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노래(秋の歌)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차이코프스키의 '가을의 노래'라는 소곡이 있다. 나는 짐발리스트[각주:1]가 연주한 이 곡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것을 꺼내서, 혼자서 조용히 이 곡이 부르는 환상의 세계에 잠긴다.

 북유럽의, 끝도 없는 평야의 깊숙한 곳에, 자작나무 숲이 있다. 슬퍼하는 것처럼 늘어뜨려진 나무들의 우듬지는, 이미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다. 기울어진 석양의 하늘에서 쓸쓸한 바람이 지나가면, 낙엽이, 아릅답디 아름다운 눈물처럼 쏟아진다.

 나는 숲속을 수놓은 황폐해진 오솔길을 목적지도 없이 방황하듯 걷는다. 나와 나란히, 마리아나 미하이로우나가 걷고 있다.

 둘은 말없이 걷고 있다. 하지만, 둘의 가슴 속에 교차하는 마음은 바이올린의 소리가 되어 높고 낮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인세(人世)의 온갖 말보다도 잘 달랠길 없는 슬픔을 나타낸 것이다. 내가 G현으로 말하면, 마리아나는 E현으로 답한다. 현의 소리가 끊어졌다가는 이어지고, 이어졌다가는 사라질 때, 둘은 멈춰선다. 그리고 가만히 시선을 교차한다. 둘의 눈에는, 이슬방울이 빛나고 있다.

 둘은 다시 걸어간다. 현의 소리는 전보다도 높게 떨리고, 이윽고 목메인듯 떨어진다.

 바이올린 소리가 기복하는 것을 받아서, 메아리가 답하듯이, 희미한, 첼로같은 음이 울려온다. 그것이 사라져가는 것에 달라붙어 쫓아가듯이, 또 바이올린의 고음이 울려온다.

 이 희미한 반주 소리가, 헤어진 후의 미래에 남을 둘의 마음의 반향이다. 이것이 한없이 덧없고 쓸쓸하다.

 '붉디 붉구나 무정한 가을의 태양'[각주:2]이 들의 끝에 잠겨간다. 둘은, 숲의 변두리에 서서, 말을 맞춘 것처럼 먼 절의 탑에서 빛나는 최후의 섬광을 지켜본다.

 한번 말라버린 눈물이, 다시 멈추지도 않고 흐른다. 하지만 그것은 더이상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영구히 혼을 좀먹는 쓸쓸하디 쓸쓸한 체념의 눈물이다.

 밤이 닥쳐온다. 마리아나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나는, 홀로 쓸쓸히, 숲 변두리의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희미한 하늘의 미광(微光) 안으로 사라져가는 현의 소리의 여운을 쫓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곡은 끝나있다. 그리고 무릎에 올린 손 끝에서, 다 타버린 궐련의 재가 슥 떨어져서, 녹색 카펫에 깨진다.

(다이쇼 11년 9월 『땡감(渋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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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프렘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 <A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7%90%ED%94%84%EB%A0%98_%EC%A7%90%EB%B0%9C%EB%A6%AC%EC%8A%A4%ED%8A%B8" target=_blank>위키백과 보기</A> [본문으로]
  2.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 'あかあかと日はつれなくも秋の風'가 원전일 것으로 추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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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같은 기분(兄貴のような心持)

-키쿠치 칸(菊池寛)씨의 인상-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竜之介)

 

 나는 키쿠치 칸과 함께 있을 때, 거북함을 느낌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지루함을 느낀 적도 전혀 없다. 키쿠치와 함께라면 하루종일 빈둥거리더라도, 질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키쿠치는 질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키쿠치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형님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나의 좋은 점은 물론 잘 알아 주고, 설령 나쁜 점이 나오더라도 동정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과거의 기억에 비추어보면, 그렇지 않았던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동생다워야 할 이 내가, 가끔 보내는 호의에 의지하여 멋대로 못된 열(熱)을 불어넣는 적도 있지만, 그것조차 내게 있어서는 형님다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형님다운 기분은, 물론 일부는 키쿠치의 학식이 만들어낸 것임도 틀림없다. 그의 컬처는 다방면에 걸쳐있고, 게다가 각각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키쿠치가 형님다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그의 인간성이 잘 형성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면 그 인간성이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인생에 달통한 사람이라는 말이 가진 일체의 속기(俗気)를 씻어내면 바로 키쿠치같이 훌륭하게 인생에 달통한 사람이다. 그 증거로는 나같이 평소 악랄한 변설(弁舌)을 즐겨 부리는 인간이라도, 키쿠치와 어떤 문제를 토론하게 되면, 그 토론에서 이겼을 때 조차 아무래도 이쪽의 주장이 공허한 구석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도 승리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하물며 이쪽이 졌을 때는, 온갖 것을 잘 아는 큰아버치에게 거듭 지당한 의견을 들은 듯 하여, 자신이 매우 가엾은 기분이 든다. 어느것이든 간에 그 원인은 사상이나 감정같은 것 보다도, 나보다 키쿠치 쪽이 더 고생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장 일상적인 경우라도, 실생활상의 문제를 상담하면 누구보다도 키쿠치가 제 몸처럼 여겨주고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해준다. 이 제 몸처럼 여긴다는 것이, 우리들─특히 나로서는 흉내낼 수 없다. 아니, 실은 자신의 문제라도 제 몸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속으로는 자랑스럽게 여기던 때 조차 있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몇번이나 키쿠치가 나보다도 내 몸처럼 내 문제를 생각해 주었다. 그만큼 내게 형님같은 느낌을 일으키는 인간은, 지금의 천하에 키쿠치 칸 이외엔 한명도 없다. 다른 부분을 더 쓰고싶은 문제도 있지만, 키쿠치의 예술에 관해서는, 제국문학(帝国文学)의 정월호에 짧은 논평을 쓸 터이니 여기서는 그쪽에 양보하여 쓰지 않기로 했다. 내친김에 키쿠치가 신사조新思潮 동인 안에서는 가장 좋은 아버지이며 또한 좋은 남편이라는 것도 덧붙여 둔다.

http://www.aozora.gr.jp/cards/000879/card433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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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서의 인상(愛読書の印象)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竜之介)

 

 어릴때의 애독서는 '서유기'가 제일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나의 애독서이다. 비유담(比喩談)으로서 이정도의 걸작은 서양에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높은 버니언의 '천로역정'등도 도저히 '서유기'의 적은 아니다. 그리고 '수호전'도 애독서중 하나이다. 이것도 아직껏 애독하고 있다. 한때는 '수호전' 에 나오는 108명의 호걸의 이름을 모조리 암기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에도 오시카와 슌로(押川春浪)씨의 모험소설이니 뭐니보다도 이 '수호전'이니 '서유기'이니 하는 것들 쪽이 나에겐 훨씬 재미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토쿠토미 로카(徳富蘆花)씨의 '자연과 인생'이나 쵸규(타카야마 쵸규,高山 樗牛)의 '헤이케 잡감(平家雑感)'이나 코지마 우스이씨(小島烏水)의 '일본산수론'을 애독했다. 동시에, 나츠메(나츠메 소세키, 夏目 漱石)씨의 '고양이'나 쿄우카(이즈미 쿄우카, 泉 鏡花)씨의 '풍류선(風流線)'이나 료쿠우(사이토 료쿠우, 斎藤 緑雨)의 '아라레사케(あられ酒)'를 애독했다. 그러니 남일이라고 웃을수는 없다. 내게도 '문장클럽(文章倶楽部)'의 '청년문사록(青年文士録)' 안에 있을듯한 '톨스토이, 츠보우치 시코(坪内士行), 오오마치 케게츠(大町桂月)' 시대가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여러 책을 읽었는데, 특별히 애독했다고 할만한 것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와일드라던가 고티에같은 현란한 소설을 좋아했다. 그것은 나의 기질에서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확실한 한가지 이유는 일본의 자연주의적 소설에 지친 반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을 전후해서, 왠일인지 취미나 사물을 보는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서, 앞에 말한 와일드나 고티에 같은 작가의 작품이 대단히 싫어졌다. 스트린드베리같은 작가에게 경도된 것이 이쯤이다. 이 시절의 내 기분을 말해보자면 미켈란젤로풍의 힘이 없는 예술은 모두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당시 읽은 '진 크리스토프'등의 영향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이어졌지만, 점점 타오르는 것 같은 힘의 숭배도 줄어들고, 1년 전부터 조용한 힘이 있는 책에 가장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단, 조용하다고 해도 또 조용하기만 하고 힘이 없는 것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스탕달이나 메리메나 일본 것이라면 사이카쿠(西鶴)등의 소설은 이 점에서 지금의 나에게는 재밌기도 하고, 득도 되는 책이다.
 내친김에 덧붙여 두지만, 요전번 '진 크리스토프'를 꺼내서 읽어 봤는데, 옛날같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 시절의 책은 안되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꺼내 2,3장 읽어 봤더니, 이것은 옛날처럼 달가운 기분이 들었다.

 

http://www.aozora.gr.jp/cards/000879/card48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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