과서에 써 놓았다. 이것은 기억하는데에 편리할 뿐만이 아니라 그 사항을 잊어버렸더라도 그 그림을 떠올리면 쉽게 기억을 불러올 수 있었고, 또 시험이 끝난 후 상당히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 그림만 보면 쉽게 교과서 안의 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따라서 내가 이용한 교과서는 참 더러운, 연필 발췌문, 도해 그림등으로 꽉꽉 더렵혀져 있다.

  똑같이 이렇게 한다면, 노트에 옮기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중학교 시대에는 그다지 노트에 표시하는 것은 하지 못했다. 교과서 외의 물건에 써 놓으면 일단 이것저것 읽을때마다 꺼내서 봐야하는게 귀찮다. 또 교과서를 펴 보면 한번에 발췌도 읽기도 가능하다는 편리성이 있어서, 일부러 나는 교과서를 더럽힌 것이다.

  고의로 게으름을 피웠다고 하면 왠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가 싫어졌을 때, 무리하게 노력하여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지 않고, 좋을대로 하면서 논다. 산책을 나가서 좋아하는 것도 보고, 매우 제멋대로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하루 놀면 지금까지 착잡해있던 두뇌가 신선해져서, 무엇을 읽어도 확실히 기분 좋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나는 독서를 해도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서 꼼꼼하게 읽을 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격상 그런 딱딱한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끔 어딜 가든 앉은 그대로 책을 집어 쭉 읽는 때도 있고 누워서 보는 때도 있으며 엎드려서 읽는 떄도 있다. 독서할 때의 태도는 거의 일정치 않았다. 말하자면 불규칙적인 방식이지만, 아무래도 내 성질이 거북하게 공부하기보다 편하게 내 맘에 들게 하는 쪽이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기억하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나 스스로도 제대로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독자제군도 이런 부분은 잘 참작하여 그중에서 좋은 점 만을 취해주었으면 한다.

다만 규칙바르게 공부하는 자들 중에는 매일 그 날의 노트를 반복하여 배운 부분만을 암기하려고 하는  자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 될수있는 한 강의에 있어서도 일단락을 지었을 때, 이전부터 필기해 온 부분과 연결하여 한번에 읽는 식으로 했다. 이 연결을 꾀하는 것은 내용을 기억하는데에 가장 필요한 것이고 조각조각난 단편적인 것들을 자세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항이 일단락 지어졌을 때 합쳐서 읽도록 하는 쪽이 전후관련하여 이해하는데도 형편이 좋고, 기억하기도 또한 대단히 쉬워지는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은 그리 몸이 건강하지 않았고, 운동도 딱히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시간은 거의 의무적으로, 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만 소학교 시절부터 광물, 곤충등의 채집에는 대단히 흥미가 있어서, 가끔 근처에 채집을 나갔다. 지금도 고향 집에는 이런 것들의 표본이 꽤 남아있을 정도로, 조금은 이런 일이 운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되신, 자양분은 가능한 많이 먹었다. 그 때문에 몸이 약한 것 치고는 특별히 병에 걸리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대로의 가정(家庭)이었으므로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고, 장난삼아 시시한 것에 고민하여 몸을 피로하게 한 일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아니고, 학교의 교과목이나 그 외에 것에 있어서도 곤란, 고통도 없었고 우선 학생시절은 느긋하게 살았던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부로 교제하여 재미있게 놀았던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원해서 하는 것 같은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시골이니까 집에 돌아오면 놀이 친구라고 해도 기껏 두셋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이도 근처에 살던 친적중에 딱 동년배가 왔으므로, 자주 그곳에 가서는 거기서 놀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대체로 나는 교제가 서투른 쪽이라 지금도 스스로 원해서 교제하려는 일은 없고, 단지 마음을 튼 약간의 벗과 깊게 교제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메이지 40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1695.html

  1. 구제(舊制)에서, 고등보통교육을 받은 수업연한5년의 남자중등학교 [본문으로]
  2. 구제(舊制)에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다음의 학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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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바람(凩)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또 한바탕 강한 것이 서쪽에서 불어와서, 검게 시든 단풍을 책상 앞 유리창에 후려갈기고 뒷편 덤불을 쓰러트리듯하며 지나갔다. 풀도 나무도 집도 창문도 마음속부터 추운듯 몸을 떨었다. 마치 자비를 모르는 정복자가 말발굽의 흔적에 남겨두고 간 전사의 최후의 숨인 것 같은 슬픈 소리를 낸다. 이것을 비웃는 악마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딘가의 깊은 산에서 나와서 어딘가의 깊은 계곡으로 사라져갈지도 모르는 이 파괴신은, 마치 그 주재자인 '시간'의 일에 답답해하는 것 처럼, 온갖 것을 말라붙이고 분쇄시키려고 조바심을 낸다.
  화로에는 한덩이의 숯이 완전히 타고, 부드러운 하얀 재는 위쪽의 짚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도 없이 움푹 꺼져버렸다. 이 때 다시 집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가는 곳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때, 어딘지 모르게 들어온 차가운 공기가 무릎관절에서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을 알아챘다. 이 때 나는 뒷길을 서쪽을 향해 비칠비칠 가는 한명의 노옹(老翁)을 보았다. 거지일 것이다. 그 사람의 다양한 과거 생활을 나타내는 듯이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는 마른 나무같은 팔꿈치를 못 가리고 있다. 우리 집의 뒤편까지 와서 멈춰섰다. 그리고 지팡이에 기댄채로 어렵사리 구부정한 새우등을 펴서 앞쪽에 뭔가를 기대하는 듯 얼굴을 올렸다. 퀭한 눈에 실로 막 지려고 하는 해가 떨어지고, 얼굴을 싼 손수건 조각에서 나온 한묶음의 백발이 소슬바람에 거꾸로 서 보였다. 다시 비칠비칠 걸어나가더니, 한바탕 바람이 곧바로 길의 모래를 말아올려 노옹을 감쌌을 때 나는 깊디 깊은 공상을 불러왔다. 그래서 이 슬픈 빈사자의 생애를 꿈꿨을 때, 마치 이 사람의 지금의 처우가 내 미래로 나타나서, 나 자신이 이 노인의 전신(前身)인 것 처럼 느꼈다.
  그는 필시 희망을 품고 태어나, 희망의 힘에 의해 살아 왔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또한 이 소슬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의 그림자같은 어떤 희망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덧없는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몇번인가 죽음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던 것은 아닐까. 대충 무엇이 덧없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묻힌 채로 긴 긴 세월을 거쳐 끝네 그 사람의 차가운 유해와 함께 묻혀버려서, 이제껏 빛에 닿은 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희망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있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그를 보았을 것인가. 각자의 바람을 쫓는데에 여념이 없는 세인(世人)은, 가끔 그의 쭈그러진 손바닥에 동전 한개를 떨어트리는 사람이더라도 아마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의 자선함에 던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특별히 동정심을 갖고 보고 있는 나조차도 이 어딘가의 누군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을거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는 아마 사랑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청춘의 꿈은 지금 약간의 따뜻함을 추운 돌바닥에 빌려줄 것인가.
  그는 아마 뜻을 세운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약간의 효과를 무덤 아래에 가져오려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끊이지 않는 망상에 빠져있는 동안, 노인의 쓸쓸한 그림자는 어딘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갑자기 건너편의 길모퉁이에서 유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서 주위의 숙살(肅殺)을 깼다. 마치 노인의 과거의 환희의 목소리가, 여기에 잠깐 반향(反響)되어 온 것 처럼.
(메이지 34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4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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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잡감(田園雑感)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1.
  현대의 많은 인간에게 도회(都會)와 시골 중 어느쪽을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개구리에게 물과 육지 중 어느쪽이 좋은가 하고 묻는 것 같을지도 모른다.
  시골밖에 모르는 사람은 시골은 알 수 없고, 도회에서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은 도회는 알 수 없다. 도시와 시골 양쪽에 왕래하는 사람은 양쪽을 조금씩 안다. 그 결과는 어느쪽도 모르기 전의 양자보다도 나쁠지도 모르겠다. 성격이 분열해서 철저하게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거야 어쨌든, 나는 현 상황에선 시골보다도 도회에 생활하기를 희망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시골 생활을 피하고 싶은 제일(第一)의 이유는, 시골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냉담하게 내버려둬 주지를 않는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쓰기 않고 거리를 걷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웬만해선 그렇게 하게 해주질 않는다. 코 끝에 앉은 모기를 가만히 두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런 것은 웬만한 변명이 아니고는 허락받을 수 없다.
  친절하기 위해서 남의 일거수일투족은 끊임없이 주의깊은 눈으로 사방에서 감시된다. 예를 들어 몇월 며칠 몇시 쯤에, 내가 거뭇해진 밀짚모자를 쓰고, 어떤 다리를 건너갔다는 사실이, 내가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차례로 전해져서, 마침내 그것이 내 귀에도 들어오는 것이다.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무같은 농후한 매질을 통과해서 전파되는 것이다.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친절함이라면 받더라도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지만, 시골 사람의 질박함과 정직함은 그런 무책임함은 용서치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들에게서 받은 친절은 하나하나 상세하게 기록해 두고, 누긋하게 그리고 조금씩 이것을 갚아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역시 도회의 사람의 냉담함과 박정함은 산뜻해서 기분이 좋다. 큰 비 속을 머리끝부터 젖어 긴자도오리를 걷고 있어도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도 없다. 만에 하나 받은 친절의 보상도 간단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일견 한적한 시골에 살아서는, 도저히 열심히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것에는 도회의 '인간의 사막'의 안이 가장 형편이 좋다. 시골에서는 풀도 나무도 돌도 사람냄새나는 호흡을 해서 사방에서 내게 말을 걸고 나를 붙잡지만, 도회에서는 빽빽하게 찬 만원전차의 승객이라도 강변의 돌멩이처럼 입다물고 각자가 자산의 일을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나는 전차 안에서 난해한 책을 느긋하고 침착하게 탐독할 수 있다. 집에 있으면 아이나 노인같은 대표적 시골놈이 있기 때문에 곤란하지만, 전차 안만은 정말로 한적하다. 이러한 조용함은 시골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조용함이다. 너무나 조용하여 지나치게 쓸쓸할 정도다.
  여기에다가 도회 안으로 들어오는 '시골 사람'만 없다면 얼마나 조용하겠는가.
 
 
    2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고향에서는 마을의 부잣집 등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다음 정월은 온 마을의 젊은이가 모여서, 4첩이나 6첩 크기의 커다란 연을 만들어서 그 집에 메어 넣는다. 그리고 거기에 홍백(紅白) 혹은 감색과 흰색으로 나눠서 덧댄 종이꼬리를 몇 개나 붙이고, 북서계절풍에 날려올린다. 작물 그루터기만 남은 겨울 밭 가운데를 붉은 솜 누런 솜으로 얼굴을 감싼 젊은이 무리가 술기운에 종횡으로 달려다니는 것은 꽤 위세가 좋고, 부근의 스파르타인종의 아이들은 각자 작은 연을 올려서 그것을 큰 연의 꼬리에 휘감아서 그 조각을 약탈하려고 다툰다. 큰 연이 충분히 바람을 품고 날아오를 때는 젊은이 두세사람은 딸려올라갈 정도의 강한 견인력을 가지고 있다.
  연날리기 후엔 술잔치다. 그것은 정말로 바쿠스의 술잔치로, 술은 샘물처럼 넘치고, 고기는 숲처럼 높이 쌓여서, 그 사이를 판의 무리가 님프의 무리를 쫓는 것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여자여서 크게 실망한 젊은이들은, 큰 하고이타(羽子板[각주:1])에 연처럼 실을 매어 메어 넣었다는 이야기조차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맞는 명절, 결혼 피로연, 환갑 잔치, 그러한 기회는모두 마을의 바쿠스에게 바쳐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 땅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한 집에 불행이 있을 때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온갖 도움을 준다.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무(事務)는 오히려 정체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역시 술이 나와야만 끝난다.
  어느 부잣집의 노인이 죽은 장례식 밤에, 어떤 남자는 너무 많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도중의 논길에서, 같이 가는 남자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오늘 밤 처럼 유쾌하게 마신 일은 요새 없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이런 것 등은 가장 철저한 한가지 예일 것이다.
  위독한 병자의 머리맡에는 수많은 문안자가 밀려든다. 병자의 머리 위에 거꾸로 된 기름낀 얼굴을 내밀고, 어려운 인사를 하고 어려운 질문을 한다. 한층 친절해지면 빈사상태의 사람에게 짖굳은 말을 한다. 그리하여 병자는 임종 직전까지 이웃 사람의 친절함을 사무칠때까지 맛보게 된다.
 
 
    3
  시골의 자연은 확실히 아름답다. 하늘의 색이든 나뭇잎 색이든, 도회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한 아름다움도 익숙해지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될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자연의 미의 깊이는 그리 쉽게 간파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 보면 볼수록 얼마든지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눈이 나쁘기 때문일 것이다. 1년이나 2년 정도로 질릴만한 것이었다면, 자연에 관한 예술이나 과학은 수천년 전에 완결되어 버렸을 것이다.
  6살이 되는 친척 아이가 작년 말부터 도쿄에 와 있다. 이 녀석에게 도쿄과 고향 중 어느쪽이 좋은가 하고 물었더니, 고향 쪽이 좋다고 했다. 어째서인가 하고 물었더니 '고향의 강에는 새우가 있어서'라고 답했다.
  이 아이가 말한 새우는 꼭 동물학상의 새우를 말하는 건 아니다. 새우가 있는 맑고 찬 시내의 흐름, 그것에 녹색 그림자를 드리우는 숲이나 산, 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풀꽃, 그러한 것들 전체를 통틀은 시골의 자연을 상징하는 새우여야 한다. 도쿄의 생선가게에서 민물새우를 사 와서 이 아이에게 줘 본다면 이것은 쉽게 증명될 것이다.
  나 자신도 이 새우를 생각해 보면, 시골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시골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속에 있는 시골이다. 새우는 지금도 있지만, '아이인 나'는 이미 거기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인 나'는 지금도 '어른인 나'의 안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리고 의외의 때에 나와서 바깥 세상을 훔쳐보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교외를 걷다가 길가의 이름도 없는 풀꽃을 볼 때나, 혹은 멀리 있는 삼나무의 가지끝의 신비한 색채를 보고 있을 때, 얼마 안되는 순간뿐이지만, 이 새우의 환영을(幻影)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옅은 '때[時]의 슬픔'이다.
  자연만큼 인간에게 친절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친절함은 시골 사람의 친절함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다. 도회에는 이 자연이 결핍되어 있어 그 대신에 시골의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4
  봉오도리(盆踊り)라는 것은 요즘엔 이미 없어졌지만, 어쩌면 경찰 감시 하에 있는 형식으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있는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내가 전후(前後)에 딱 한번 봉오도리를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 전에 남해에 있는 어느 어촌에서였다. 폐결핵으로 거기에 이사한 어느 사람을 문병가서 하룻밤 묵었을 때가 딱 구력(舊曆)의 오봉 며칠간이었다. 찌는듯 덥고, 모기가 많고,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생선냄새나는 저녁안개 위를 졸린듯한 달이 비추고 있었다.
  키후네신사(貴船神社[각주:2])의 숲그림자의 광장에 딱 대여섯명의 그림자가 춤추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건 이미 잊었다. 내게는 그저 왠지 그것이 옛날이야기에 있는 것 같은 쓸쓸한 산속의 요정의 무용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때 왠지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문병 간 병자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나는 지금도 봉오도리라고 하면 그 밤을 떠올리지만, 이상한 착각에서, 그 때 춤추고 있던 요정같던 인영(人影) 안에, 죽은 그 사람의 그림자가 함께 춤추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서양냄새나는 문명이 시골의 구석구석까지 확산되어 가더라도, 오봉의 달밤에는, 어딘가의 산그림자 같은 곳에서 옛날같은 야마토 민족의 그림자가 옛날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봉오도리라는 말에는 전원적인 그리고 관능적인 여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현대의 것은 아니다. 그 여운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쿠가와 시대등을 지나서 멀고 먼 고사기(古事記)의 시대에 도착한다.
  봉오도리가 아직 행해지는 곳이 있다면 거기에는 어딘가 나라(奈良)시대 이전의 민족의 피가 젊은이들의 몸에 흐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어쩔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듯한 슬픔을 느낀다.
 
 
 
    5
  여름 한창때에 무시오쿠리(虫送り[각주:3])라는 행사가 열린다. 커다란 북이나 징이 논두렁길에 놓이고 벌거숭이 인형이 힘껏 그것을 친다.
  소리가 사방의 산에서 반향되어, 집의 창호지에 격렬한 충격을 가한다. 하늘에는 화염같은 구름의 봉우리가 빛난다. 붉은 물감을 부어놓은 듯 한 알몸의 피부에는 땀이 수은처럼 빛난다. 모든것이 브랭귄(Brangwyn[각주:4])의 유화를 떠올리게 한다.
 

무시오쿠리의 큰북이나 징의 소리를 표시한 악보










귀가 먹먹해질 것 같은 소리와, 눈이 멀 것 같은 강한 빛은 그 안에 도리어 맑고 투명한 정적을 양성(醸成)한다. 단지 그것은 사물의 공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조용함이 아니라, 사물이 아주 충실했을 때의 이상한 조용함이다.
  격렬한 음파의 충동 때문에, 해충이 정말 떨어지는지, 떨어진 벌레가 그걸로 끝나는지 어떤지, 확실한 것은 아마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은듯 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어느 이름없는 종교의 장중(荘重)한 의식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쯤 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예를 들자면 도쿄의 히비야(日比谷)공원에 어느 날을 잡아서 시민을 집합시킨다. 그리고 시골에서 쓸 일이 없게 된 무시오쿠리용 종이나 큰북을 빌려 모아와서 누구라도 그것을 칠 수 있게 한다. 사회에 대해, 정부에 대해, 동포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서 온갖 종류의 불평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은, 이 원시적 악기를 원시적인 노력으로 후려치는 것이다.
  좀 더 사회가 진보하면 나의 이 제안을 비웃는 사람이 없어질지도 모를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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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리(郷里)에서 그리 멀지 않은 A마을에 키노마로(木の丸)신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사이메이 덴노(斉明天皇[각주:5])를 모신 것이라고 한다. 덴노가 붕어하신 큐슈의 어느 지방의 이름이 즉 이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어떤 이유로 이 남해의 구석지 토지가 이 덴노와 연결되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아마도 누구도 모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비(口碑)는 사람들의 마음을 삼한정벌(三韓征伐)의 옛날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현대의 사상(事相)에 옛날의 민속적인 배경을 준다.
  이 신사의 제례의식이 진귀한 것이었다. 어릴 때 한두번 본 건 뿐이라서 거의 대부분은 잊어버렸지만, 꿈같은 기억 속을 찾아보면 이런 것이 나온다.
  역시 농가가 한가한 계절을 골랐을 것이다. 의식은 작물 그루터기가 남은 겨울 밭 위에서 행해졌다. 거기에 미코시(神輿[각주:6])가 행차한다. 그것을 따라 온 마을의 집집마다의 대표자는 모두 카미시모(裃[각주:7])를 입고, 종이우산만큼이나 커다란 사초삿갓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 작은 정(鉦[각주:8])을 늘어뜨리고 오른손에 잡은 나무망치로 그것을 친다. 단조로운 목소리와 느릿한 박자로 '나안모온데에ナーンモーンデー'라고 읊으면 정 소리가 그것을 받아서 '카앙코, 캉코'하고 울린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어떤 사람은 '난몬덴캉코(南門殿還幸)'를 의미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다지 맞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의미를 모르는 쪽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코시의 앞에서 스모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스모를 하는게 아니라 스모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와시(回し[각주:9])를 찬 역사(力士)가 당당하게 노려보다가 드디어 맞서려고 하면, 에지(衛士)인지 교지(行司[각주:10])인지가 뛰어들어와 떼어놓고 말린다. 그런 것이 몇번이고 반복된다. 그리고 결국 스모는 하지 않은 체 끝나는 것이다. 어떤 유래에서 일어난 행사인지 느는 모른다. 그래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먼 옛날에 일어난 어느 뭔가 심각한 사건의 희미한 반향(反響)같은것을 느낀다.
  그 외에, '봉잡이(棒使い)'라고 해서, 신 앞에서 홍백의 천을 두른 봉을 휘돌리는 의식도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문명의 파도가 파도처럼 외진 시골까지 밀려와서, 고유한 문화의 흔적은 대체로 쓸려가버렸다. '나안모온데에'의 의식은 언제부터인가 폐지되었다. 학교에 가서 문명을 배운 마을의 청년들에겐 카미시모를 입고 사초삿갓을 쓰고 무의미한듯한 '나안모온데에'를 외는 일은 견디기 힘든 굴욕이고, 자기를 야만화하는 소행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무리가 아니다.
  간단한 말과 논리로 재빨리 누구도 알 수 있도록 설명할수 있는 일 만이 문명의 진열장 위에 아름답게 전시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쓰레기장에 버려져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그것과 동시에 무의미의 안에 숨어있는 중대한 의미의 가능성도 묻혀버리는 것이다. 몇 천년동안 전해져왔던 민족 고유의 문화 안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끌어내어 새롭게 그것을 발저시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개조(改造)'라는 외침소리는, 안에 있는 것의 진화가 아니라, 나무에 대나무를 잇는 것 같은 의미만으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래서 그 친절한 정의(情誼)가 두터운 시골 사람들은,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선조의 혼과 그림자를 헌신짝처럼 버려버렸다. 그리하여 자신과는 연이 없는 이국의 역사와 배경이 낳은 신사상을 수입한다. 물려받아온 집이나 전답을 팔아치우고 주식에 손을 대는 것과 같은 식이다.
  신사상의 본원인 서양에 가 보면, 오히려 일본인의 눈에는 바보같아 보이는 듯 한 오랜 옛날의 습속(習俗)이나 행사가 그대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차라리 신기하다.
  이것은 어느쪽이 좋은가하고 의논을 하면 알 수 없게 되는것이 당연하다.
  단지 요즘의 신문지상을 떠들석 하게 하는 여러가지 불상(不祥)한 사회적 현상은, 그것이 오오모토교(大本教) 사건[각주:11]이든 타카라즈카(宝塚) 사건이든 모든 것이 직접 이러한 사건과는 어떤 관계도 없는 남해의 촌락에서 이 '난몬데에'가 폐지된 일과 어딘가에서 연관되어 있어서, 오히려 그것의 당연한 귀결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한 시골의 쓰레기장에서 썩어가는 선조의 유물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종자를 줍는 일이, 위정자나 사상가의 당면한 일은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든다.
 
(타이쇼 10년 7월, 중앙공론(中央公論))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41.html

  1. 하고(羽子)를 치는 자루달린 장방형 판자 [본문으로]
  2. 키부네 신사. 교토에 있는 신사. 이 신사에서는 쿠라오카미노카미[闇龗神]라는 신을 모시고 있으며, 이 신은 고래로부터 기우(祈雨),지우(止雨)의 신으로 숭앙되었다. [본문으로]
  3. 농촌에서 횃불을 들고 징이나 북등을 치면서 농작물의 해충을 쫓으려는 주술적 행사 [본문으로]
  4. 프랭크 브랭귄(Frank Brangwyn). 1867-1956. 영국의 화가 [본문으로]
  5. 7세기 중엽의 덴노. 재위 655~661 [본문으로]
  6. 신체(神體)나 신위(神位)를 실은 가마 [본문으로]
  7. 에도시대의 무사의 예복 [본문으로]
  8. 타악기의 일종. [본문으로]
  9. 샅바구실을 하는 훈도시 [본문으로]
  10. 스모의 심판 [본문으로]
  11. 일본의 종교탄압사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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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시하라 준 군에게)(御返事(石原純君へ))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편지 고맙습니다.『입상(立像)』의 신단가(新短歌)에 대해서 뭔가 생각나는 것을 쓰라는 분부여서 가까이 있던 제3호를 펼쳐서 처음부터 노래만을 주워 읽어갔습니다. 읽는 중에 문득 어젯 밤에 꾼 꿈을 떠올렸습니다.

  낯선 넓은 저택의 정원에 큰 연못이 있다. 큰 배가 떠 있다. 그것이 배같기도 하고 저택같기도 하다. 천장이 없다. 지금 비가 내리면 곤란한데 하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느새 그 배에 타서 천막을 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 같기도 하고 친구같기도 하다. 대단히 쓸쓸한 기분이 든다. 연못이 사라지고 밤거리의 광장이 나타난다. 하늘에 수평으로 한줄기 끈이 쳐져 있는 그 위를 장난감 말 같은 것이 건너간다. 쨍그랑하고 떨어져 산산조각난다. 그것을 다시 맞춰서 줄타기를 시키는 것이 내 책임이지만 어찌해야 좋을지 당황하고 있으니, 주위의 라우벤콜로니의 푸른 오두막집에서 독일인 남녀가 줄줄이 나왔다.

  뭐가 뭔지 이런 풍의 꿈이었습니다만, 지금 이 신단가를 읽어보니, 이상하게도 이 꿈을 떠올렸고, 그다음엔 이 시들 안에 나의 꿈이 어떻게 해서도 떠올릴 수 없던 조각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입상(立像)』의 시는 아마 그런 풍의, 상투적인 말로 나타내기 힘든 것을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단지,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아무래도 너무 머리를 짠 것처럼 여겨지거나, 혹은 쓸데없이 과장한 것으로 여겨질만한 사구(辞句)가 눈에 띄어, 오히려 감흥이 깎인듯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좀 더 수사법을 단련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일본의 종래의 「단가(短歌)」와는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상당히 다른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러한 새로운 시형에 고유하고 새로운 시의 세계를 창조해 가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누구라도 알기 쉬운 말로 누구의 머리에도 팟하고 울리는 것 같은 것을 붙잡아 오는 것이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각나는대로 적었습니다. 문외한의 망언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쇼와 9년 7월 『입상(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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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탐정사건(ある探偵事件)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수년 전에 ‘도련님'이라고 이름 붙인 하얀 털 수고양이가 병사한 이래 한동안 우리 집의 툇마루에 고양이라는 것의 모습을 못 본 나날이 흘렀다. 연전에 이누카이 내각(犬養内閣)[각주:1]이 성립한 날과 같은 날에 롤러 카나리아 한 마리가 헤매고 들어온 것을 잡아서 기르던 중에, 어느 날 아침 약간의 부주의로 놓쳐 버렸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 한복판에 순백의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눌러 앉아 새침하게 세수를 하고 있었다.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어디선지도 모르게 들어와서, 그렇게 완전히 제집처럼 집안을 돌아다니고 그것이 신기한 것은 죽은 도련님의 어렸을 때와 거의 비슷하여 단지 꼬리가 길고 그 꼬리에 꿩털 문양이 있는 정도의 차이다. 어딘가에서 기르던 새끼고양이가 버려졌는지 헤매다 들어온 것이 틀림없지만, 어쨌든 그대로 정착해 버려서 ‘시로(白)’라고 명명했다. 드물게도 의젓한 고양이로, 어느 날 개에게 쫓겨서 근처 집의 담과 담 사이로 도망쳐서 하룻동안 거기에 웅크리고 있던 것을 겨우 찾아내어 데리고 돌아온 적도 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연분홍색 입술을 한 이 수고양이의 풍모에는 어딘가 엑조틱한 정취가 있다.

  죽은 흰고양이의 어미는 집고양이로 하얀 색에 꿩털 반점을 아마 가지고 있었지만 어쩌면 전의 흰고양이와 이번의 ‘시로'와는 아버지가 같거나, 어쩌면 ‘시로'가 ‘도련님'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에 대해서 짐작이 가는 것은, 한때 가끔 집에 숨어들어온 고양이 중에 앙골라 종 같은 훌륭한 흰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것이 혹시나 ‘시로'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아닌가 생각된 것이다.

  바로 요즈음에 어느 신문에서 여러가지 애완동물 이야기가 연재되던 중에 유명한 어느 집의 고양이 얘기가 나와서, 그 고양이 세 마리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아무리 봐도 전술한 이른바 앙골라와 닮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것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되지 않지만, 하지만 그 어느 집과 동성인 집이 2,3정 정도에 있으니까, 거기서 한가지 문제가 성립한 것이다. 그 문제는 포멀하게는 형사탐정(刑事探偵)이 가끔 마주치는 문제와 같은 것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문제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문제. (一) 집 근처의 A가(家)는 신문에 실린 A가와 동일한가? (二) 동일하다면 그 집의 고양이 B와, 우리 집 정원에서 보인 고양이 C는 동일한가? (三)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집의 흰 고양이 D는 그 B=C 고양이의 혈족인가?

  이것에 대해 주어진 데이터는 (1) A라는 이름의 일치. 단 근처의 A가에 서양 고양이가 있는지 어떤지는 불명. (2) 신문의 사진의 B고양이와 C고양이가 흡사함. 단 기억 뿐이고 달리 실증은 없음. (3) BC와 D가 어느 정도 닮았음. (4) 신문기사에 의하면, B고양이는 불량해서 밤이고 낮이고 놀아대서 곤란하다는 주인의 증언. 이것 뿐이다. 이 (1),(2),(3),(4) 어느 것도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실로 빈약한 데이터로, 이것 만에서 뭔가 확실한듯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은 과학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명백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인정’과 ‘이른바 상식’은 이 (1),(2),(3),(4)에서 (一), (二),(三)을 긍정하려고 하는 강한 유혹을 양성한다.

  그 후, 출입하는 생선가게의 증언에 의해 근처의 A가에도 역시 하얀 서양 고양이가 있다는 새로운 유력한 데이터 하나를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쿄 전체에서 서양고양이를 키우는 A성씨인 사람이 몇 명인지 불명이기 때문에 (一)의 문제는 역시 불명이다. 단지, 근처의 A가의 고양이와 집의 고양이와의 혈족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확률이 생긴 셈이다.

  어설픈 탐정소설에서는 (1), (2), (3), (4)만에서 (一), (二), (三)을 유도하는 것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같은 식으로 논리의 착오에서 실제 형사사건에 대해서 무고한 죄가 성립할 우려가 만에 하나라도 있지는 않은가?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모 대관(大官)이, 10년 전에 600년 전의 역적을 변호한 것 때문에 현직을 사임할 수 밖에 없게 된 사건이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과연, 10년 전의 갑모(甲某)가 오늘의 갑모와 동일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인이 무수히 있다. 따라서 이 문제와 상술한 ‘고양이의 경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다른 종류의 사항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에도 불구하고, 우연한 착각으로 뭔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느낀 것은, 분명 내 머리의 착오이다. 그래서, 이것도 기이한 착각의 일례(一例)로서 후일의 참고를 위해서 덧붙여 두기로 한다.

(쇼와 9년 2월 『오사카 마이니치신문(大阪毎日新聞)』)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42160.html

  1. 1931년 12월 13일부터 1932년 5월 26일까지 이어진 일본의 내각. 내각총리대신 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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