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다 토라히코 - 길가의 풀(路傍の草)

테라다 토라히코(寺田 寅彦)


  1. 차상車上 

'삼상三上'이라는 말이 있다. 침상枕上 안상鞍上 측상厠上을 합쳐서 삼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괜찮은 생각을 발효시키는데 적합한 세 가지 환경'을 대립시킨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제법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 중국인들이나 굉장히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면 현대에서는 저 말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삼상을 삼상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이 세 가지 환경은 모두 육체적으로는 부자유하게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삼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대단히 자유롭고 해방된 고마운 환경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이라면 바깥에서 여러 가지 일이 들어올 걱정에서 면제되기 때문이다. 육체가 속박당하는 대신에 정신이 해방된다. 두뇌의 활동이 바깥쪽으로 향하는 것이 멈추므로 자연스레 안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현대 일반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 삼상은 다소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일단 '침상'을 보면, 매일매일 일에 쫓기고 밤늦게까지 일에 시달리다가 겨우 잠자리에 누운 많은 사람에게는 침상은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러고도 잠들지 못하는 경우는 병이 있는 것이므로, 제대로 된 생각은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측상'은 사람에 따라서는 현재도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 그런 것 같을 정도로 장시간 이 환경에 안주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늦잠을 자서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급히 용무를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도 또한 명상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마지막 하나인 '안상'은 우리와는 좀 연이 없다. 이것을 대신할만한 인력거나 자동차도 최소한 도쿄 시내에서는 침착한 기분이 되는 데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자가용이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자가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단 하나 남은 문제가 전철의 '차상車上'이다.

전철 안에서는 평범한 의미의 한적함은 맛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신 극도의 혼잡함에서 오는 자포자기적 침착함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는 것도 아니다. 승객은 모두 돌멩이고 자신도 그중의 한 돌멩이가 되어 주변 돌멩이의 속박에 체념하는 부분에 절로 '삼상'의 환경과 서로 통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따라서 만원 전철 안은 의외로 명상에 적합하다. 책상 앞이나 실험실에서는 떠오르지 않는 좋은 아이디어가 전철 안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삼상'을 삼상이게끔 하는 요소에는 육체의 구속에서 오는 정신의 해방 외에도 한가지 요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당한 감각적 자극이다. 안상이나 측상의 경우에는 이것이 명백하지만 침상의 경우에는 이것이 명백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베개나 침대의 감촉 외에도 눕기 때문에 전신의 혈압분포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실로 이것에 걸맞은 듯하다. 문제의 '차상'의 경우에는 이 조건이 충분히 만족되어 있음은 명백하다. 다만 오히려 자극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병약하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차상'의 효력은 발생하기 힘들다. 이 자극에 적당히 마비된 사람이 가장 '차상'의 효율을 올릴 수 있을 듯하다.

 

2. 탁상연설

최근 여러 종류의 연회에서 이른바 디저트 코스에 들어간 후에 탁상연설을 하는 것이 유행하는 듯하다. 그건 연설을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모처럼 식욕을 만족시킨 후에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맛보며 기분 좋게 즐기려 할 때 연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별로 재미도 없고 때로는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한 연설을 참으며 듣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고 쳐도, 가끔 간사라든지 신세를 진 사람에게서지명이라면서 억지로 뭔가 말을 해 보라고 강요당한다. 그래도 완강히 버티면 나중에 연설하는 사람의 연설에서 공격당한다. 성가신 일이다.

그건 어쨌든 역시 서양 사람을 흉내 내서 일어난 일임은 틀림이 없다. 불행히도 서양 사교계에 얼굴을 비친 적도 없으며 나간다 한들 언어를 잘 모르니 서양의 탁상연설이 얼마나 악랄한지 바보 같은지는 알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일본의 탁상연설과 비교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맨 처음 그런 짓을 시작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것을 발명한 것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기분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뭔가 경구(警句) 같은 것을 뱉어내어 손님들을 감탄시키거나 쿡쿡 웃게 하는 것은 제법 그럴듯한 향락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런 걸 하기에는 이른바 디저트 코스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극히 적절한 시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즉 일종의 생리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접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요리라면 싫은 요리는 안 먹으면 되지만 이 연설만은 억지로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탁상연설이 너무 유행하면 무심코 탁상기분을 탁상 이외로 확장하는 듯한 관습을 조장해서, 탁상사상이나 탁상예술의 유행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식자(識者)의 일고(一考)를 기대해본다.

 

3. 라디오포비아

처음으로 라디오를 들은 것은 우에노의 S()이었던 것 같다. 네다섯 명이 식사를 한 후, 객실에서 느긋하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기이기이기이기이하고 네 번 이어서 묘한 소리가 났다. 마치 닭의 목이라도 조르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그리고는 같은 목소리로 뭔가 이어서 얘기를 하는 듯했는데, 뭘 말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어서 동행자에게 물어보니 ‘JOAK, 여기는 도쿄방송국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음악인지 뭔지가 시작해서 가-가 하는 소리와 윙윙 울리는 샤미센 소리에 우리들의 담화는 완전히 착란 되어 버렸다. 그 후에도 가끔 여러 장소에서 이 JOAK에게 습격당했다. 익숙해지니 과연 JOAK로 들린다. 제에 오오 에에 케에이로 묘한 억양을 붙여서, 그리고 억지로 서양인처럼 내는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 네 개의 알파벳의 조합 자체가 뭔가 불쾌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거나, 아니면 가장 처음 들었던 소리의 불쾌한 인상이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환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에 밝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음식점이나 가게 앞에 있는 확성기가 불완전하여서 이런 소리가 나니 잘 조절된 기계에서 광석검파기(鑛石檢波器)를 쓰고 귀에 대는 수화기를 쓰면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에 금속 그릇을 써 가면서까지 듣고 싶은 것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여름 휴가 중 어느 날 M 군과 둘이서 시모타카이도(下高井戸: 도쿄도 스기나미 구의 쵸명) Y()이라는 곳에 가서 한나절을 대단히 느긋하게 놀고는 저녁을 먹었다. 마침 우리 말고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믐 달밤은 더할 나위 없이 한적했다. 식사도 끝나서 슬슬 돌아가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계단 아래에서 JOAK가 시작됐다. 이런 교외까지 JOAK가 쫓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날 밤은 마침 트리오로 차이콥스키의 가을의 노래 등도 있었다. 주위가 조용해서인지, 아니면 기계가 좋은 건지, 내 머리가 어떻게 됐던 건지, 그 트리오만은 좀 재미있게 들렸기 때문에, 계단 위에 앉아서 끝까지 들었다. 이 정도라면 라디오도 그리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후 어느 휴일 오후, X심포니의 방송이 있었을 때, 긴자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봤다. 역시 무리였다. 모든 악기가 단지 일색의 잡음 덩어리가 되어, 바깥을 달리는 전철의 울림과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곡의 겉모습이라도 알기 위해서 참고 듣고 있으니,점원이 뭔가 좀 고쳐보려고 했는지 플러그를 멋대로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하는 통에 모처럼의 심포니는 무참히 끊겨 버렸다.

이런 이유로 자연히 라디오라는 것에 대해 일종의 공포를 느끼게 되어 보니, 저 집집들의 옥상에 널려있는 안테나에 대해서도 동정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없더라도 아마도 저것은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장대 같은 것에 흔들흔들 휘는 철사를 박아놓은 것은 묘하게뭔가를 바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런 식으로 안 해도 괜찮은 방법이 있다고도 한다.

라디오를 만지고 있다가 자기도 방송을 하고 싶어져서, 마침내 장난방송을 시작했다가 잡힌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현상의 본성에 관한 충분한 지식 없이, 그저 전기 테크닉의 겉 부분 만을 대충 아는 것만으로 완전히 라디오 통이 되어버린 이른바 팬이, 전파(電波) 전파(傳播) 현상을 조금도 신기하게 여기지도 않고 만사를 이해한 듯한 얼굴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한 물리학자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물리학자 자신도 방심하면 비슷한 물리학 팬이 되어버린다. 상대성이론 팬, 양자론 팬이 될 우려가 좀 있다. 이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4. 침입자

교외의 시골에 약간의 땅을 얻어서, 휴일마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머리를 식히기 위한 집을 지었다. 어느 땅에는 꽃이라도 심어서 화원을 만들어 보려는 아름다운 꿈도 꿨지만, 그것은 그냥 꿈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겨우 꽃의 싹이 트게 되자, 아마 마을의 아이들일 텐데, 집 지키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뜯고 파버린다. 알뿌리 종류는 뜯기도 쉽겠지만 작은 새싹마저도 정성껏 뽑아서 근처에 버리고 있다. 세세하게 밀집되어 난 묘상(苗床)을 짚신인지 뭔지로 짓밟기도 한다. 완전히 실패하고 나서 다음 해에는 특별하게 화단을 만드는 대신에 곳곳마다 잡초 사이의 눈치채기 힘든 곳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기도 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누군지도 모를 침입자는 놀랍도록 예민한 감각으로,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찾아내는지 거의 남김없이 뽑아내 버렸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나 채송화가 아직 작을 때, 씨를 뿌린 당사자라도 찾아내려면 고생을 해야 할 정도로 구석진 곳에 숨어있더라도 어느샌가 뽑혀 있는 것에 놀랐다. 이만큼 섬세한 일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아이 같다. 어느 날 혼자서 갔을 때, 정원 쪽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려서 유리창 너머로 봤더니 13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네다섯 명이 대나무 막대기로 잡초 안을 찌르고 있었다. 내가 있는 것을 눈치채더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서는 별로 놀란 것 같지도 곤란해 하는 것 같지도 않은 듯한 모습으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침입자들이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두는 몇 종류인가의 화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코스모스와 개양귀비, 그리고 앵초다. 접시꽃이나 나팔꽃 등이 아직 새싹일 때라도 발견되어 뽑혀버리는데 이 세 종류만은 어째서인지 약탈을 면하고 기세 좋게 증식한다. 2, 3년간 완전히 주변을 덮어서, 이제는 도저히 아이 몇 명이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 꽃들이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흔해서인가 하고 생각도 해 봤지만, 사실은 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개양귀비는 이 근처의 민가의 뜰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일초가 오히려 정성스레 뽑혀나갔다. 또 코스모스는 흔하지만 뽑혀나가지 않는 쪽이었다.

혹은 이 세 식물의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침입자들이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도 너무 끼워 맞추는 식의 설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꽃이 여러 가지 나비나 벌레를 끌어들이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마도 아직 인간이 잘 모르는 신비로운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와 같이 여러 가지 화초가 아이들의 약탈취미를 자극하는 효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아직 간단한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법칙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곤충의 연구자가 나비나 개미를 연구하듯이, 이 작은 약탈자들의 습성을 연구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면 필시 재미있고 또 유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여유도 정열도 없다. 다만 1, 2년 더 지나서, 우리들도쿄 사람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반감이 한참 감소했을 때에 다시 한 번꽃밭의 꿈을 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5. 풀베기

저택 안에 풀 한 포기도 없는 자각을 향수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고용해서까지 뒤뜰의 구석구석에서 깨끗하게 풀을 뽑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기분이 적어도 어릴 적에는 몰랐다. 왜 풀이 자라서는 안되나 하고 아무래도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땅에서 나는 식물 중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처럼 자란 것이 깨끗하게 뽑혀 나가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옛 성터나 다른 황무지에 기세 좋게 자란 잡초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곳에 드러누워 새의 노래, 벌이 윙윙거리는 것을 듣는 것은 유쾌했다. 유화의 풍경화 등에서도, 부서진 울타리, 과일나무의 앞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듯한 제재(題材)는 지금도 가장 마음을 끌어당긴다.

도쿄에 집을 가지고 나서의 일이다. 어느 날 순사가 찾아와서는, 앞 담장에 풀이 너무 나 있으니 뽑도록 주의하고 갔다. 보아하니 과연 검게 썩은듯한 담벼락의 뿌리 부분에 여러 가지 풀이 새파랗게 무성하고, 개중에는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것도 있었다. 딱히 더럽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담장보다도 그 앞의 수채보다도 이 풀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경찰관이 하는 말이니 그 말대로 풀을 뽑아버렸다.

남들처럼 화초의 씨를 스스로 뿌려보고, 비로소 잡초의 안 좋은 부분을 좀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두면 모처럼 오래 살려보려고 한 화초가 모두 지고 마니까, 이렇게 되면 안타깝지만 잡초 쪽을 뽑을 수밖에 없다. 잡초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교외에 집을 구했다. 초봄부터 여러 가지 풀이 난다. 그중에는 꽃이 피면 꽤 아름다운 것도 있다. 하지만 또 멋대로 불어나 버려서 걷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마침내 집 안까지도 침입할 것 같은 기세를 보인다. 이렇게 되니 과연 잡초의 위협이라는 것을 느껴서, 마침내 풀베기를 할 결심을 했다. 풀을 베는 낫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낫 쓰는 법, 낫 가는 법도 농부의 전수를 받아서 마침내 달라붙었다.

베기 시작해 보니 몹시 힘들었다. 제법 벤 것 같아도 일어나서 보면 손바닥만큼밖에 진행되지 않아서 실망했다. 하지만 하는 중에 점점 풀베기 자체에 흥미가 생겨서 결과를 재촉할 기분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잘 드는 낫으로 베면 상쾌함을 느낀다. 또 풀뿌리를 팍팍 베는 것도 통쾌하다. 가려운 곳을 긁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러 가지 풀뿌리 뻗는 법에 각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것들의 목적론적 의의를 생각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같은 면적을 계절에 따라 다른 잡초가 교대로 점유하는 순서도 재미있고, 해에 따라 가장 많이 번식한 풀의 종류가 달라지거나, 그것이 인간의 간섭 때문에 영향받는 모습이나, 좀 더 깊이 연구해 보면 일종의잡초학이 성립될 것 같다. 그것을 여기에 쓰면 끝도 없으니 생략하겠다. 그저 한가지 염두에 둘 문제만을 간단히 써 둔다.

잡초 중에는 우리가 재배하는 오곡이나 야채나 관상식물과 아주 닮은 것이 매우 많다. 혹시 이러한 잡초를 특히 아끼고 배양하고 교육해 가면, 몇 대 후에는 오히려 현재의 유용한 식물들보다 유용한 것이 생겨날 가능성은 없을까?

오랜 기간 인간이 눈엣가시로 보고 학대받으면서도 강인한 저항력으로 생존해온 고양이풀이나 왕바랭이등을 갑자기 온실 안의 옥토로 옮기고 온갖 유효한 비료를 준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때에 따라서는 비료 식중독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가난할 때는 딱딱했던 것이 부자가 되어 갑자기 부드러워지듯이 어쨌든 부드러워질 것 같다. 그 대신 그 풀들의 열매가 점점 발육, 진화하여 쌀이나 보리보다도 좋거나 혹은 적어도 동등한 곡식이 되지는 않을까.

혹시 배양하는 법에 따라서 강인한 저항력을 보존하고, 또 열매는 충실하게 될 수도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을까.

누군가, 속는 기분으로 이 실험에 착수해 볼 사람은 없을 것인가.

 

6. 지푸라기가 솜이 된다는 이야기

지푸라기에 어떤 약품을 가해서 삶기만 하면 솜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방법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며, 몇몇 자본가들에게서 돈을 모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사기라고 하여 검거되어, 경시청의 관계자들 앞에서실험을 해 보이게 되었다. 반나절을 삶아서 펄프 같은 것이 생겼다. 다음날이 되면 솜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지나도 되지 않아서 사기라고 결정이 났다.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났다는 것이다. 신문기사니까 실제 사건의 진상은 잘 모르겠다. 단지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있는 일이다. 어떻게 신비적인 방법으로 괜찮게 돈을 벌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서 그것을 찾아다니는 자본가 앞에, 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출현하는 것이다. 악마라도 불러낼 것 같지 않은 사람 앞에는 그렇게 버릇없게 나타나지 않는다.

속이는 쪽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속는 쪽도 이 현상의 첫 번째 원인으로서의 책임은 있다. 혹시 현대과학을 이해하고 있는 오오오카 에치젠노 카미(大岡越前守:오오오카 타다스케(大岡忠相), 에도시대의 인물로 공정한 재판관으로 알려짐)가 이 사건을 재판한다면, 속은 쪽도 꾸짖음 정도는 들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다만 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경시청에서 실험을 시작해서, 계속해서 실험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설사 그때까지는 펄프와 솜을 바꿔치기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더라도, 그 때는, 하고 있는 중에 혹시나 정말 펄프가 솜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기분을 스스로 고무시켜서 비커 속을 휘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다.

하고 있는 중에 입회한 관계자들의 눈을 속여서 바꿔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상식적인 해석으로,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을지 어떨 지가 문제인 것이다.

거짓말도 계속 하다 보면 종국에는 스스로도 그것을믿게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여러 가지기적’, 예를 들면 천리안, 투시 등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조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정말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심해지면 자기 혼자서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수년간 계속해서지그스와 매기’(미국의 신문연재 4컷 만화인 ‘Bring Up Father’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 만화 자체의 별명이기도 했음.)를 그리고 있는 화가는, 결국에는 살아 숨 쉬는 지그스와 매기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게 되겠지만, 그것과 닮은 머릿속의 미혹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인가.

비커의 펄프가 솜으로 바뀔 때까지 있는 도중의 중요한 경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 별거 아닌 것에 눈을 감아주면, 확실히 지푸라기가 솜이 된 것은 틀림없다. 고구마가 장어가 되기도 하는사실도 이와 같다. 점점 이사실에 익숙해지면 결국에는 그 이른바별거 아닌경로를 생략해도 같은 결과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냉정한 상태에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해도, 절박한 사태에 놓여서 머리가 놈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는 의외로 있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보기에 따라서는 멍청한 장난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범죄심리학자의 연구 자료라도 된다면, 과학적 인식론의 선생이 인과율의 강의를 할 때의 재료도 될 수 있다.

인과를 잇는 뜨개질의 고리는 딱 하나만 빠져도 연이 끊어진다. 이 명백한 진실을 우리들은 곧잘 잊거나 속이거나 하는 일이 있다. 우리의 잘못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온다. 철도나 비행기의 고장도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것이 많다. 풍기문란, 풍속퇴폐 같은 현상도 대부분은 이것과 비슷한 일이 근본원인이다. 무심코 이 서툰 마술사를 비웃을 수는 없다.

(타이쇼 14 11, 추오코론(中央公論))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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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히고 만 소세키 전기 자료(埋もれた漱石伝記資料)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쿠마모토 고등학교(熊本高等学校)에서 나츠메(夏目) 선생님의 동료인 S라는 O물학 선생님이 있었다. 이학사(理學士)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학식이 있어서, 그 전문 방면에서는 어쨌든 일본 교육의 권위자라는 평판이 이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기행(奇行)도 전해졌다. 일본에 딱 둘인가 셋밖에 없는 표본을 여럿 가지고 있다는 자랑을 듣지 못한 학생이 없었다고도 한다. 복장 같은 것에도 무관심해서, 구깃구깃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꼴 등은 좀처럼 고등학교의 선생님처럼은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거야 어쨌든 간에, 그 당시 나츠메 선생님과 뭐든간에 잡담을 할 때 이 S 선생님 얘기를 하면 선생님은 “아, S말인가”하고 입을 크게 사각으로 벌려 혀 끝으로 아랫입술을 핥으시고는 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나서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큭큭 꽤나 웃기다는 듯이 선생님 특유의 웃음법으로 웃었다. 그럴 때에 선생님은 꼭 얼굴을 조금 붉히고는 왠지모르게 숫된 처녀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 선생님의 웃음의 의미를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인(畸人)으로서의 S 선생님의 기행을 떠올리시고 웃으셨을 것이라는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긴 세월이 흘렀다. 나츠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선생님에 관한 제가(諸家)의 추억담이나 뭔가가 여러 잡지를 장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날 뜻밖에도 옛날의 S 선생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3전우표를 두장인가 세장 붙인 대단히 무겁고 두꺼운 편지를 읽어보니, 거기에는 나츠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실로 자세하고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그 편지에 의하면, S 선생님은 어릴 적에 나츠메 선생님 댁 근처에서 살고있던 이른바 장난꾸러기동지였다는 듯, 그 당시의 여러가지 장난의 디테일이 실로 현실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일찍이 한번도 나츠메 선생님으로부터 그 어린시절의 S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이 편지의 내용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 처럼 예상외로 여겨졌다. 그리고 왠지 이것이 진짜일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S 선생님이 의식해서 거짓말을 일부러 쓰실 리도 없으므로, 상세한 부분에서는 기억의 오류나 착각은 있을지언정 대체로 사실임은 틀림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은 나츠메 선생님에 관한 하나의 자료로서 보존해 두면 후일 꼭 도움이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시의 대학 물리학부 물리교실의 내 방의 책상 서랍속에 다른 중요한 편지와 함께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위궤양에 걸려 휴직하고 틀어박혀버렸기 때문에, 교실의 내 방은 그대로 완전히 먼지가 쌓인 채로 긴 시간동안 방치되었다. 거기에 타이쇼 12년의 대지진이 덮쳐와서 교실의 건물은 대파되고, 붕괴는 면했지만 향후의 지진에서는 위험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내 병이 다 나아서 출근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원래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다른 건물의 목조 단층건물인 다른 교실의 한 방을 빌려서 임시로 살게 되었다. 그 때에도 아직 원래 교실의 방은 대부분 옛날 그대로 창고같은 형태로 보존되어 곰팡이와 먼지와 거미집의 지배에 맡겨두었으므로 이 S 선생님의 편지도 줄곧 그대로 서랍 안에서 긴 잠을 자고 있게 된 것이었다.

그 후에 내 생활에는 여러가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관동대지진 덕에 대학에 지진연구소가 설립됨과 동시에 나는 학부와의 연을 끊고 연구소원으로 전직하여, 한동안은 공학부가 있는 교실의 가건물의 임시사무소에 출입하였고, 연구소의 본 건물이 오나성됨과 동시에 그 쪽으로 이사했다. 이리하여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는 사이에 어찌 된 일인지 원래 방 책상 서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요 근래에 ‘B교수의 추억’을 쓸 때에 문득 그 B교수의 편지를 떠올림과 동시에 그 서랍과 S 선생님의 편지를 떠올리게 된 것이지만, 지금은 이미 옛 교실 건물은 완전히 철거되어 버렸고, 옛 책상 같은 것이 어찌 되었는지 행방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서랍 속의 옛 편지같은 것을 찾아낼 실마리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실로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S 선생님의 편지 내용을 떠올려보려고 아무리 애를 서 봐도, 이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닌데 어린 나츠메 선생님이 어딘가의 담 위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끼얹어 골려주고는 했다고 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다. 즉 구체적인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그 편지의 전체적인 인상은 선생님이 처치곤란한 악동 중의 악동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이야 어쨌든 어린 시절의 나츠메 선생님이 당시의 S 선생님의 기억 속에서는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더 옛날에 쿠마모토 시절의 나츠메 선생님이 ‘아, S말인가’하고 말하면서 이상한 웃음을 보이신 것도 떠올리게 되어 거기에서 또 여러가지 재미있는 암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S 선생님이 살아계시기만 하다면 다시 한번 잘 여쭈어봐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이미 어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혹시 S 선생님의 유족 내지는 친밀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고 다닌다면 그 단편이라도 어쩌면 회수할 가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의 유족이나 혹은 제자들이 생각도 못한 방면에 묻혀있는 자료가 의외로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지금 수집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예로서 또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선생님과 잡담중에 ‘아무래도 자네의 고향 사람들은 핑계를 대기만 해서 까다로워 어쩔 수가 없다네’하고 반쯤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무래도 옛날 기숙사에서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 미조부치 신마(溝淵進馬), 오오하라 테마(大原貞馬)라는 세 명의 토사(土佐) 사람과 같은 방이셨던가 옆방이셨던가 계셨던 적이 있어서, 그 때 이 세명이 터무니 없이 큰 소리로 하룻밤 내내 토론만 해서 시끄러워서 곤란하셨다는 것이다.

이 세 분들에게 여쭤보면 혹시 뭔가 학생시절의 선생님의 일면을 그릴 수 있을 만한 일화라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마구치씨는 돌아가시고, 오오하라씨는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미조부치씨는 내가 중학교 시절에 ‘라셀라스[각주:1]’를 가르치신 선생님이시며, 그 후 줄곧 고등학교장으로 일하셨으나 이 분도 최근 돌아가셨다.

또 한가지, 내가 학생 시절에 신세를 진 긴자의 어느 상점의 양자가 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 사람의 본가는 우시고메(牛込[각주:2])의 키쿠이쵸(喜久井町[각주:3])에 있는데, 그 바로 옆 뒷집인가에 나츠메라는 집이 있었고, 어릴 적 일이라 그 나츠메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없지만 그 집의 모습 같은 것은 꿈처럼 기억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생각지 못한 인연으로 선생님의 생애의 일부와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이 아직 여러 곳에 얼마든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같이 선생님과 친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주의하지 않으면 어쨌든 우리들만이 접촉한 선생님의 세계의 일부분을 선생님의 전체 위에 덮어버리고는 우리들에게 좋도록 선생님을 멋대로 만들어버릴 우려가 있다. 의식적으로는 사리사욕 없는 진정(眞情)에서 그리 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선생님께 있어서는 기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선생님의 아군이 아니거나 적이었던 사람들의 방면에서도 숨겨진 전기자료를 얻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의 증언이 아군의 그것보다도 오히려 당사자의 미점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도 가끔은 있는 일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응용심리학 쪽에서 잘 연구되는 ‘증언의 심리’, ‘추억의 오류’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기초로 하여 그러한 자료의 정리를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리는 100년 후에도 할 수 있다. 자료는 하루 늦어지면 영원히 잊혀진다. 나는 이 기회에 나츠메 선생님에 과한 온갖 숨겨진 자료가 수집되어 기록되는 것을 갈망하여 마지 않을 따름이다.


(쇼와 10년 11월 『시소(思想)』)

  1. 새뮤얼 존슨의 소설 [본문으로]
  2. 신주쿠구의 지역명 중 하나 [본문으로]
  3. 도쿄도 신주쿠구에 위치한 쵸의 이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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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案内者)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딱히 어디로 가겠다고 정해진 곳이 없다. 그럴 때는 여행안내기 종류를 펼쳐 보면 혹은 해안, 혹은 산중의 호수, 혹은 온천같은 갈만한 곳이 이리저리 너무나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일단, 가령 온천이라면 온천으로 정해서, 온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각 온천의 수질이나 효능, 주위의 명승고적등을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져서 이번에는 온천 전문 안내서를 찾아내서 읽어본다, 그러면 우선 막연히 대략적인 짐작이 오게 되는데, 아무리 상세한 안내서를 열심히 읽어본들 결국 진짜 어떤 곳인지는 스스로 가보지 않으면 알 리가 없다. 혹시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집에서 책만 읽고 있으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좋다. 다음으로 만약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도, 사람에 따라서 말하는 게 다들 달라서, 누구의 권위를 믿는 것이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실컷 알아보고 나서는, 결국 대충 주사위라도 던지는 듯한 우연한 계기로 목적지를 어떻게든 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말하자면 아카데믹한 정통파라고 불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이렇게 하면 큰 실망이나 터무니없는 오산을 낳을 걱정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주요한 명승고적을 깜빡 빠트릴 염려도 없다.
  하지만 이것과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여행이 하고싶어지는 동시에 일단 주사위를 던져서 갈 장소를 정해버린다. 혹은 우연히 읽고 있던 시편이나 소설 속에서 감흥에 젖은 장소로 정해버린다. 그리고 안내기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발과 눈으로 자유롭게 마음가는대로 돌아다녀본다. 이 방법은 어쨌든 여러가지 실책이나 곤란을 일으키기 쉽다. 또 이른바 명승고적등의 바로 앞을 지나가면서도 모르고 놓쳐버리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위험이 많은 비정통파다. 이것은 함부로 일반인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하지만 안전한 전자의 방식에도 단점은 있다. 읽은 안내서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서 둥지를 틀고, 그것이 자신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밖으로 나간 자기 자신은 말하자면 고리짝 안에 밀어넣어진 듯한 형태가 되어, 결국 안내기나 말한 사람이 온천에 들어가거나 관광을 하거나 향락을 하거나 한 것과 같은 것이 될 염려가 있다. 물론 이것은 안내서나 가르쳐 준 사람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 사람은 물론 그걸로 좋다.
  하지만 그래서는 일부러 길을 나선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불완전하기는 해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밟아서 보는 경치, 밟은 대지와 자신이 직접 딱 통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을 맛보지 않으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쨌든 안내서나 남의 말을 무시하거나, 혹은 일부러 피하려 한다. 편리와 언전을 사기 위해 자기를 파는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별난 사람은 어떤가 하면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놓치기 십상인 대신 어떤 안내기에도 써져있지 않은 좋은 것을 찾아낼 기회가 있다.
  나는 옛날에 두세명 일행으로 영국의 어느 별궁을 구경갔을 적에, 그 중 한 명이 계속 한 손에 베데커[각주:1]를 펼쳐서 손에서 떼지 않고, 한 방 한 방 이것과 맞춰보면서 상세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 베데커는 꼼꼼하게 한번 읽어보았는지 이곳저곳에 색연필로 세심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 방에 갔을 때에는 거기에 있는 창문 앞으로 일행을 불러모아, 베데커 속의 한 줄을 가리키면서 “이 창에서 보면 경치가 좋다고 써져있다네”라고 말했다. 일동은 그런가 하고 이 놓쳐서는 안될 경치를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학자다운 철저한 아카데믹한 방식에 감탄한 것과 동시에, 왠지 거기에서 설명하기 힘든 부족함 혹은 일종의 허무함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왠지 이래서는 자신이 베데커의 편집자가 되어 그 교정이라도 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 창문이 이상한 집착의 그물을 내 머리 위에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에 관련된 역사나 전고(典故)등은 베데커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지만, 창문에서 보이는 전경의 좋고 나쁨 정도는 자기 눈으로 찾아내는 선택을 허락받고 싶은 듯 한 기분도 들었다.
  베데커라는 것이 없었을 때의 부자유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하지만 가끔씩은 최신간의 베데커에 속는 일도 아주 없지는 않다. 어느 도시의 대학을 찾아갔더니 거기가 어떤 관공서가 되어 있거나, 이름높은 음식점을 찾아냈더니 임대 안내가 붙어있거나 하는 일도 있다.
  엉터리 안내기라도 되면 그런 실패는 더욱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완전한 안내기를 바라는 것은 원래부터 무리한 일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 곤란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안내기가 없어도 곤란하지만, 있어도 곤란한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교토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쿠로다니(黒谷[각주:2]나 킨카쿠지(金閣寺[각주:3]같은 곳에 가면, 안내하는 어린 스님이 건물의 각 부분의 집물(什物) 들의 내력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그 일종의 특별한 리듬을 붙인 말투도 시골 촌놈인 내게는 신기했지만, 그보다도 그 설명이 매우 기계적이고 말하고 있는 사항에 대한 정서의 반응이 전혀 없어서, 설명자가 단순히 정해진 소리를 내는 기계인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 무척 드물게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에 본 보물이나 맹장지의 그림등은 이미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그 때의 안내자의 일종의 말투와 공허한 표정만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때 한가지 곤란했던 것은, 내가 예를 들면 어떤 기물(器物)이나 그림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느긋하게 보고싶어도, 안내자는 모든 물품에 평등한 시간을 배당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멍하니 있으면 그 사이에 성큼성큼 먼저 가 버려서, 그 사이에 나는 많은 볼만한 것을 놓쳐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건 상관 없다고 생각해도 그곳을 보고 나서 나중에 동행자들 사이에서 딱 내가 놓친 훌륭한 것에 대한 화제가 나왔을 때에, 왠지 조금 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피하기 어려웠다.
  학교 교육이나 이른바 참고서에 의해 얻는 지식은, 여러가지 면에서 여행안내기나 각 장소의 안내자에게서 얻는 지식과 닮은 면이 있다.
  혹시 학교같은 감사한 시설이 없고, 그리고 오직 완전한 독학으로 현대문화가 품고 있는 광대한 지식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 곤란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헤매고 목적지를 헤매, 쓸모없는 노력을 낭비할 뿐, 결국 목적지를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해가 저물어 버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것을 이제와서 다시금 여기서 고찰해 논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학교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 딱 안내자에게 이끌려 걷는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좀 더 파고들어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안내기가 상세하고 치밀하며 정확하면 할수록, 이것에 대한 신뢰감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우리는 안심하고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일 없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없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무심코 그 안내기에 기록되지 않은 옆길에 숨겨진 귀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기회가 매우 많은 것도 틀림없다. 그러한 손실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여러 사람이 고른 여러 안내기를 널리 참조하는 것이 좋다. 다만 곤란한 것은, 이미 있는 안내기의 내용을 그대로 적당히 이어 붙여서 만든 것 같은 안내기가 많다는 데에 있다. 이런것에 비하면, 오히려 오류 투성의 안내기라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저자의 체험을 재료로 한 것일 경우는, 의외로 어떤 참고가 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완전하더라도 결국 안내기이다. 아무리 읽고 암송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여행의 대신이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안내기가 계통적으로 완비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읽는 사람의 감흥을 끄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로, 오히려 자주 양립할 수 없는 듯 한 경향이 있다. 이른바 안내기의 무미건조함에 비해서 훌륭한 문학자의 자유로운 기행문 혹은 예리한 과학자의 정리되지 않은 관찰기는, 그것이 아무리 좁은 범위의 소재에 한정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약동하는 산 체험에서 나타나는 것은 직접 독자의 가슴에 스며들고, 그리고 설사 그것이 틀렸을 경우조차도 쓴 사람이 진정 바라는 혼(魂)만은 강렬하게 독자에게 호소하여, 독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비슷한 것에 불을 당긴다. 그리고 적혀 있는 내용과는 관계 없이 거기에 다뤄진 토지 그 자체에 대한 흥미와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전문 학술 참고서에서도 이것과 닮은 경우가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문헌을 널리 조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엔치클로페디나 핸드북 같은 종류의 것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지만, 좀 더 파고들어서 정말로는 어떤지 알고 싶어진다면 이미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개개의 오리지널 논문이나 저서를 봐야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참조용 서적의 대부분을 애써 처음부터 끝까지 만연히 통독하고 암송했다 한 들,, 이미 어떤 ‘주제’를 가지지 않은 학생에게 있어서는 극히 효과가 낮아서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기가 쉽다. 또 이런 것에서 주제를 골라내는 것도, 될 것 같으면서도 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에 비해 각각의 연구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기술한 논문이나 저서에는, 설사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 어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거기에서 얻는 암시는 읽는 사람의 자발적인 활동을 유발하는 신비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자 자산의 연구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자신의 전문 외의 주제에 관한 좋은 논문 등을 읽어 보는 것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안내기만 의지해서는 언제까지고 자기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내기를 완전히 무시하면,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웅덩이나 화구(火口)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에 관계 없이 교과서와 노트만을 의지하는 학생이 많은 한편에는 또 현대 기성의 과학을 무시했기 때문에 모처럼 낸 좋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결국 실패하는 발명가나 발견자도 가끔 나온다.

  명승고적의 안내자가 가장 곤란한 것은 뭔가 좀 쓸데없는 것을 보려고 하면 No time, Sir! 같은 말을 하며 끌고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제한이 있다고 보면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스스로 구경하는데는, 다시 한번 혼자서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고, 다만 이 때 앞의 안내자가 ‘방해’만 안 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안내자나 선도자 중에는, 자기의 권위에 대한 신념에서 산출된 친절함으로 각각의 여행자의 자유로운 관조를 억제하는 자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자가 특별한 흥미를 가진 대상 앞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을, 그런 건 보잘것없으니 볼 것이 못된다고 보살피는 경우도 있다. ‘볼 만 하다’와 ‘보잘것없다’가 명백히 ‘상대적’인 경우에는 이건 난처하다. 안내자가 선의로 그러는 만큼 더욱 난처하다. 이런 종류의 안내자는 그 전문 영역이 좁으면 좁을수록 많아 보이지만, 이것은 무리도 아니다. 자신의 ‘땅’이외의 것은 모두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안내자 입장에서 말하면, 그 이끌고 있는 피안내자에게 너무 신뢰받아도 곤란한 상황이 제법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든 충실하게 따라오는 건 좋지만, 설마했더니 화장실까지도 꾸물꾸물 따라와서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 틀림 없다.
  뉴턴의 광학(光學)이 파동설의 보급을 방해했다던가, 라플라스의 권위가 열의 기계론[각주:4]의 발달에 장애가 되었다던가 하는 것은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짊어져서는 이러한 대가(大家)들은 아마 저승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책임의 절반 이상은 그들의 권위를 맹종한 후일의 학도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요즘 상대성이론의 발견에 즈음해서 또 다시 뉴턴이 참고인으로 끌려나와서, 그의 절대론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뉴턴을 죄인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죄인은 오히려 다른 곳에 많이 있다. 말하자면 뉴턴은 진리의 전당의 첫 번째 문만을 열고 나서 죽어버렸다. 그의 피안내자는 제1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에 제2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은 드물었다. 마침내, 최근에 아인슈타인이 갑작스레 제2의 문을 걷어차 열고 그곳에 영롱히 빛나는 기하학적 우주의 궁전을 발견했다. 하지만 제1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제2의 문에 도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 다음의 제3의 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는 도저히 예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지의 문에 부딪쳐서 그것을 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시 안내자 등의 신세를 지지 않은 떠돌이 시골뜨기여야 한다. 제3의 문은 어떤 귄위있는 안내기에도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무심코 안내자 같은것이 되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쿠로다니나 금각사를 안내하던 어린 스님도, 처음 그 건축물이나 고기물(古器物)을 접했을 때는 아마 여러가지 깊은 감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모든 흥미가 증발해버려서, 안내문을 모조리 암기할 수 있게 됬을 때에는 물품 자체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없어진다. 남는 것은 단지 ‘말’ 뿐이다. 눈은 그 말에 덮여서 ‘물건’을 보지않는다. 그리하여 탄바(丹波[각주:5])의 산속에서 나온, 관람자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영상을 이제는 다시 인식할 때는 없어져 버린다. 이것은 실로 그 사람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이러한 사람은 단지 자신이 담당한 건축물이나 미술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종의 물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절에서 카노 에이토쿠(狩野永徳[각주:6])가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에 ‘카노 에이토쿠가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즉시 이 사람의 눈을 덮고 가려서, 눈 앞의 그림 대신에 자기 머릿속에 들러붙어 곰팡이가 낀 자기 절의 그림의 영상만이 비춰진다. 설사 그 머릿속의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래서는 곤란하다.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된다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
  직업적 안내자가 이러한 불행한 경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매일 설명하는 것을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고 이틀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이라도 뭐든 지금까지 찾아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런 노력은 괴롭다. 그것을 하지 않아도 오늘 당장은 곤란하지 않다. 거기에 안내자가 빠지기 쉬운 ‘동굴’이 있다.
  뉘른베르크의 고성(古城)에서, 거기에 수집되어 있던 옛날의 대단한 형구(刑具) 여럿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름높은 ‘아이제르네 융프라우(Eiserne Jungfrau[각주:7])’의 앞에서 설명을 하던 안내자가 마침 젊은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병약한 듯 하고 안색도 나빠서, 왠지 모르게 어두운 용모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 들 중 학생인듯한 남자가 ‘실례지만 당신은 매일 몇번이고 그런 무서운 내용을 입에 담고 있는데, 그 때문에 신경을 상하는 일은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뭐라고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소리를 내어 숨을 들이쉬고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꽤나 잔혹한 질문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리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이 여자도 매일 자신이 반복하는 말의 내용에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거리끼는 것 없는 남자의 질문에 비로소 잊고 있던 내용의 무서움과 그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직업의 불쾌함을 떠올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것과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가르칠 때 자주 자기가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고 있는 상투적인 것의 안쪽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어떤 것을 지적당해서, 직업과학자의 약점을 아슬아슬하게 관통당하는 기분이 드는 일이 없지도 않다.
  안내자가 될 사람은 상당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폴리에 관광을 간 김에, 그리 멀지 않은 포추올리(Pozzuoli)의 옛 화구와 그 안에 있는 분기공(噴氣孔)을 보러 갔다. 전차에서 내려서 베데커를 의지해서 찾아가려고 하니, 곧바로 한 명의 안내자가 쫓아와서는 자꾸만 권한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것 같은, 그리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다. 전혀 상대를 할 생각이 없는데 어디까지든 끈질기게 쫓아와서, 그리고 헐떡이면서 끈덕지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에 화를 낼만큼의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그 시끄럼움을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서 그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나빴다. 처음에 정했던 안내료 외에도 여러가지 구실로 조금씩 돈을 뜯어갔고, 안내자를 고용한 만큼의 효능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마사인지 뭔지의 뭉치를 밀랍으로 굳힌 횃불을 강매당해 가져갔는데, 분기공의 근처에 오니, 안내자는 그것에 불을 붙여 구멍 위에서 휘둘렀다. 그리고 ‘증기의 분출이 늘어났으니 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어떤 변화도 없는듯이 보였다. 그러자 그는 거기와는 꽤 떨어진 뒤쪽의 화구벽의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증기를 가리키며 ‘저렇다’고 했다. 하지만 횃불을 휘두르기 전에는 그것이 나오지 않았는지, 또 얼마나 나왔는지, 나는 전혀 몰랐으니까, 결국 이 횃불 실험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 ‘실험’이 아마 매일 여기서 벌어지고 구경꾼들 중 몇할인가는 그것에 납득할 것이라고 치면, 그 일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지식의 안내자라고 불리며, 권위자라고 불리는 사람중에는 역시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피안내자가 납득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의 이름을 빌어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의 눈을 속이려는 비과학적 실험을 행한 자가 서양에는 옛날부터 제법 있었다. 그러한 경우에는, 거의 정해진듯이, 평생 과학에 대해서 반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군중, 특히 신문등에 의해 기성과학의 권위가 의심받고, 그러한 ‘발견’에 냉담한 학자가 공격당한다. 하지만 과학자로서는 내용의 가능불가능이나 개연성의 다소를 기성과학의 계통으로 비추어서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으므로, 혹시 만에 하나 그 판단이 빗나갔다면 그것은 실로 새로운 발견이며 과학은 그 덕분에 현저히 진보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판단이 틀린 것은 반드시 그 과학자의 과학자로서의 치욕이 되지는 않는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과학이 한걸음 나아갔다는 것이 된다. 그런 식으로 진보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예상이 빗나가는 쪽이 과학자로서 타당한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별개로, 순수하고 성실한 과학자라도 역시 인간인 이상 천려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포추올리의 횃불과 비슷한 실험이나 이론을 남들에게 제시하지 않을거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람[각주:8]이 발전기를 만들었을 때 당시의 대가 아무개는 한편의 논문을 써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의 기계에서는 전류가 걱정없이 유출되었다. 그 후에 이 기계에서 전류가 발생한다는 쪽의 증명이 점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대가의 논문을 잘 읽어보면 무작정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헬름홀츠가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현재 비행기가 만들어졌지 않았는가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엉뚱한 웅변이다. 현재에도 장래에도 새 처럼 날개를 자기의 힘으로 움직여서, 단지 그것만으로 새처럼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안내자도 가끔 이것돠 닮은 오해에서 일어나는 비난을 맏을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안내자가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다’는 의미로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을 배로 건너고는 ‘이런 식으로 건널 수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은 아마 어느쪽도 나쁘던가 어느쪽도 나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다. 의사가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이다.
  하지만 온갖 오해를 예상해서 그것에 대비하는 것은 신이라도 되지 않으면 어렵다. 여기에도 안내자와 피안내자의 곤란이 있다.

  내가 신세를 진 포추올리의 안내자는 헤어질 때 또 여분의 술값을 보채면서 느긋하게 따라왔다. 그것을 참으며 상대를 안 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더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내뱉어서, 나도 ‘이탈리아인은 더욱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답하고는, 그대로 영원히 헤어졌다. 나도 좀 나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건 역시 지식의 안내자에겐 없다.
  생각해 보면 안내자가 되는 것도 피안내자가 되는것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곤란은 ‘안내자는 결국 안내자이다’는 자명한 도리를 잊기 쉽다는데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경치나 과학적 지식의 안내에서는 이러한 곤란이 있다. 더욱 다른 여러 정신적 방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인가. 이쪽에는 더욱 심한 곤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사안에 따라서는 오히려 간단해 질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신앙’이나 ‘애정’같은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 내가 말하고 있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게 되고 그것은 ‘스승’이 되고 ‘벗’이 된다. 스승이나 벗에게 이끌려 잘못되어 광야의 길을 헤매도 원한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타이쇼 11년 1월, 카이조(改造)


  1. 베데커가 발행한 여행안내서, 여행안내서의 대표격으로 쓰임. [본문으로]
  2.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의 별원(別院)중 한 곳 [본문으로]
  3. 로쿠온지(鹿苑寺). 교토에 위치한 절. 킨카쿠지는 통칭. [본문으로]
  4. 熱の機械論. 열역학? [본문으로]
  5. 지금의 교토 일부와 효고현 일부 [본문으로]
  6.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유명한 화가 [본문으로]
  7. 원문에는 鉄の処女에 アイゼルネユングフラウ라는 루비가 달려있음. 영어로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유명한 고문기구 [본문으로]
  8. 제노브 테오필 그람(Zénobe Théophile Gramme). 벨기에의 전기기술자, 공학자. 최초로 고전압직류발전기를 만들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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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수행기(ゴルフ随行記)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한참 전부터 M군이 골프를 하자고 권해왔는데, 다소의 유혹은 느꼈지만, 지금까지는 완강히 저항하며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한번 골프장에 같이 가서 견학만이라도 해 보라고 해서, 올해 6월 말의 어느 수요일 오전에 둘이서 코마고메(駒込[각주:1])에서 정액택시[각주:2]를 잡아서 아카바네(赤羽)[각주:3]의 링크로 나갔다. 마른장마로 대표되는 날씨로,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 요령부득하게 개어서 태양이 내리쬔다기보다도 오히려 공기 자체가 하얗게 빛나는 듯 한 날씨였다.

  진재(震災)전과 비교하여 오우지(王子[각주:4]) 아카바네 일대의 변모가 격심한 것에 놀랐다. 요즘의 도쿄 근교의 모습을 일신시킨 인자(因子)중에서도 가장 유효한 것이라면, 콘크리트 포장도로일 것이다. 도로에 흙이 얼굴을 보이고 있는 곳에는 근대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들 한다.

  아라카와 방수로(荒川放水路[각주:5])의 수량을 조절하는 근대과학적 갑문 위를 지나 둑을 몇 정(1정은 약 109m) 하류로 내려가서 오른쪽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왼쪽으로는 링크가 펼쳐져 있다.

  클럽 건물은 언젠가 슬쩍 본 적이 있는 아사카무라(朝霞村)의 건물 등과 비교하면 꽤나 검소한 목조 단층건물로, 어딘가 시골의 학교의 운동장에라도 있을법한 인테리어의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휴게실의 흙바닥의 벽면에 멤버의 명찰이 죽 늘어서 있다. 핸디캡의 수로 등급별로 나열되어 있다고 하는데, 역시 잘 하는 사람의 수가 적고,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니 신기하다. 칠판에 경기의 득점표 같은 것이 쓰여 있다. 1등부터 10등까지 상이 나온다. 그렇다면 즐거움이 많을 것 같다. 상품은 다음 일요일에 전달한다고 되어 있다.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싯적의 기쁨을 부활시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M부인이 도착하였으므로 슬슬 나간다.

  일대의 지면보다 한 단 높은 잔디 위에 작은 술잔의 밑을 뚫어 엎어놓은 것 같은 원추형의 받침을 놓고, 그 위에 그 하얗고 예쁜 볼을 올려놓고, 그것을 저 클럽의 머리로 후려치면 특유의 유쾌한 소리가 난다. 날아간 공이 이제 떨어지기 시작하나 했더니 오히려 치솟아간 다음 떨어지는 일이 있다. 부인의 공이 가끔 도중에서 오른쪽으로 커브를 그린다. 공이 빗나가서 둑의 경사면에 떨어지면 벌금이라고 한다.

  강변의 갈대 속에서 끊임없이 개개비가 울고 있다. 초원에는 왜소한 협죽도(夾竹桃)가 딱 한송이 새빨갛게 피어있다. 예쁘게 잘라놓은 잔디 속에 서서 정확히 사출되려하는 하얀 공을 응시하고 있으면 잔디 자체가 자신을 태우고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사병의 징조가 아닌 듯 하다. 어떤 비교의 척도도 없는 온통 녹색의 시계는 우리의 공간에 대한 감각 기관을 무능하게 하는 것 같다.

  도중부터 문과의 N군과 함께하게 되었다. 세명의 플레이가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각각 확실한 특징이 있어서 재미있다. 클럽과 공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으 음색까지 각각 다른듯한 느낌이 든다. 과학자인 M군은 인테그랄 이펙트를 노리는 착실한 전법을 취하고 있는 듯 하고, 프랑스문학의 N군은 에스프리와 엘랑의 황홀경을 바라고 드라이브 하고 있는 듯 하고, M부인의 공은 그 근대적 활달함과 명랑함이 있지만 역시 어딘지 여성다운 상냥함과 나긋나긋함을 지니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말버릇이 나쁜 N군이 M부인의 공을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자꾸 휘는데"라고 말했지만 곧바로 N군 자신의 공이 오른쪽으로 휘어 아라카와의 물속에 그 모습을 빠트렸다. 부인의 흉중도 스스로 평온을 얻은 것 같다.

  캐디가 종달새의 둥지를 발견했다. 초원의 한가운데에, 어떤 차폐물도 없이 무한한 하늘을 향해 개방된 둥지 안에는 귀여운 알이 다섯개, 그 달갈형의 큰 쪽의 정점을 위로 향하고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상단 쪽이 현저히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있다. 그 색이 짙어지면 곧 부화한다고 캐디가 말한다. 빨리 부화하지않으면 만일 누군가의 오른쪽으로 휜 공이 떨어져서, 이 귀여운 다섯 생명의 알은 동시에 으깨져버릴 것 같다. 둥지는 작은 소쿠리모양을 하고 있어서, 생각보다 정교한 세공이다. 이것이야말로 본능적 모성애가 낳은 천연의 예술일 것이다.

  아라카와가 갑자기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더니, 코스가 어느새 180도 회전해서 귀환길이 되었다.

  캐디가 세명, 한명은 스마트하고 한명은 명랑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둘 모두 목덜미의 피부가 구릿빛으로 멋지게 물들어있다. 다른 한 명은 왠지 기운이 없어보이고 목덜미도 그다지 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물어보니 아직 신참이라는 것 같다. 아직 신참조차도 되지 않은 내 얼굴이 그 날 어땠는지는 나는 모른다. 피곤하지는 않은지 세명이 여러번 물었다.

  이 캐디같은 환경에 놓인 소년은 예를 들면 옛날 혼고 아오키당(本郷青木堂[각주:6])의 어린 점원처럼 대개 묘하게 약삭빨라지는 법이지만, 여기의 아이들은 그런 느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링크의 손님이 대체로 수수하고 성실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많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 캐디 중 한명이 링크의 연못에서 붕어를 한마리 잡아서, 볼을 씻는 사각 수통 안에 넣어놓고, 한바퀴 돌고 온 후에 꺼내러 왔더니 이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느긋한 세상에서조차도, 자기 손으로 확실히 잡고있지 않는 한 사유물의 소유권은 확정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 자기 실력 외에 믿을만 한 재산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골프도 계속 보고 있으니 제법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듯 하다. 적어도, 단순히 봉의 머리로 공을 때려서 날리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 겨우 한시간 반동안의 견학으로 잘 안 듯한 느낌이 든다. 이날 M군,N군의 해설을 들은 것으로만 생각해봐도, 모든 예도(藝道)에 공통되는 요령이 골프의 기술에도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의 자유, 풍류인 듯 하다.

  인간이 공을 날리거나 굴리거나 하는 유희의 종류가 대체 어느정도인지 셀수가 없을 정도로 있다고 한다. 근대적인 것이라도 골프 외에 테니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이 있고, 지금은 유행하지 않는 크리켓, 크로케나, 실내용으로는 탁구, 당구 그리고 예의 코린트 게임까지 있다. 옛날 일본에서도 테마리(手鞠[각주:7])나 다큐(打毬[각주:8])나 축국(蹴鞠[각주:9])은 꽤 오래되었다는 것 같다.

  인간뿐인가 하고 생각하면, 고양이 등이 기쁘게 종이를 뭉친 볼을 굴리는 것이, 어떤 직접적 이득이 되는 목적이 있어서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역시 스포츠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쥐를 잡거나 할 때에 필요한 운동의 민활함을 수련하는데에 유효할지도 모른다. 가축의 똥을 뭉쳐서 볼을 만들어 굴리는 쇠똥구리가 있다. 그것은 생활의 자원를 운반하는 노동이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보면 일종의 구기이다.

  물개는 코 끝에 공을 올려놓는 곡예가 능란하다. 그것은 이 동물에게 있어서는 그저 주인인 조련사에게 포상으로 신선한 생선 한마리를 받기 위한 노동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락을 위해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관객의 눈에는 훌륭한 하나의 구기로 감상될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동물에게 그러한 곡예를 습득할 수 있는 소질이 어째서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연속의 생활에 어떤 이것과 닮은 소행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동물의 경우에는 그들의 구기는 직접간접적으로 먹기 위한 노역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구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별개로, 보통은 어쨌든 비생산적인 유희이며, 일상생활의 일에서의 애보케이션(avocation)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로 간단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여러가지 공을 가지고 놀게 된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에는, 더욱 깊고 근원적인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인간의 문화의 서광시대(曙光時代)에 우리의 선조의 또 선조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과 인과의 연쇄 속에 살짝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상이 일어나지 못할 것도 없다.

  혹시나,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옛날에는 배를 채우기 위해 사용되었던 공이 지금은 배를 고프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셈이다.

  아카바네의 링크 한나절의 청유(淸遊)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액택시에 흔들리는 중에 이런 공상이 백일몽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덧붙여서,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동물계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다만 '연기'를 만들어서 그것을 들이마시는 곡예만은 완전히 인간에게 한정된 것 같다. 그러니 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 고유의 향락과 위안에 자원을 공급하는 전매국의 일은 이 점에서 가장 독자적인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전매국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당사자가 점점 연초에 관한 과학적 예술적 내지는 경제적 연구를 진행하여, 지금보다도 더욱 우량한 연초가 한층 염가에 공급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쇼와 9년 8월 '전매협회지(専売協会誌)')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42259.html

  1. 도쿄 토시마구(東京都豊島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2. 엔택(円タク). 요금 1엔으로 대도시의 시내를 달린 균일요금 택시. [본문으로]
  3. 도쿄도 키타구(東京都北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4. 도쿄도 키타구(東京都北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5. 아라카와 중 인공하천 부분. [본문으로]
  6. 도쿄도 분쿄구(東京都文京区) 혼고 지역에 있었던 양과자점 [본문으로]
  7. 손으로 치며 노는 공, 그 놀이 [본문으로]
  8. 타구. 두 패로 나뉘어 말을 타고 달리며 하던 공놀이. 한국의 격구?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케마리(けまり)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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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流言蜚語)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긴 관 안에, 수소와 산소를 적당한 비율로 혼합한 것을 넣어두고, 그 관의 한쪽 끝에 가까운 곳에서, 작은 전기불꽃을 가스 안으로 날린다. 그러면 그 불꽃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 연소가 차례차례 전파(傳播)되어 가면서, 전파의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마침내 이른바 폭발파(爆發波)가 되어 놀랄만한 속도로 진행해 간다. 이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수소의 혼합 비율이 너무 적거나, 혹은 너무 많으면, 설사 불꽃을 날리더라도 연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불꽃의 바로 근처에서는 불꽃 때문에 화학작용이 일어나지만, 그 작용이 사방으로 전파되지 않고 그 근처에서 끝나버린다.
  유언비어의 전파 상황은, 앞에서 말한 연소의 전파의 상황과 형식상에서 볼때 약간 유사한 점이 있다.
  최초의 불꽃에 상당(相當)하는 유언(流言)의 '근원'이 없다면 유언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혹시 그것을 차례차례로 이어받아 전해야 할 매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파'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른바 유언이 유언으로 성립할 수 없으므로, 그 곳을 끝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혹시 어느 기회에, 도쿄시중에 어떤 유언비어 현상이 나타난다고 치면, 그 책임의 적어도 절반은 시민 자신이 져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그 9할 이상을 짊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어느 특별한 기회에는, 유언의 원천이 될만한 작은 불꽃이, 고의로든 우연으로든 온갖 곳에 발생한다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도 혹시 시민 자신이 전파의 매질이 되지 않는다면 유언은 결코 유효하게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밤 세시에 대지진이 있다'는 유언을 뿌린 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혹시 그 마을 안의 어르신격의 사람의, 예를 들어 3할이라도 그러한 정밀한 지진 예지가 불가능하다는 현재의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러한 유언의 알은 부화하지 못하고 썩어버릴 것이다. 이에 반해, 혹시 그러한 유언이 유효하게 전파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수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로 보아도 할 수 없다.
  대지진, 대화재의 한창때, 폭도가 생겨나서 도쿄 전체의 우물에 독약을 타고, 주요 건물에 폭탄을 던지고 있다는 유언이 뿌려졌다고 한다. 그 상황에, 시민의 대다수가 가령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를 들면 시 전체의 우물의 1할에 독약을 탄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우물물을 한명의 인간이 한번 마셨을 때, 그 사람을 죽이거나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데 충분한 농도로 그 독약을 섞는다고 치자. 그 때에 대체 어느정도 분량의 독약을 필요로 할 것인가. 이 문제에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선 독약의 종류를 가정하고, 그 극량(極量:극약,독약의 과용에 따른 위험을 막기 위해 정해놓은 약물 사용량의 한계)을 추정하고, 또 한 사람이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이나, 우물물의 평균량, 시 전체의 우물 총수등, 그러한 것들의 개략적인 수치를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른바 과학적 상식이라 할만한 것에서 오는 막연하고 개념적인 추산을 해 보는 것 정도로도, 그것이 얼마나 많은 분량을 필요로 하는지 정도의 상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쪽이든 간에, 폭도는 지진 전에 상당히 많은 양의 독약을 비축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좀 이상한 일이다.
  만약 그 만한 준비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 다음이 꽤 큰일이다. 몇백명, 혹은 몇천명의 폭도에게, 하나하나 부서를 정하고, 독약을 건네고, 각 방면에 파견해야한다. 이것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제 그것도 되었다고 치자.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에게 건네진 캔을 짊어지고 나가서는, 자신의 담당 방면의 우물의 존재를 찾아서 걸어야만 한다. 우물을 발견하고, 그리고나서 남들이 보지 않는 기회를 노려서, 드디어 드디어 투하한다. 하지만 유효하게 저지르기 위해서는 우물물의 대략적인 분량을 어림잡은 후 투입의 분량을 가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투입하고 나서 잘 용해되어 섞이도록 뒤섞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이건 꽤 힘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독약의 유언비어를 전혀 믿지 않더라도, 적어도 각자의 자택의 우물에 대해서 품을 무서움은 다소 줄어들지는 않을까.
  폭탄 이야기도 비슷하다. 시 전체의 눈에 띄는 건물에 모조리 던져넣기 위해 필요한 폭탄의 수량과 인수를 생각해 보면, 적어도 야마노테의 가난한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의 집집마다 파열이라도 할듯한 과도한 공포를 야기하지 않아도 끝날 일이다.
  하기야 심각한 천재지변등의 상황에 그렇게 속 편하게 셈이나 할 여유가 있을리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치면, 그것은 그 시민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과학적 상식이 결핍되어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아니겠는가.
  과학적 상식이라는 것은, 딱히 천왕성의 거리를 암기하거나, 여러가지 비타민의 종류를 이해하는 것 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활용하고 이용할만한, 판단의 표준이 될만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한다.
  물론, 상식의 판단에 의지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과학적 상식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적당한 과학적 상식은, 사안을 마주했을 때 우리들에게 '과학적 성찰의 기회와 여유'를 준다. 그러한 성찰이 행해지는 곳에는 이른바 유언비어같은 것은 그 열의나 전파능력이 현저하게 약해져야 한다. 설사 성찰의 결과가 틀렸고, 그 때문에 유언이 실현되는 등의 일이 있더라도, 적어도 문화적 시민으로서의 대단한 치욕을 당하는 일 없이 끝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타이쇼  13년 9월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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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을 닮은 아이 2011.09.08 22:31 신고

    좋은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다자이 오사무도, 미야자와 켄지도 모두 좋아하는 작가들이네요. 테라다 토라히코도 곧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학교 시절의 공부법(わが中学時代の勉強法)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내 출생지는 고치현(高知県)으로, 처음 중학교[각주:1] 입학시험에 응시한 것은 14세, 딱 고등소학교[각주:2] 3학년 때였다. 그 중학교란 지금의 고치현립제일중학교(高知県立第一中学)이다. 평소부터 그다지 건강하지는 않고, 게다가 공부도 변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그 때의 입학시험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났다. 하기는 성적에 대해서는 뭔가 뜻밖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부른 것인지, 당시의 나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3학년 때 시험을 쳤기로서니 실패하는 것은 역시 분하고 원통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리 공부도 하지 않았던 나도 다소 짜증을 내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빼어난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규칙바르게 학과(學課)의 복습, 수험 준비에 힘쓴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무난하게, 평범한 것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다음 해에 다시 시험을 쳐 보니 성적은 의외로 좋았다는 듯 1년 월반하여 한번에 2학년에 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한번 실패한 것도 만회하였으므로 연령이라는 점에서 봐도 그 전 해에 들어간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되었다.

  개중에는 1년 월반해 왔으니까 영어등은 좀 고생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이도 나는 고등소학교 2학년때부터 옆집에 사는 어느 선생님 댁에 가서 영어만은 배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던 소학교에서는, 3학년 때 부터 이미 영어를 가르쳐서, 4학년을 끝냈을 쯤에는 독본 셋 정도는 읽었기 때문에, 비교적 어렵다고 들은 영어과도 각별한 고생은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나는 시골의 외동아들로 말하자면 어떤 고생도 없이 느긋하게 자란 쪽이다. 따라서 이것이 공부법이라고 해도, 특별히 뭔가 새로운 구상도 없고, 그다지 힘들여서 공부한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내 학생시대를 회고하면, 고학(苦學)이라기보다 낙학(樂學)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물건이 필요하다. 저런 책을 사고싶다고 하면, 부모님은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 사 주셨다. 딱히 까다로운 잔소리를 듣지도 않았고, 공부에 대해서도 어려운 제한같은 것이 붙지도 않았다. 이것은 지금도 내가 부모님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부분이다.

  중학교에는 집에서 다녔는데, 그동안 집안일을 도와서 시간의 속박을 받은 등의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돌아와 그 날의 학과의 복습이나, 내일의 예습을 정확한 시간을 정해서 일정 범위 내에 일정한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라, 그 날 그 때에 맞춰서 일정한 시간은 자연히 정해지는 지극히 느긋한 방법을 취했다.

  일요일등이라도, 평소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와 같이, 정해진 공부도 하지 않고, 정해진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시골이니까 가끔은 친구 두셋과 놀러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즐겨서 놀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대체로 나 좋을대로 하며 자유롭게 보냈다.

  이런 식이었으니, 따라서 밤은 늦게까지, 아침은 일찍부터 기상해서 공부에 매달리는 등의 예(例)는 없고, 게다가 우리 집은 극히 평온, 원만한 가정이라서 언제든지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때에는 어떤 장애도 없이, 조용히 한가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어서, 특별히 공부의 시간을 정해 조바심을 내며 할 필요는 없었고 고통을 느끼면서 책상과 마주하는 것 같은 일은 더욱 없었다. 따라서 내 공부법은 가장 불규칙적이고 또 결코 대단한 노력가인 것도 아니었다. 환경도 역시 고학(苦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종일관 낙학(樂學)한 경우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부터는 이미 부모 슬하를 떠나있었고, 또 하나는 나이와 함께 사상도 조금씩이나마 굳어져 왔으므로, 중학교 시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공부도 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달리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 특별히 심한 공부나, 질서바른 독서법 등을 실행한 것은 아니다.

  소학교 시대부터 나는 학교 교과서 이외에 여러가지 잡다한 책, 잡지등을 마구 읽었다. 이것은 딱히 다독하는 것이 대단히 좋다고 자각해서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막연히 독서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쪽 일은 확실히 모르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책을 자주 보았다. 소학교에 있을 때는, 옛날 하쿠분칸(博文館)에서 나오던 '니혼쇼넨(日本少年)'을 비롯하여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외 그런 잡지나 책을 자주 읽었던 것이다. 부모님도 또 말하는 대로 사 주셨다.

  중학교에 가게 되고 나서는 소책자로 된 자연지리학, 지리서 같은 것을 수많게 읽고, 또 소설 등도 많이 읽었다.전술한대로, 나는 공부하는데도 제멋대로의 방법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학에 대단한 흥미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들리지만, 그다지 그렇지도 않았다. 단지, 이런 것에서 얻은 것인지, 작문은 학교에서도 제법 재주가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친척이 있어서, 거기에 가면 언제나 책을 내서는 손닿는대로 읽곤 했다. 그 중에서도 '핫켄덴(八犬伝)', '삼국지', '초한지'등은 대단히 힝므가 있어서 대부분은 통독하였다. 이것 덕에 스스로도 독서력이 대폭 증진했다고 생각했다. 뒤죽박죽 읽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독서력은 대단히 길러졌다. 폐해도 있으면 또 그것에서 오는 이익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책을 될수있는 한 빨리 읽고, 그래서 이해력을 키우는데는 꼭 많은 책을 읽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내 중학교 시절에 있어서의 성적은 3학년쯤 까지는 일단 중간 정도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좋은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목에 대해서도 딱히 호오는 없었고, 꽤 일정한 점수를 얻었지만, 단지 습자(習字)만은 아무리 해도 서툴렀다. 이래서 습자를 배우는 중에는 평균점수상 성적 쪽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상급생이 되면서 습자가 생략됨과 함께 성적도 확실히 좋아졌다. 그 외에 딱히 싫어하는 것도 없었던 대신에 또 각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중에서 지리만은 중학교 시절부터 특별히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될수 있는 한 이것을 어디까지든 연구해보자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어느 만큼은 고등학교에서는 공과(工科)에 들어가, 3학년 때 다시 물리로 옮겨, 이리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억에 도움이 되도록,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발췌쓰기라는 것을 자주 했다. 발췌쓰기라는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교과서 안의 중요점을 발췌하여 교과서의 바깥부분등에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 안에도 동물, 식물, 광물, 지리, 역사, 화학 처럼 주로 암기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나. 잠깐 예를 들어보면, 교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질문을 받았을 때, 전부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해도 아무리 해도 그 질문에 응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슴에는 떠오르지만 좀 정리되어 입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 주요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발췌하여 그 중요점만을 충분히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근본적인 사항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에 따라오는 지엽적인 것등은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나타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개략만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으면, 사상은 일관해서 비교적 정확한 답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혼자서 이 발췌쓰기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나는 교사가 자주 칠판에 도해로 보여주는 그림등도 그대로 직접 교과서에 써 놓았다. 이것은 기억하는데에 편리할 뿐만이 아니라 그 사항을 잊어버렸더라도 그 그림을 떠올리면 쉽게 기억을 불러올 수 있었고, 또 시험이 끝난 후 상당히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 그림만 보면 쉽게 교과서 안의 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따라서 내가 이용한 교과서는 참 더러운, 연필 발췌문, 도해 그림등으로 꽉꽉 더렵혀져 있다.

  똑같이 이렇게 한다면, 노트에 옮기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중학교 시대에는 그다지 노트에 표시하는 것은 하지 못했다. 교과서 외의 물건에 써 놓으면 일단 이것저것 읽을때마다 꺼내서 봐야하는게 귀찮다. 또 교과서를 펴 보면 한번에 발췌도 읽기도 가능하다는 편리성이 있어서, 일부러 나는 교과서를 더럽힌 것이다.

  고의로 게으름을 피웠다고 하면 왠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가 싫어졌을 때, 무리하게 노력하여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지 않고, 좋을대로 하면서 논다. 산책을 나가서 좋아하는 것도 보고, 매우 제멋대로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하루 놀면 지금까지 착잡해있던 두뇌가 신선해져서, 무엇을 읽어도 확실히 기분 좋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나는 독서를 해도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서 꼼꼼하게 읽을 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격상 그런 딱딱한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끔 어딜 가든 앉은 그대로 책을 집어 쭉 읽는 때도 있고 누워서 보는 때도 있으며 엎드려서 읽는 떄도 있다. 독서할 때의 태도는 거의 일정치 않았다. 말하자면 불규칙적인 방식이지만, 아무래도 내 성질이 거북하게 공부하기보다 편하게 내 맘에 들게 하는 쪽이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기억하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나 스스로도 제대로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독자제군도 이런 부분은 잘 참작하여 그중에서 좋은 점 만을 취해주었으면 한다.

다만 규칙바르게 공부하는 자들 중에는 매일 그 날의 노트를 반복하여 배운 부분만을 암기하려고 하는  자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 될수있는 한 강의에 있어서도 일단락을 지었을 때, 이전부터 필기해 온 부분과 연결하여 한번에 읽는 식으로 했다. 이 연결을 꾀하는 것은 내용을 기억하는데에 가장 필요한 것이고 조각조각난 단편적인 것들을 자세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항이 일단락 지어졌을 때 합쳐서 읽도록 하는 쪽이 전후관련하여 이해하는데도 형편이 좋고, 기억하기도 또한 대단히 쉬워지는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은 그리 몸이 건강하지 않았고, 운동도 딱히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시간은 거의 의무적으로, 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만 소학교 시절부터 광물, 곤충등의 채집에는 대단히 흥미가 있어서, 가끔 근처에 채집을 나갔다. 지금도 고향 집에는 이런 것들의 표본이 꽤 남아있을 정도로, 조금은 이런 일이 운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되신, 자양분은 가능한 많이 먹었다. 그 때문에 몸이 약한 것 치고는 특별히 병에 걸리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대로의 가정(家庭)이었으므로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고, 장난삼아 시시한 것에 고민하여 몸을 피로하게 한 일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아니고, 학교의 교과목이나 그 외에 것에 있어서도 곤란, 고통도 없었고 우선 학생시절은 느긋하게 살았던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부로 교제하여 재미있게 놀았던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원해서 하는 것 같은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시골이니까 집에 돌아오면 놀이 친구라고 해도 기껏 두셋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이도 근처에 살던 친적중에 딱 동년배가 왔으므로, 자주 그곳에 가서는 거기서 놀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대체로 나는 교제가 서투른 쪽이라 지금도 스스로 원해서 교제하려는 일은 없고, 단지 마음을 튼 약간의 벗과 깊게 교제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메이지 40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1695.html

  1. 구제(舊制)에서, 고등보통교육을 받은 수업연한5년의 남자중등학교 [본문으로]
  2. 구제(舊制)에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다음의 학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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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바람(凩)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또 한바탕 강한 것이 서쪽에서 불어와서, 검게 시든 단풍을 책상 앞 유리창에 후려갈기고 뒷편 덤불을 쓰러트리듯하며 지나갔다. 풀도 나무도 집도 창문도 마음속부터 추운듯 몸을 떨었다. 마치 자비를 모르는 정복자가 말발굽의 흔적에 남겨두고 간 전사의 최후의 숨인 것 같은 슬픈 소리를 낸다. 이것을 비웃는 악마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딘가의 깊은 산에서 나와서 어딘가의 깊은 계곡으로 사라져갈지도 모르는 이 파괴신은, 마치 그 주재자인 '시간'의 일에 답답해하는 것 처럼, 온갖 것을 말라붙이고 분쇄시키려고 조바심을 낸다.
  화로에는 한덩이의 숯이 완전히 타고, 부드러운 하얀 재는 위쪽의 짚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도 없이 움푹 꺼져버렸다. 이 때 다시 집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가는 곳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때, 어딘지 모르게 들어온 차가운 공기가 무릎관절에서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을 알아챘다. 이 때 나는 뒷길을 서쪽을 향해 비칠비칠 가는 한명의 노옹(老翁)을 보았다. 거지일 것이다. 그 사람의 다양한 과거 생활을 나타내는 듯이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는 마른 나무같은 팔꿈치를 못 가리고 있다. 우리 집의 뒤편까지 와서 멈춰섰다. 그리고 지팡이에 기댄채로 어렵사리 구부정한 새우등을 펴서 앞쪽에 뭔가를 기대하는 듯 얼굴을 올렸다. 퀭한 눈에 실로 막 지려고 하는 해가 떨어지고, 얼굴을 싼 손수건 조각에서 나온 한묶음의 백발이 소슬바람에 거꾸로 서 보였다. 다시 비칠비칠 걸어나가더니, 한바탕 바람이 곧바로 길의 모래를 말아올려 노옹을 감쌌을 때 나는 깊디 깊은 공상을 불러왔다. 그래서 이 슬픈 빈사자의 생애를 꿈꿨을 때, 마치 이 사람의 지금의 처우가 내 미래로 나타나서, 나 자신이 이 노인의 전신(前身)인 것 처럼 느꼈다.
  그는 필시 희망을 품고 태어나, 희망의 힘에 의해 살아 왔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또한 이 소슬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의 그림자같은 어떤 희망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덧없는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몇번인가 죽음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던 것은 아닐까. 대충 무엇이 덧없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묻힌 채로 긴 긴 세월을 거쳐 끝네 그 사람의 차가운 유해와 함께 묻혀버려서, 이제껏 빛에 닿은 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희망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있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그를 보았을 것인가. 각자의 바람을 쫓는데에 여념이 없는 세인(世人)은, 가끔 그의 쭈그러진 손바닥에 동전 한개를 떨어트리는 사람이더라도 아마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의 자선함에 던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특별히 동정심을 갖고 보고 있는 나조차도 이 어딘가의 누군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을거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는 아마 사랑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청춘의 꿈은 지금 약간의 따뜻함을 추운 돌바닥에 빌려줄 것인가.
  그는 아마 뜻을 세운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약간의 효과를 무덤 아래에 가져오려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끊이지 않는 망상에 빠져있는 동안, 노인의 쓸쓸한 그림자는 어딘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갑자기 건너편의 길모퉁이에서 유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서 주위의 숙살(肅殺)을 깼다. 마치 노인의 과거의 환희의 목소리가, 여기에 잠깐 반향(反響)되어 온 것 처럼.
(메이지 34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4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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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잡감(田園雑感)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1.
  현대의 많은 인간에게 도회(都會)와 시골 중 어느쪽을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개구리에게 물과 육지 중 어느쪽이 좋은가 하고 묻는 것 같을지도 모른다.
  시골밖에 모르는 사람은 시골은 알 수 없고, 도회에서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은 도회는 알 수 없다. 도시와 시골 양쪽에 왕래하는 사람은 양쪽을 조금씩 안다. 그 결과는 어느쪽도 모르기 전의 양자보다도 나쁠지도 모르겠다. 성격이 분열해서 철저하게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거야 어쨌든, 나는 현 상황에선 시골보다도 도회에 생활하기를 희망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시골 생활을 피하고 싶은 제일(第一)의 이유는, 시골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냉담하게 내버려둬 주지를 않는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쓰기 않고 거리를 걷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웬만해선 그렇게 하게 해주질 않는다. 코 끝에 앉은 모기를 가만히 두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런 것은 웬만한 변명이 아니고는 허락받을 수 없다.
  친절하기 위해서 남의 일거수일투족은 끊임없이 주의깊은 눈으로 사방에서 감시된다. 예를 들어 몇월 며칠 몇시 쯤에, 내가 거뭇해진 밀짚모자를 쓰고, 어떤 다리를 건너갔다는 사실이, 내가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차례로 전해져서, 마침내 그것이 내 귀에도 들어오는 것이다.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무같은 농후한 매질을 통과해서 전파되는 것이다.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친절함이라면 받더라도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지만, 시골 사람의 질박함과 정직함은 그런 무책임함은 용서치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들에게서 받은 친절은 하나하나 상세하게 기록해 두고, 누긋하게 그리고 조금씩 이것을 갚아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역시 도회의 사람의 냉담함과 박정함은 산뜻해서 기분이 좋다. 큰 비 속을 머리끝부터 젖어 긴자도오리를 걷고 있어도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도 없다. 만에 하나 받은 친절의 보상도 간단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일견 한적한 시골에 살아서는, 도저히 열심히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것에는 도회의 '인간의 사막'의 안이 가장 형편이 좋다. 시골에서는 풀도 나무도 돌도 사람냄새나는 호흡을 해서 사방에서 내게 말을 걸고 나를 붙잡지만, 도회에서는 빽빽하게 찬 만원전차의 승객이라도 강변의 돌멩이처럼 입다물고 각자가 자산의 일을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나는 전차 안에서 난해한 책을 느긋하고 침착하게 탐독할 수 있다. 집에 있으면 아이나 노인같은 대표적 시골놈이 있기 때문에 곤란하지만, 전차 안만은 정말로 한적하다. 이러한 조용함은 시골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조용함이다. 너무나 조용하여 지나치게 쓸쓸할 정도다.
  여기에다가 도회 안으로 들어오는 '시골 사람'만 없다면 얼마나 조용하겠는가.
 
 
    2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고향에서는 마을의 부잣집 등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다음 정월은 온 마을의 젊은이가 모여서, 4첩이나 6첩 크기의 커다란 연을 만들어서 그 집에 메어 넣는다. 그리고 거기에 홍백(紅白) 혹은 감색과 흰색으로 나눠서 덧댄 종이꼬리를 몇 개나 붙이고, 북서계절풍에 날려올린다. 작물 그루터기만 남은 겨울 밭 가운데를 붉은 솜 누런 솜으로 얼굴을 감싼 젊은이 무리가 술기운에 종횡으로 달려다니는 것은 꽤 위세가 좋고, 부근의 스파르타인종의 아이들은 각자 작은 연을 올려서 그것을 큰 연의 꼬리에 휘감아서 그 조각을 약탈하려고 다툰다. 큰 연이 충분히 바람을 품고 날아오를 때는 젊은이 두세사람은 딸려올라갈 정도의 강한 견인력을 가지고 있다.
  연날리기 후엔 술잔치다. 그것은 정말로 바쿠스의 술잔치로, 술은 샘물처럼 넘치고, 고기는 숲처럼 높이 쌓여서, 그 사이를 판의 무리가 님프의 무리를 쫓는 것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여자여서 크게 실망한 젊은이들은, 큰 하고이타(羽子板[각주:1])에 연처럼 실을 매어 메어 넣었다는 이야기조차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맞는 명절, 결혼 피로연, 환갑 잔치, 그러한 기회는모두 마을의 바쿠스에게 바쳐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 땅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한 집에 불행이 있을 때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온갖 도움을 준다.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무(事務)는 오히려 정체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역시 술이 나와야만 끝난다.
  어느 부잣집의 노인이 죽은 장례식 밤에, 어떤 남자는 너무 많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도중의 논길에서, 같이 가는 남자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오늘 밤 처럼 유쾌하게 마신 일은 요새 없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이런 것 등은 가장 철저한 한가지 예일 것이다.
  위독한 병자의 머리맡에는 수많은 문안자가 밀려든다. 병자의 머리 위에 거꾸로 된 기름낀 얼굴을 내밀고, 어려운 인사를 하고 어려운 질문을 한다. 한층 친절해지면 빈사상태의 사람에게 짖굳은 말을 한다. 그리하여 병자는 임종 직전까지 이웃 사람의 친절함을 사무칠때까지 맛보게 된다.
 
 
    3
  시골의 자연은 확실히 아름답다. 하늘의 색이든 나뭇잎 색이든, 도회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한 아름다움도 익숙해지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될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자연의 미의 깊이는 그리 쉽게 간파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 보면 볼수록 얼마든지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눈이 나쁘기 때문일 것이다. 1년이나 2년 정도로 질릴만한 것이었다면, 자연에 관한 예술이나 과학은 수천년 전에 완결되어 버렸을 것이다.
  6살이 되는 친척 아이가 작년 말부터 도쿄에 와 있다. 이 녀석에게 도쿄과 고향 중 어느쪽이 좋은가 하고 물었더니, 고향 쪽이 좋다고 했다. 어째서인가 하고 물었더니 '고향의 강에는 새우가 있어서'라고 답했다.
  이 아이가 말한 새우는 꼭 동물학상의 새우를 말하는 건 아니다. 새우가 있는 맑고 찬 시내의 흐름, 그것에 녹색 그림자를 드리우는 숲이나 산, 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풀꽃, 그러한 것들 전체를 통틀은 시골의 자연을 상징하는 새우여야 한다. 도쿄의 생선가게에서 민물새우를 사 와서 이 아이에게 줘 본다면 이것은 쉽게 증명될 것이다.
  나 자신도 이 새우를 생각해 보면, 시골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시골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속에 있는 시골이다. 새우는 지금도 있지만, '아이인 나'는 이미 거기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인 나'는 지금도 '어른인 나'의 안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리고 의외의 때에 나와서 바깥 세상을 훔쳐보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교외를 걷다가 길가의 이름도 없는 풀꽃을 볼 때나, 혹은 멀리 있는 삼나무의 가지끝의 신비한 색채를 보고 있을 때, 얼마 안되는 순간뿐이지만, 이 새우의 환영을(幻影)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옅은 '때[時]의 슬픔'이다.
  자연만큼 인간에게 친절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친절함은 시골 사람의 친절함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다. 도회에는 이 자연이 결핍되어 있어 그 대신에 시골의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4
  봉오도리(盆踊り)라는 것은 요즘엔 이미 없어졌지만, 어쩌면 경찰 감시 하에 있는 형식으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있는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내가 전후(前後)에 딱 한번 봉오도리를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 전에 남해에 있는 어느 어촌에서였다. 폐결핵으로 거기에 이사한 어느 사람을 문병가서 하룻밤 묵었을 때가 딱 구력(舊曆)의 오봉 며칠간이었다. 찌는듯 덥고, 모기가 많고,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생선냄새나는 저녁안개 위를 졸린듯한 달이 비추고 있었다.
  키후네신사(貴船神社[각주:2])의 숲그림자의 광장에 딱 대여섯명의 그림자가 춤추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건 이미 잊었다. 내게는 그저 왠지 그것이 옛날이야기에 있는 것 같은 쓸쓸한 산속의 요정의 무용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때 왠지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문병 간 병자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나는 지금도 봉오도리라고 하면 그 밤을 떠올리지만, 이상한 착각에서, 그 때 춤추고 있던 요정같던 인영(人影) 안에, 죽은 그 사람의 그림자가 함께 춤추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서양냄새나는 문명이 시골의 구석구석까지 확산되어 가더라도, 오봉의 달밤에는, 어딘가의 산그림자 같은 곳에서 옛날같은 야마토 민족의 그림자가 옛날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봉오도리라는 말에는 전원적인 그리고 관능적인 여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현대의 것은 아니다. 그 여운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쿠가와 시대등을 지나서 멀고 먼 고사기(古事記)의 시대에 도착한다.
  봉오도리가 아직 행해지는 곳이 있다면 거기에는 어딘가 나라(奈良)시대 이전의 민족의 피가 젊은이들의 몸에 흐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어쩔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듯한 슬픔을 느낀다.
 
 
 
    5
  여름 한창때에 무시오쿠리(虫送り[각주:3])라는 행사가 열린다. 커다란 북이나 징이 논두렁길에 놓이고 벌거숭이 인형이 힘껏 그것을 친다.
  소리가 사방의 산에서 반향되어, 집의 창호지에 격렬한 충격을 가한다. 하늘에는 화염같은 구름의 봉우리가 빛난다. 붉은 물감을 부어놓은 듯 한 알몸의 피부에는 땀이 수은처럼 빛난다. 모든것이 브랭귄(Brangwyn[각주:4])의 유화를 떠올리게 한다.
 

무시오쿠리의 큰북이나 징의 소리를 표시한 악보










귀가 먹먹해질 것 같은 소리와, 눈이 멀 것 같은 강한 빛은 그 안에 도리어 맑고 투명한 정적을 양성(醸成)한다. 단지 그것은 사물의 공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조용함이 아니라, 사물이 아주 충실했을 때의 이상한 조용함이다.
  격렬한 음파의 충동 때문에, 해충이 정말 떨어지는지, 떨어진 벌레가 그걸로 끝나는지 어떤지, 확실한 것은 아마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은듯 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어느 이름없는 종교의 장중(荘重)한 의식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쯤 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예를 들자면 도쿄의 히비야(日比谷)공원에 어느 날을 잡아서 시민을 집합시킨다. 그리고 시골에서 쓸 일이 없게 된 무시오쿠리용 종이나 큰북을 빌려 모아와서 누구라도 그것을 칠 수 있게 한다. 사회에 대해, 정부에 대해, 동포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서 온갖 종류의 불평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은, 이 원시적 악기를 원시적인 노력으로 후려치는 것이다.
  좀 더 사회가 진보하면 나의 이 제안을 비웃는 사람이 없어질지도 모를듯한 기분이 든다.
 
 
 
    6
  향리(郷里)에서 그리 멀지 않은 A마을에 키노마로(木の丸)신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사이메이 덴노(斉明天皇[각주:5])를 모신 것이라고 한다. 덴노가 붕어하신 큐슈의 어느 지방의 이름이 즉 이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어떤 이유로 이 남해의 구석지 토지가 이 덴노와 연결되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아마도 누구도 모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비(口碑)는 사람들의 마음을 삼한정벌(三韓征伐)의 옛날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현대의 사상(事相)에 옛날의 민속적인 배경을 준다.
  이 신사의 제례의식이 진귀한 것이었다. 어릴 때 한두번 본 건 뿐이라서 거의 대부분은 잊어버렸지만, 꿈같은 기억 속을 찾아보면 이런 것이 나온다.
  역시 농가가 한가한 계절을 골랐을 것이다. 의식은 작물 그루터기가 남은 겨울 밭 위에서 행해졌다. 거기에 미코시(神輿[각주:6])가 행차한다. 그것을 따라 온 마을의 집집마다의 대표자는 모두 카미시모(裃[각주:7])를 입고, 종이우산만큼이나 커다란 사초삿갓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 작은 정(鉦[각주:8])을 늘어뜨리고 오른손에 잡은 나무망치로 그것을 친다. 단조로운 목소리와 느릿한 박자로 '나안모온데에ナーンモーンデー'라고 읊으면 정 소리가 그것을 받아서 '카앙코, 캉코'하고 울린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어떤 사람은 '난몬덴캉코(南門殿還幸)'를 의미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다지 맞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의미를 모르는 쪽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코시의 앞에서 스모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스모를 하는게 아니라 스모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와시(回し[각주:9])를 찬 역사(力士)가 당당하게 노려보다가 드디어 맞서려고 하면, 에지(衛士)인지 교지(行司[각주:10])인지가 뛰어들어와 떼어놓고 말린다. 그런 것이 몇번이고 반복된다. 그리고 결국 스모는 하지 않은 체 끝나는 것이다. 어떤 유래에서 일어난 행사인지 느는 모른다. 그래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먼 옛날에 일어난 어느 뭔가 심각한 사건의 희미한 반향(反響)같은것을 느낀다.
  그 외에, '봉잡이(棒使い)'라고 해서, 신 앞에서 홍백의 천을 두른 봉을 휘돌리는 의식도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문명의 파도가 파도처럼 외진 시골까지 밀려와서, 고유한 문화의 흔적은 대체로 쓸려가버렸다. '나안모온데에'의 의식은 언제부터인가 폐지되었다. 학교에 가서 문명을 배운 마을의 청년들에겐 카미시모를 입고 사초삿갓을 쓰고 무의미한듯한 '나안모온데에'를 외는 일은 견디기 힘든 굴욕이고, 자기를 야만화하는 소행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무리가 아니다.
  간단한 말과 논리로 재빨리 누구도 알 수 있도록 설명할수 있는 일 만이 문명의 진열장 위에 아름답게 전시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쓰레기장에 버려져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그것과 동시에 무의미의 안에 숨어있는 중대한 의미의 가능성도 묻혀버리는 것이다. 몇 천년동안 전해져왔던 민족 고유의 문화 안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끌어내어 새롭게 그것을 발저시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개조(改造)'라는 외침소리는, 안에 있는 것의 진화가 아니라, 나무에 대나무를 잇는 것 같은 의미만으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래서 그 친절한 정의(情誼)가 두터운 시골 사람들은,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선조의 혼과 그림자를 헌신짝처럼 버려버렸다. 그리하여 자신과는 연이 없는 이국의 역사와 배경이 낳은 신사상을 수입한다. 물려받아온 집이나 전답을 팔아치우고 주식에 손을 대는 것과 같은 식이다.
  신사상의 본원인 서양에 가 보면, 오히려 일본인의 눈에는 바보같아 보이는 듯 한 오랜 옛날의 습속(習俗)이나 행사가 그대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차라리 신기하다.
  이것은 어느쪽이 좋은가하고 의논을 하면 알 수 없게 되는것이 당연하다.
  단지 요즘의 신문지상을 떠들석 하게 하는 여러가지 불상(不祥)한 사회적 현상은, 그것이 오오모토교(大本教) 사건[각주:11]이든 타카라즈카(宝塚) 사건이든 모든 것이 직접 이러한 사건과는 어떤 관계도 없는 남해의 촌락에서 이 '난몬데에'가 폐지된 일과 어딘가에서 연관되어 있어서, 오히려 그것의 당연한 귀결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한 시골의 쓰레기장에서 썩어가는 선조의 유물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종자를 줍는 일이, 위정자나 사상가의 당면한 일은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든다.
 
(타이쇼 10년 7월, 중앙공론(中央公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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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고(羽子)를 치는 자루달린 장방형 판자 [본문으로]
  2. 키부네 신사. 교토에 있는 신사. 이 신사에서는 쿠라오카미노카미[闇龗神]라는 신을 모시고 있으며, 이 신은 고래로부터 기우(祈雨),지우(止雨)의 신으로 숭앙되었다. [본문으로]
  3. 농촌에서 횃불을 들고 징이나 북등을 치면서 농작물의 해충을 쫓으려는 주술적 행사 [본문으로]
  4. 프랭크 브랭귄(Frank Brangwyn). 1867-1956. 영국의 화가 [본문으로]
  5. 7세기 중엽의 덴노. 재위 655~661 [본문으로]
  6. 신체(神體)나 신위(神位)를 실은 가마 [본문으로]
  7. 에도시대의 무사의 예복 [본문으로]
  8. 타악기의 일종. [본문으로]
  9. 샅바구실을 하는 훈도시 [본문으로]
  10. 스모의 심판 [본문으로]
  11. 일본의 종교탄압사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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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선생님의 하이쿠와 한시(夏目先生の俳句と漢詩)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나츠메 선생님이 아직 창작가로서의 선생님 자신을 자각하기 전에, 그 선생님 안의 창작가는 어딘가 빈틈을 찾아 그 창작에 대한 정열의 발로(發露)를 바라고 있었던 것 처럼 생각된다. 그 발로의 모습 하나의 창작형식으로서 선택된 것이 한시와 하이쿠였다. 이른바 머지 않아 폭발하려는 화산 활동 에너지가 약간 소분화구의 분연(噴煙)이나 미약한 국지지진으로 나타는 것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것을 위해 하이쿠나 한시가 선택됬다는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선생님의 자연관, 인생관이 처음부터 아마 하이쿠,한시의 그것과 공통된 것을 품고 있었음은 명백하지만, 하지만 또 선생님이 하이쿠, 한시를 한 일이 선생님의 자연관, 인생관에 상당한 반작용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어쨌든 선생님의 만년(晩年)의 작품을 볼 경우에 이 초기의 하이쿠나 시를 배경으로 놓고 보지 않으면 진짜는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여러가지 있다. 적어도 만년의 작품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것의 배아가 이 짧은 시형(詩形) 안에 상당히 들어가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하이쿠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하이쿠는 레토릭(rhetoric,수사학)의 에센스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하이쿠로 단련된 선생님의 문장이 원래 힘좋고 아름다운데다가 더욱 힘좋고 아름다워진 것도 당연할 것이다. 또 역으로 그러한 문장을 만든 사람의 하이쿠나 시가 훌륭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선생님같은 구(句)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생님같은 작품은 만들 수 도 없을 것 같고, 그만큼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러한 구는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도 한다. 나중에 『풀베게草枕』라는 모뉴먼트를 쌓아올린 거장(巨匠)의 끌의 소일거리로 깎은 소품(小品)을 이 집(集)에서 볼 수 있다.

  선생님의 하이쿠를 연대순으로 봐 가면, 선생님의 기분같은 것이 추이(推移)해 간 흔적을 가장 잘 추적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창작의식이 가장 희박한 하이쿠에 비교적 자연스러운 기분이 반영되어 있는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슈젠지(修善寺[각주:1])의 대환(大患) 이전의 구와 이후의 구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큰 거리가 특별히 눈에 띈다. 그것만으로도 엿볼 수 있는 것은 선생의 독자에게 있어서 꽤 중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나는 선생님의 애독자가 적어도 반드시 이 하이쿠집을 충분히 맛보기를 바란다. 선생님의 하이쿠를 맛보는 일 없이 선생님의 작품이 품은 세계의 온갖 형상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 생각된다. 또 선생님의 작품을 분석적으로 연구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시 충분히 면밀하게 선생님의 하이쿠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쇼와 3년 5월 『소세키 전집漱石全集』 제13권, 월보(月報)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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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즈오카현 동부, 이즈반도 북부에 위치한 절 및 온천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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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몽타주(青磁のモンタージュ)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흑색의 명랑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의 상징이 쿠로라쿠(黒楽[각주:1]) 도기(陶器)라면, '녹색의 우수(憂愁)'의 심볼은 요컨대 청자일 것이다. 전자의 호건활달(豪健闊達)함에 대하여 후자에는 어딘가 여성적인 센티멘탈리즘의 향이 난다. 그래서 아마 연중 위가 나빠서 때때로 신경쇠약에 걸리는 나같은 인간에게는 라쿠야키의 밝음도 그립지만 또 동시에 청자에도 자연스러운 동정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故)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선생님도 청자를 좋아하는 인간의 패였지만, 선생님도 위가 나빠서 신경쇠약이었다. 선생님은 청자 사발에 양갱을 올린 색채의 느낌을 즐기신 적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자 그릇에 새빨간 다랑어 회와 새하얀 무즙을 올린 몽타주는 좀 아름다운 것 중 하나다. 기세가 좋은 회의 광택은 어딘가 도기의 광택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도기의 피부의 느낌은 살아있는 살의 느낌과 닮은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도기의 완상(翫賞)은 에로티시즘의 한 변형일지도 모른다.

  청자의 톡쿠리(徳利[각주:2])에 참억새와 도라지를 꽂으면 실로 쓸쓸한 가을의 감상(感覚)이 사무친다. 너무 쓸쓸하여 괴로울지도 모른다.

  청자 향로에 아카라쿠(赤楽)의 향합의 몽타주도 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감잎 단풍을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박물관등에서와 같이 청자는 청자, 라쿠(楽)는 라쿠하는 식으로 분류적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도 괜찮지만, 그러한 기물(器物)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시키는 듯 한 몽타주를 보여주는 전람회도 가끔은 있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다회(茶会)의 기사등을 보면 실제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듯 한 몽타주전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제한된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것으로 누구라도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니시카와 잇소테이(西川一草亭[각주:3])의 꽃꽂이 전람회 등은 어떤 의미에선 꽃이나 과일과 용기(容器)와의 몽타주의 전람회지만, 그것을 더욱 확장한 듯 한 전람 방법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기물(器物)의 미(美)에는 물론 그 자신에 내재된 미가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을 충분히 발휘시키기 위해서는 그 기물의 용도와 서로 관련된 몽타주의 파악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카라쿠의 밥공기도 토마토스프가 들어가서는 곤란할 것이다.

(쇼와 6년 2월, 자츠미(雑味))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2463.html

 

  1. 검은색 라쿠야키(楽焼き). 라쿠야키란 손으로 모양을 내서 구운 도기로 교토산. 한편 라쿠야키는 비전문가가 만들어서 저온에 구운 것을 뜻하기도 함 [본문으로]
  2. 잘쏙하고 아가리가 좁은 술병 [본문으로]
  3. 1878-1938. 일본의 화도가(華道家). 화도란 꽃꽂이를 말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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