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카와의 물(大川の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나는 오오카와바타(大川端)[각주:1]에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을 나와 모밀잣밤나무의 새잎에 덮인, 검은 담이 많은 요코아미(横網)의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그 폭 넓은 강줄기가 보이는 햡폰구이(百本杭[각주:2])된 강기슭에 나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는 거의 매일같이 그 강을 보았다. 물과 배와 다리와 모래톱과 강 위에서 태어나서 강 위에서 사는 분주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았다. 한여름 정오가 약간 지나서 달구어진 모래를 밟으면서 수영을 배우러 지나가는 길에 맡고 싶지 않아도 맡은 강물 냄새도, 지금에 와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친근하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도 그 강을 사랑하는가. 그 어느 쪽인가 하면 진흙으로 탁한 오오카와의 미지근한 물에 한없는 그윽함을 느끼는가. 스스로도 조금도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는 옛날부터 그 물을 볼 때 마다, 왜인지 눈물을 흘리고 싶은 듯한, 표현하기 어려운 위안과 적요(寂寥)를 느낀다. 완전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어져서 그리운 사모(思慕)와 추억의 나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 때문에 이 위안과 적요를 맛볼 수 있으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오오카와의 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은회색의 안개와 파란 기름 같은 강물과 한숨 같은 불안한 기적(汽笛)소리와 석탄선의 다갈색 삼각돛과, ──모두 누를 길 없는 애수를 부르는 이 강의 조망은, 어찌 나의 어린 마음을, 그 강기슭에 선 버드나무 잎처럼 떨리게 할 것이다.

  근 삼년간, 나는 야마노테(山の手) 교외의, 잡목림 그늘이 진 서재에서 평정(平靜)한 독서삼매에 젖어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월에 2,3차례는 그 오오카와의 물을 보러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게 움직이고 흐르는 것 같지도 않게 흐르는 오오카와의 물색은, 정적(靜寂)한 서재의 공기가 쉬지 않고 주는 자극과 긴장에 안타까울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 마음도, 마치 긴 여행에 나선 순례자가 겨우 다시 고향의 땅을 밟았을 때 같은 쓸쓸한, 자유로운, 그리움에 녹여준다. 오오카와의 물이 있어서 비로소 나는 다시 순수한 본래의 감정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푸른 물에 면한 아카시아가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려서 팔랑팔랑 하얀 꽃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몇 번이나 안개가 많은 11월의 밤에 어두운 물의 하늘을 추운 듯이 우는 물떼새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보고 내가 들은 모든 것은 모조리 오오카와에 대한 내 사랑을 새롭게 한다. 마치 여름 강물에서 태어나는 검은물잠자리의 날개 같이 떨기 쉬운 소년의 마음은, 그때마다 새로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밤그물을 친 배의 뱃전에 기대서 소리도 없이 흐르는 검은 강을 바라보면서 밤과 물의 가운데를 떠도는 ‘죽음’의 호흡을 느꼈을 때, 어찌 나는 의지할 길 없는 쓸쓸함에 닥치게 되었으리라.

  오오카와의 흐름을 볼 때 마다 나는 그 승원(僧院)의 종소리와, 백조의 목소리로 저무는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발코니에 핀 장비도 나리도 물밑에 잠긴 듯한 달빛에 파르스름해지고 검은 관을 닮은 곤돌라가 그 중간을 다리에서 다리로 꿈처럼 저어가는 베네치아의 풍물에 넘칠듯한 정열을 쏟았던 단눈치오의 기분을 새삼스럽듯이 그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오오카와의 물에 애무받는 연안 마을들은 모두 나에게 있어서 잊기 힘든 그리운 마을이다. 아즈마바시(吾妻橋)에서 하류라면 코마가타(駒形), 나미키(並木), 쿠라마에(蔵前), 다이치(代地), 야나기바시(柳橋), 혹은 타다(多田)의 야쿠시마에(薬師前), 우메호리(うめ堀), 요코아미(横網)의 강기슭── 어디라도 좋다. 이러한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의 귀에는 햇빛을 받는 흙으로 지은 광의 하얀 벽과 하얀 벽 사이에서, 격자문으로 된 어두침침한 집과 집의 사이에서, 혹은 은갈색의 싹을 틔운 버들과 아카시아의 가로수 사이에서, 잘 닦인 유리판처럼 파랗게 빛나는 오오카와의 물은 그 시원한 바닷물의 냄새와 함께 옛날부터 남으로 흐른 그리운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아아, 그 물소리의 그리움, 중얼거리듯이, 삐친 듯이, 혀를 차듯이, 풀물을 짜낸 파란 물은 낮도 밤도 똑같은 듯이 양안(兩岸)의 석축을 씻고 간다. 한죠(班女)고 나리히라(業平[각주:3])고, 무사시노(武蔵野)의 옛날은 모르고, 멀게는 많은 에도죠루리(江戸浄瑠璃) 작자, 가깝게는 카와타케 모쿠아미(河竹黙阿弥[각주:4]) 옹이 센소지(浅草寺)의 종소리와 함께 그 살인현장의 스팀뭉그(Stimmung)를 가장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자주 그 서민물의 안에 준비한 것은 실로 이 오오카와의 쓸쓸한 물울림이었다. 이자요이(十六夜) 세신(清心)이 몸을 던졌을 때도, 겐노죠(源之丞)가 새쫓기[鳥追]를 하던 오코요(おこよ)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도, 혹은 또 땜장이 마츠고로(松五郎)가 박쥐가 어지럽게 나는 여름 저녁, 저울을 짊어지고 료고쿠(両国)의 다리를 건넜을 때에도 오오카와는 지금처럼, 낚시꾼여관의 선창에, 강기슭의 푸른 갈대에, 쵸키부네(猪牙船[각주:5])의 선복(船腹)에 나른한 속삭임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특히 이 물소리를 그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나룻배 안에서일 것이다. 내 기억에 틀림이 없다면, 아즈마바시에서 신오오바시(新大橋)까지, 원래는 다섯 개의 나루터가 있었다. 그중에서 코마카타 나루터, 후지미(富士見) 나루터, 아타카(安宅) 나루터 세 개는 차례로 하나씩 언제인지도 모르게 쇠퇴해서 지금은 단지 이치노하시(一の橋)에서 하마쵸(浜町)로 건너가는 나루터와 미쿠라바시(御蔵橋)에서 스가쵸(須賀町)로 건너가는 나루터 두 개가 옛처럼 남아있다. 내 어릴 적과 비교하면 강물의 흐름도 바뀌어 갈대와 물억새가 무성했던 곳곳의 모래톱도 흔적없이 묻혀버렸지만 이 두 나루터만은 비슷한 깊이가 얕은 배에 비슷한 노인 뱃사공을 태우고 강기슭의 버들잎처럼 파란 강물을 지금도 변함없이 하루에 몇 번씩인가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주 아무런 용무도 없는데도 이 나룻배에 탔다. 물의 움직임에 따라서 요람처럼 가볍게 몸이 흔들리는 기분 좋음. 특히 시각이 늦으면 늦을수록 나룻배의 쓸쓸함과 기쁨이 절실히 몸에 사무친다. ──낮은 배의 바깥은 바로 녹색의 미끄러운 물로, 청동같은 무딘 빛이 나는 폭넓은 수면은 먼 신오오바시에 가로막히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양안의 집집은 이미 황혼의 회색으로 통일되어 그 곳곳에는 장지에 비치는 등불의 빛조차 노랗게 안개 속에 떠 있다. 밀물을 따라 회색의 돛을 반쯤 편 거룻배가 한 척 두 척 가끔 강을 거슬러 오지만 어느 배도 고요히 잠잠해서 키를 잡은 사람의 유무조차도 알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이 조용한 배의 돛과 파랗고 평평하게 흐르는 바닷물의 냄새에 대하여 뭐라 말할 것도 없이,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각주:6])의 에르레브니스(Erlebnis)라는 시를 읽었을 때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을 느끼는 것과 함께, 자신의 마음속 또한 정서의 강의 속삭임이 안개의 바닥을 흐르는 오오카와의 물과 같은 선율을 노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매혹하는 것은 오오카와의 물의 울림 혼자만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강물의 빛이 거의, 어디서도 찾아내기 힘든 미끄러움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바닷물은 마치 벽옥의 색 같이 너무도 무거운 녹색을 엉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수의 간만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류의 강물은 말하자면 에메랄드빛처럼 너무 가볍고, 너무 얄팍하게 빛난다. 오직 담수와 조수(潮水)가 교차하는 평원의 대하(大河)의 물은 차가운 파랑에 탁한 노랑의 따뜻함을 뒤섞어서 어딘지 모르게 인간화된 친절함과, 인간같은 의미에 있어서 라이프라이크한 그리움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특히 오오카와는 검붉은 점토가 많은 칸토평야를 모두 지나서, ‘도쿄’라는 대도시를 조용히 흐르는 만큼, 그 탁하고 주름지고 깐깐한 유대인 노인처럼 툴툴 잔소리를 하는 물색이 어찌나 안정된, 친밀한, 촉감 좋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같은 도시 안을 흐른다고 해도, 역시 ‘바다’라는 커다란 신비와 끊이지 않고 직접 교통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강과 강을 잇는 수로의 물 같이 어둡지 않다. 잠들어있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움직여가는 끝은 시작도 끝도 없이 건너가는 ‘영원’의 신비함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즈마바시, 우마야바시(厩橋), 료고쿠바시(両国橋) 사이, 향유 같은 푸른 물이 커다란 교대(橋臺)의 화강석과 벽돌을 적시고 가는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강기슭에 가까운, 낚시꾼여관의 하얀 사방등을 비추고, 은색 잎 뒤쪽을 뒤집는 버들을 비추고, 또 수문에 막혀서는 샤미센(三味線) 소리가 미지근해지는 오후를 홍부용(紅芙蓉) 꽃에 슬퍼하면서, 심약한 집오리의 깃털에 어지럽혀져서, 인기척 없은 주방 아래를 조용히 빛나면서 흐르는 것도, 그 묵직한 물색에 말할 수 없는 온정을 품고 있다. 설사 료고쿠바시, 신오오바시, 에타이바시(永代橋)와, 하구에 가까워짐에 따라 물색은 현저히 난조(暖潮)의 심남색(深藍色)을 섞어가면서 소음과 연진(煙塵)으로 가득 찬 공기 아래에, 하얗게 짓무른 눈을 번뜩번뜩 함석처럼 반사하고, 석탄을 쌓은 큰 화물선이나 하얀 페인트가 벗겨진 고풍스러운 증기선을 나른하게 흔드는 것 역시 자연의 호흡과 인간의 호흡이 맞아떨어져서, 어느새 융합한 도회의 물색의 따뜻함은 쉽게 지워져버릴 것이 아니다.

  특히 해질녘, 강 위에 자욱이 낀 수증기와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저녁하늘의 어스름은, 이 오오카와의 물을 거의 비유를 초월한 미묘한 색조를 띠게 한다. 나는 홀로 나룻배의 현에 팔꿈치를 걸치고, 이미 안개가 내리기 시작한 어스름한 강의 수면을 이렇다 할 것도 없이 바라보면서, 그 암록색의 물 저편, 어두운 집들의 하늘에 크고 붉은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무심결에 눈물을 흘린 것을,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마을은, 그 마을 고유의 냄새가 있다. 플로렌스의 냄새는 아이리스의 흰 꽃과 먼지와 안개와 옛 회화의 니스의 냄새이다.’(메레쥐코프스키[각주:7]) 혹시 나에게 ‘도쿄’의 냄새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오카와의 물 냄새라고 대답하는 것에 어떠한 주저도 하지 않을 것이다. 냄새 하나뿐만은 아니다. 오오카와의 물색, 오오카와의 물소리는 내가 사랑하는 ‘도쿄’의 색이고 소리여야 한다. 나는 오오카와가 있으므로 ‘도쿄’를 사랑하고, ‘도쿄’가 있으므로 생활을 사랑하는 것이다.

(1923. 1)

그 후 ‘이치노하시 나루터’가 끊어진 것을 들었다. ‘미쿠라바시 나루터’가 사라지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http://www.aozora.gr.jp/cards/000879/card123.html

  1. 도쿄, 스미다가와(隅田川) 하류. 특히 아즈마바시(吾妻橋)에서 신오오하시(新大橋)부근까지의 우안(右岸)일대를 가리킴 [본문으로]
  2. 현재의 스미다가와의 강기슭은 콘크리트등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당시는 수많은 말뚝을 박아 강기슭을 보호해서 백개의 말뚝이라는 햡폰구이라는 말이 붙었음 [본문으로]
  3. 한죠도 나리히라도 노(能)의 한 곡 [본문으로]
  4. 1816~1893, 가부키의 각본가 [본문으로]
  5. 에도시대에 하천에서 널리 사용된 경쾌하고 빠른 배 [본문으로]
  6. 후고 폰 호프만스탈, 1874~1929. 오스트리아의 시인, 극작가 [본문으로]
  7. Дмитрий Сергеевич Мережковский, 1865~1941, 러시아의 시인, 사상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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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학소년 2012.05.15 08:00 신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중학교 시절의 공부법(わが中学時代の勉強法)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내 출생지는 고치현(高知県)으로, 처음 중학교[각주:1] 입학시험에 응시한 것은 14세, 딱 고등소학교[각주:2] 3학년 때였다. 그 중학교란 지금의 고치현립제일중학교(高知県立第一中学)이다. 평소부터 그다지 건강하지는 않고, 게다가 공부도 변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그 때의 입학시험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났다. 하기는 성적에 대해서는 뭔가 뜻밖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부른 것인지, 당시의 나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3학년 때 시험을 쳤기로서니 실패하는 것은 역시 분하고 원통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리 공부도 하지 않았던 나도 다소 짜증을 내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빼어난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규칙바르게 학과(學課)의 복습, 수험 준비에 힘쓴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무난하게, 평범한 것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다음 해에 다시 시험을 쳐 보니 성적은 의외로 좋았다는 듯 1년 월반하여 한번에 2학년에 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한번 실패한 것도 만회하였으므로 연령이라는 점에서 봐도 그 전 해에 들어간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되었다.

  개중에는 1년 월반해 왔으니까 영어등은 좀 고생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이도 나는 고등소학교 2학년때부터 옆집에 사는 어느 선생님 댁에 가서 영어만은 배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던 소학교에서는, 3학년 때 부터 이미 영어를 가르쳐서, 4학년을 끝냈을 쯤에는 독본 셋 정도는 읽었기 때문에, 비교적 어렵다고 들은 영어과도 각별한 고생은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나는 시골의 외동아들로 말하자면 어떤 고생도 없이 느긋하게 자란 쪽이다. 따라서 이것이 공부법이라고 해도, 특별히 뭔가 새로운 구상도 없고, 그다지 힘들여서 공부한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내 학생시대를 회고하면, 고학(苦學)이라기보다 낙학(樂學)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물건이 필요하다. 저런 책을 사고싶다고 하면, 부모님은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 사 주셨다. 딱히 까다로운 잔소리를 듣지도 않았고, 공부에 대해서도 어려운 제한같은 것이 붙지도 않았다. 이것은 지금도 내가 부모님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부분이다.

  중학교에는 집에서 다녔는데, 그동안 집안일을 도와서 시간의 속박을 받은 등의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돌아와 그 날의 학과의 복습이나, 내일의 예습을 정확한 시간을 정해서 일정 범위 내에 일정한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라, 그 날 그 때에 맞춰서 일정한 시간은 자연히 정해지는 지극히 느긋한 방법을 취했다.

  일요일등이라도, 평소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와 같이, 정해진 공부도 하지 않고, 정해진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시골이니까 가끔은 친구 두셋과 놀러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즐겨서 놀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대체로 나 좋을대로 하며 자유롭게 보냈다.

  이런 식이었으니, 따라서 밤은 늦게까지, 아침은 일찍부터 기상해서 공부에 매달리는 등의 예(例)는 없고, 게다가 우리 집은 극히 평온, 원만한 가정이라서 언제든지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때에는 어떤 장애도 없이, 조용히 한가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어서, 특별히 공부의 시간을 정해 조바심을 내며 할 필요는 없었고 고통을 느끼면서 책상과 마주하는 것 같은 일은 더욱 없었다. 따라서 내 공부법은 가장 불규칙적이고 또 결코 대단한 노력가인 것도 아니었다. 환경도 역시 고학(苦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종일관 낙학(樂學)한 경우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부터는 이미 부모 슬하를 떠나있었고, 또 하나는 나이와 함께 사상도 조금씩이나마 굳어져 왔으므로, 중학교 시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공부도 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달리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 특별히 심한 공부나, 질서바른 독서법 등을 실행한 것은 아니다.

  소학교 시대부터 나는 학교 교과서 이외에 여러가지 잡다한 책, 잡지등을 마구 읽었다. 이것은 딱히 다독하는 것이 대단히 좋다고 자각해서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막연히 독서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쪽 일은 확실히 모르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책을 자주 보았다. 소학교에 있을 때는, 옛날 하쿠분칸(博文館)에서 나오던 '니혼쇼넨(日本少年)'을 비롯하여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외 그런 잡지나 책을 자주 읽었던 것이다. 부모님도 또 말하는 대로 사 주셨다.

  중학교에 가게 되고 나서는 소책자로 된 자연지리학, 지리서 같은 것을 수많게 읽고, 또 소설 등도 많이 읽었다.전술한대로, 나는 공부하는데도 제멋대로의 방법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학에 대단한 흥미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들리지만, 그다지 그렇지도 않았다. 단지, 이런 것에서 얻은 것인지, 작문은 학교에서도 제법 재주가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친척이 있어서, 거기에 가면 언제나 책을 내서는 손닿는대로 읽곤 했다. 그 중에서도 '핫켄덴(八犬伝)', '삼국지', '초한지'등은 대단히 힝므가 있어서 대부분은 통독하였다. 이것 덕에 스스로도 독서력이 대폭 증진했다고 생각했다. 뒤죽박죽 읽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독서력은 대단히 길러졌다. 폐해도 있으면 또 그것에서 오는 이익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책을 될수있는 한 빨리 읽고, 그래서 이해력을 키우는데는 꼭 많은 책을 읽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내 중학교 시절에 있어서의 성적은 3학년쯤 까지는 일단 중간 정도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좋은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목에 대해서도 딱히 호오는 없었고, 꽤 일정한 점수를 얻었지만, 단지 습자(習字)만은 아무리 해도 서툴렀다. 이래서 습자를 배우는 중에는 평균점수상 성적 쪽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상급생이 되면서 습자가 생략됨과 함께 성적도 확실히 좋아졌다. 그 외에 딱히 싫어하는 것도 없었던 대신에 또 각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중에서 지리만은 중학교 시절부터 특별히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될수 있는 한 이것을 어디까지든 연구해보자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어느 만큼은 고등학교에서는 공과(工科)에 들어가, 3학년 때 다시 물리로 옮겨, 이리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억에 도움이 되도록,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발췌쓰기라는 것을 자주 했다. 발췌쓰기라는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교과서 안의 중요점을 발췌하여 교과서의 바깥부분등에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 안에도 동물, 식물, 광물, 지리, 역사, 화학 처럼 주로 암기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나. 잠깐 예를 들어보면, 교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질문을 받았을 때, 전부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해도 아무리 해도 그 질문에 응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슴에는 떠오르지만 좀 정리되어 입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 주요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발췌하여 그 중요점만을 충분히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근본적인 사항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에 따라오는 지엽적인 것등은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나타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개략만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으면, 사상은 일관해서 비교적 정확한 답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혼자서 이 발췌쓰기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나는 교사가 자주 칠판에 도해로 보여주는 그림등도 그대로 직접 교과서에 써 놓았다. 이것은 기억하는데에 편리할 뿐만이 아니라 그 사항을 잊어버렸더라도 그 그림을 떠올리면 쉽게 기억을 불러올 수 있었고, 또 시험이 끝난 후 상당히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 그림만 보면 쉽게 교과서 안의 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따라서 내가 이용한 교과서는 참 더러운, 연필 발췌문, 도해 그림등으로 꽉꽉 더렵혀져 있다.

  똑같이 이렇게 한다면, 노트에 옮기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중학교 시대에는 그다지 노트에 표시하는 것은 하지 못했다. 교과서 외의 물건에 써 놓으면 일단 이것저것 읽을때마다 꺼내서 봐야하는게 귀찮다. 또 교과서를 펴 보면 한번에 발췌도 읽기도 가능하다는 편리성이 있어서, 일부러 나는 교과서를 더럽힌 것이다.

  고의로 게으름을 피웠다고 하면 왠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가 싫어졌을 때, 무리하게 노력하여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지 않고, 좋을대로 하면서 논다. 산책을 나가서 좋아하는 것도 보고, 매우 제멋대로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하루 놀면 지금까지 착잡해있던 두뇌가 신선해져서, 무엇을 읽어도 확실히 기분 좋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나는 독서를 해도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서 꼼꼼하게 읽을 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격상 그런 딱딱한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끔 어딜 가든 앉은 그대로 책을 집어 쭉 읽는 때도 있고 누워서 보는 때도 있으며 엎드려서 읽는 떄도 있다. 독서할 때의 태도는 거의 일정치 않았다. 말하자면 불규칙적인 방식이지만, 아무래도 내 성질이 거북하게 공부하기보다 편하게 내 맘에 들게 하는 쪽이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기억하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나 스스로도 제대로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독자제군도 이런 부분은 잘 참작하여 그중에서 좋은 점 만을 취해주었으면 한다.

다만 규칙바르게 공부하는 자들 중에는 매일 그 날의 노트를 반복하여 배운 부분만을 암기하려고 하는  자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 될수있는 한 강의에 있어서도 일단락을 지었을 때, 이전부터 필기해 온 부분과 연결하여 한번에 읽는 식으로 했다. 이 연결을 꾀하는 것은 내용을 기억하는데에 가장 필요한 것이고 조각조각난 단편적인 것들을 자세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항이 일단락 지어졌을 때 합쳐서 읽도록 하는 쪽이 전후관련하여 이해하는데도 형편이 좋고, 기억하기도 또한 대단히 쉬워지는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은 그리 몸이 건강하지 않았고, 운동도 딱히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시간은 거의 의무적으로, 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만 소학교 시절부터 광물, 곤충등의 채집에는 대단히 흥미가 있어서, 가끔 근처에 채집을 나갔다. 지금도 고향 집에는 이런 것들의 표본이 꽤 남아있을 정도로, 조금은 이런 일이 운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되신, 자양분은 가능한 많이 먹었다. 그 때문에 몸이 약한 것 치고는 특별히 병에 걸리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대로의 가정(家庭)이었으므로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고, 장난삼아 시시한 것에 고민하여 몸을 피로하게 한 일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아니고, 학교의 교과목이나 그 외에 것에 있어서도 곤란, 고통도 없었고 우선 학생시절은 느긋하게 살았던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부로 교제하여 재미있게 놀았던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원해서 하는 것 같은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시골이니까 집에 돌아오면 놀이 친구라고 해도 기껏 두셋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이도 근처에 살던 친적중에 딱 동년배가 왔으므로, 자주 그곳에 가서는 거기서 놀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대체로 나는 교제가 서투른 쪽이라 지금도 스스로 원해서 교제하려는 일은 없고, 단지 마음을 튼 약간의 벗과 깊게 교제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메이지 40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1695.html

  1. 구제(舊制)에서, 고등보통교육을 받은 수업연한5년의 남자중등학교 [본문으로]
  2. 구제(舊制)에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다음의 학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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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바람(凩)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또 한바탕 강한 것이 서쪽에서 불어와서, 검게 시든 단풍을 책상 앞 유리창에 후려갈기고 뒷편 덤불을 쓰러트리듯하며 지나갔다. 풀도 나무도 집도 창문도 마음속부터 추운듯 몸을 떨었다. 마치 자비를 모르는 정복자가 말발굽의 흔적에 남겨두고 간 전사의 최후의 숨인 것 같은 슬픈 소리를 낸다. 이것을 비웃는 악마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딘가의 깊은 산에서 나와서 어딘가의 깊은 계곡으로 사라져갈지도 모르는 이 파괴신은, 마치 그 주재자인 '시간'의 일에 답답해하는 것 처럼, 온갖 것을 말라붙이고 분쇄시키려고 조바심을 낸다.
  화로에는 한덩이의 숯이 완전히 타고, 부드러운 하얀 재는 위쪽의 짚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도 없이 움푹 꺼져버렸다. 이 때 다시 집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가는 곳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때, 어딘지 모르게 들어온 차가운 공기가 무릎관절에서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을 알아챘다. 이 때 나는 뒷길을 서쪽을 향해 비칠비칠 가는 한명의 노옹(老翁)을 보았다. 거지일 것이다. 그 사람의 다양한 과거 생활을 나타내는 듯이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는 마른 나무같은 팔꿈치를 못 가리고 있다. 우리 집의 뒤편까지 와서 멈춰섰다. 그리고 지팡이에 기댄채로 어렵사리 구부정한 새우등을 펴서 앞쪽에 뭔가를 기대하는 듯 얼굴을 올렸다. 퀭한 눈에 실로 막 지려고 하는 해가 떨어지고, 얼굴을 싼 손수건 조각에서 나온 한묶음의 백발이 소슬바람에 거꾸로 서 보였다. 다시 비칠비칠 걸어나가더니, 한바탕 바람이 곧바로 길의 모래를 말아올려 노옹을 감쌌을 때 나는 깊디 깊은 공상을 불러왔다. 그래서 이 슬픈 빈사자의 생애를 꿈꿨을 때, 마치 이 사람의 지금의 처우가 내 미래로 나타나서, 나 자신이 이 노인의 전신(前身)인 것 처럼 느꼈다.
  그는 필시 희망을 품고 태어나, 희망의 힘에 의해 살아 왔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또한 이 소슬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의 그림자같은 어떤 희망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덧없는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몇번인가 죽음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던 것은 아닐까. 대충 무엇이 덧없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묻힌 채로 긴 긴 세월을 거쳐 끝네 그 사람의 차가운 유해와 함께 묻혀버려서, 이제껏 빛에 닿은 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희망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있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그를 보았을 것인가. 각자의 바람을 쫓는데에 여념이 없는 세인(世人)은, 가끔 그의 쭈그러진 손바닥에 동전 한개를 떨어트리는 사람이더라도 아마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의 자선함에 던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특별히 동정심을 갖고 보고 있는 나조차도 이 어딘가의 누군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을거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는 아마 사랑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청춘의 꿈은 지금 약간의 따뜻함을 추운 돌바닥에 빌려줄 것인가.
  그는 아마 뜻을 세운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약간의 효과를 무덤 아래에 가져오려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끊이지 않는 망상에 빠져있는 동안, 노인의 쓸쓸한 그림자는 어딘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갑자기 건너편의 길모퉁이에서 유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서 주위의 숙살(肅殺)을 깼다. 마치 노인의 과거의 환희의 목소리가, 여기에 잠깐 반향(反響)되어 온 것 처럼.
(메이지 34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4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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