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의 뛰어난 우스개(英米笑話秀逸)

사사키 쿠니(佐々木邦)



 웃음을 사랑하는 영미인은 우스개를 중시한다. 식탁에서는 우스개가 사교를 돕는다. 캐나다의 유머리스트 스티븐 리콕씨는 미국의 뛰어난 우스개로, 다음에 나오는 '버팔로에 던져진 남자'를 추천하고 있다. 이하 열거한 것은 내 자신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피난처라서 참고할 책이 없다. 더욱 우수한 것을 전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버팔로에 던져진 남자

 "난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할거라 버팔로에 내릴걸세. 버팔로에는 언제쯤 도착하지?"

 하고, 한 여행객이 침대차의 보이에게 물었다.

 "새벽입니다."

 "좋아, 그럼 부탁좀 하지. 난 잠이 많아서 좀처럼 못 일어날지도 몰라. 괜찮으니 버팔로에 도착하면 이러니저러니 하지 말고 이 짐들과 함께 플랫폼에 던져주게나."

 다음날 아침, 여행객이 눈을 떴더니 이미 해는 높고, 버팔로는 한참 전에 지나쳤다. 보이를 불러서 화냈더니,

 "어라, 그럼 아까 버팔로에서 던진건 누구였지"


친절한 사람

 남의 옷에 솜이나 실부스러기가 붙어 있으면, 떼어주지 않고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심슨 군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어느날 밤 연극을 보러 갔더니, 앞자리의 여자의 옷깃에서 털실이 길게 나와있었다. 심슨 군은 손을 뻗어서 잡았지만, 아무리 당겨도 끝나질 않는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손에는 털실 뭉치가 생겨나버려서, 당황해서 극장에서 도망쳤다.

 심슨군의 친절을 받은 아가씨는 다음날 아침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이상한 일도 있지 뭐야. 나, 어젯 밤에 연극을 보러 가서 조끼를 잃어버렸어"


좋은 기회

 새로운 회당이 만들어져서, 목사와 교회서기가 음향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설교단에서 핀을 떨어트린 소리가 좌석의 구석구석까지 들리게 하고 싶다.

 "저 뒤쪽에 가서 서 있게. 더 뒤로."

 하고 목사가 서기에게 명하고는,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잘 들립니다."

 "이번에는 자네가 설교단에 서서 뭔가 말해보게"

 서기가 설교단에 올라갔다.

 "뭘 말할까요?"

 "뭐든 좋으니 말해보게"

 "물가는 점점 올라갑니다. 들리나요?"

 "들리네, 들려."

 "그런데 제 봉급은 이 3년간 약간도 안 올랐습니다. 목사님, 들리세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레스토랑에서 생선프라이를 시켰는데, 매우 시간이 걸린다.

 "어이. 이제와서 생선을 잡으러 간건 아니겠지?"

 하고 손님이 비꼬자, 보이도 지지 않고

 "아니요, 지금 막 미끼를 구하는 중입니다."


원대한 뜻

 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덩치가 작은 존스 군은 두 남자에게 쫓기고 있었다. 인상, 덩치, 어느것도 재미있지 않다.

 "실례지만, 동전을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하고, 커다란 녀석이 허리를 약간 굽히고 말했다. 존스 군은 이거라면 별 일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서 건네면서,

 "동전 하나로, 당신들은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동전던지기죠. 누가 당신 시계를 가지고, 누가 당신 손가방을 가질지, 이걸 던져서 정할겁니다."

 라고 다른 녀석이 대답했다.


런던사람

 에도사람이 '히'를 '시'로 발음하듯이, 본토박이 런던사람은 h 발음을 i에서 끝낸다. 하히후헤호가 아이우에오가 된다. 어느 집의 아비가 식사중에 햄을 먹으면서, 아이에게

 "앰이라고 하는거다. 앰이 아니라."

 라고 가르쳤다.

 "앰이라고 했잖아."

 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아내는 웃으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에게,

 "둘 다 앰이라고 말하려고 하는거야"


鑵切難[깡통 따기가 어려움]

 금고털이 전문 도둑이 한탕하고 돌아왔다. 아내가 야식을 차려주기 위해서 깡통을 꺼내서,

 "당신, 잠깐 이것좀 열어줘"

 라고 말했더니

 "적당히좀 해라!"

 하고 화를 냈다.


신동

 어머니가 장을 보고 있어서, 조니가 잡화점에 따라갔다. 잡화점 주인은 인심좋은 표정으로

 "도련님은 호두를 좋아하지? 한줌 잡아보거라"

 하고 말해주었다. 조니는 고개를 저었다.

 "호두 싫어하니?"

 "아주 좋아해요"

 "그럼 쥐어보렴"

 조니는 그래도 머뭇거렸다. 주인이 손에 가득 잡아서 모자 안에 넣어주었다.

 장을 보고 가게를 나와서,

 "조니야, 저 아저씨가 그렇게 말해주었는데 너는 왜 스스로 안 잡았니?"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조니는 빙긋 웃으며,

 "내 손보다 저 아저씨 손이 더 크니까"

 

워싱턴

 선생님 "조지 워싱턴은 어떤 사람이었죠?"

 아이 "미국인으로, 거짓말을 안한 사람입니다."


광고

 레스토랑에서

 "거기, 이 비프 스테이크를 보게. 어떻게 된건가? 작지 않나? 어제는 이거의 두배는 됐는데."

 손님이 보이에게 불평했다.

 "어제는 어디에 앉으셨습니까?"

 "그게 뭐가 어쨌다는거야. 창쪽에 앉았는데."

 "그겁니다"

 보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창쪽은 밖에서 잘 보이니까, 광고를 위해서 큰걸 내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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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쿠니 - 영미의 뛰어난 우스개(英米笑話秀逸)  (1) 2015.03.24
  1. Sacha 2015.03.26 15:05 신고

    잘 보고 가요~


테라다 토라히코 - 길가의 풀(路傍の草)

테라다 토라히코(寺田 寅彦)


  1. 차상車上 

'삼상三上'이라는 말이 있다. 침상枕上 안상鞍上 측상厠上을 합쳐서 삼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괜찮은 생각을 발효시키는데 적합한 세 가지 환경'을 대립시킨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제법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 중국인들이나 굉장히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면 현대에서는 저 말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삼상을 삼상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이 세 가지 환경은 모두 육체적으로는 부자유하게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삼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대단히 자유롭고 해방된 고마운 환경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이라면 바깥에서 여러 가지 일이 들어올 걱정에서 면제되기 때문이다. 육체가 속박당하는 대신에 정신이 해방된다. 두뇌의 활동이 바깥쪽으로 향하는 것이 멈추므로 자연스레 안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현대 일반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 삼상은 다소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일단 '침상'을 보면, 매일매일 일에 쫓기고 밤늦게까지 일에 시달리다가 겨우 잠자리에 누운 많은 사람에게는 침상은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러고도 잠들지 못하는 경우는 병이 있는 것이므로, 제대로 된 생각은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측상'은 사람에 따라서는 현재도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 그런 것 같을 정도로 장시간 이 환경에 안주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늦잠을 자서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급히 용무를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도 또한 명상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마지막 하나인 '안상'은 우리와는 좀 연이 없다. 이것을 대신할만한 인력거나 자동차도 최소한 도쿄 시내에서는 침착한 기분이 되는 데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자가용이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자가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단 하나 남은 문제가 전철의 '차상車上'이다.

전철 안에서는 평범한 의미의 한적함은 맛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신 극도의 혼잡함에서 오는 자포자기적 침착함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는 것도 아니다. 승객은 모두 돌멩이고 자신도 그중의 한 돌멩이가 되어 주변 돌멩이의 속박에 체념하는 부분에 절로 '삼상'의 환경과 서로 통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따라서 만원 전철 안은 의외로 명상에 적합하다. 책상 앞이나 실험실에서는 떠오르지 않는 좋은 아이디어가 전철 안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삼상'을 삼상이게끔 하는 요소에는 육체의 구속에서 오는 정신의 해방 외에도 한가지 요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당한 감각적 자극이다. 안상이나 측상의 경우에는 이것이 명백하지만 침상의 경우에는 이것이 명백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베개나 침대의 감촉 외에도 눕기 때문에 전신의 혈압분포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실로 이것에 걸맞은 듯하다. 문제의 '차상'의 경우에는 이 조건이 충분히 만족되어 있음은 명백하다. 다만 오히려 자극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병약하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차상'의 효력은 발생하기 힘들다. 이 자극에 적당히 마비된 사람이 가장 '차상'의 효율을 올릴 수 있을 듯하다.

 

2. 탁상연설

최근 여러 종류의 연회에서 이른바 디저트 코스에 들어간 후에 탁상연설을 하는 것이 유행하는 듯하다. 그건 연설을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모처럼 식욕을 만족시킨 후에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맛보며 기분 좋게 즐기려 할 때 연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별로 재미도 없고 때로는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한 연설을 참으며 듣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고 쳐도, 가끔 간사라든지 신세를 진 사람에게서지명이라면서 억지로 뭔가 말을 해 보라고 강요당한다. 그래도 완강히 버티면 나중에 연설하는 사람의 연설에서 공격당한다. 성가신 일이다.

그건 어쨌든 역시 서양 사람을 흉내 내서 일어난 일임은 틀림이 없다. 불행히도 서양 사교계에 얼굴을 비친 적도 없으며 나간다 한들 언어를 잘 모르니 서양의 탁상연설이 얼마나 악랄한지 바보 같은지는 알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일본의 탁상연설과 비교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맨 처음 그런 짓을 시작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것을 발명한 것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기분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뭔가 경구(警句) 같은 것을 뱉어내어 손님들을 감탄시키거나 쿡쿡 웃게 하는 것은 제법 그럴듯한 향락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런 걸 하기에는 이른바 디저트 코스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극히 적절한 시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즉 일종의 생리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접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요리라면 싫은 요리는 안 먹으면 되지만 이 연설만은 억지로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탁상연설이 너무 유행하면 무심코 탁상기분을 탁상 이외로 확장하는 듯한 관습을 조장해서, 탁상사상이나 탁상예술의 유행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식자(識者)의 일고(一考)를 기대해본다.

 

3. 라디오포비아

처음으로 라디오를 들은 것은 우에노의 S()이었던 것 같다. 네다섯 명이 식사를 한 후, 객실에서 느긋하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기이기이기이기이하고 네 번 이어서 묘한 소리가 났다. 마치 닭의 목이라도 조르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그리고는 같은 목소리로 뭔가 이어서 얘기를 하는 듯했는데, 뭘 말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어서 동행자에게 물어보니 ‘JOAK, 여기는 도쿄방송국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음악인지 뭔지가 시작해서 가-가 하는 소리와 윙윙 울리는 샤미센 소리에 우리들의 담화는 완전히 착란 되어 버렸다. 그 후에도 가끔 여러 장소에서 이 JOAK에게 습격당했다. 익숙해지니 과연 JOAK로 들린다. 제에 오오 에에 케에이로 묘한 억양을 붙여서, 그리고 억지로 서양인처럼 내는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 네 개의 알파벳의 조합 자체가 뭔가 불쾌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거나, 아니면 가장 처음 들었던 소리의 불쾌한 인상이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환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에 밝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음식점이나 가게 앞에 있는 확성기가 불완전하여서 이런 소리가 나니 잘 조절된 기계에서 광석검파기(鑛石檢波器)를 쓰고 귀에 대는 수화기를 쓰면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에 금속 그릇을 써 가면서까지 듣고 싶은 것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여름 휴가 중 어느 날 M 군과 둘이서 시모타카이도(下高井戸: 도쿄도 스기나미 구의 쵸명) Y()이라는 곳에 가서 한나절을 대단히 느긋하게 놀고는 저녁을 먹었다. 마침 우리 말고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믐 달밤은 더할 나위 없이 한적했다. 식사도 끝나서 슬슬 돌아가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계단 아래에서 JOAK가 시작됐다. 이런 교외까지 JOAK가 쫓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날 밤은 마침 트리오로 차이콥스키의 가을의 노래 등도 있었다. 주위가 조용해서인지, 아니면 기계가 좋은 건지, 내 머리가 어떻게 됐던 건지, 그 트리오만은 좀 재미있게 들렸기 때문에, 계단 위에 앉아서 끝까지 들었다. 이 정도라면 라디오도 그리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후 어느 휴일 오후, X심포니의 방송이 있었을 때, 긴자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봤다. 역시 무리였다. 모든 악기가 단지 일색의 잡음 덩어리가 되어, 바깥을 달리는 전철의 울림과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곡의 겉모습이라도 알기 위해서 참고 듣고 있으니,점원이 뭔가 좀 고쳐보려고 했는지 플러그를 멋대로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하는 통에 모처럼의 심포니는 무참히 끊겨 버렸다.

이런 이유로 자연히 라디오라는 것에 대해 일종의 공포를 느끼게 되어 보니, 저 집집들의 옥상에 널려있는 안테나에 대해서도 동정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없더라도 아마도 저것은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장대 같은 것에 흔들흔들 휘는 철사를 박아놓은 것은 묘하게뭔가를 바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런 식으로 안 해도 괜찮은 방법이 있다고도 한다.

라디오를 만지고 있다가 자기도 방송을 하고 싶어져서, 마침내 장난방송을 시작했다가 잡힌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현상의 본성에 관한 충분한 지식 없이, 그저 전기 테크닉의 겉 부분 만을 대충 아는 것만으로 완전히 라디오 통이 되어버린 이른바 팬이, 전파(電波) 전파(傳播) 현상을 조금도 신기하게 여기지도 않고 만사를 이해한 듯한 얼굴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한 물리학자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물리학자 자신도 방심하면 비슷한 물리학 팬이 되어버린다. 상대성이론 팬, 양자론 팬이 될 우려가 좀 있다. 이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4. 침입자

교외의 시골에 약간의 땅을 얻어서, 휴일마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머리를 식히기 위한 집을 지었다. 어느 땅에는 꽃이라도 심어서 화원을 만들어 보려는 아름다운 꿈도 꿨지만, 그것은 그냥 꿈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겨우 꽃의 싹이 트게 되자, 아마 마을의 아이들일 텐데, 집 지키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뜯고 파버린다. 알뿌리 종류는 뜯기도 쉽겠지만 작은 새싹마저도 정성껏 뽑아서 근처에 버리고 있다. 세세하게 밀집되어 난 묘상(苗床)을 짚신인지 뭔지로 짓밟기도 한다. 완전히 실패하고 나서 다음 해에는 특별하게 화단을 만드는 대신에 곳곳마다 잡초 사이의 눈치채기 힘든 곳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기도 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누군지도 모를 침입자는 놀랍도록 예민한 감각으로,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찾아내는지 거의 남김없이 뽑아내 버렸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나 채송화가 아직 작을 때, 씨를 뿌린 당사자라도 찾아내려면 고생을 해야 할 정도로 구석진 곳에 숨어있더라도 어느샌가 뽑혀 있는 것에 놀랐다. 이만큼 섬세한 일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아이 같다. 어느 날 혼자서 갔을 때, 정원 쪽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려서 유리창 너머로 봤더니 13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네다섯 명이 대나무 막대기로 잡초 안을 찌르고 있었다. 내가 있는 것을 눈치채더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서는 별로 놀란 것 같지도 곤란해 하는 것 같지도 않은 듯한 모습으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침입자들이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두는 몇 종류인가의 화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코스모스와 개양귀비, 그리고 앵초다. 접시꽃이나 나팔꽃 등이 아직 새싹일 때라도 발견되어 뽑혀버리는데 이 세 종류만은 어째서인지 약탈을 면하고 기세 좋게 증식한다. 2, 3년간 완전히 주변을 덮어서, 이제는 도저히 아이 몇 명이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 꽃들이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흔해서인가 하고 생각도 해 봤지만, 사실은 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개양귀비는 이 근처의 민가의 뜰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일초가 오히려 정성스레 뽑혀나갔다. 또 코스모스는 흔하지만 뽑혀나가지 않는 쪽이었다.

혹은 이 세 식물의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침입자들이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도 너무 끼워 맞추는 식의 설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꽃이 여러 가지 나비나 벌레를 끌어들이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마도 아직 인간이 잘 모르는 신비로운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와 같이 여러 가지 화초가 아이들의 약탈취미를 자극하는 효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아직 간단한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법칙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곤충의 연구자가 나비나 개미를 연구하듯이, 이 작은 약탈자들의 습성을 연구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면 필시 재미있고 또 유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여유도 정열도 없다. 다만 1, 2년 더 지나서, 우리들도쿄 사람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반감이 한참 감소했을 때에 다시 한 번꽃밭의 꿈을 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5. 풀베기

저택 안에 풀 한 포기도 없는 자각을 향수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고용해서까지 뒤뜰의 구석구석에서 깨끗하게 풀을 뽑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기분이 적어도 어릴 적에는 몰랐다. 왜 풀이 자라서는 안되나 하고 아무래도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땅에서 나는 식물 중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처럼 자란 것이 깨끗하게 뽑혀 나가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옛 성터나 다른 황무지에 기세 좋게 자란 잡초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곳에 드러누워 새의 노래, 벌이 윙윙거리는 것을 듣는 것은 유쾌했다. 유화의 풍경화 등에서도, 부서진 울타리, 과일나무의 앞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듯한 제재(題材)는 지금도 가장 마음을 끌어당긴다.

도쿄에 집을 가지고 나서의 일이다. 어느 날 순사가 찾아와서는, 앞 담장에 풀이 너무 나 있으니 뽑도록 주의하고 갔다. 보아하니 과연 검게 썩은듯한 담벼락의 뿌리 부분에 여러 가지 풀이 새파랗게 무성하고, 개중에는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것도 있었다. 딱히 더럽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담장보다도 그 앞의 수채보다도 이 풀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경찰관이 하는 말이니 그 말대로 풀을 뽑아버렸다.

남들처럼 화초의 씨를 스스로 뿌려보고, 비로소 잡초의 안 좋은 부분을 좀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두면 모처럼 오래 살려보려고 한 화초가 모두 지고 마니까, 이렇게 되면 안타깝지만 잡초 쪽을 뽑을 수밖에 없다. 잡초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교외에 집을 구했다. 초봄부터 여러 가지 풀이 난다. 그중에는 꽃이 피면 꽤 아름다운 것도 있다. 하지만 또 멋대로 불어나 버려서 걷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마침내 집 안까지도 침입할 것 같은 기세를 보인다. 이렇게 되니 과연 잡초의 위협이라는 것을 느껴서, 마침내 풀베기를 할 결심을 했다. 풀을 베는 낫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낫 쓰는 법, 낫 가는 법도 농부의 전수를 받아서 마침내 달라붙었다.

베기 시작해 보니 몹시 힘들었다. 제법 벤 것 같아도 일어나서 보면 손바닥만큼밖에 진행되지 않아서 실망했다. 하지만 하는 중에 점점 풀베기 자체에 흥미가 생겨서 결과를 재촉할 기분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잘 드는 낫으로 베면 상쾌함을 느낀다. 또 풀뿌리를 팍팍 베는 것도 통쾌하다. 가려운 곳을 긁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러 가지 풀뿌리 뻗는 법에 각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것들의 목적론적 의의를 생각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같은 면적을 계절에 따라 다른 잡초가 교대로 점유하는 순서도 재미있고, 해에 따라 가장 많이 번식한 풀의 종류가 달라지거나, 그것이 인간의 간섭 때문에 영향받는 모습이나, 좀 더 깊이 연구해 보면 일종의잡초학이 성립될 것 같다. 그것을 여기에 쓰면 끝도 없으니 생략하겠다. 그저 한가지 염두에 둘 문제만을 간단히 써 둔다.

잡초 중에는 우리가 재배하는 오곡이나 야채나 관상식물과 아주 닮은 것이 매우 많다. 혹시 이러한 잡초를 특히 아끼고 배양하고 교육해 가면, 몇 대 후에는 오히려 현재의 유용한 식물들보다 유용한 것이 생겨날 가능성은 없을까?

오랜 기간 인간이 눈엣가시로 보고 학대받으면서도 강인한 저항력으로 생존해온 고양이풀이나 왕바랭이등을 갑자기 온실 안의 옥토로 옮기고 온갖 유효한 비료를 준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때에 따라서는 비료 식중독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가난할 때는 딱딱했던 것이 부자가 되어 갑자기 부드러워지듯이 어쨌든 부드러워질 것 같다. 그 대신 그 풀들의 열매가 점점 발육, 진화하여 쌀이나 보리보다도 좋거나 혹은 적어도 동등한 곡식이 되지는 않을까.

혹시 배양하는 법에 따라서 강인한 저항력을 보존하고, 또 열매는 충실하게 될 수도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을까.

누군가, 속는 기분으로 이 실험에 착수해 볼 사람은 없을 것인가.

 

6. 지푸라기가 솜이 된다는 이야기

지푸라기에 어떤 약품을 가해서 삶기만 하면 솜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방법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며, 몇몇 자본가들에게서 돈을 모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사기라고 하여 검거되어, 경시청의 관계자들 앞에서실험을 해 보이게 되었다. 반나절을 삶아서 펄프 같은 것이 생겼다. 다음날이 되면 솜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지나도 되지 않아서 사기라고 결정이 났다.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났다는 것이다. 신문기사니까 실제 사건의 진상은 잘 모르겠다. 단지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있는 일이다. 어떻게 신비적인 방법으로 괜찮게 돈을 벌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서 그것을 찾아다니는 자본가 앞에, 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출현하는 것이다. 악마라도 불러낼 것 같지 않은 사람 앞에는 그렇게 버릇없게 나타나지 않는다.

속이는 쪽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속는 쪽도 이 현상의 첫 번째 원인으로서의 책임은 있다. 혹시 현대과학을 이해하고 있는 오오오카 에치젠노 카미(大岡越前守:오오오카 타다스케(大岡忠相), 에도시대의 인물로 공정한 재판관으로 알려짐)가 이 사건을 재판한다면, 속은 쪽도 꾸짖음 정도는 들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다만 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경시청에서 실험을 시작해서, 계속해서 실험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설사 그때까지는 펄프와 솜을 바꿔치기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더라도, 그 때는, 하고 있는 중에 혹시나 정말 펄프가 솜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기분을 스스로 고무시켜서 비커 속을 휘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다.

하고 있는 중에 입회한 관계자들의 눈을 속여서 바꿔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상식적인 해석으로,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을지 어떨 지가 문제인 것이다.

거짓말도 계속 하다 보면 종국에는 스스로도 그것을믿게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여러 가지기적’, 예를 들면 천리안, 투시 등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조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정말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심해지면 자기 혼자서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수년간 계속해서지그스와 매기’(미국의 신문연재 4컷 만화인 ‘Bring Up Father’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 만화 자체의 별명이기도 했음.)를 그리고 있는 화가는, 결국에는 살아 숨 쉬는 지그스와 매기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게 되겠지만, 그것과 닮은 머릿속의 미혹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인가.

비커의 펄프가 솜으로 바뀔 때까지 있는 도중의 중요한 경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 별거 아닌 것에 눈을 감아주면, 확실히 지푸라기가 솜이 된 것은 틀림없다. 고구마가 장어가 되기도 하는사실도 이와 같다. 점점 이사실에 익숙해지면 결국에는 그 이른바별거 아닌경로를 생략해도 같은 결과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냉정한 상태에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해도, 절박한 사태에 놓여서 머리가 놈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는 의외로 있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보기에 따라서는 멍청한 장난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범죄심리학자의 연구 자료라도 된다면, 과학적 인식론의 선생이 인과율의 강의를 할 때의 재료도 될 수 있다.

인과를 잇는 뜨개질의 고리는 딱 하나만 빠져도 연이 끊어진다. 이 명백한 진실을 우리들은 곧잘 잊거나 속이거나 하는 일이 있다. 우리의 잘못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온다. 철도나 비행기의 고장도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것이 많다. 풍기문란, 풍속퇴폐 같은 현상도 대부분은 이것과 비슷한 일이 근본원인이다. 무심코 이 서툰 마술사를 비웃을 수는 없다.

(타이쇼 14 11, 추오코론(中央公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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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蜜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竜之介)


   어느 구름 낀 겨울날 저녁이었다. 나는 요코스카발 상행 2등 객차 구석에 앉아서, 멍하니 발차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전등이 켜진 객차 안에는 웬일인지 나 말고는 한 사람도 승객은 없었다. 바깥을 보니 어둑해진 플랫폼에도 오늘은 묘하게 송별하는 인영조차 흔적도 없고, 오직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 강아지가 한 마리, 가끔 슬픈 듯이 짖고 있었다. 이것들은 그때의 내 마음과 이상할 정도로 닮은 경치였다. 내 머릿속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가 마치 눈 오는 하늘처럼 어두침침한 그림자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지그시 양손을 찔러 넣은 채, 거기에 들어있던 석간을 꺼내서 볼 기운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발차 기적이 울렸다. 나는 약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쪽 창틀에 머리를 기대로, 눈앞의 정차장이 점점 뒷걸음질 치는 것을 기다린다고 할 것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게 그보다도 빠르게 요란한 나막신 소리가 개찰구 쪽부터 들린다고 생각했더니, 곧바로 차장이 뭔가 화를 내는 소리와 함께, 내가 타고 있던 이등실의 문이 드르륵 열리고, 열서넛쯤 되는 여자아이가 한 명,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한번 쭉 흔들리고, 서서히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씩 눈을 스쳐 지나가는 플랫폼 기둥, 남겨진 물수레, 그리고 차 안의 누군가에게 축하를 하는 빨간 모자-그 모두는 창문에 불어오는 매연 안에, 미련이 남았다는 듯이 뒤로 쓰러져 갔다. 나는 겨우 한숨 돌린 듯한 기분이 되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비로소 나른한 눈꺼풀을 올리고 앞좌석에 앉은 여자아이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그것은 윤기 없는 머리카락을 뒤로 잡아당겨 이초가에시로 묶고 옆으로 비빈듯한 흔적이 있는 잔뜩 튼 양 볼을 기분 나쁠 정도로 붉힌, 실로 시골뜨기 같은 소녀였다. 게다가 때가 낀 연두색 털실 목도리가 주르륵 늘어진 무릎 위에는 커다란 보자기꾸러미가 있었다. 또 그 보자기를 안은 튼 손 안에는, 삼등석 표가 소중한 듯 확실히 쥐어져 있었다. 나는 이 여자아이의 상스러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복장이 불결한 것도 역시 불쾌했다. 마지막으로 그 이등석과 삼등석의 구별조차 못 하는 우둔한 마음에 화가 났다. 그래서 담배에 불을 붙인 나는 오직 이 여자아이의 존재를 잊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이번에는 주머니의 석간을 멍하니 무릎 위에 펼쳐놓고 보았다.그러자 그때 석간 지면에 떨어지고 있던 외관이 갑자기 전등 빛으로 바뀌어, 인쇄가 잘 안 된 무슨 난의 활자가 의외일 정도로 선명하게 내 눈앞에 떠올라왔다. 말할 것도 없이 기차는 지금 막 요코스카 선에 많은 터널 중 최초의 터널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 전등 빛에 밝혀진 석간의 지면을 바라보아도, 역시 내 우울을 위로하게끔, 세간은 너무나 평범한 사건만이 화제였다. 강화문제, 신랑 신부, 독직 사건, 사망광고- 나는 터널에 들어간 한순간, 기차가 달리는 방향이 거꾸로 된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그러한 삭막한 기사에서 기사로 거의 기계적으로 훑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물론 그 여자아이가 마치 저속한 현실을 인간으로 만든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 터널 안의 기차와 이 시골뜨기 여자아이와 그리고 또 이 평범한 기사로 메워진 석간과, -이것이 상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불가해 한, 열등한, 지루한 인생의 상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모든 것이 시시해져서, 읽다 만 석간을 내던지고 다시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만가 지난 다음이었다. 문득 무언가에 위협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아까의 여자아이가 맞은편 자리에서 내 옆으로 옮겨와서, 자꾸 창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무거운 유리창은 좀처럼 생각대로 안 열리는 것 같았다. 저 튼 자국투성이 뺨은 이젠 빨갛게 변해서, 가끔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가, 작은 숨찬 목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귀에 들어온다. 이것은 물론 나라도 어느 정도는 동정하게 하는데 충분한 것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기차는 이제 바야흐로 터널 입구에 다다르려고 있다는 것은, 저녁 어스름 속에 마른 풀만이 밝은 양쪽의 산 중턱이 아주 가까이 창 쪽에 다가왔다는 것으로도 바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 여자아이는 일부러 닫혀있는 창문을 열려고 한다. 그 이유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그것이 내게는 단지 이 여자아이의 변덕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뱃속에 여전히 험한 감정을 품으며, 그 튼 손이 유리창을 올리려고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마치 그것이 영원히 성공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듯한 냉혹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자 곧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기차가 터널에 뛰어드는 것과 동시에 여자아이가 열려고 했던 유리문은, 마침내 툭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사각 구멍 안에서, 그을음을 녹인 것 같은 시꺼먼 공기가, 약간 숨쉬기 힘든 연기가 되어, 자욱하게 차 안으로 들이차기 시작했다. 원래 목이 안 좋은 나는, 손수건을 얼굴에 댈 틈도 없이, 이 연기를 온 얼굴에 씨인 덕에, 거의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기침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내게 신경을 쓰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어둠을 뿜는 바람에 이 초가에 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계속해서 기차의 진행방향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을 매연과 전등 빛 사이에서 보았을 때, 이미 창밖이 점점 밝아져서, 거기서부터 흙냄새나 마른 풀 냄새나 물 냄새가 차갑게 흘러들어오지 않았다면, 겨우 기침이 끝난 나는, 이 본 적도 없는 여자아이를 정신없이 꾸짖어서라도 다시 원래대로 창문을 닫게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기차는 그때는 이미 간단히 터널을 미끄러져 나와, 마른 풀의 산과 산 사이에 끼인, 어느 가난한 마을의 건널목에 들어가고 있었다. 건널목 가까이에는 모두 초라한 초가지붕 집이나 기와지붕 집이 빽빽이 비좁게 들이서서, 건널목 지기가 흔들어야 할 오직 한 폭의 허연 깃발이 느른하게 노을을 흔들고 있었다. 겨우 터널을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을, 바로 그때 그 쓸쓸한 건널목 울타리 저편에, 나는 뺨이 붉은 세 남자아이가, 꽉 붙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이 흐린 하늘에 눌려버렸나 하고 생각할 만큼, 모두 키가 작았다. 그리고 또 이 마을 변두리의 음침한 풍물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이 기차가 지나는 것을 올려다보면서 일제히 손을 드는가 했더니 애처롭게 목소리를 높여 뭐라고 의미도 모를 환성을 열심히 질렀다. 그러자 그 순간이었다. 창문에서 반신을 내민 그 여자아이가, 그 튼 손을 쭉 내밀어서, 기세 좋게 좌우로 흔들었는가 싶었더니, 갑자기 마음을 들뜨게 할 만큼 따뜻한 태양 빛으로 물든 귤이 대충 대여섯 개, 기차를 전송하는 아이들의 위로 후드득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찰나에 모든 것을 이해했다. 여자아이는, 아마도 이제부터 고용살이를 가는 여자아이는, 그 품에 품고 있던 몇 개인가의 귤을 창에서 던져서, 일부러 건널목까지 전송하러 온 남동생들의 수고에 보답한 것이다.
 노을을 띤 마을 구석의 건널목과 새처럼 소리를 높이는 세 명의 아이들과 그리고 그 위에 어지럽게 떨어지는 선명한 귤의 색과── 그 모든 것은 기차의 창밖으로,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 위에는, 애달프도록 선명히, 이 광경이 새겨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맑은 기분이 솟아나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기운 좋게 머리를 들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 여자아이를 주시했다. 여자아이는 어느새 이미 내 앞자리로 돌아와, 여전히 틀대로 튼 볼을 연두색 털실 목도리로 감싸며, 커다란 꾸러미를 안은 손에, 꾹 삼등석 표를 잡고 있다. …………
 나는 이때 비로소, 뭐라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그리고 불가해 한, 열등한, 지루한 인생을 겨우 잊어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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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기관차(とむらい機関車)

오사카 케이키치(大阪 圭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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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철D50형 증기기관차를 일컬음. 444호는 실존하지 않음 [본문으로]
  2. 다도에서 물을 끓이는 솥. 위가 좁고 솥전이 있음. [본문으로]
  3. 물과 연료를 공급하는 탄수차(炭水車)가 기관차 뒤에 별도로 있는 방식의 기관차 [본문으로]
  4. 현재의 카와사키 중공업 차량 컴퍼니(川崎重工業車両カンパニー) [본문으로]
  5. 1906년부터 생산된 담배, 현재도 생산되고 있음. [본문으로]
  6. 춘분, 추분에 있는 불교의 법회 [본문으로]
  7. 돌리개 못(dog spike)? [본문으로]
  8. 크리프. 열차의 통과에 의해 궤도가 전후 방향으로 이동하는 복진현상 [본문으로]
  9. 원문에서 병의 이름은 모두 한자가 아닌 카타카나로 표기되어 있음.또, 그 외의 어려운 한자도 카타카나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있음.(역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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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신사(香水紳士)

오사카 케이키치(大阪圭吉)


1
  시나가와(品川[각주:1])역에서 바로 앞 자리에, 그 제멋대로인 손님이 타자, 쿠루미씨(クルミさん)는 완전히 기운을 잃고 말았다.
  “오늘은 아주 날씨가 좋으니까, 코우즈(国府津[각주:2])에 계시는 숙모 댁에서는 후지산가 아주 잘 보여요.”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기쁘게 집을 나왔을 때의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 좌석의 구석에 웅크린 채 완전히 기가 죽어서, 창문 너머로 뒤쪽으로 지나가는 교외에 가까운 거리의 지붕들을, 풀이 죽은 채 지켜보는 것이었다. 
  도쿄역 출발 오전8시 25분의, 이토(伊東[각주:3])행 보통열차다.
  그 열차의 삼등차의, 구석자리의 좌석에, 쿠루미씨는 딱딱하게 굳어서 앉아있는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객차 안에는 신록(新綠)이 온 하코네(箱根)나 이즈(伊豆)로 나가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다.
  하지만 쿠루미씨는 하코네나 이즈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훨씬 가까운 코우즈의 숙모님 댁에 가는 것이었다.
  코우즈의 숙모님 댁에는 사촌언니인 노부코(信子)씨가 있다. 노부코씨는 쿠루미씨보다 다섯살 연상인 21세로, 이달 말에 결혼한다. 쿠루미씨는 일요일을 이용해서 처녀시절의 노부코씨에게 작별과 축하를 전하는 것도 겸해서 숙모님 댁으로 가는 것이었다.
  객차의 선반 위의 보자기 안에는 엄마가 부탁한 축하선물이 들어있다. 어젯 밤, 엄마와 둘이서 신주쿠(新宿)에 나가서 마련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때 같은 가게에서 엄마는 모르도록 자신만의 축하선물이라는 의미로 산 물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쿠루미씨의 제복 주머니 안에 몰래 숨겨 놓았다.
  귀여운 빨간 리본을 묶은, 작고 아름다운 세공이 된 나무상자에 들어가 있는 향수였다.
  “뭔가 나만의 축하선물을 주고싶어……”
  라고 생각하여,
  “뭘로 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떠오른 물건이었다.
  “이거, 내가 준비한, 축하 선물……”
  그렇게 말하고, 살짝 노부코씨에게 전달할때의 즐거움을, 어젯 밤 부터 가슴속에 그리고 있던 쿠루미씨였다.
  그 향수의, 귀여운 나무상자와 함께, 쿠루미씨의 주머니 안에는 츄잉껌과 캐러멜이 들어있었다. 즐거운 잠깐의 여행을 즐기기 위한 준비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쿠루미씨는, 오늘의 코우즈행을 이미 사흘이나 전부터 밤에도 잠들지 못할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아침이 되었을 때는, 이미 밥도 제대로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안돼요, 쿠루쨩. 밥은 잘 먹고 가야지…”
  어머니가 그렇게 타일러도,
  “그래도 먹고싶지 않은걸요. 혹시 배가 고파지면, 오오후나(大船[각주:4]에서 샌드위치를 살거에요. 그곳의 샌드위치, 정말 맛있는걸요.”
  “어머, 정말 깜찍하기도 하지. 어디서 그런 걸 들었니?”
  “정말, 무슨 소리세요. 작년 여름에 카마쿠라(鎌倉)에서 돌아올 때, 엄마가 사 주셨잖아요…”
  그래서 일찍 집을 나와, 들뜬 마음으로 도쿄역에 온 쿠루미씨다.
  일요일이라, 열차는 상당히 붐볐지만, 그래도 객실의 가장 구석자리에, 아직 아무도 않지 않은 훌륭한 박스석을 발견했다.
  가장 구석자리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쿠루미씨를 기쁘게 했다.
  “여기라면 껌을 씹든 샌드위치를 먹든 부끄럽지 않을거야”
  마음껏, 한시간 반의 짧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창가의 자리를 잡아서, 유리창을 힘껏 밀어서 연다. 그러면 기분 좋은 5월의 산들바람이, 장난을 치듯 흘러들어온다.
  이윽고, 벨이 울리고,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쿠루미씨의 즐거운 짧은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고 1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열차가 시나가와 역에 멈추자, 쿠루미씨의 박스로 한 사람의 동승객이 끼어들어왔다. 그리고 그 손님 덕에, 순식간에 쿠루미씨는 완전히 풀이 죽어서 좌석 구석에서, 웅크려버린 것이었다.

2
  그 손님은, 나이는 40전후의, 눈매가 묘하게 날카로운, 얼굴도 몸도 몹시 큰, 양복을 입은 신사였다.
  중절모를 깊숙히 눌러 쓰고, 쥐색 스프링 코트 주머니에, 왠지 오른손을 계속해서 찔러넣은 채였다.
  처음에, 신사는 객차로 들어오더니, 통로에 선 채로 재빨리 객차 안을 둘러본 다음, 아직 다른데도 자리가 있는데도 문득 쿠루미씨 쪽을 보더니, 제법 만족한듯한 표정을 잠깐 보이고는, 곧바로 다가와서, 쿠루미씨의 눈 앞 자라에, 큰 몸을 사양하지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쿵 앉은 것이었다.
  그리고 웃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마치 가면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쿠루미씨의 얼굴을, 몸을 유심히 보았다.
  모자는 쓴 채로,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이다.
  쿠루미씨는 오싹해져서 몸을 웅크리고는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열차는 어느새 신록으로 가득 찬 오오모리(大森[각주:5])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하늘은, 멋지도록 맑은 날씨다.
  보통때라면, 이미 이 쯤에서, 슬슬 츄잉껌을 씹기 시작했을텐데, 지금은 그럴수도 없다.
  “모처럼 생긴 즐거움도, 이래서는 완전히 엉망이야”
  쿠루미씨는, 옆얼굴 쪽에 신사의 기분나쁜 시선을 느끼면서, 몰래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신사는 쿠루미씨에게서 얼굴을 돌리고는, 창쪽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코트의 왼쪽 주머니에서 왼손으로 신문을 꺼내더니, 여전히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부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신문을 펼쳐서, 그것을 얼굴 위에 덮듯이 하면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창 밖을 보고 있어도, 쿠루미씨는 그 동작을 잘 알 수 있었다.
  가끔, 창밖에서 흘러들어온 상쾌한 바람을 맞아, 신문이 펄럭펄럭 운다. 그러면 신사는, 그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이쪽을 보는 듯 했다.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
  쿠루미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왠일인지 묘하게 몸이 움츠러들어서 손이 나가질 않는다. 애당초 이 신사가 끼어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 몸을 한번도 안 움직인 쿠루미씨다. 게다가 창문을 닫으려고 하면 어쨌든간에 신사의 머리 뒤로 한 손을 가져가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신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으로 밖을 보고 있던 쿠루미씨에게 뭐라 하지도 않고 거친 기색으로 유리창을 닫아버렸다.
  쿠루미씨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신사의 언짢은 기분이, 쿠루미씨의 마음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또 다른 큰 이유가 있었다. 쿠루미씨는, 신사의 오른손을,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시차의 창문을 닫을때는, 반드시 양손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지금 일어난 신사도 이 때 처음으로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양손으로 창문을 닫은 것인데, 딱 그 오른손이 창 밖을 보고 있는 쿠루미씨의 얼굴 앞에 와서 멈췄다. 하지만 창문이 닫히자, 재빠르게 신사는 그 손을 빼서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방금 전의 자세로 돌아가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쿠루미씨는 신사의 오른손을 보고 말았다.
  그 손은 중지가 뿌리부터 없어서, 네 손가락이었다.
  “아, 상이군인이실까?”
  순간, 쿠루미씨는 그렇게 생각하여,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혹시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소녀일까! 그런 훌륭한 분과 동석한 것을 유쾌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곧바로 쿠루미씨의 머릿 속에는 뭉게뭉게 하나의 의혹이 떠올랐다.
  “하지만, 혹시 군인아저씨라면 어째서 그 훌륭한 부상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감추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만약 군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상처를 입은 분이라고 해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숨길 리는 없다.
  쿠루미씨는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전보다도 더 몸이 조이는 느낌이 들어, 더욱 웅크려서, 창문 너머로, 한동안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3
  얼마 가지 않아 열차는 요코하마를 통과했다.
  “어쩌면 요코하마에서 내릴지도 몰라”
  그렇게 몰래 마음 속에서 생각했던 쿠루미씨의 바람도, 완전히 배신당해서 신사는 여전히 쿠루미씨의 눈앞에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읽고 있던 신문을 모자를 쓴 채로 얼굴 위에 올려놓은 채, 아무래도 졸기라도 시작한 듯, 가벼운 코골음이 들려온다. 이런 식이라면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코우즈보다도 먼, 오다와라(小田原[각주:6])나 아타미(熱海[각주:7]) 근처까지 갈지도 모른다.
  쿠루미씨는, 결국 포기해버렸다.
  “이러면 이미, 오오후나의 샌드위치도 못 먹게 되어버렸어.” 신사는 졸고있는 듯 하니까, 샌드위치를 산다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소리를 내서 깜빡 눈이라도 뜬다면 오히려 난처하다.
  쿠루미씨는, 살짝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츄잉껌도 캐러멜도 아직 그대로 있다.
  쿠루미씨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밖을 보았다.
  창 밖은 상쾌한 신록으로 감싸인 쇼난(湘南[각주:8])의 산야가, 아름다운 5월의 태양빛을 받으면서, 마치 축음기의 레코드처럼 빙글빙글 끝도 없이 전개되어간다. 그런 경치를 바라보면서, 쿠루미씨는 어떻게든 자신의 기분을 북돋아서 오늘 아침의 기운을 되찾으려고 노력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북돋아지기는 커녕, 이 때 오히려 별건 아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까부터, 조금씩 미끄러지고 있던 신사의 얼굴 위의 신문이, 이 때 버석하고 소리를 내며 신사가 옆으로 앉아있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쿠루미씨는 철렁했다.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며 신사의 얼굴과 신문을 번갈아보았다.
  물론 이대로 그냥 두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 때 쿠루미씨는 무심코 움찔했다.
  신사의 얼굴은, 뒤쪽의 등받이와 창틀 사이로 끼어들어가듯이 해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모자가 앞으로 미끄러져서, 절반쯤 감추어져 있지만, 그것은 아까 그대로의 얼굴이다. 쿠루미씨가 놀란 것은 그 얼굴이 아니라 떨어진 신문 쪽이다. 그 신문은, 떨어진 기세로 뒤집혀서, 아까까지 신사가 열심히 읽고 있던 면이 나와 있는 것이다. 쿠루미씨는 정말 아무생각 없이 그 신문을 본 것이지만, 무심코 움찔해서, 자칳 소리를 낼 뻔 했다.
  그것은 3면 기사로, 오른쪽 위의 지면에, 다음과 같은 무서운 문자가 커다란 활자로 인쇄되어있었다.

    복면의 강도, 오늘 새벽 시부야의 XX은행을 덮쳐서 은행의 돈을 강탈하여 달아나

  그것이 표제였고, 그 다음으로 작은 문자가 몇줄이나 이어지고, 그리고 다시 전보다는 좀 작은 문자지만, 한층 두려운 제2의 표제가 인쇄되어 있었다.

    범인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로, 중지가 없는 네 손가락의 오른손이 가장 큰 특징, 범인이 흉기를 들이댔어도 침착했던 숙직원의 관찰

  쿠루미씨는, 갑자기 눈앞이 어질어질해져서, 무심코 등받이에 기대고 말았다.

4

  어쩜 이렇게 무서운 일이!
  몸 속의 피가 두근두근 역류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묘하게 몸이 긴장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움직일 수도 없다.
  “잘못 본거면 좋을텐데!”
  쿠루미씨는 열심히 자신을 내리눌렀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뭉게뭉게 두려운 생각이 떠올라왔다.
  ─그래, 양복을 입은 사람은 어디에도 있고, 덩치가 큰 남자도 몇명이 있을지 몰라. 그리고 중지를 상처입어 잃은 분도 넓은 도쿄에는 몇명이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세가지 특징이 셋 모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게다가 이 신사는 극단적일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네 손가락의 오른손을 숨기고 있잖아! 그러고보니 객차에 들어왔을 때의 태도도 굉장히 이상했어!”
  쿠루미씨는 덜덜 몸을 떨었다.
  ─아마 이 신사는 처음 객차에 들어왔을 때,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고 쿠루미씨 한사람 뿐인 이 자리를 발견하고, 상대를 소녀라고 얕잡아봐서 그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을 것이 틀림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젯 밤 그런 무서운 일을 해서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아타미나 하코네로 도망가는 도중에 그만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쿠루미씨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바로 눈 앞의 신문기사에 의하면, 범인은 흉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멍청하게 소리라도 냈다간, 어떤 꼴이 될지 모른다.
  “몰래 차장님께 알려볼까?”
  하지만 그런 것을 했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상대가 그처럼 무서운 남자라면 오히려 소란을 피워서 평화로운 승객들 사이에서 실수라도 일어난다면 그쪽이야말로 큰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미 쿠루미씨는 돌처럼 굳어버려서 소리를 내고 싶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굳은 채로, 조심조심 다시 한번 신문을 본다.
  “침착한 숙직원의 관찰”
  이라는 표제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조금은 쿠루미씨의 마음 속에 밝은 것이 보였다.
  “그래, 침착해야 해”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며, 과감히 신사의 얼굴을 본다.
  졸던 것이 완전히 잠들어버린 것 같다.
  열차는, 어느새 몇개인가 역을 통과해서, 점점 코우즈에 가까워져 간 것 같다.
  문득, 쿠루미씨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말하기 힘든 분함이 솟아오르는 것을 자각했다.
  생각해보니, 큰 일이 되어버렸다. 모처럼 즐거워야 할 여행이 덕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모르는 어른과 동석은, 보통 사람이라도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았던 오늘의 여행에, 하필이면 두려운 도적신사와 합승이라니! 문득 사이 쿠루미씨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 이 객차 안에 이런 두려운 신사가 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만이 알고 있다. 이대로 모르는 척 하고 코우즈에 내려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자신같은 소녀의 몸으로, 이렇게 떨고 있는 듯 겁을 먹고 있는데,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멀리, 마츠하라(松原) 너머로 본 적이 있는 코우즈의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슬슬 짐을 내려놓아야 해.”
  급히 정신을 차리고 쿠루미씨는 과감히, 조용히 일어났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마치 꿈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아서, 좀처럼 선반의 보자기꾸러미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윽고 내릴 수 있었다.
  신사는 여전히 졸고 있다.
  이 때, 출하 선물이 들어가 있는 그 보자기꾸러미를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서 문득 쿠루미씨의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번뜩였다. 그러자, 전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쿠루미씨의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눈은, 갑자기 생기있게 빛났다.
  잠시간 쿠루미씨는 어찌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창 밖으로 코우즈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쿠루미씨는 제복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빨간 리본이 묶인, 작고 예쁜 나무상자를 꺼냈다.
  그것은, 노부코씨를 축하하려고 몰래 사 온 그 향수였다.
  쿠루미씨는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은 손놀림으로, 덜덜 떨면서도 그 아름다운 리본을 풀고, 레테르를 떼고,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고, 안에서, 둥글고 귀여운 향수의 병을 꺼내서, 그 마개의 봉인을 뜯었다.
  쿠루미씨는 조용히 몸을 숙였다.
  마개를 뺀 향수병을 졸고있는 신사 쪽으로, 두근두근 떨면서 내밀고, 내밀었나 싶더니 재빨리 병 입구를 아래로 기울여서, 신사의 양복에, 아까운 기색도 없이 줄줄 내용물을 흘려버렸다.
  열차는, 코우즈역에 멈췄다.
  아직도 잠들어있는 신사를 남긴 채, 쿠루미씨는 열차를 뒤로 했다. 그리고 역을 나와서는, 마치 불이라도 지른 것 같은 긴장된 얼굴을 하고, 바로 역 앞의 파출소의 앞에 섰다.

5

  쇼난에서 이즈의 마을들에 걸쳐서, 경찰전화가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오다와라에서 이토에 이르는 열한 정거장의 출구에는, 날카로운 눈을 한 사복의 경찰아저씨들이 눈이 아니라, 코를 벌름벌름 거리면서, 마치 여행객같은 모습으로 살짝 서기 시작했다.
  여기는 아타미 역이다.
  오전 10시 46분, 이토행 열차가 도착하자, 많은 승객들이, 넓은 플랫폼으로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한명의 이상한 신사가─전신에 굉장한 향수 냄새를 확 풍기는 신사가 오른손을 스프링 코트의 주머니에 넣은 채, 왠지 대단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고, 코를 벌름벌름 거리면서 사람들 사이를 헤치듯이 하며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신사가 발산하는 강하고 격렬한 향기를 맡고, 놀란듯이 멈추어 서서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혹은 질린듯한 얼굴을 하고 신사를 되돌아보고 눈으로 쫓았다.
  그러자 신사는 결국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면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빠른 걸음이 되었다.
  그러자 그 몸에서 나오는 향기는 스스로 일으킨 바람을 타고, 더욱 더 퍼져서, 한층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서서, 이상한 듯 신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사는 울 것 같이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갑자기 이번에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더욱 심하게 당황하기 시작하여 당황한 발걸음으로 플랫폼에서 지하도로, 지하도에서 역 출구로, 때마침 불어온 상쾌한 5월의 산들바람에, 정차장 전체에 때아닌 향수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면서 뛰쳐나갔다.
  이런 신사가, 역의 출구에서 아까부터 코를 벌름벌름거리면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아저씨들을 속일 수 있을 리는 없다. …

  그날 밤, 도쿄의 집으로 돌아온 쿠루미씨에게, 경시청의 높은 경찰아저씨와, XX은행의 지배인, 그리고 신문사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진을 찍히거나 여러가지 질문을 받거나 한 후에, 은행의 지배인이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 덕에 우리 은행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뭔가 사례를 하고 싶은데, 무엇을 바라나요?”
  그러자 쿠루미씨는 잠깐 망설였지만, 살짝 말했다.
  “그런가요? 그러면, 모처럼이니까, 제가 써 버린 그 향수를 사 주실 수 있나요? 왜냐하면 저, 그 물건을 사촌 언니인 노부코씨에게 선물할 생각이었거든요.”
  “아니아니, 아가씨. 우리는 더 많은 사례를 하고싶어요. 그건 그렇고, 자, 뭐든지 좋으니 바라는 다른 것을, 한가지 더 말씀해보세요.”
  그러자, 쿠루미씨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는, 부끄러운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면, 저,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요”

(끝)

  1. 지금의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역의 이름 [본문으로]
  2. 현재의 카나가와현(神奈川県) 오다와라시(小田原市)에 있는 지명 [본문으로]
  3. 현재의 시즈오카현 동부에 위치한 시 [본문으로]
  4. 카나가와현 카마쿠라시(鎌倉市)에 있는 지역의 이름. [본문으로]
  5. 도쿄도 오오타구(東京都 大田区)에 있는 지명 [본문으로]
  6. 카나가와현 서부에 있는 시 [본문으로]
  7. 시즈오카현에 있는 시, 카나가와현과 접해있음 [본문으로]
  8. 카나가와현 사가미만(相模湾)의 연안지방을 일컫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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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교수형집행인(デパートの絞刑吏)

오사카 케이키치(大阪圭吉)


  아마 독일 영화였을 것 같은데, 어느 영화의 시사회에서 아오야마 쿄스케(青山喬介)와 알고 지내게 되고부터 2개월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아침 5시 반, 회사에서 온 전화를 받은 나는 쿄스케와 함께 R백화점으로, 그 날 아침 일찍 발생한 투신자살 뉴스를 취재하기 위해, 풀스피드로 택시를 달리게 했다.

쿄스케는 나보다 3년이나 선배로, 일찍이 모 영화사의 이채로운 감독으로서 특이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일본 팬의 일반적인 취향이나 회사의 영리주의와는 영합하지 못하여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일개 자유연구가로서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근면하면서도 끈질긴 그는 어떤 면에서는 메스같이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주 나를 놀래켰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온갖 과학의 분야에 걸쳐서 주도면밀한 통찰력과 대단히 명석한 분석적 지력을 행사하여 광대하고 가치있는 학식을 품고 있었다.

나는 쿄스케와의 이 교류에서 당초에는 그 놀라운 학식을 나의 직업적 활동을 위해 이용하려고 획책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의 야심은 한없는 경탄과 경모(敬慕)의 마음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혼고(本郷)에 있는 하숙집을 나와서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그것도 그의 옆 방으로 이사해버렸다. 그만큼 이 아오야마 쿄스케라는 남자는, 내게 있어서 범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6시 10분 전에, 우리는 R백화점에 도착했다. 낙사의 현장은 이 아파트 뒤에 해당하는 동북쪽의 노지(露地)로, 혈흔이 응결된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부근의 점원이나 노동자나 이른 아침의 통행인이 건물 옥상을 올려다보거나, 저마다 요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체는 매입부(仕入部)의 상품창고에 가수용되어, 당국이 막 검시를 끝낸 참이었다.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자, 이번에 OO서(署)의 사법주임으로 승진한 내 사촌이 쾌히 우리를 맞아주면서, 이 사건은 자살이 아니라 교살에 의한 타살사건이며, 피해자는 이 백화점의 귀금속매장의 금전출납계인 노구치 타츠이치(野口達市)라는 28세의 독신점원인 것, 사체의 낙하점 부근에 다이아몬드가 섞인 고가의 진주 목걸이가 몇 개 떨어져 있었으며, 그 목걸이는 그저께 피해자가 근무하는 귀금속매장에서 분실된 두 물건 중 하나라는 것, 거기에다가, 사체와 목걸이는 오늘 아침 네시에 순회중이던 경관이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 까지, 조금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해 주었다. 설명이 끝나자, 우리는 허락을 얻어 사체에 접근하여, 양귀비 꽃 같은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두개골이 분쇄되어 극단적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응결된 검붉은 혈흔에 의해 심하게 색칠되어 있었다. 목 부분에는 거친 교살의 흉터가 남아서, 흙빛으로 변색된 국부의 피부는 이리저리 찢어져서 소량의 출혈이 타올천 잠옷의 옷깃을 물들이고 있었다. 검시를 위해 노출된 흉부에는 비슷하게 흙빛으로 지렁이처럼 길게 부은 자국이 이상하게도 사선으로 가로질러서, 그 이상한 선을 따라 좌흉부의 늑골 하나가 무참히도 꺾여 있었다. 게다가 시체 곳곳─양 손바닥, 어깨, 아래턱, 팔꿈치 등의 노출된 곳은, 무수한 찰과상이 아플정도로 남아 있고, 타올천 잠옷에도 터진 부분이 두세군데 보였다.

내가 이 비참한 광경을 노트에 적고 있는 사이에, 쿄스케는 대담하게도 직접 사체에 손을 대어 손바닥이나 다른 곳의 찰과상과 경흉부(頸胸部)의 교살흔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사후 몇시간 경과했습니까?”

쿄스케는 일어나서는, 별나게도 옆에 있던 검시관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6,7시간 흘렀지요.”

“그럼, 어제 10시부터 11시 사이에 살해당한 것이로군요. 그리고 언제쯤 던져진 것일까요?”

“길 위에 남은 혈흔이나 머리의 혈흔의 응결상태로 봐서 아무래도 오전 3시보다는 전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12시까지는 저 노지에도 통행인이 있었으니까, 결국 시간의 범위는 0시부터 3시쯤까지로 한정되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피해자는 숙직원은 아니었을까요?”

쿄스케의 이 질문에 검시관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금까지 사법주임에게 뭔가 질문을 받고 있던 잠옷차림의 점원 6명 중 1명이, 검시관을 대신해서 쿄스케의 질문에 대답했다.

“노구치군은 어젯 밤에 숙직이었습니다. 각각 다른 매장에서 매일 밤 순번을 교대해가면서 숙직을 서는 것이, 이 백화점의 특이한 규칙이랄까 뭐 결정사항이거든요. 어젯 밤의 숙직은, 점원 중에서는 이 노구치군과 저와 저기 서있는 다섯명, 합계 7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허드렛일을 하는 용무원 분들이 저기 있는 셋을 더해서, 전부 10명이 숙직이었습니다. 그런 식이라 같은 숙직실에서 자면서도, 숙직원들 중에서는 서로 잘 모르는 얼굴뿐이게 됩니다. 어젯밤의 상황이요?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는 매일 밤 9시까지 야간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9시에 폐점하고 나서 완전히 조용해질 때까지 40분은 충분히 걸립니다. 어젯밤에 우리가 각각 분담해서 문단속을 확인하고부터 소등하고 잠들었을 때는, 이미 10시에 가까워져 있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노구치군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혼자서 나간 것 같습니다만 아마 화장실에라도 가는거라고 생각해서 딱히 마음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아침 4시에 경찰이 깨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푹 잠들어버린 겁니다. ……예, 숙직실은, 용무원 아저씨들이 지하층(地階)이고, 우리는 3층의 뒷편에 있습니다. 6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 말입니까? 특별히 잠가놓지는 않습니다.”

이 숙직점원의 진술이 끝나자, 쿄스케는 다른 8명의 숙직원들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에 관해서 지금의 진술 이외에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없는가 하고 질문했다. 그러나 딱히 새로운 보고를 한 자는 없었다. 다만, 아동복매장에 속해있다고 말한 한명이, 어젯밤은 치통때문에 1시쯤 까지 잠들지 못했다는 것, 그 사이에 노구치 타츠이치의 침대가 비어있었다는 것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이상한 소리등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 등, 약간의 진술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목걸이게 관한 쿄스케의 질문에 대해서 코 끝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귀금속매장의 주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막 소식을 듣고 놀라서 출근했습니다. 노구치군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결코 남의 원환을 살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목걸이 도난사건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노구치군과 목걸이랑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목걸이는 그저께 밤 폐점시에 분실한 것입니다. 이거랑 이거 두개입니다. 합쳐서 딱 2만엔이 되는 상품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에서 추정해보면 확실히 손님중에 범인이 섞여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귀금속매장의 점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점원의 신체검사를 하느니 건물의 위에서 아래까지 면밀한 수색을 하느니, 아주 그제 어제는 큰 소동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런 결말이 나버렸습니다. 정말 이상하군요.”

막 주임의 진술이 끝났을 때, 시체 운반차가 와서, 세명의 허드렛일 숙직 용무원이 시체를 무거운듯이 들어서, 겁을 먹은 듯 비틀비틀한 발걸음으로 옮겨갔다. 그 모습을 잠시간 아쉬운듯이 보고 있던 쿄스케는, 이윽고 돌아서서 내 어깨를 치면서 기세좋게 외쳤다.

“옥상에 가세”

이미 개점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어느 매장에서도 어느새 출근한 많은 점원이나 판매원들이 상품 위에 덮인 하얀 사라사 시트를 접거나, 새로운 상품을 옮기는 등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것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면서 곧 우린 옥상으로 나왔다. 지금까지의 음산한 기분을 떨쳐내고 맑게 개인 초가을의 하늘 아래로 멀리 펼쳐진 거리의 집들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깊은 호흡을 반복했다.

쿄스케는, 피해자 노구치가 떨어졌다고 생각되는 동북쪽 구석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굽히고 타일을 발라놓은 바닥을 비추어보거나 외곽을 둘러싼 철책 안쪽을 따라서 있는 1m정도 폭의 화단에 손을 찔러넣어, 낮은 나무의 뿌리쪽 흙을 뒤섞는 듯이 조사해보기도 했지만, 곧 복잡한 기색을 양 눈에 띄우고서는, 서쪽 구석에서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파수꾼의 모습이나, 동쪽의 노대(露臺) 위에서 기구(氣球)담당의 남자가 경기구(輕氣球/벌룬)의 수선을 하고 있는 모습에 홀려있던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자네, 호랑이를 보고 있었나? 우리도 좀 먹이를 얻어야하지 않겠나? ……이건 제법 재미있는 사건이야”

이미 쿄스케는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쿄스케는 이 사건에 나서버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깊숙한 호기심적 매력에 이끌린 나는, 쿄스케를 따라 6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나는 전화실에 들어가서, 신문기자로서의 나의 직책을 다하기 위해 회사에 일단 보고를 끝내고, 쿄스케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역시 아침에 보니 식당 내부는 매우 조용했다, 다만 구석 창가에 있는 테이블 하나에, 사법주임과 그의 부하 한명이 두꺼운 샌드위치를 깨물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일어나서 같은 테이블로 우릴 불러주었다. 우리는 쾌히 그 의자에 앉았다. 급사가 우리의 주문을 받으러 오자, 화사한 철격자가 끼워진 창문을 보고 있던 쿄스케는, 그 소녀를 붙잡고 몇층의 창이든 간에 이렇게 철격자가 끼워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윽고 우리들의 식사가 시작되자, 뜨거운 홍차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사법주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건은 복잡하지만 해결은 쉽습니다. 나는 실지검증주의(實地檢證主義)니까요. 그래서 말인데─물론, 살인은 어젯 밤 10시부터 11시 사이에 일어나서, 오늘 아침 0시부터 3시쯤까지 사이에 옥상에서 던져진겁니다. 이 시간도 그렇고, 문단속이 엄중해서 외부에서의 침입의 여지가 없는 점도 그렇고, 범인은 명백히 백화점 안에 있던 자입니다. 그렇겠지요? 더욱 확실히 말하면, 어젯 밤 이 백화점 안에 있었던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여러분께만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부터 어젯 밤의 숙직원들을 전부 철저하게 조사할겁니다. 다만, 여기서 좀 곤란을 느기는 문제는, 목걸이 건입니다. 혹시 목걸이를 훔친 범인이 노구치를 살해했다고 치면, 왜 범인은 목걸이를 포기했는가? 또 혹시 목걸이를 훔친 것이 피해자 자신이라면, 살인의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는 먼저 목걸이의 지문을 검출해 보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사법주임은, 기세좋게 인사를 남기고 부하 경관을 이끌고 식당을 나갔다.

지금까지 말 없이 식사를 하고 있던 쿄스케는, 그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띄우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자네의 사촌이라고 했지? 뭐 괜찮겠지. 보통 일본 경찰은 범죄의 동기를 가장 먼저 밝혀내려고 하지. 그래서 설령 그것이 피상적인 것이라도 이번 사건처럼 언뜻 보기에 동기를 이해할 수 없는 범죄에 봉착하면 즉시 사건 자체를 복잡화시켜버리지. 물론 동기를 탐구하는 것은 괜찮아. 다만, 동기가 범죄 수사의 유일한 단서라고 생각하는 단순하고 공식적인 두뇌에 대해서 반박하고 싶군. 요컨대, 이 사건에 있어서 우리는 그 진주 목걸이보다도, 사체 그 자체에서 보이는 세개의 특징 쪽이 중요해. 먼저, 경부의 교살치명상 및 흉부의 졸린 흔적(絞痕)─처음에 나는 이 상처를 채찍같은 흉기로 때려서 난 것이라고 착각했는데─으로 가해진 폭력이 대단히 강대한 것이라는 것. 두번째로 양손의 손바닥에 남은 가로선을 그리는 무수한 이상한 찰과상, 그 중에는 몇개인가 굳은살도 포함되지. 세번째로, 어깨, 하악부, 팔꿈치등의 노출부위에 가해진 무수한 가벼운 찰과상. 뭐 이렇게 세가지지.

먼저 주어진 첫번째 단서를 분석검토해 보자고. 그러면 즉시 나는, 범인은 다수 또는 대단히 강력한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추정에 도달하지. 같은 식으로, 제2의 단서인 손바닥의 찰과상은, 피해자가 무언가를 꽉 잡아서 마찰로 생겼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암시하지, 다음으로, 제3의 단서인 곳곳의 가벼운 찰과상을 검토해보지. 가볍긴 하지만 두텁고 거칠게 난 그 흉터는, 명백히 나이프같은 금속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둔중하고 거친 것이며, 또한 손바닥에 찰과상을 입힌 흉기와는 같은 성질의 흉기인 것을 암시하지. 그리고 이 것은, 어던 종류의 찰과상을 가할만한 물체가, 범행 당시 현장에, 더욱 엄격히 말하자면 격투하고 있던 피해자 근처에 있었던가, 혹은 직접 범인이 가지고 있었던가 둘 중 하나야. 하지만 이 경우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네. 왜나하면, 가해진 힘의 양적인 차는 있지만, 이 찰과상들은 그 경부, 흉부의 교살흔에 대해서 질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자네는 그 흙색으로 변색한 피부가 쓸려 찢겨져서, 출혈하고있던 피해자의 경부를 떠올려보게. 그러면 극히 유치한 관찰과 추리에 의해서조차, 경부에 끈고랑(索溝:삭구, 끈의 압박에 의하여 피부가 함몰된 상태를 말함.)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든, 그 피부의 쓸려 찢긴 방식이든, 제2제3의 찰과상을 입힌 것과 동일한 두껍고 거친 흉기임을 쉽게 긍정할 수 있을거야.

따라서 나는, 이러한 각각의 사실의 검토에서, 내가 분류한 세가지 흉터를 만든 각각의 흉기가, 범행에 사용된 유일한 흉기일거라고 귀납(歸納)하네. 그러므로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그 몇 군데의 찰과상은 격투할 때 현장에 굴러다니던 기묘한 물체에 의해 외부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범인의 손에서 집요하게 덮쳐오는 뱀같은 흉기에 의해 가해진 것이지. 하지만, 추리를 이후의 과정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가장 흥미깊은 존재는, 그 손바닥에 남겨진 기괴하기 이를데없는 찰과상이야. 설마 자네는, 범인이 줄다리기를 했다던가 말하진 않겠지.

다음으로 그 무수한 가벼운 찰과상이 명백히 격투에 의해 가해진 경상(輕傷)이라는 것은, 확실히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렇다면 격투는, 따라서 범행은, 어디서 벌여졌는가? 물론, 건물 밖에서 저정도로 확실한 타살의 흔적을 가하면서 살해한 것을, 일부러 운반해서 옥상에서 던져서 추락사로 보이게 하려고 했다던가 하는 넌센스는 믿을 수 없네. 게다가 이 경우 엄중한 문단속의 문제가 있어. 그렇다면 다음으로 백화점 안에서 범행이 벌어졌다는 해석은 어떨까? 이 해석이 긍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살해되기까지의 격투에서, 한마디도 구조를 청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어야 해. 따라서 범행은 마지막 장소, 즉 옥상에서 벌어진 것이 되지. 이 생각은 확실히 평범해. 경찰도 동감하겠지. 하지만 같은 동감이라도 나는 그 단정을 내리기 위해서 적어도 다른 한두가지 문제를 명백히 부정하고 있어. 예를 들면 아까 나는 피해자의 교살치명상의 특징을 봐서, 범인은 여럿 혹은 대단히 강력한 남자라고 단정했지. 그런데 이 중 ‘여러명의 범인’은 지금까지의 내 검토에 의해서 이미 부정되었어. 그런 조직의 숙직원 중에서는, 일단 공모(共謀)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지. 따라서 범인은 강력한 한 사람의 남자라는 결과에 봉착하지. 그 힘 좋은 사람이란 누구인가.”

“꽤나 복잡하게 되었구만.”

쿄스케의 설명을 멍하니 듣고 있던 나는, 결국 그 흥분을 폭발시켜버렸다. 쿄스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훅 깊게 한번 들이쉬고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복잡해졌다? 아닐세. 간단해진거야. 셜록 홈즈 흉내가 되겠지만, ‘모든 부정을 배제하고 남는 것이 긍정이다’라면 어떻겠나. 그리고 범행은 옥상─이 경우 화단에 발자국이 없어떤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지. ─다음으로, 각각의, 특히 손바닥에 남은 기괴한 찰과상, 강한 힘을 가진 범인, 집요한 흉기. 이러한 단서를 기초로 해서, 마지막 조사를 해 보자고. 자, 확대경이라도 하나 사서 한번 더 옥상에 가자고.”

우린 일어나서 식당을 나왔다. 어느새 입장한 손님을 위해서, 주변은 평상시의 웅성거림으로 되돌아오고, 아랫층의 악기매장에서 명랑한 재즈 소리가 갤러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흐름을 타고 느긋하게 들려왔다.

4층의 안경매장에서 중형 확대경을 손에 넣은 우리는, 사람들의 파도를 헤치고 다시 옥상으로 나왔다.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 손님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다만 몇명의 담당자가 우리의 침입에 대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쿄스케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고개를 기울이며 옥상의 구석구석에 예리한 관찰을 던졌지만, 이윽고 나를 재촉해서 사체의 낙하점으로 여겨지는 동북쪽 구석에 오더니, 확대경을 대고 아까보다도 더욱 면밀하게 철책이나 화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뭔가 결심한듯이 그곳을 떠나더니 이번에는 뭔가 기억을 떠올리듯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서쪽의 호랑이 우리를 향해 걸어갔다. 거기서 쿄스케는, 큰 아프리카산 암호랑이가 싫증난 듯이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몸을 돌려서 맑게 개인 하늘의 한 구석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두 눈을 생기있게 빛내면서 동쪽의 노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노대에는 지금 막 커다란 회색 애드벌룬이 그 이상한 자태를 드러내고, 유쾌하게 하늘 속으로, 뭉게뭉게 상승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숨을 들이삼켰다.

그런데, 거기서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던 기구 담당인 남자를 붙잡고 쿄스케는 차갑게 심문을 시작했다.

“자네는 오늘 아침 몇시에 여기에 왔지?”

“예, 실은 어젯 밤 좀 날씨가 나빠서 책임상 걱정이 되어,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좀 빨리 6시 반에 출근했습니다.”

롤러의 핸들을 역회전시키면서, 담당인 남자는 붙임성좋게 웃었다.

“그럼 자네는, 6시 반에 이 발코니에 나왔단 말이지?”

“아닙니다. 6시 반이라고 한 건 가게에 도착한 시간이고, 그때부터 그 사건의 소문을 듣거나 시체를 보거나 했기 때문에, 여기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7시였습니다.”

“그 때, 이 발코니 위에서 뭔가 달라진 곳은 없었나?”

“딱히 알아차린 건 없었습니다. 다만 가스 호스가 난잡하게 던져져 있었고, 벌룬은 굉장히 부력이 줄어서 흐늘흐늘해져 있어서,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이 낮은 곳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날씨가 거칠어진 다음에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벌룬은 밤중에도 띄워놓습니까?”

“예, 아래로 내려서 계류시켜 놓는 것이 보통이지만, 날씨에 부주의해서 그대로 놔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벌룬의 부력이 줄었다고 했는데?”

“기낭(氣囊)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다만 그 구멍은 1개월 정도 전에 한번 수선한 적이 있는 구멍인데─”

“하하하, 그래서 자네는 아까 기낭을 수선하고 있던 것이로군. 그런데, 이 벌룬의 부력은 어느정도 되나?”

“표준기압이라면 600킬로는 충분히 됩니다.”

“600킬로라면 상당한 중량이군. 음, 고맙네.”

질문을 끝내고 쿄스케는 벌룬의 로프에 붙어서 올라가는 오려진 광고문자를 바라보았다.

딱 벌룬이 완전히 상승해서 로프가 팽팽해졌을 때 사법주임이 왔다.

“이야, 여러분 그런 곳에서 심호흡을 하고 계셨습니까! 아니, 물론 괜찮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떻습니까? 목걸이의 지문은 역시 피해자 노구치의 것이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확실히 검출되었지요.”

이렇게 말하고는 사법주임은 우리들 눈 앞에 7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목걸이를 늘어뜨렸다. 과연, 그 커다란 구슬들 위에는, 두개의 커다란 지문이 확실히 떠올라 있었다.

“호오, 과연 그렇군요.” 쿄스케는 미소지었다.

“그건 그렇고, 죄송합니다만 그 수은과 쵸크를 섞어놓은 어쩌고 가루를, 제게도 좀 빌려 주시지요.”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법주임의 손에서 검출용구를 빌리고는, 롤러에 다가가서 핸들 위에 회색 가루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뿌리고, 좀 지나서 그 위를 낙타털 솔로 가볍게 쓸어냈다.

“아, 지금 막 생각났는데, 오늘 아침 수선을 위해서 벌룬을 내렸을 때, 가스주입구의 마개가 열린 채였습니다.”

지금까지 뭔가 생각하고 있던 담당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마개가 열려 있었다?”

놀란듯이 얼굴을 들고 되물은 쿄스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호오, 대단히 유력한 증거다.”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가서, 확대경으로 핸들 표면을 조사하면서, 담당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오늘 아침 장갑을 안 끼고 이걸 만졌나?”

“예, 처음에 벌룬을 내릴 때는, 수선을 위해서 급히 내렸기 때문에─”

그리고 쿄스케는, 목걸이를 사법주임의 손에서 빌려와서, 핸들 위에 검출된 지문과 목걸이의 지문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나도 쿄스케의 옆에 쭈그려앉아서, 양쪽의 지문을 열심히 비교해보았다. 하지만 두 지문은 각각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눈치챘다.

“자아, 자네도 눈치챘겠지? 보라구. 이 핸들 위에는 이 사람의 지문 이외에, 이 목걸이의 지문, 즉 피해자의 지문은 전혀 보이지 않아. 이걸로 됬어. 자, 벌룬을 조용히 내려 주십시오.”

쿄스케의 말에, 담당인 남자는 일순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보였지만, 곧 장갑을 끼고, 롤러의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1피트. 2피트. ─벌룬은 조용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쿄스케는 확대경을, 감겨가는 로프에 다가가서 예리한 시선을 그 위에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곧 35,6피트나 감겼으려나 하고 생각했을 무렵, 벌룬의 하강을 중지시키고, 사법주임에게 말을 걸었다.

“범인을 찾았습니다─”

쿄스케의 이 말에 적지 않게 놀란 우리는, 쿄스케가 가리킨 두꺼운 삼 로프의 일부에, 깊게 물들어있는 소량의 검붉은 혈흔을 발견했다.

“이것이 즉 피해자의 경부의 교상(絞傷)에서 흘러나온 혈흔입니다. 자, 이제 벌룬의 용건은 끝났습니다. 올려주세요…… 아, 일단 기다려주십시오. 전부 내려주세요. 하나 잊어버리고 있었어. 맞았을지 틀렸을지, 일단 확인해보고 싶으니까요.”

담당 남자는, 어리둥정하면서도 다시 크랭크를 돌렸다.

사법주임은 극도의 흥분 때문에 이를 딱딱 울리면서, 조용히 내려오는 벌룬과, 쿄스케의 옆 얼굴과 그리고 담당 남자의 거동을 번갈아 비교해보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벌룬이 완전히 내려오고, 그 귀여운 천체같은 모습을 우리 머리 위에 멈춰서자, 쿄스케는 가스주입구의 마개를 열고 그 안에 가는 손목을 집어넣어, 잠시동안 기낭의 아랫부분을 휘저었지만, 곧 아름다운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배짱도 좋은 녀석이군!”

사법주임이 담당 남자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잘못 고르신겁니다. 범인은 벌룬입니다. 이 경기구입니다. 자, 이것을 봐 주세요.”

쿄스케가, 가스 주입구의 고정핀, 마개, 새롭게 발견된 목걸이에 아까의 ‘회색가루’를 뿌리고 솔로 털어내자, 셋 모두에 같은 종류의 지문 몇개가 순식간에 검출되었다.

“보십시오. 이 사람의 지문은 아니지요?”

“흠, 확실히 피해자 노구치 타츠이치의 지문이다.”

사법주임은 마치 여우에게 홀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쿄스케는 내 쪽으로 돌아섰다.

“자네, 미안하지만 중앙기상대에 전화를 걸어서 어젯 밤의 도쿄지방의 날씨를 물어봐주게.”

쿄스케가 명하는대로 6층에 내려선 나는, 거기의 전화실에서 임무를 끝내고, 결과를 노트에 기입하고 다시 옥상으로 돌아왔다. 쿄스케는 내가 건넨 노트를 받아들고는,

“음, 고마워. 754밀리의 저기압과 남서의 강풍인가. 자, 이제 용건은 끝났으니 벌룬을 올려주십시오. 그러면, 지금부터 결론을 설명하도록 하지요.”

말을 끝내고 쿄스케는, 상승해가는 벌룬을 올려다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아까, 첫번째로, 범인은 숙직원 이외의 강력한 남자라는 것, ─이 경우 문단속이 엄중했던 것을 고려해 둬야지─. 두번째로, 범행은 옥상에서 일어났다는 것, ─이 경우 화단에도 철책에도 타일바닥 위에도, 어떤 종류의 흔적도 없었다는 소극적인 단서에 유의해야겠지─. 세번째로, 범죄에 사용된 유일한 흉기가, 굴곡이 자유로운 길고 조잡한 표면을 가진 물체, 단적으로는 그물모양의 것이라는 것, 네번째로, 범죄의 동기가 결정적이지 않다는 기초지식의 파악에 성공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이러한 재료를 시작으로 삼아서, 극히 엄격한 비판 아래에서, 가능한 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동해서, 새로운 종합적인 추리로 나아갔습니다. 곧 나는, 이 벌룬의 로프를 흉기로 하는, 아직 상당히 조잡하기는 하지만 어느 한가지의 추정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조잡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 발코니에 와서, 나의 대략적이고 조잡한 결론을 가공하고 정리할만한 새로운 재료의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쿄스케는, 일단 말을 끊고, 다시 벌룬을 돌아보면서, 한층 소리를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즉, 그저께의 밤 영업중에, 두개의 목걸이를 훔친 노구치 타츠이치군은, 당연히 벌어질 신체검사나 건물 전체의 엄격한 수색을 예상하고 가장 안전한 장소, 즉 벌룬의 바닥에 그 목걸이를 숨겨놓은 것입니다. 물론 자네는”

하고, 담당 남자를 보면서, “야간에 벌룬의 감시는 하지 않았겠지? 좋아. 그리고 어젯 밤, 아마 숨겨놓은 목걸이가 걱정되었겠지요, 숙직담당이던 피해자는, 취침 전 10시 경, 벌룬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옥상에 올랐습니다. 거기서 그는, 구멍이 뚫린 벌룬이 부력이 감소했기 때문에 흐늘흐늘 내려올 것 같은 것을 발견하고 크게 놀라서, 급히 힘으로 로프를 끌어당기기 시작했습니다. 부력이 감소했다고는 해도, 가스가 완전히 차 있으면 600킬로의 부력을 가지는 벌룬입니다. 피해자는 손바닥에 여러개의 굳은살을 만들면서, 정신없이 벌룬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가스주입구의 마개를 열고, 아마 한번은 숨겨놓은 물품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 사건의 열기가 다 식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물품을 빼내는 위험은 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스 호스를 붙이고, 수소가스의 보충을 시작합니다. 가스가 충만해짐에 따라, 벌룬의 부력은 증가합니다. 이 경우, 피해자는 중대한 과실을 범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 벌룬을 내릴 때 놀란 나머지 서둘렀기 때문에 롤러를 쓰지 않고 직접 손으로 잡아당겨 내려버린 것입니다. 이 추정에 대한 반증은, 오늘 아침 급히 맨손으로 핸들을 잡은 이 담당자분의 지문 이외에, 피해자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는 한 무력합니다. 따라서, 가스 주입구의 고정핀 및 로프를 손으로 눌러가며 가스의 보충을 하고 있던 피해자는, 가스가 가득 찬 벌룬의 부력이 증가함에 따라, 처음으로 롤러를 사용하지 않았던 과실을 눈치챈 것입니다. 아마 대단히 놀란 그는, 급히 로프를 롤러의 어딘가에 걸어서, 벌룬의 상승을 막아보려고 서둘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력이 증가한 벌룬은, 가스 호스를 던져버리고, 마개가 열린 채로 용서없이 상승을 시작합니다. 피해자는 정신없이 그 상승을 견제합니다. 자기 몸이 끌려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로프를 잡은 양손에 힘을 줍니다. 하지만 두껍고 거친 로프는 헛되게도 그의 손바닥에 무수한 찰과상을 남긴 채, 점점 올라갑니다. 오려낸 광고문자도 이미 날아올랐을 무렵, 아까 피해자가 범했던 과실이, 여기에서 무서운 결과를 불러옵니다. 즉, 피해자가 손으로 당겨서 발 밑에서 사리를 틀고 있던 로프가, 소동을 피우고 있던 피해자의 몸에, 자연스럽게 휘감긴 것입니다. 물론, 그는 정신없이 격투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로프는 그의 몸의 곳곳, 예를 들면 어깨, 하악부, 팔꿈치 등의 노출된 부분에 무수한 가벼운 찰과상을 주고, 잠옷의 한두군데를 찢고, 결국에는 경부와 흉부에 휘감깁니다. 움직일 수 없게 된 피해자의 몸은, 그대로 하늘로 끌려올라갑니다. 벌룬이 타성적으로 완전히 상승해서 로프가 강하게 당겨졌을 때, 그의 호흡은 멈추고, 늑골은 부러지고, 경부의 피부는 쓸려 찢겨져서 출혈합니다. 노구치 타츠이치군은, 문자 그대로 천국으로 올라간것입니다. 그리고─”

쿄스케는, 아까 내가 건낸 노트에 눈길을 주고,

“오전 0시부터 2시 반까지, 도쿄지방을 통과한 753밀리의 저기압과 강한 남서풍은, 벌룬을 수직상승선에서 동북쪽으로 밀어냅니다. 구멍이 뚫려있던 벌룬은, 저기압의 통과와 맞물려서, 겨우 그 부력을 줄이고, 로프의 긴장은 풀려서 피하재의 사체는 떨어집니다. 아파트 옥상으로가 아닙니다. 아파트 동북쪽의 노지의 아스팔트 위로입니다. 사체가 떨어졌을 때의 진동에 의해, 기낭의 안쪽에 들어가 있던 목걸이 하나가, 마개가 열린 채이던 가스주입구에서 죽은 사람의 뒤를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물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교살에 의한 시체의 혈액은 비교적 장시간에 걸쳐 유동상태를 유지하는 법이니까, 사후 수시간이 지나서야 로프에서 떨어진 시체라고 해도, 파괴된 두부(頭部)의 상처에서 아스팔트 위로, 생생하게 출혈됩니다─”

말을 끝내고 쿄스케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9월의 아름다운 푸른 하늘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른 꿈 같은 벌룬은, 이 백화점의 기묘한 교수형집행인은, 때마침 불어운 미풍에 아랫배를 작게 떨면서, 둥실둥실 떠 있었다.

http://www.aozora.gr.jp/cards/000236/card12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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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히고 만 소세키 전기 자료(埋もれた漱石伝記資料)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쿠마모토 고등학교(熊本高等学校)에서 나츠메(夏目) 선생님의 동료인 S라는 O물학 선생님이 있었다. 이학사(理學士)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학식이 있어서, 그 전문 방면에서는 어쨌든 일본 교육의 권위자라는 평판이 이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기행(奇行)도 전해졌다. 일본에 딱 둘인가 셋밖에 없는 표본을 여럿 가지고 있다는 자랑을 듣지 못한 학생이 없었다고도 한다. 복장 같은 것에도 무관심해서, 구깃구깃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꼴 등은 좀처럼 고등학교의 선생님처럼은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거야 어쨌든 간에, 그 당시 나츠메 선생님과 뭐든간에 잡담을 할 때 이 S 선생님 얘기를 하면 선생님은 “아, S말인가”하고 입을 크게 사각으로 벌려 혀 끝으로 아랫입술을 핥으시고는 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나서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큭큭 꽤나 웃기다는 듯이 선생님 특유의 웃음법으로 웃었다. 그럴 때에 선생님은 꼭 얼굴을 조금 붉히고는 왠지모르게 숫된 처녀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 선생님의 웃음의 의미를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인(畸人)으로서의 S 선생님의 기행을 떠올리시고 웃으셨을 것이라는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긴 세월이 흘렀다. 나츠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선생님에 관한 제가(諸家)의 추억담이나 뭔가가 여러 잡지를 장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날 뜻밖에도 옛날의 S 선생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3전우표를 두장인가 세장 붙인 대단히 무겁고 두꺼운 편지를 읽어보니, 거기에는 나츠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실로 자세하고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그 편지에 의하면, S 선생님은 어릴 적에 나츠메 선생님 댁 근처에서 살고있던 이른바 장난꾸러기동지였다는 듯, 그 당시의 여러가지 장난의 디테일이 실로 현실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일찍이 한번도 나츠메 선생님으로부터 그 어린시절의 S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이 편지의 내용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 처럼 예상외로 여겨졌다. 그리고 왠지 이것이 진짜일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S 선생님이 의식해서 거짓말을 일부러 쓰실 리도 없으므로, 상세한 부분에서는 기억의 오류나 착각은 있을지언정 대체로 사실임은 틀림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은 나츠메 선생님에 관한 하나의 자료로서 보존해 두면 후일 꼭 도움이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시의 대학 물리학부 물리교실의 내 방의 책상 서랍속에 다른 중요한 편지와 함께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위궤양에 걸려 휴직하고 틀어박혀버렸기 때문에, 교실의 내 방은 그대로 완전히 먼지가 쌓인 채로 긴 시간동안 방치되었다. 거기에 타이쇼 12년의 대지진이 덮쳐와서 교실의 건물은 대파되고, 붕괴는 면했지만 향후의 지진에서는 위험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내 병이 다 나아서 출근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원래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다른 건물의 목조 단층건물인 다른 교실의 한 방을 빌려서 임시로 살게 되었다. 그 때에도 아직 원래 교실의 방은 대부분 옛날 그대로 창고같은 형태로 보존되어 곰팡이와 먼지와 거미집의 지배에 맡겨두었으므로 이 S 선생님의 편지도 줄곧 그대로 서랍 안에서 긴 잠을 자고 있게 된 것이었다.

그 후에 내 생활에는 여러가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관동대지진 덕에 대학에 지진연구소가 설립됨과 동시에 나는 학부와의 연을 끊고 연구소원으로 전직하여, 한동안은 공학부가 있는 교실의 가건물의 임시사무소에 출입하였고, 연구소의 본 건물이 오나성됨과 동시에 그 쪽으로 이사했다. 이리하여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는 사이에 어찌 된 일인지 원래 방 책상 서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요 근래에 ‘B교수의 추억’을 쓸 때에 문득 그 B교수의 편지를 떠올림과 동시에 그 서랍과 S 선생님의 편지를 떠올리게 된 것이지만, 지금은 이미 옛 교실 건물은 완전히 철거되어 버렸고, 옛 책상 같은 것이 어찌 되었는지 행방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서랍 속의 옛 편지같은 것을 찾아낼 실마리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실로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S 선생님의 편지 내용을 떠올려보려고 아무리 애를 서 봐도, 이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닌데 어린 나츠메 선생님이 어딘가의 담 위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끼얹어 골려주고는 했다고 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다. 즉 구체적인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그 편지의 전체적인 인상은 선생님이 처치곤란한 악동 중의 악동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이야 어쨌든 어린 시절의 나츠메 선생님이 당시의 S 선생님의 기억 속에서는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더 옛날에 쿠마모토 시절의 나츠메 선생님이 ‘아, S말인가’하고 말하면서 이상한 웃음을 보이신 것도 떠올리게 되어 거기에서 또 여러가지 재미있는 암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S 선생님이 살아계시기만 하다면 다시 한번 잘 여쭈어봐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이미 어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혹시 S 선생님의 유족 내지는 친밀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고 다닌다면 그 단편이라도 어쩌면 회수할 가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의 유족이나 혹은 제자들이 생각도 못한 방면에 묻혀있는 자료가 의외로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지금 수집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예로서 또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선생님과 잡담중에 ‘아무래도 자네의 고향 사람들은 핑계를 대기만 해서 까다로워 어쩔 수가 없다네’하고 반쯤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무래도 옛날 기숙사에서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 미조부치 신마(溝淵進馬), 오오하라 테마(大原貞馬)라는 세 명의 토사(土佐) 사람과 같은 방이셨던가 옆방이셨던가 계셨던 적이 있어서, 그 때 이 세명이 터무니 없이 큰 소리로 하룻밤 내내 토론만 해서 시끄러워서 곤란하셨다는 것이다.

이 세 분들에게 여쭤보면 혹시 뭔가 학생시절의 선생님의 일면을 그릴 수 있을 만한 일화라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마구치씨는 돌아가시고, 오오하라씨는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미조부치씨는 내가 중학교 시절에 ‘라셀라스[각주:1]’를 가르치신 선생님이시며, 그 후 줄곧 고등학교장으로 일하셨으나 이 분도 최근 돌아가셨다.

또 한가지, 내가 학생 시절에 신세를 진 긴자의 어느 상점의 양자가 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 사람의 본가는 우시고메(牛込[각주:2])의 키쿠이쵸(喜久井町[각주:3])에 있는데, 그 바로 옆 뒷집인가에 나츠메라는 집이 있었고, 어릴 적 일이라 그 나츠메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없지만 그 집의 모습 같은 것은 꿈처럼 기억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생각지 못한 인연으로 선생님의 생애의 일부와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이 아직 여러 곳에 얼마든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같이 선생님과 친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주의하지 않으면 어쨌든 우리들만이 접촉한 선생님의 세계의 일부분을 선생님의 전체 위에 덮어버리고는 우리들에게 좋도록 선생님을 멋대로 만들어버릴 우려가 있다. 의식적으로는 사리사욕 없는 진정(眞情)에서 그리 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선생님께 있어서는 기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선생님의 아군이 아니거나 적이었던 사람들의 방면에서도 숨겨진 전기자료를 얻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의 증언이 아군의 그것보다도 오히려 당사자의 미점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도 가끔은 있는 일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응용심리학 쪽에서 잘 연구되는 ‘증언의 심리’, ‘추억의 오류’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기초로 하여 그러한 자료의 정리를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리는 100년 후에도 할 수 있다. 자료는 하루 늦어지면 영원히 잊혀진다. 나는 이 기회에 나츠메 선생님에 과한 온갖 숨겨진 자료가 수집되어 기록되는 것을 갈망하여 마지 않을 따름이다.


(쇼와 10년 11월 『시소(思想)』)

  1. 새뮤얼 존슨의 소설 [본문으로]
  2. 신주쿠구의 지역명 중 하나 [본문으로]
  3. 도쿄도 신주쿠구에 위치한 쵸의 이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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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案内者)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딱히 어디로 가겠다고 정해진 곳이 없다. 그럴 때는 여행안내기 종류를 펼쳐 보면 혹은 해안, 혹은 산중의 호수, 혹은 온천같은 갈만한 곳이 이리저리 너무나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일단, 가령 온천이라면 온천으로 정해서, 온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각 온천의 수질이나 효능, 주위의 명승고적등을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져서 이번에는 온천 전문 안내서를 찾아내서 읽어본다, 그러면 우선 막연히 대략적인 짐작이 오게 되는데, 아무리 상세한 안내서를 열심히 읽어본들 결국 진짜 어떤 곳인지는 스스로 가보지 않으면 알 리가 없다. 혹시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집에서 책만 읽고 있으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좋다. 다음으로 만약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도, 사람에 따라서 말하는 게 다들 달라서, 누구의 권위를 믿는 것이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실컷 알아보고 나서는, 결국 대충 주사위라도 던지는 듯한 우연한 계기로 목적지를 어떻게든 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말하자면 아카데믹한 정통파라고 불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이렇게 하면 큰 실망이나 터무니없는 오산을 낳을 걱정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주요한 명승고적을 깜빡 빠트릴 염려도 없다.
  하지만 이것과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여행이 하고싶어지는 동시에 일단 주사위를 던져서 갈 장소를 정해버린다. 혹은 우연히 읽고 있던 시편이나 소설 속에서 감흥에 젖은 장소로 정해버린다. 그리고 안내기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발과 눈으로 자유롭게 마음가는대로 돌아다녀본다. 이 방법은 어쨌든 여러가지 실책이나 곤란을 일으키기 쉽다. 또 이른바 명승고적등의 바로 앞을 지나가면서도 모르고 놓쳐버리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위험이 많은 비정통파다. 이것은 함부로 일반인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하지만 안전한 전자의 방식에도 단점은 있다. 읽은 안내서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서 둥지를 틀고, 그것이 자신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밖으로 나간 자기 자신은 말하자면 고리짝 안에 밀어넣어진 듯한 형태가 되어, 결국 안내기나 말한 사람이 온천에 들어가거나 관광을 하거나 향락을 하거나 한 것과 같은 것이 될 염려가 있다. 물론 이것은 안내서나 가르쳐 준 사람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 사람은 물론 그걸로 좋다.
  하지만 그래서는 일부러 길을 나선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불완전하기는 해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밟아서 보는 경치, 밟은 대지와 자신이 직접 딱 통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을 맛보지 않으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쨌든 안내서나 남의 말을 무시하거나, 혹은 일부러 피하려 한다. 편리와 언전을 사기 위해 자기를 파는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별난 사람은 어떤가 하면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놓치기 십상인 대신 어떤 안내기에도 써져있지 않은 좋은 것을 찾아낼 기회가 있다.
  나는 옛날에 두세명 일행으로 영국의 어느 별궁을 구경갔을 적에, 그 중 한 명이 계속 한 손에 베데커[각주:1]를 펼쳐서 손에서 떼지 않고, 한 방 한 방 이것과 맞춰보면서 상세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 베데커는 꼼꼼하게 한번 읽어보았는지 이곳저곳에 색연필로 세심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 방에 갔을 때에는 거기에 있는 창문 앞으로 일행을 불러모아, 베데커 속의 한 줄을 가리키면서 “이 창에서 보면 경치가 좋다고 써져있다네”라고 말했다. 일동은 그런가 하고 이 놓쳐서는 안될 경치를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학자다운 철저한 아카데믹한 방식에 감탄한 것과 동시에, 왠지 거기에서 설명하기 힘든 부족함 혹은 일종의 허무함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왠지 이래서는 자신이 베데커의 편집자가 되어 그 교정이라도 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 창문이 이상한 집착의 그물을 내 머리 위에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에 관련된 역사나 전고(典故)등은 베데커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지만, 창문에서 보이는 전경의 좋고 나쁨 정도는 자기 눈으로 찾아내는 선택을 허락받고 싶은 듯 한 기분도 들었다.
  베데커라는 것이 없었을 때의 부자유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하지만 가끔씩은 최신간의 베데커에 속는 일도 아주 없지는 않다. 어느 도시의 대학을 찾아갔더니 거기가 어떤 관공서가 되어 있거나, 이름높은 음식점을 찾아냈더니 임대 안내가 붙어있거나 하는 일도 있다.
  엉터리 안내기라도 되면 그런 실패는 더욱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완전한 안내기를 바라는 것은 원래부터 무리한 일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 곤란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안내기가 없어도 곤란하지만, 있어도 곤란한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교토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쿠로다니(黒谷[각주:2]나 킨카쿠지(金閣寺[각주:3]같은 곳에 가면, 안내하는 어린 스님이 건물의 각 부분의 집물(什物) 들의 내력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그 일종의 특별한 리듬을 붙인 말투도 시골 촌놈인 내게는 신기했지만, 그보다도 그 설명이 매우 기계적이고 말하고 있는 사항에 대한 정서의 반응이 전혀 없어서, 설명자가 단순히 정해진 소리를 내는 기계인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 무척 드물게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에 본 보물이나 맹장지의 그림등은 이미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그 때의 안내자의 일종의 말투와 공허한 표정만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때 한가지 곤란했던 것은, 내가 예를 들면 어떤 기물(器物)이나 그림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느긋하게 보고싶어도, 안내자는 모든 물품에 평등한 시간을 배당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멍하니 있으면 그 사이에 성큼성큼 먼저 가 버려서, 그 사이에 나는 많은 볼만한 것을 놓쳐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건 상관 없다고 생각해도 그곳을 보고 나서 나중에 동행자들 사이에서 딱 내가 놓친 훌륭한 것에 대한 화제가 나왔을 때에, 왠지 조금 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피하기 어려웠다.
  학교 교육이나 이른바 참고서에 의해 얻는 지식은, 여러가지 면에서 여행안내기나 각 장소의 안내자에게서 얻는 지식과 닮은 면이 있다.
  혹시 학교같은 감사한 시설이 없고, 그리고 오직 완전한 독학으로 현대문화가 품고 있는 광대한 지식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 곤란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헤매고 목적지를 헤매, 쓸모없는 노력을 낭비할 뿐, 결국 목적지를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해가 저물어 버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것을 이제와서 다시금 여기서 고찰해 논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학교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 딱 안내자에게 이끌려 걷는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좀 더 파고들어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안내기가 상세하고 치밀하며 정확하면 할수록, 이것에 대한 신뢰감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우리는 안심하고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일 없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없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무심코 그 안내기에 기록되지 않은 옆길에 숨겨진 귀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기회가 매우 많은 것도 틀림없다. 그러한 손실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여러 사람이 고른 여러 안내기를 널리 참조하는 것이 좋다. 다만 곤란한 것은, 이미 있는 안내기의 내용을 그대로 적당히 이어 붙여서 만든 것 같은 안내기가 많다는 데에 있다. 이런것에 비하면, 오히려 오류 투성의 안내기라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저자의 체험을 재료로 한 것일 경우는, 의외로 어떤 참고가 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완전하더라도 결국 안내기이다. 아무리 읽고 암송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여행의 대신이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안내기가 계통적으로 완비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읽는 사람의 감흥을 끄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로, 오히려 자주 양립할 수 없는 듯 한 경향이 있다. 이른바 안내기의 무미건조함에 비해서 훌륭한 문학자의 자유로운 기행문 혹은 예리한 과학자의 정리되지 않은 관찰기는, 그것이 아무리 좁은 범위의 소재에 한정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약동하는 산 체험에서 나타나는 것은 직접 독자의 가슴에 스며들고, 그리고 설사 그것이 틀렸을 경우조차도 쓴 사람이 진정 바라는 혼(魂)만은 강렬하게 독자에게 호소하여, 독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비슷한 것에 불을 당긴다. 그리고 적혀 있는 내용과는 관계 없이 거기에 다뤄진 토지 그 자체에 대한 흥미와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전문 학술 참고서에서도 이것과 닮은 경우가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문헌을 널리 조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엔치클로페디나 핸드북 같은 종류의 것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지만, 좀 더 파고들어서 정말로는 어떤지 알고 싶어진다면 이미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개개의 오리지널 논문이나 저서를 봐야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참조용 서적의 대부분을 애써 처음부터 끝까지 만연히 통독하고 암송했다 한 들,, 이미 어떤 ‘주제’를 가지지 않은 학생에게 있어서는 극히 효과가 낮아서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기가 쉽다. 또 이런 것에서 주제를 골라내는 것도, 될 것 같으면서도 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에 비해 각각의 연구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기술한 논문이나 저서에는, 설사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 어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거기에서 얻는 암시는 읽는 사람의 자발적인 활동을 유발하는 신비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자 자산의 연구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자신의 전문 외의 주제에 관한 좋은 논문 등을 읽어 보는 것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안내기만 의지해서는 언제까지고 자기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내기를 완전히 무시하면,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웅덩이나 화구(火口)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에 관계 없이 교과서와 노트만을 의지하는 학생이 많은 한편에는 또 현대 기성의 과학을 무시했기 때문에 모처럼 낸 좋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결국 실패하는 발명가나 발견자도 가끔 나온다.

  명승고적의 안내자가 가장 곤란한 것은 뭔가 좀 쓸데없는 것을 보려고 하면 No time, Sir! 같은 말을 하며 끌고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제한이 있다고 보면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스스로 구경하는데는, 다시 한번 혼자서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고, 다만 이 때 앞의 안내자가 ‘방해’만 안 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안내자나 선도자 중에는, 자기의 권위에 대한 신념에서 산출된 친절함으로 각각의 여행자의 자유로운 관조를 억제하는 자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자가 특별한 흥미를 가진 대상 앞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을, 그런 건 보잘것없으니 볼 것이 못된다고 보살피는 경우도 있다. ‘볼 만 하다’와 ‘보잘것없다’가 명백히 ‘상대적’인 경우에는 이건 난처하다. 안내자가 선의로 그러는 만큼 더욱 난처하다. 이런 종류의 안내자는 그 전문 영역이 좁으면 좁을수록 많아 보이지만, 이것은 무리도 아니다. 자신의 ‘땅’이외의 것은 모두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안내자 입장에서 말하면, 그 이끌고 있는 피안내자에게 너무 신뢰받아도 곤란한 상황이 제법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든 충실하게 따라오는 건 좋지만, 설마했더니 화장실까지도 꾸물꾸물 따라와서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 틀림 없다.
  뉴턴의 광학(光學)이 파동설의 보급을 방해했다던가, 라플라스의 권위가 열의 기계론[각주:4]의 발달에 장애가 되었다던가 하는 것은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짊어져서는 이러한 대가(大家)들은 아마 저승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책임의 절반 이상은 그들의 권위를 맹종한 후일의 학도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요즘 상대성이론의 발견에 즈음해서 또 다시 뉴턴이 참고인으로 끌려나와서, 그의 절대론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뉴턴을 죄인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죄인은 오히려 다른 곳에 많이 있다. 말하자면 뉴턴은 진리의 전당의 첫 번째 문만을 열고 나서 죽어버렸다. 그의 피안내자는 제1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에 제2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은 드물었다. 마침내, 최근에 아인슈타인이 갑작스레 제2의 문을 걷어차 열고 그곳에 영롱히 빛나는 기하학적 우주의 궁전을 발견했다. 하지만 제1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제2의 문에 도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 다음의 제3의 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는 도저히 예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지의 문에 부딪쳐서 그것을 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시 안내자 등의 신세를 지지 않은 떠돌이 시골뜨기여야 한다. 제3의 문은 어떤 귄위있는 안내기에도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무심코 안내자 같은것이 되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쿠로다니나 금각사를 안내하던 어린 스님도, 처음 그 건축물이나 고기물(古器物)을 접했을 때는 아마 여러가지 깊은 감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모든 흥미가 증발해버려서, 안내문을 모조리 암기할 수 있게 됬을 때에는 물품 자체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없어진다. 남는 것은 단지 ‘말’ 뿐이다. 눈은 그 말에 덮여서 ‘물건’을 보지않는다. 그리하여 탄바(丹波[각주:5])의 산속에서 나온, 관람자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영상을 이제는 다시 인식할 때는 없어져 버린다. 이것은 실로 그 사람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이러한 사람은 단지 자신이 담당한 건축물이나 미술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종의 물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절에서 카노 에이토쿠(狩野永徳[각주:6])가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에 ‘카노 에이토쿠가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즉시 이 사람의 눈을 덮고 가려서, 눈 앞의 그림 대신에 자기 머릿속에 들러붙어 곰팡이가 낀 자기 절의 그림의 영상만이 비춰진다. 설사 그 머릿속의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래서는 곤란하다.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된다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
  직업적 안내자가 이러한 불행한 경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매일 설명하는 것을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고 이틀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이라도 뭐든 지금까지 찾아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런 노력은 괴롭다. 그것을 하지 않아도 오늘 당장은 곤란하지 않다. 거기에 안내자가 빠지기 쉬운 ‘동굴’이 있다.
  뉘른베르크의 고성(古城)에서, 거기에 수집되어 있던 옛날의 대단한 형구(刑具) 여럿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름높은 ‘아이제르네 융프라우(Eiserne Jungfrau[각주:7])’의 앞에서 설명을 하던 안내자가 마침 젊은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병약한 듯 하고 안색도 나빠서, 왠지 모르게 어두운 용모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 들 중 학생인듯한 남자가 ‘실례지만 당신은 매일 몇번이고 그런 무서운 내용을 입에 담고 있는데, 그 때문에 신경을 상하는 일은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뭐라고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소리를 내어 숨을 들이쉬고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꽤나 잔혹한 질문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리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이 여자도 매일 자신이 반복하는 말의 내용에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거리끼는 것 없는 남자의 질문에 비로소 잊고 있던 내용의 무서움과 그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직업의 불쾌함을 떠올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것과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가르칠 때 자주 자기가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고 있는 상투적인 것의 안쪽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어떤 것을 지적당해서, 직업과학자의 약점을 아슬아슬하게 관통당하는 기분이 드는 일이 없지도 않다.
  안내자가 될 사람은 상당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폴리에 관광을 간 김에, 그리 멀지 않은 포추올리(Pozzuoli)의 옛 화구와 그 안에 있는 분기공(噴氣孔)을 보러 갔다. 전차에서 내려서 베데커를 의지해서 찾아가려고 하니, 곧바로 한 명의 안내자가 쫓아와서는 자꾸만 권한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것 같은, 그리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다. 전혀 상대를 할 생각이 없는데 어디까지든 끈질기게 쫓아와서, 그리고 헐떡이면서 끈덕지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에 화를 낼만큼의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그 시끄럼움을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서 그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나빴다. 처음에 정했던 안내료 외에도 여러가지 구실로 조금씩 돈을 뜯어갔고, 안내자를 고용한 만큼의 효능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마사인지 뭔지의 뭉치를 밀랍으로 굳힌 횃불을 강매당해 가져갔는데, 분기공의 근처에 오니, 안내자는 그것에 불을 붙여 구멍 위에서 휘둘렀다. 그리고 ‘증기의 분출이 늘어났으니 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어떤 변화도 없는듯이 보였다. 그러자 그는 거기와는 꽤 떨어진 뒤쪽의 화구벽의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증기를 가리키며 ‘저렇다’고 했다. 하지만 횃불을 휘두르기 전에는 그것이 나오지 않았는지, 또 얼마나 나왔는지, 나는 전혀 몰랐으니까, 결국 이 횃불 실험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 ‘실험’이 아마 매일 여기서 벌어지고 구경꾼들 중 몇할인가는 그것에 납득할 것이라고 치면, 그 일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지식의 안내자라고 불리며, 권위자라고 불리는 사람중에는 역시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피안내자가 납득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의 이름을 빌어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의 눈을 속이려는 비과학적 실험을 행한 자가 서양에는 옛날부터 제법 있었다. 그러한 경우에는, 거의 정해진듯이, 평생 과학에 대해서 반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군중, 특히 신문등에 의해 기성과학의 권위가 의심받고, 그러한 ‘발견’에 냉담한 학자가 공격당한다. 하지만 과학자로서는 내용의 가능불가능이나 개연성의 다소를 기성과학의 계통으로 비추어서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으므로, 혹시 만에 하나 그 판단이 빗나갔다면 그것은 실로 새로운 발견이며 과학은 그 덕분에 현저히 진보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판단이 틀린 것은 반드시 그 과학자의 과학자로서의 치욕이 되지는 않는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과학이 한걸음 나아갔다는 것이 된다. 그런 식으로 진보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예상이 빗나가는 쪽이 과학자로서 타당한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별개로, 순수하고 성실한 과학자라도 역시 인간인 이상 천려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포추올리의 횃불과 비슷한 실험이나 이론을 남들에게 제시하지 않을거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람[각주:8]이 발전기를 만들었을 때 당시의 대가 아무개는 한편의 논문을 써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의 기계에서는 전류가 걱정없이 유출되었다. 그 후에 이 기계에서 전류가 발생한다는 쪽의 증명이 점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대가의 논문을 잘 읽어보면 무작정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헬름홀츠가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현재 비행기가 만들어졌지 않았는가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엉뚱한 웅변이다. 현재에도 장래에도 새 처럼 날개를 자기의 힘으로 움직여서, 단지 그것만으로 새처럼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안내자도 가끔 이것돠 닮은 오해에서 일어나는 비난을 맏을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안내자가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다’는 의미로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을 배로 건너고는 ‘이런 식으로 건널 수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은 아마 어느쪽도 나쁘던가 어느쪽도 나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다. 의사가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이다.
  하지만 온갖 오해를 예상해서 그것에 대비하는 것은 신이라도 되지 않으면 어렵다. 여기에도 안내자와 피안내자의 곤란이 있다.

  내가 신세를 진 포추올리의 안내자는 헤어질 때 또 여분의 술값을 보채면서 느긋하게 따라왔다. 그것을 참으며 상대를 안 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더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내뱉어서, 나도 ‘이탈리아인은 더욱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답하고는, 그대로 영원히 헤어졌다. 나도 좀 나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건 역시 지식의 안내자에겐 없다.
  생각해 보면 안내자가 되는 것도 피안내자가 되는것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곤란은 ‘안내자는 결국 안내자이다’는 자명한 도리를 잊기 쉽다는데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경치나 과학적 지식의 안내에서는 이러한 곤란이 있다. 더욱 다른 여러 정신적 방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인가. 이쪽에는 더욱 심한 곤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사안에 따라서는 오히려 간단해 질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신앙’이나 ‘애정’같은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 내가 말하고 있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게 되고 그것은 ‘스승’이 되고 ‘벗’이 된다. 스승이나 벗에게 이끌려 잘못되어 광야의 길을 헤매도 원한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타이쇼 11년 1월, 카이조(改造)


  1. 베데커가 발행한 여행안내서, 여행안내서의 대표격으로 쓰임. [본문으로]
  2.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의 별원(別院)중 한 곳 [본문으로]
  3. 로쿠온지(鹿苑寺). 교토에 위치한 절. 킨카쿠지는 통칭. [본문으로]
  4. 熱の機械論. 열역학? [본문으로]
  5. 지금의 교토 일부와 효고현 일부 [본문으로]
  6.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유명한 화가 [본문으로]
  7. 원문에는 鉄の処女에 アイゼルネユングフラウ라는 루비가 달려있음. 영어로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유명한 고문기구 [본문으로]
  8. 제노브 테오필 그람(Zénobe Théophile Gramme). 벨기에의 전기기술자, 공학자. 최초로 고전압직류발전기를 만들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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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수행기(ゴルフ随行記)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한참 전부터 M군이 골프를 하자고 권해왔는데, 다소의 유혹은 느꼈지만, 지금까지는 완강히 저항하며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한번 골프장에 같이 가서 견학만이라도 해 보라고 해서, 올해 6월 말의 어느 수요일 오전에 둘이서 코마고메(駒込[각주:1])에서 정액택시[각주:2]를 잡아서 아카바네(赤羽)[각주:3]의 링크로 나갔다. 마른장마로 대표되는 날씨로,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 요령부득하게 개어서 태양이 내리쬔다기보다도 오히려 공기 자체가 하얗게 빛나는 듯 한 날씨였다.

  진재(震災)전과 비교하여 오우지(王子[각주:4]) 아카바네 일대의 변모가 격심한 것에 놀랐다. 요즘의 도쿄 근교의 모습을 일신시킨 인자(因子)중에서도 가장 유효한 것이라면, 콘크리트 포장도로일 것이다. 도로에 흙이 얼굴을 보이고 있는 곳에는 근대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들 한다.

  아라카와 방수로(荒川放水路[각주:5])의 수량을 조절하는 근대과학적 갑문 위를 지나 둑을 몇 정(1정은 약 109m) 하류로 내려가서 오른쪽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왼쪽으로는 링크가 펼쳐져 있다.

  클럽 건물은 언젠가 슬쩍 본 적이 있는 아사카무라(朝霞村)의 건물 등과 비교하면 꽤나 검소한 목조 단층건물로, 어딘가 시골의 학교의 운동장에라도 있을법한 인테리어의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휴게실의 흙바닥의 벽면에 멤버의 명찰이 죽 늘어서 있다. 핸디캡의 수로 등급별로 나열되어 있다고 하는데, 역시 잘 하는 사람의 수가 적고,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니 신기하다. 칠판에 경기의 득점표 같은 것이 쓰여 있다. 1등부터 10등까지 상이 나온다. 그렇다면 즐거움이 많을 것 같다. 상품은 다음 일요일에 전달한다고 되어 있다.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싯적의 기쁨을 부활시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M부인이 도착하였으므로 슬슬 나간다.

  일대의 지면보다 한 단 높은 잔디 위에 작은 술잔의 밑을 뚫어 엎어놓은 것 같은 원추형의 받침을 놓고, 그 위에 그 하얗고 예쁜 볼을 올려놓고, 그것을 저 클럽의 머리로 후려치면 특유의 유쾌한 소리가 난다. 날아간 공이 이제 떨어지기 시작하나 했더니 오히려 치솟아간 다음 떨어지는 일이 있다. 부인의 공이 가끔 도중에서 오른쪽으로 커브를 그린다. 공이 빗나가서 둑의 경사면에 떨어지면 벌금이라고 한다.

  강변의 갈대 속에서 끊임없이 개개비가 울고 있다. 초원에는 왜소한 협죽도(夾竹桃)가 딱 한송이 새빨갛게 피어있다. 예쁘게 잘라놓은 잔디 속에 서서 정확히 사출되려하는 하얀 공을 응시하고 있으면 잔디 자체가 자신을 태우고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사병의 징조가 아닌 듯 하다. 어떤 비교의 척도도 없는 온통 녹색의 시계는 우리의 공간에 대한 감각 기관을 무능하게 하는 것 같다.

  도중부터 문과의 N군과 함께하게 되었다. 세명의 플레이가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각각 확실한 특징이 있어서 재미있다. 클럽과 공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으 음색까지 각각 다른듯한 느낌이 든다. 과학자인 M군은 인테그랄 이펙트를 노리는 착실한 전법을 취하고 있는 듯 하고, 프랑스문학의 N군은 에스프리와 엘랑의 황홀경을 바라고 드라이브 하고 있는 듯 하고, M부인의 공은 그 근대적 활달함과 명랑함이 있지만 역시 어딘지 여성다운 상냥함과 나긋나긋함을 지니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말버릇이 나쁜 N군이 M부인의 공을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자꾸 휘는데"라고 말했지만 곧바로 N군 자신의 공이 오른쪽으로 휘어 아라카와의 물속에 그 모습을 빠트렸다. 부인의 흉중도 스스로 평온을 얻은 것 같다.

  캐디가 종달새의 둥지를 발견했다. 초원의 한가운데에, 어떤 차폐물도 없이 무한한 하늘을 향해 개방된 둥지 안에는 귀여운 알이 다섯개, 그 달갈형의 큰 쪽의 정점을 위로 향하고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상단 쪽이 현저히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있다. 그 색이 짙어지면 곧 부화한다고 캐디가 말한다. 빨리 부화하지않으면 만일 누군가의 오른쪽으로 휜 공이 떨어져서, 이 귀여운 다섯 생명의 알은 동시에 으깨져버릴 것 같다. 둥지는 작은 소쿠리모양을 하고 있어서, 생각보다 정교한 세공이다. 이것이야말로 본능적 모성애가 낳은 천연의 예술일 것이다.

  아라카와가 갑자기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더니, 코스가 어느새 180도 회전해서 귀환길이 되었다.

  캐디가 세명, 한명은 스마트하고 한명은 명랑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둘 모두 목덜미의 피부가 구릿빛으로 멋지게 물들어있다. 다른 한 명은 왠지 기운이 없어보이고 목덜미도 그다지 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물어보니 아직 신참이라는 것 같다. 아직 신참조차도 되지 않은 내 얼굴이 그 날 어땠는지는 나는 모른다. 피곤하지는 않은지 세명이 여러번 물었다.

  이 캐디같은 환경에 놓인 소년은 예를 들면 옛날 혼고 아오키당(本郷青木堂[각주:6])의 어린 점원처럼 대개 묘하게 약삭빨라지는 법이지만, 여기의 아이들은 그런 느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링크의 손님이 대체로 수수하고 성실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많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 캐디 중 한명이 링크의 연못에서 붕어를 한마리 잡아서, 볼을 씻는 사각 수통 안에 넣어놓고, 한바퀴 돌고 온 후에 꺼내러 왔더니 이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느긋한 세상에서조차도, 자기 손으로 확실히 잡고있지 않는 한 사유물의 소유권은 확정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 자기 실력 외에 믿을만 한 재산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골프도 계속 보고 있으니 제법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듯 하다. 적어도, 단순히 봉의 머리로 공을 때려서 날리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 겨우 한시간 반동안의 견학으로 잘 안 듯한 느낌이 든다. 이날 M군,N군의 해설을 들은 것으로만 생각해봐도, 모든 예도(藝道)에 공통되는 요령이 골프의 기술에도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의 자유, 풍류인 듯 하다.

  인간이 공을 날리거나 굴리거나 하는 유희의 종류가 대체 어느정도인지 셀수가 없을 정도로 있다고 한다. 근대적인 것이라도 골프 외에 테니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이 있고, 지금은 유행하지 않는 크리켓, 크로케나, 실내용으로는 탁구, 당구 그리고 예의 코린트 게임까지 있다. 옛날 일본에서도 테마리(手鞠[각주:7])나 다큐(打毬[각주:8])나 축국(蹴鞠[각주:9])은 꽤 오래되었다는 것 같다.

  인간뿐인가 하고 생각하면, 고양이 등이 기쁘게 종이를 뭉친 볼을 굴리는 것이, 어떤 직접적 이득이 되는 목적이 있어서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역시 스포츠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쥐를 잡거나 할 때에 필요한 운동의 민활함을 수련하는데에 유효할지도 모른다. 가축의 똥을 뭉쳐서 볼을 만들어 굴리는 쇠똥구리가 있다. 그것은 생활의 자원를 운반하는 노동이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보면 일종의 구기이다.

  물개는 코 끝에 공을 올려놓는 곡예가 능란하다. 그것은 이 동물에게 있어서는 그저 주인인 조련사에게 포상으로 신선한 생선 한마리를 받기 위한 노동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락을 위해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관객의 눈에는 훌륭한 하나의 구기로 감상될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동물에게 그러한 곡예를 습득할 수 있는 소질이 어째서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연속의 생활에 어떤 이것과 닮은 소행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동물의 경우에는 그들의 구기는 직접간접적으로 먹기 위한 노역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구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별개로, 보통은 어쨌든 비생산적인 유희이며, 일상생활의 일에서의 애보케이션(avocation)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로 간단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여러가지 공을 가지고 놀게 된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에는, 더욱 깊고 근원적인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인간의 문화의 서광시대(曙光時代)에 우리의 선조의 또 선조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과 인과의 연쇄 속에 살짝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상이 일어나지 못할 것도 없다.

  혹시나,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옛날에는 배를 채우기 위해 사용되었던 공이 지금은 배를 고프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셈이다.

  아카바네의 링크 한나절의 청유(淸遊)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액택시에 흔들리는 중에 이런 공상이 백일몽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덧붙여서,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동물계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다만 '연기'를 만들어서 그것을 들이마시는 곡예만은 완전히 인간에게 한정된 것 같다. 그러니 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 고유의 향락과 위안에 자원을 공급하는 전매국의 일은 이 점에서 가장 독자적인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전매국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당사자가 점점 연초에 관한 과학적 예술적 내지는 경제적 연구를 진행하여, 지금보다도 더욱 우량한 연초가 한층 염가에 공급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쇼와 9년 8월 '전매협회지(専売協会誌)')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42259.html

  1. 도쿄 토시마구(東京都豊島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2. 엔택(円タク). 요금 1엔으로 대도시의 시내를 달린 균일요금 택시. [본문으로]
  3. 도쿄도 키타구(東京都北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4. 도쿄도 키타구(東京都北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5. 아라카와 중 인공하천 부분. [본문으로]
  6. 도쿄도 분쿄구(東京都文京区) 혼고 지역에 있었던 양과자점 [본문으로]
  7. 손으로 치며 노는 공, 그 놀이 [본문으로]
  8. 타구. 두 패로 나뉘어 말을 타고 달리며 하던 공놀이. 한국의 격구?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케마리(けまり)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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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流言蜚語)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긴 관 안에, 수소와 산소를 적당한 비율로 혼합한 것을 넣어두고, 그 관의 한쪽 끝에 가까운 곳에서, 작은 전기불꽃을 가스 안으로 날린다. 그러면 그 불꽃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 연소가 차례차례 전파(傳播)되어 가면서, 전파의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마침내 이른바 폭발파(爆發波)가 되어 놀랄만한 속도로 진행해 간다. 이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수소의 혼합 비율이 너무 적거나, 혹은 너무 많으면, 설사 불꽃을 날리더라도 연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불꽃의 바로 근처에서는 불꽃 때문에 화학작용이 일어나지만, 그 작용이 사방으로 전파되지 않고 그 근처에서 끝나버린다.
  유언비어의 전파 상황은, 앞에서 말한 연소의 전파의 상황과 형식상에서 볼때 약간 유사한 점이 있다.
  최초의 불꽃에 상당(相當)하는 유언(流言)의 '근원'이 없다면 유언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혹시 그것을 차례차례로 이어받아 전해야 할 매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파'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른바 유언이 유언으로 성립할 수 없으므로, 그 곳을 끝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혹시 어느 기회에, 도쿄시중에 어떤 유언비어 현상이 나타난다고 치면, 그 책임의 적어도 절반은 시민 자신이 져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그 9할 이상을 짊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어느 특별한 기회에는, 유언의 원천이 될만한 작은 불꽃이, 고의로든 우연으로든 온갖 곳에 발생한다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도 혹시 시민 자신이 전파의 매질이 되지 않는다면 유언은 결코 유효하게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밤 세시에 대지진이 있다'는 유언을 뿌린 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혹시 그 마을 안의 어르신격의 사람의, 예를 들어 3할이라도 그러한 정밀한 지진 예지가 불가능하다는 현재의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러한 유언의 알은 부화하지 못하고 썩어버릴 것이다. 이에 반해, 혹시 그러한 유언이 유효하게 전파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수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로 보아도 할 수 없다.
  대지진, 대화재의 한창때, 폭도가 생겨나서 도쿄 전체의 우물에 독약을 타고, 주요 건물에 폭탄을 던지고 있다는 유언이 뿌려졌다고 한다. 그 상황에, 시민의 대다수가 가령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를 들면 시 전체의 우물의 1할에 독약을 탄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우물물을 한명의 인간이 한번 마셨을 때, 그 사람을 죽이거나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데 충분한 농도로 그 독약을 섞는다고 치자. 그 때에 대체 어느정도 분량의 독약을 필요로 할 것인가. 이 문제에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선 독약의 종류를 가정하고, 그 극량(極量:극약,독약의 과용에 따른 위험을 막기 위해 정해놓은 약물 사용량의 한계)을 추정하고, 또 한 사람이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이나, 우물물의 평균량, 시 전체의 우물 총수등, 그러한 것들의 개략적인 수치를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른바 과학적 상식이라 할만한 것에서 오는 막연하고 개념적인 추산을 해 보는 것 정도로도, 그것이 얼마나 많은 분량을 필요로 하는지 정도의 상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쪽이든 간에, 폭도는 지진 전에 상당히 많은 양의 독약을 비축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좀 이상한 일이다.
  만약 그 만한 준비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 다음이 꽤 큰일이다. 몇백명, 혹은 몇천명의 폭도에게, 하나하나 부서를 정하고, 독약을 건네고, 각 방면에 파견해야한다. 이것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제 그것도 되었다고 치자.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에게 건네진 캔을 짊어지고 나가서는, 자신의 담당 방면의 우물의 존재를 찾아서 걸어야만 한다. 우물을 발견하고, 그리고나서 남들이 보지 않는 기회를 노려서, 드디어 드디어 투하한다. 하지만 유효하게 저지르기 위해서는 우물물의 대략적인 분량을 어림잡은 후 투입의 분량을 가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투입하고 나서 잘 용해되어 섞이도록 뒤섞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이건 꽤 힘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독약의 유언비어를 전혀 믿지 않더라도, 적어도 각자의 자택의 우물에 대해서 품을 무서움은 다소 줄어들지는 않을까.
  폭탄 이야기도 비슷하다. 시 전체의 눈에 띄는 건물에 모조리 던져넣기 위해 필요한 폭탄의 수량과 인수를 생각해 보면, 적어도 야마노테의 가난한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의 집집마다 파열이라도 할듯한 과도한 공포를 야기하지 않아도 끝날 일이다.
  하기야 심각한 천재지변등의 상황에 그렇게 속 편하게 셈이나 할 여유가 있을리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치면, 그것은 그 시민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과학적 상식이 결핍되어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아니겠는가.
  과학적 상식이라는 것은, 딱히 천왕성의 거리를 암기하거나, 여러가지 비타민의 종류를 이해하는 것 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활용하고 이용할만한, 판단의 표준이 될만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한다.
  물론, 상식의 판단에 의지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과학적 상식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적당한 과학적 상식은, 사안을 마주했을 때 우리들에게 '과학적 성찰의 기회와 여유'를 준다. 그러한 성찰이 행해지는 곳에는 이른바 유언비어같은 것은 그 열의나 전파능력이 현저하게 약해져야 한다. 설사 성찰의 결과가 틀렸고, 그 때문에 유언이 실현되는 등의 일이 있더라도, 적어도 문화적 시민으로서의 대단한 치욕을 당하는 일 없이 끝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타이쇼  13년 9월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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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을 닮은 아이 2011.09.08 22:31 신고

    좋은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다자이 오사무도, 미야자와 켄지도 모두 좋아하는 작가들이네요. 테라다 토라히코도 곧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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