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蜜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竜之介)


   어느 구름 낀 겨울날 저녁이었다. 나는 요코스카발 상행 2등 객차 구석에 앉아서, 멍하니 발차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전등이 켜진 객차 안에는 웬일인지 나 말고는 한 사람도 승객은 없었다. 바깥을 보니 어둑해진 플랫폼에도 오늘은 묘하게 송별하는 인영조차 흔적도 없고, 오직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 강아지가 한 마리, 가끔 슬픈 듯이 짖고 있었다. 이것들은 그때의 내 마음과 이상할 정도로 닮은 경치였다. 내 머릿속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가 마치 눈 오는 하늘처럼 어두침침한 그림자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지그시 양손을 찔러 넣은 채, 거기에 들어있던 석간을 꺼내서 볼 기운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발차 기적이 울렸다. 나는 약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쪽 창틀에 머리를 기대로, 눈앞의 정차장이 점점 뒷걸음질 치는 것을 기다린다고 할 것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게 그보다도 빠르게 요란한 나막신 소리가 개찰구 쪽부터 들린다고 생각했더니, 곧바로 차장이 뭔가 화를 내는 소리와 함께, 내가 타고 있던 이등실의 문이 드르륵 열리고, 열서넛쯤 되는 여자아이가 한 명,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한번 쭉 흔들리고, 서서히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씩 눈을 스쳐 지나가는 플랫폼 기둥, 남겨진 물수레, 그리고 차 안의 누군가에게 축하를 하는 빨간 모자-그 모두는 창문에 불어오는 매연 안에, 미련이 남았다는 듯이 뒤로 쓰러져 갔다. 나는 겨우 한숨 돌린 듯한 기분이 되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비로소 나른한 눈꺼풀을 올리고 앞좌석에 앉은 여자아이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그것은 윤기 없는 머리카락을 뒤로 잡아당겨 이초가에시로 묶고 옆으로 비빈듯한 흔적이 있는 잔뜩 튼 양 볼을 기분 나쁠 정도로 붉힌, 실로 시골뜨기 같은 소녀였다. 게다가 때가 낀 연두색 털실 목도리가 주르륵 늘어진 무릎 위에는 커다란 보자기꾸러미가 있었다. 또 그 보자기를 안은 튼 손 안에는, 삼등석 표가 소중한 듯 확실히 쥐어져 있었다. 나는 이 여자아이의 상스러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복장이 불결한 것도 역시 불쾌했다. 마지막으로 그 이등석과 삼등석의 구별조차 못 하는 우둔한 마음에 화가 났다. 그래서 담배에 불을 붙인 나는 오직 이 여자아이의 존재를 잊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이번에는 주머니의 석간을 멍하니 무릎 위에 펼쳐놓고 보았다.그러자 그때 석간 지면에 떨어지고 있던 외관이 갑자기 전등 빛으로 바뀌어, 인쇄가 잘 안 된 무슨 난의 활자가 의외일 정도로 선명하게 내 눈앞에 떠올라왔다. 말할 것도 없이 기차는 지금 막 요코스카 선에 많은 터널 중 최초의 터널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 전등 빛에 밝혀진 석간의 지면을 바라보아도, 역시 내 우울을 위로하게끔, 세간은 너무나 평범한 사건만이 화제였다. 강화문제, 신랑 신부, 독직 사건, 사망광고- 나는 터널에 들어간 한순간, 기차가 달리는 방향이 거꾸로 된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그러한 삭막한 기사에서 기사로 거의 기계적으로 훑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물론 그 여자아이가 마치 저속한 현실을 인간으로 만든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 터널 안의 기차와 이 시골뜨기 여자아이와 그리고 또 이 평범한 기사로 메워진 석간과, -이것이 상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불가해 한, 열등한, 지루한 인생의 상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모든 것이 시시해져서, 읽다 만 석간을 내던지고 다시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만가 지난 다음이었다. 문득 무언가에 위협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아까의 여자아이가 맞은편 자리에서 내 옆으로 옮겨와서, 자꾸 창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무거운 유리창은 좀처럼 생각대로 안 열리는 것 같았다. 저 튼 자국투성이 뺨은 이젠 빨갛게 변해서, 가끔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가, 작은 숨찬 목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귀에 들어온다. 이것은 물론 나라도 어느 정도는 동정하게 하는데 충분한 것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기차는 이제 바야흐로 터널 입구에 다다르려고 있다는 것은, 저녁 어스름 속에 마른 풀만이 밝은 양쪽의 산 중턱이 아주 가까이 창 쪽에 다가왔다는 것으로도 바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 여자아이는 일부러 닫혀있는 창문을 열려고 한다. 그 이유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그것이 내게는 단지 이 여자아이의 변덕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뱃속에 여전히 험한 감정을 품으며, 그 튼 손이 유리창을 올리려고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마치 그것이 영원히 성공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듯한 냉혹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자 곧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기차가 터널에 뛰어드는 것과 동시에 여자아이가 열려고 했던 유리문은, 마침내 툭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사각 구멍 안에서, 그을음을 녹인 것 같은 시꺼먼 공기가, 약간 숨쉬기 힘든 연기가 되어, 자욱하게 차 안으로 들이차기 시작했다. 원래 목이 안 좋은 나는, 손수건을 얼굴에 댈 틈도 없이, 이 연기를 온 얼굴에 씨인 덕에, 거의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기침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내게 신경을 쓰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어둠을 뿜는 바람에 이 초가에 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계속해서 기차의 진행방향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을 매연과 전등 빛 사이에서 보았을 때, 이미 창밖이 점점 밝아져서, 거기서부터 흙냄새나 마른 풀 냄새나 물 냄새가 차갑게 흘러들어오지 않았다면, 겨우 기침이 끝난 나는, 이 본 적도 없는 여자아이를 정신없이 꾸짖어서라도 다시 원래대로 창문을 닫게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기차는 그때는 이미 간단히 터널을 미끄러져 나와, 마른 풀의 산과 산 사이에 끼인, 어느 가난한 마을의 건널목에 들어가고 있었다. 건널목 가까이에는 모두 초라한 초가지붕 집이나 기와지붕 집이 빽빽이 비좁게 들이서서, 건널목 지기가 흔들어야 할 오직 한 폭의 허연 깃발이 느른하게 노을을 흔들고 있었다. 겨우 터널을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을, 바로 그때 그 쓸쓸한 건널목 울타리 저편에, 나는 뺨이 붉은 세 남자아이가, 꽉 붙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이 흐린 하늘에 눌려버렸나 하고 생각할 만큼, 모두 키가 작았다. 그리고 또 이 마을 변두리의 음침한 풍물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이 기차가 지나는 것을 올려다보면서 일제히 손을 드는가 했더니 애처롭게 목소리를 높여 뭐라고 의미도 모를 환성을 열심히 질렀다. 그러자 그 순간이었다. 창문에서 반신을 내민 그 여자아이가, 그 튼 손을 쭉 내밀어서, 기세 좋게 좌우로 흔들었는가 싶었더니, 갑자기 마음을 들뜨게 할 만큼 따뜻한 태양 빛으로 물든 귤이 대충 대여섯 개, 기차를 전송하는 아이들의 위로 후드득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찰나에 모든 것을 이해했다. 여자아이는, 아마도 이제부터 고용살이를 가는 여자아이는, 그 품에 품고 있던 몇 개인가의 귤을 창에서 던져서, 일부러 건널목까지 전송하러 온 남동생들의 수고에 보답한 것이다.
 노을을 띤 마을 구석의 건널목과 새처럼 소리를 높이는 세 명의 아이들과 그리고 그 위에 어지럽게 떨어지는 선명한 귤의 색과── 그 모든 것은 기차의 창밖으로,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 위에는, 애달프도록 선명히, 이 광경이 새겨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맑은 기분이 솟아나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기운 좋게 머리를 들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 여자아이를 주시했다. 여자아이는 어느새 이미 내 앞자리로 돌아와, 여전히 틀대로 튼 볼을 연두색 털실 목도리로 감싸며, 커다란 꾸러미를 안은 손에, 꾹 삼등석 표를 잡고 있다. …………
 나는 이때 비로소, 뭐라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그리고 불가해 한, 열등한, 지루한 인생을 겨우 잊어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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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카와의 물(大川の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나는 오오카와바타(大川端)[각주:1]에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을 나와 모밀잣밤나무의 새잎에 덮인, 검은 담이 많은 요코아미(横網)의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그 폭 넓은 강줄기가 보이는 햡폰구이(百本杭[각주:2])된 강기슭에 나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는 거의 매일같이 그 강을 보았다. 물과 배와 다리와 모래톱과 강 위에서 태어나서 강 위에서 사는 분주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았다. 한여름 정오가 약간 지나서 달구어진 모래를 밟으면서 수영을 배우러 지나가는 길에 맡고 싶지 않아도 맡은 강물 냄새도, 지금에 와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친근하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도 그 강을 사랑하는가. 그 어느 쪽인가 하면 진흙으로 탁한 오오카와의 미지근한 물에 한없는 그윽함을 느끼는가. 스스로도 조금도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는 옛날부터 그 물을 볼 때 마다, 왜인지 눈물을 흘리고 싶은 듯한, 표현하기 어려운 위안과 적요(寂寥)를 느낀다. 완전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어져서 그리운 사모(思慕)와 추억의 나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 때문에 이 위안과 적요를 맛볼 수 있으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오오카와의 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은회색의 안개와 파란 기름 같은 강물과 한숨 같은 불안한 기적(汽笛)소리와 석탄선의 다갈색 삼각돛과, ──모두 누를 길 없는 애수를 부르는 이 강의 조망은, 어찌 나의 어린 마음을, 그 강기슭에 선 버드나무 잎처럼 떨리게 할 것이다.

  근 삼년간, 나는 야마노테(山の手) 교외의, 잡목림 그늘이 진 서재에서 평정(平靜)한 독서삼매에 젖어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월에 2,3차례는 그 오오카와의 물을 보러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게 움직이고 흐르는 것 같지도 않게 흐르는 오오카와의 물색은, 정적(靜寂)한 서재의 공기가 쉬지 않고 주는 자극과 긴장에 안타까울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 마음도, 마치 긴 여행에 나선 순례자가 겨우 다시 고향의 땅을 밟았을 때 같은 쓸쓸한, 자유로운, 그리움에 녹여준다. 오오카와의 물이 있어서 비로소 나는 다시 순수한 본래의 감정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푸른 물에 면한 아카시아가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려서 팔랑팔랑 하얀 꽃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몇 번이나 안개가 많은 11월의 밤에 어두운 물의 하늘을 추운 듯이 우는 물떼새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보고 내가 들은 모든 것은 모조리 오오카와에 대한 내 사랑을 새롭게 한다. 마치 여름 강물에서 태어나는 검은물잠자리의 날개 같이 떨기 쉬운 소년의 마음은, 그때마다 새로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밤그물을 친 배의 뱃전에 기대서 소리도 없이 흐르는 검은 강을 바라보면서 밤과 물의 가운데를 떠도는 ‘죽음’의 호흡을 느꼈을 때, 어찌 나는 의지할 길 없는 쓸쓸함에 닥치게 되었으리라.

  오오카와의 흐름을 볼 때 마다 나는 그 승원(僧院)의 종소리와, 백조의 목소리로 저무는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발코니에 핀 장비도 나리도 물밑에 잠긴 듯한 달빛에 파르스름해지고 검은 관을 닮은 곤돌라가 그 중간을 다리에서 다리로 꿈처럼 저어가는 베네치아의 풍물에 넘칠듯한 정열을 쏟았던 단눈치오의 기분을 새삼스럽듯이 그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오오카와의 물에 애무받는 연안 마을들은 모두 나에게 있어서 잊기 힘든 그리운 마을이다. 아즈마바시(吾妻橋)에서 하류라면 코마가타(駒形), 나미키(並木), 쿠라마에(蔵前), 다이치(代地), 야나기바시(柳橋), 혹은 타다(多田)의 야쿠시마에(薬師前), 우메호리(うめ堀), 요코아미(横網)의 강기슭── 어디라도 좋다. 이러한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의 귀에는 햇빛을 받는 흙으로 지은 광의 하얀 벽과 하얀 벽 사이에서, 격자문으로 된 어두침침한 집과 집의 사이에서, 혹은 은갈색의 싹을 틔운 버들과 아카시아의 가로수 사이에서, 잘 닦인 유리판처럼 파랗게 빛나는 오오카와의 물은 그 시원한 바닷물의 냄새와 함께 옛날부터 남으로 흐른 그리운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아아, 그 물소리의 그리움, 중얼거리듯이, 삐친 듯이, 혀를 차듯이, 풀물을 짜낸 파란 물은 낮도 밤도 똑같은 듯이 양안(兩岸)의 석축을 씻고 간다. 한죠(班女)고 나리히라(業平[각주:3])고, 무사시노(武蔵野)의 옛날은 모르고, 멀게는 많은 에도죠루리(江戸浄瑠璃) 작자, 가깝게는 카와타케 모쿠아미(河竹黙阿弥[각주:4]) 옹이 센소지(浅草寺)의 종소리와 함께 그 살인현장의 스팀뭉그(Stimmung)를 가장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자주 그 서민물의 안에 준비한 것은 실로 이 오오카와의 쓸쓸한 물울림이었다. 이자요이(十六夜) 세신(清心)이 몸을 던졌을 때도, 겐노죠(源之丞)가 새쫓기[鳥追]를 하던 오코요(おこよ)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도, 혹은 또 땜장이 마츠고로(松五郎)가 박쥐가 어지럽게 나는 여름 저녁, 저울을 짊어지고 료고쿠(両国)의 다리를 건넜을 때에도 오오카와는 지금처럼, 낚시꾼여관의 선창에, 강기슭의 푸른 갈대에, 쵸키부네(猪牙船[각주:5])의 선복(船腹)에 나른한 속삭임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특히 이 물소리를 그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나룻배 안에서일 것이다. 내 기억에 틀림이 없다면, 아즈마바시에서 신오오바시(新大橋)까지, 원래는 다섯 개의 나루터가 있었다. 그중에서 코마카타 나루터, 후지미(富士見) 나루터, 아타카(安宅) 나루터 세 개는 차례로 하나씩 언제인지도 모르게 쇠퇴해서 지금은 단지 이치노하시(一の橋)에서 하마쵸(浜町)로 건너가는 나루터와 미쿠라바시(御蔵橋)에서 스가쵸(須賀町)로 건너가는 나루터 두 개가 옛처럼 남아있다. 내 어릴 적과 비교하면 강물의 흐름도 바뀌어 갈대와 물억새가 무성했던 곳곳의 모래톱도 흔적없이 묻혀버렸지만 이 두 나루터만은 비슷한 깊이가 얕은 배에 비슷한 노인 뱃사공을 태우고 강기슭의 버들잎처럼 파란 강물을 지금도 변함없이 하루에 몇 번씩인가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주 아무런 용무도 없는데도 이 나룻배에 탔다. 물의 움직임에 따라서 요람처럼 가볍게 몸이 흔들리는 기분 좋음. 특히 시각이 늦으면 늦을수록 나룻배의 쓸쓸함과 기쁨이 절실히 몸에 사무친다. ──낮은 배의 바깥은 바로 녹색의 미끄러운 물로, 청동같은 무딘 빛이 나는 폭넓은 수면은 먼 신오오바시에 가로막히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양안의 집집은 이미 황혼의 회색으로 통일되어 그 곳곳에는 장지에 비치는 등불의 빛조차 노랗게 안개 속에 떠 있다. 밀물을 따라 회색의 돛을 반쯤 편 거룻배가 한 척 두 척 가끔 강을 거슬러 오지만 어느 배도 고요히 잠잠해서 키를 잡은 사람의 유무조차도 알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이 조용한 배의 돛과 파랗고 평평하게 흐르는 바닷물의 냄새에 대하여 뭐라 말할 것도 없이,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각주:6])의 에르레브니스(Erlebnis)라는 시를 읽었을 때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을 느끼는 것과 함께, 자신의 마음속 또한 정서의 강의 속삭임이 안개의 바닥을 흐르는 오오카와의 물과 같은 선율을 노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매혹하는 것은 오오카와의 물의 울림 혼자만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강물의 빛이 거의, 어디서도 찾아내기 힘든 미끄러움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바닷물은 마치 벽옥의 색 같이 너무도 무거운 녹색을 엉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수의 간만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류의 강물은 말하자면 에메랄드빛처럼 너무 가볍고, 너무 얄팍하게 빛난다. 오직 담수와 조수(潮水)가 교차하는 평원의 대하(大河)의 물은 차가운 파랑에 탁한 노랑의 따뜻함을 뒤섞어서 어딘지 모르게 인간화된 친절함과, 인간같은 의미에 있어서 라이프라이크한 그리움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특히 오오카와는 검붉은 점토가 많은 칸토평야를 모두 지나서, ‘도쿄’라는 대도시를 조용히 흐르는 만큼, 그 탁하고 주름지고 깐깐한 유대인 노인처럼 툴툴 잔소리를 하는 물색이 어찌나 안정된, 친밀한, 촉감 좋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같은 도시 안을 흐른다고 해도, 역시 ‘바다’라는 커다란 신비와 끊이지 않고 직접 교통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강과 강을 잇는 수로의 물 같이 어둡지 않다. 잠들어있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움직여가는 끝은 시작도 끝도 없이 건너가는 ‘영원’의 신비함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즈마바시, 우마야바시(厩橋), 료고쿠바시(両国橋) 사이, 향유 같은 푸른 물이 커다란 교대(橋臺)의 화강석과 벽돌을 적시고 가는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강기슭에 가까운, 낚시꾼여관의 하얀 사방등을 비추고, 은색 잎 뒤쪽을 뒤집는 버들을 비추고, 또 수문에 막혀서는 샤미센(三味線) 소리가 미지근해지는 오후를 홍부용(紅芙蓉) 꽃에 슬퍼하면서, 심약한 집오리의 깃털에 어지럽혀져서, 인기척 없은 주방 아래를 조용히 빛나면서 흐르는 것도, 그 묵직한 물색에 말할 수 없는 온정을 품고 있다. 설사 료고쿠바시, 신오오바시, 에타이바시(永代橋)와, 하구에 가까워짐에 따라 물색은 현저히 난조(暖潮)의 심남색(深藍色)을 섞어가면서 소음과 연진(煙塵)으로 가득 찬 공기 아래에, 하얗게 짓무른 눈을 번뜩번뜩 함석처럼 반사하고, 석탄을 쌓은 큰 화물선이나 하얀 페인트가 벗겨진 고풍스러운 증기선을 나른하게 흔드는 것 역시 자연의 호흡과 인간의 호흡이 맞아떨어져서, 어느새 융합한 도회의 물색의 따뜻함은 쉽게 지워져버릴 것이 아니다.

  특히 해질녘, 강 위에 자욱이 낀 수증기와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저녁하늘의 어스름은, 이 오오카와의 물을 거의 비유를 초월한 미묘한 색조를 띠게 한다. 나는 홀로 나룻배의 현에 팔꿈치를 걸치고, 이미 안개가 내리기 시작한 어스름한 강의 수면을 이렇다 할 것도 없이 바라보면서, 그 암록색의 물 저편, 어두운 집들의 하늘에 크고 붉은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무심결에 눈물을 흘린 것을,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마을은, 그 마을 고유의 냄새가 있다. 플로렌스의 냄새는 아이리스의 흰 꽃과 먼지와 안개와 옛 회화의 니스의 냄새이다.’(메레쥐코프스키[각주:7]) 혹시 나에게 ‘도쿄’의 냄새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오카와의 물 냄새라고 대답하는 것에 어떠한 주저도 하지 않을 것이다. 냄새 하나뿐만은 아니다. 오오카와의 물색, 오오카와의 물소리는 내가 사랑하는 ‘도쿄’의 색이고 소리여야 한다. 나는 오오카와가 있으므로 ‘도쿄’를 사랑하고, ‘도쿄’가 있으므로 생활을 사랑하는 것이다.

(1923. 1)

그 후 ‘이치노하시 나루터’가 끊어진 것을 들었다. ‘미쿠라바시 나루터’가 사라지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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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쿄, 스미다가와(隅田川) 하류. 특히 아즈마바시(吾妻橋)에서 신오오하시(新大橋)부근까지의 우안(右岸)일대를 가리킴 [본문으로]
  2. 현재의 스미다가와의 강기슭은 콘크리트등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당시는 수많은 말뚝을 박아 강기슭을 보호해서 백개의 말뚝이라는 햡폰구이라는 말이 붙었음 [본문으로]
  3. 한죠도 나리히라도 노(能)의 한 곡 [본문으로]
  4. 1816~1893, 가부키의 각본가 [본문으로]
  5. 에도시대에 하천에서 널리 사용된 경쾌하고 빠른 배 [본문으로]
  6. 후고 폰 호프만스탈, 1874~1929. 오스트리아의 시인, 극작가 [본문으로]
  7. Дмитрий Сергеевич Мережковский, 1865~1941, 러시아의 시인, 사상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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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학소년 2012.05.15 08:00 신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여체(女体)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양모(楊某)라는 중국인이, 어느 여름 밤 너무나 더워서 눈이 뜨여, 턱을 괴고 엎드려서 부질없는 망상에 빠져있으니, 문득 한마리의 벼룩이 침상가를 기고있는 것을 알아챘다. 방 안에 밝힌 어둑한 등불에 벼룩은 작은 등을 은가루처럼 빛내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향하여 꾸물꾸물 기어가는 것 같다. 아내는, 알몸으로, 아까부터 양모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편안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양모는 그 벼룩의 굼뜬 걸음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벌레의 세계는 어떨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두걸음이나 세걸음에 갈 수 있는 곳도, 벼룩은 한시간이나 쓰지 않음ㄴ 갈 수 없다. 그것도 그렇게 돌아다니는 곳이, 기껏해야 침상 위 뿐이다. 자신도 벼룩으로 태어났다면, 꽤 지루할 것이다.……

  그런 것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으니 양모의 의식은 점차 몽롱해졌다. 물론 꿈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생시도 아니다. 단지, 묘하게 황홀한 마음 속으로 잠기는 것도 아닌 것 처럼 잠겨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윽고 퍼뜩 눈을 뜬 것 처럼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양모의 혼은 벼룩의 몸에 들어가서, 땀냄새나는 침상 위를, 꿈틀거리면서 걷고 있다. 양모는 너무나 의외라서, 무심코 망연히 멈춰섰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 하나 뿐만은 아니다.─

  그가 갈 곳에는, 높은 산 하나가 있었다. 그것이 또 저절로 둥그스름함을 따뜻이 품고, 눈이 닿지 않을 정도로 위쪽에서, 눈 닿는 곳의 침상 위 까지, 큰 종유석처럼 늘어져 있다. 그 침상에 닿아있는 부분은, 안에 화기(火氣)를 품고 있는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옅은 붉은 빛 석류열매 모양을 빚고 있지만, 그것을 빼면, 산 한둘레, 어디를 봐도 하얗지 않은 곳은 없다. 그 하얌이 또 응지(凝脂)처럼 부드러움이 있는, 매끄러운 색의 하얌으로, 산허리의 완만한 패임 조차, 마치 눈[雪]에 비치는 달빛처럼 희미하게 푸른 그림자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빛을 받고 있는 부분은, 녹아내릴 것 같은 대모갑색 광택을 띠고, 어떤 산맥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활모양의 곡선을 아득한 하늘 끝에 그리고 있다.

  양모는 경탄으로 눈을 크게 뜨고서 이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산이 그의 아내의 가슴 하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놀람은 도대체 어느정도 였을 것인가. 그는 사랑도 증오도, 내지는 또 성욕도 잊고, 이 상아의 산 같은 거대한 유방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너무나 경탄하여 침상의 땀냄새도 잊은 것인지, 언제까지고 굳어진 것 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양모는 벼룩이 되어 처음으로, 아내의 육체의 아름다움을 여실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있어서, 벼룩처럼 보아야 할 것은, 다만 여체의 아름다움 만은 아니다.

(타이쇼(大正) 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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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片恋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같이 대학을 나온 친한 친구 한명을 어느 여름날 케이힌덴샤(京浜電車[각주:1]) 안에서 만났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 사이에 회삿일로 Y에 갔을 때의 이야기야. 그쪽에서 연회를 열어서, 나를 초대해 준 적이 있지. 어쨌든 Y이므로, 토코노마에는 석판인쇄한 노기(乃木) 대장의 족자가 걸려 있고, 그 앞에 모란 조화(造花)가 꽃꽂이되어 있는 모습이지만 말야. 저녁때부터 비가 와서 사람 수도 의외로 적었기에 생각보다 느낌이 좋았어. 그 위 2층에도 다른 연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다행히 그 고장의 성격답지 않게 소란스럽지 않아. 그런데 그중, 작부중에 ─자네도 알고 있겠지. 우리가 옛날 자주 마시러 갔던 U의 여자 중에, 오토쿠(お徳)라는 여자가 있었어, 코가 낮고, 이마가 꽉 찬, 거기 중에서 장난꾸러기 같았던 녀석이야. 그녀석이 말야, 들어가 있는거야. 기생차림으로, 술병을 들고, 다른 동료들처럼 새침하게 얌전한 척 하면서. 처음엔 나도 잘못 봤다고 생각했지만, 옆에 온 것을 보니, 오토쿠가 틀림없어. 말할 때 턱이 움푹 패이는 버릇도 옜날대로였지. ─나는 실제로 무상함을 느껴버렸지. 저이도 원래는 시무라(志村)의 짝사랑 상대 아니겠나.

  시무라녀석, 그 때는 대단히 진지하게, 아오키도(青木堂)에 가면 작은 페퍼민트 병을 사 와서, '달콤하니 먹어 보렴.'같은 말을 했었지. 술도 달았지만, 시무라도 달콤했어.

  그 오토쿠가, 지금은 이런대서 물장사를 하고 있는거야. 시카고에 있는 시무라가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지. 그렇게 생각해서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만뒀어. ─오토쿠말야. 전에는 니혼바시에 있었습니다 정도의 일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야.

  그러자 그쪽에서 말을 걸었어. "꽤 오랜만이네. 내가 U에 있을 때 뵌게 끝이었으니까. 당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같은 말을 해. ─오토쿠 녀석. 왔을 때 부터 이미 취해있었어.

  하지만 아무리 취했어도, 오랜만이기도 하고, 시무라의 건도 있었으므로,  대단히 할 이야기가 많았겠지. 그러자 녀석이, 다른 일행이 억측하는 것을 연회의 체면으로 이해한 안색으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거야. 어쨌든 주최자가 앞장서서 낱낱이 자백하지 않는다면 자리를 뜨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니 형편이 좋지 않아. 거기서, 나는 시무라의 페퍼민트 얘기를 하고, '이 녀석이 내 친구에게 팔꿈치를 먹인 여자입니다.'─바보같았지만, 그렇게 말했어. 주최자도 이미 나이를 많이 먹어서 말야. 나는 처음부터 숙부에게 끌려가서 요정에 갔다는 격이었지.

  그러자, 그 팔꿈치 운운으로, 또 함성이 오는게 아닌가. 다른 게이샤까지 함께해서 오토쿠 녀석을 놀렸어.

  그런데 오토쿠, 그러니까 후쿠류(福竜) 녀석이 알지를 않아. ─후쿠류가 좋겠지. 팔견전(八犬伝)의 용의 강역(講釈) 중에, '우락(優楽)이 자유로운 것을 후쿠류로 이름붙이니'라는 구절이 있어. 그래서 이 후쿠류는, 우락이 많이 자유롭지 않으니 이상하지. 하기야 쓸데없는 얘기지만.─그 모르는 말투가 또 굉장히 로지컬했어. "시무라씨가 제가 반했다고 해서, 제가 반해야만 하는 의무는 없사와요"라고.

  그리고 더 있어. "그것이 그렇지 않았다면, 저도 오래 전에 더 좋은 세월이 있었어요."

  그것이 이른바 짝사랑의 슬픔이었다는군. 그리고 그 끝에 익샘플이라도 들 생각이었겠지. 오토쿠 녀석. 묘한 주책을 떨기 시작했어. 자네에게 들려주려고 한 건 그 주책이야. 어차피 주책이니 재밌지는 않아.

  그것이 참 신기하지. 꿈 얘기와 사랑 얘기는 들어도 질리는 일이 없어.

 (거기서 나는, '그건 당사자 이외엔 재미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말했다. '그런 소설을 쓰는데도 꿈과 사랑얘기는 어렵다는 것이로군.' '적어도 꿈은 감각적인 만큼 더욱 그런 것 같아. 소설 안에 나오는 꿈도, 진짜 꿈같은 것은 거의 하나도 없을 정도지.' '하지만 연애소설의 걸작은 많이 있지 않나?' '그만큼 후세에 남지 않을 태작의 숫자도 상상이 간다는 거야.')

  그렇게 잘 아니 꽤나 든든하군. 어차피 이것도 그 태작 중의 태작이야. 어쨌든 오토쿠의 말투를 흉내낸다면, '뭐 저의 짝사랑이라는 것'이니까 말야. 기껏해야 그정도로 들어주게.

  오토쿠가 반한 남자는 배우야. 그녀석이 아직 아사쿠사(浅草) 타와라마치(田原町)의 부모 집에 있을 무렵에, 공원에서 첫눈에 반했다는군.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미야토자(宮戸座)나 토키와자(常盤座)의 하급 배우라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 애초에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렸네. 서양놈 배우야. 아마 한도(半道[각주:2])라고 했으니까, 웃기는 일이지.

  그런 주제에 오토쿠는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주소도 몰라. 그 뿐인가, 국적조차 모르는 거야. 유부남인지 독신인지─그런건 물론 물어봐야 의미가 없지. 이상하지? 아무리 짝사랑이라도 너무나 바보같아. 우리가 와카타케(若竹[각주:3])에 다니던 때도 가령 하는 이야기는 모를지라도 상대는 일본인이고, 예명(藝名)이 쇼기쿠(昇菊)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 ─그렇게 말해서 내가 놀렸더니, 오토쿠 녀석, 정색을 하고 "그야 저도 알고싶었어요. 하지만 모르니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어쨌든 막 위서 만날 뿐인걸요."하고 말했어.

  막 위라니 묘한거야. 막 안에서 라고 말한면 알겠지만 말야.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그 연인될 사람은, 활동사진에 비치는 서양의 배우였다는 거야. 이건 나도 놀랐어. 과연 막 위에서라는 것은 틀림 없더군.

  다른 사람들은 결말이 재미 없었다고 생각했나봐. 개중에는 '헹, 사람을 놀리다니'같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 선창이니까 인심이 사납지. 하지만 보기엔 아무래도 오토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어. 어쨌든 눈은 꽤 침울해졌으니 말이야.

  "매일 가고 싶어도, 용돈이 그렇게 되지도 않지요. 그래서 전, 겨우 일주일에 한편씩 가서 봤어요.'─이건 괜찮은데, 그 다음이 흔들려. '한번은,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겨우겨우 봤더니, 만석이라 옆의 구석진 곳밖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모처럼 그 사람의 얼굴이 비쳐도, 묘하게 납작하게밖에 보이지 않는거에요. 전 슬퍼서, 너무 슬퍼서."─앞치마를 얼굴에 대고 울면서 말하는거야. 그야 연인의 얼굴이 장막처럼 납작해져 보이면 슬프겠지. 이건 나도 동정했어.

  "어쨌든지 열두세번 그 사람이 다른 배역을 하는 걸 봤어요. 얼굴이 길고, 마르고, 수염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대체로 검은, 당신이 입고 계신 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가요." ─나는 모닝코트였어. 좀 전에 당했으니까, 기선을 제압해서 '닮지는 않았나?'하고 말하니, 새침을 떼면서 '더 멋진 남자'라는거야. '더 멋진 남자'는 어렵지 않나.

  "어쨌든 당신, 막 위에서 만날 뿐이지요. 그쪽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말을 건다던가, 눈으로 마음을 알리린다던가 할 수 있지만, 그런 걸 하더라도 사진이라면." 덤으로 활동사진이야. 몸에 지니고 있으려 해도 갈 수 없는 것이지. "사모하고 사모받는다고 말하지만요. 사모받지 않는 사람이라도, 사모받도록 만들수는 있겠지요. 시무라씨도 제게 자주 파란 술을 가지고 와 주신 것 처럼. 그런데 저는 사모받도록 만들수도 없어요. 너무나 불행하지 않습니까." ─지당한 말이지. 이건 웃기는 와중에도 측은해졌어.

  "그때부터 게이샤가 되고 나서도, 손님을 데리고 나다면 자주 활동사진을 보러 갔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사람이 활동사진에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어요. 언제 보러 가도, '메이킨(名金)'이니 '지고마(ジゴマ)'이니 하는 보고싶지도 않은 것만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엔 저도, 이건 이미 연이 없구나 하고 완전히 포기해버렸습니다. 그것이 당신……"

  다른 사람들이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까, 오토쿠는 나 한명을 붙잡고 떠들고 있는거야. 그것도 반쯤 우는 목소리로 말야.

  "그것이 당신, 이 고장에 와서 처음으로 활동사진을 보러 간 밤에, 몇년만에 그 사람이 활동사진에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딘가 서양 마을이겠지요. 이렇게 포석이 있고, 한가운데에 뭔가 벽오동같은 나무가 서 있는거에요. 양쪽은 쭉 서양관이고요. 단지, 사진이 낡은 탓인지, 전부 저녁처럼 어렴풋하게 노래서, 그 집이나 나무가 모두 부들부들 떨리고 있고─그야 쓸쓸한 경치입니다. 거기에, 작은 개를 한마리 끌고, 그 사람이 당신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나왔어요. 역시 검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내가 아이였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대충 10년만에 연인과 마주친거야. 상대는 사진이니까 바뀌지 않았지만, 이쪽은 오토쿠가 후쿠류가 되어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불쌍해.

  "그렇게 해서,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잠깐 멈춰서, 이쪽을 보면서, 모자를 벗고 웃는거에요. 그것이 제게 인사를 하는듯이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이름을 안다면 부르고 싶었어……"

  불러 봐라. 미친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하겠지. 아무리 Y라도, 아직 활동사진에 반한 게이샤는 없을 거야.

  "그러자, 건너편에서, 작은 여자 외국인이 한명 걸어와서, 그 사람에게 달라붙은거에요. 변사의 이야기로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의 정부(情婦)라는군요. 나이를 먹은 주제에, 큰 깃털같은걸 모자에 붙여서, 그렇게 불쾌할수가 없을거에요."

  오토쿠는 질투한거야. 그것도 사진이 아닌가.

  (여기까지 얘기하자, 전차가 시나가와에 왔다. 나는 신바시에서 내릴 몸이다. 그것을 안 친구는, 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우려한 듯, 가끔 시선을 창 밖으로 던지며서, 꽤 급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활동사진은 여러가지 일이 있고, 결국 그 남자가 순사에게 잡히는데서 끝난다고 하더군. 뭘 해서 잡혔는지 오토쿠는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지만, 공교롭게도 이젠 기억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서 그 사람을 묶어버리는 거에요. 아니요, 그때는 이미 아까의 거리가 아니었어요. 서양의 술집인지 뭐인지이겠지요. 술병이 쭉 늘어서 있고, 구석에는 큰 앵무새 새장이 하나 걸려 있어요. 그것이 밤으로 보여서, 어디든지 전체가 파랗게 되어있었습니다. 그 파란 속에서─저는 그 사람의 울 것 같은 얼굴을 그 파란 속에서 보았어요. 당신도 본다면, 분명 슬퍼질거에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입을 반쯤 벌리고……"

  그러자, 호루라기가 울리고, 활동사진이 사라져 버렸어. 그 다음은 하얀 막 뿐이야. 오토쿠 녀석의 말이 멋져,─'모두 사라져버린거에요. 사라져서 허무하게 되었구나. 어차피 뭐든지 그런 것이지.'

  이것만 들으면, 크게 깨달은 것 같지만, 오토쿠는 울다가 웃으면서, 내게 비아냥이라도 하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어. 그건은 나쁘게 말하면 히스테리야.

  하지만, 히스테리라도, 묘하게 진지한 데가 있었던가. 어쩌면, 사진에 반했다는 건 만들어낸 이야기고, 사실은 누군가 우리 무리에게 짝사랑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둘이 탄 전차는, 이 때, 황혼의 신바시 정차장에 도착했다.)

(타이쇼 6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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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차 대전 전의 케이힌토호쿠센(京浜東北線)이 도쿄 이북으로 운행을 개시할 때 까지 동선(同線)을 운행하던 전차 [본문으로]
  2. 한도가타키(半道敵). 가부키등에서 골계미가 있는 적역(敵役) [본문으로]
  3. 도쿄에 있던 연예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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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회화나무라는 나무의 이름을 기억한 것은 '돌베개'라는 잇츄부시(一中節)[각주:1]의 죠루리(浄瑠璃)를 들었을 때 였을 것이다. 나는 물론 잇츄부시같은 것을 배울 정도로 풍류객은 아니다. 단지 아버지나 어머니가 익히시는 것을 듣고 기억한 것이다. 그 문구는 아마 관세음보살의 '정원에 세월흐른 홰나무 가지'에 나오던가 했다.

  '돌베개'는, 한 집의 할머니가 돌베개에 여행자를 재우고, 노자를 뺏기 위해 위에서 밧줄로 매단 큰 돌을 떨어트려 여행자의 목숨을 빼앗는, 그런 곳에 아름다운 소년이 한명 하룻밤 묵어가길 청해온다. 할머니는 이 소년도 돌베개에 재우고, 역시 죽여서 돈을 뺏으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딸이 몰래 이 소년을 연모하여, 소년을 대신해서 죽어버린다. 그러자 소년은 관세음보살로 나타나, 할머니에게 인과응보를 가르치고, 그 할머니가 몸을 던져 죽은 연못은 지금도 센소지(浅草寺)의 경내에 '노파의 연못'(姥の池)이 되어 남아있다.─ 대충 이런 죠루리이다. 나는 소싯적에 쿠니요시(国芳)의 우키요에(浮世絵)에 이 이야기가 쓰여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요시하라 팔경(吉原八景)'이니 '검은머리(黒髪)'이니 같은 것 보다도 '돌베개'에 흥미를 느꼈다. 게다가 또 그 쿠니요시의 우키요에는 관세음보살의 주름 표현등에 서양화풍의 기법을 응용하고 있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후 회화나무의 어린 나무를 보고, 그 어딘가 도안(圖案)적인 가지와 잎에 정말 관세음보살의 출현 등에 걸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5년 전에 베이징에 놀러가서, 계속 회화나무만 보게 되자, 언젠가 시취(詩趣)라고 부를 만한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단지 푸른 홰나무 열매의 꼬투리만은 여전히 풍류라고 생각한다

               베이징

      재버리는길 회화나무꼬투리 뿐이로구나(灰捨つる路は槐の莢ばかり)

(타이쇼 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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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죠루리의 유파 중 하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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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노 호우메이씨(岩野泡鳴氏)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아마 가을의 늦은 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와노 호우메이[각주:1]씨와 함께, 스가모(巣鴨)행 전차에 타고 있었다. 호우메이씨는 의기양양하게 양산 손잡이에 망토의 팔꿈치를 걸치더니, 평소처럼 소리높게 서양초화(草花)의 재배법이나 그가 자랑하는 건위법(健胃法)같은 것을 여러가지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와중에 어떤 박자였는지, 화제가 당시 평판이 있었던 어떤 소설의 팔림새로 옮겨갔다. 그러자 호우메이씨는 방약무인하게,

  "그런데 자네, 신진작가라던가 뭐라던가 해도, 그렇게 책이 팔리지는 않을 걸. 내 책은 대충 ─부 팔리는데, 자네등은 대체 몇부정도 팔리는가?" 하고 말했다.

  나는 약간 죄송스러워 하며, 어쩔 수 없이 '괴뢰사(傀儡師)'의 판매고를 답했다.

  "모두 그런건가?"

  호우메이씨는 다시 물었다.

  나보다도 저서의 판매고가 높은 신진작가는 많이 있다. ─나는 소설 두셋을 들며, 내가 측문(仄聞)한 판매고를 답했다. 그것들은 불행히도 그의 저서보다, 다수는 판매량이 좋음이 틀림없었다.

  "그런가? 의외로 잘 팔리는군."

  호우메이씨는 일순간 의심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흐렸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아직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눈에는 금새 발랄한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호우메이씨는 마치 세상을 동정하는 듯이, 여유있게 이렇게 말했다.

  "하기야 내 소설은 어려우니까."

  시인, 소설가, 희곡가, 평론가, ─그러한 자격은 다른 사람이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어도 내 눈에 비친 우리 이와노 코우메이씨는, 거의 장엄한 기분이 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낙천주의자였다.

  1. 1873~1920, 일본의 소설가, 시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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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인상(忘れられぬ印象)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이카호(伊香保)[각주:1]에 대해서 쓰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카호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와 둘이서 아카기산(赤城山)과 메우기산(妙義山)에 오른 김에, 잠깐 하룻밤 묵은 일 뿐이라서, 번지르르하게 써서 보여드릴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무슨 마을이고 어떤 온천이 있었는지, 그런 것 조차도 이미 잊어버렸다. 단지 어슴푸레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산에 무성한 새잎 사이를 전차로 마구 올라간 것 뿐이다. 그리고 나서 무슨 여관에 묵었더니, 옆방에 멋진 신사가 묵고 있어서, 그 사람이 또 굉장히 온천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음날은 아침부터 6번이나 함께 욕탕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니 뱃속이 기진맥진해질 정도로 지쳐서, 복도를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지친 채로 한가롭게 여관에 머무를 수도 없으니까, 그 날 저녁 그 신사와 셋이서 타카사키(高崎) 정차장까지 내려왔는데, 정작 정차장에 와 보니, 우리들의 지갑에는 우에노까지의 기찻삯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심히 죄송스럽게도 그 신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확실히 딱 1엔 20전을 차용(借用)했다. 이상과 같이 이카호를 이야기 해도, 산과 계곡의 풍광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지만, 이 신사의 기억만은 온천 이야기가 나올때 마다 반드시 마음속에 떠오른다. 아마 온천 안에서 얘기한 것에 따르면, 이 사람은 1인승의 작은 자동차를 제조하고 싶다던가 하는 것이었다. 오늘 신문을 보니, 승합자동차는 이미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인승의 작은 자동차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쯤 그 신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타이쇼(大正) 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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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본 군마현(群馬県) 시부카와시(渋川市)에 위치한 온천마을, 하루나산(榛名山) 동사면(東斜面)에 위치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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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불유쾌한 이중생활(永久に不愉快な二重生活)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나카무라(中村)씨

  문제가 크기 때문에, 좀 손쉽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만, 대강 생각하는 바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본래 예술의 내용이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 우리들의 생활 전모 바로 그 자체니까, 이중생활이라는 말은 제일의(第一義)적으로는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이의(第二義)적인 의미가 되면,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일어납니다. 생활을 예술화한다던가, 혹은 역으로 예술을 생활화 한다던가 하는 것도, 그런 것에서 일어나는 것일 것입니다.

  당신의 편지에 있던 예술가의 직업문제등은, 그것을 한층 더 피상적인 방면으로 옮겨온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물심양면에서 인간으로서의 생활과, 예술가로서의 생활의 관계 교섭'이라고 해도, 각각의 의의(意義)에 걸맞는 입장을 정해서 시도하지 않으면, 모처럼 하게 된 논의는 혼란스럽게 되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태여 뭔가 말해야만 한다면, 저는 직업으로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니까, 거기에서 일어나는 이중생활이 불유쾌하고, 게다가 그 불유쾌함을 초월하는 것은 완전히 물질적인 문제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이 현대 일본에서는 당분간 해결될 것도 같지 않은 이상, 우리들이 영원히 이 불유쾌한 생존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정도는, 대단히 평범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런걸로도 괜찮다면, 부디 제가(諸家)의 해답 안에 더해 주십시오. 이상.

(타이쇼(大正) 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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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夢)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꿈 속에서 색채를 보는 것은 신경이 지쳤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 부터 쭉 색채가 있는 꿈을 꾸고 있다. 아니, 색채가 없는 꿈 같은 것이 있다는 것도 거의 믿을 수 없다. 실제로 나는 일전에도 꿈속의 해수욕장에서 시인 H·K군과 만났다. H·K군은 밀짚모자를 쓰고, 아름다운 감색(紺色) 망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색에 감탄하여서, '무슨 색 입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인은 모래를 보면서 대단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 '이거 말입니까? 이거 삽포로(札幌)색이에요.'

  그리고 또 꿈 속에서는 후각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꿈속에서 고무나 뭔가가 타는 듯한 악취를 느낀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아마 강이 보이는, 해지는 변두리 마을을 걷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또 그 강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목재처럼 큰 악어가 몇마리나 헤엄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거리를 걸으면서, '하항, 이것은 수웨즈 운하의 입구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후각이 있는 꿈을 꾼 것은 전후를 통틀어서 이 때 뿐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꿈 속에서도 노래나 발구(発句:와카등의 첫 구, 혹은 하이쿠를 일컬음)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명가(名歌)나 명구(名句)는 물론, 제대로 형태를 갖춘 것 조차 된 적이 없다. 그런 주제에 언제나 꿈속에서는 태작(駄作)이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4,5일전에 꿈 속의 들길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기에는 누구든 시골사람 같은 남녀가 많이 서 있었고, 그 중간을 작은 미코시(神輿:신체(神體)나 신위(神位)를 실은 가마)가 한대 영차 영차 하며 뒤따라 갔다. 나는 그러한 경치를 보면서, 열심히 하이쿠를 만들어 굉장히 흐뭇해졌다. 그런데 나중에 떠올려 보니, 이것은 무참하게도 이런 것이었다. ─ '오미코시(お神輿)가 건너가는 것 보니 손톱이 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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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선생님과 타키타씨(夏目先生と滝田さん)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제가 아직 아카몬(赤門)[각주:1]을 나온지 얼마 안 되어, 쿠메 마사오(久米正雄)군과 이치노미야(一ノ宮)에 갔을 때입니다. 나츠메[각주:2] 선생님이 편지로 '매주 목요일에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와서, 기어이 글자를 쓰게 하여 가지고 간다'는 의미를 보내오셨기에, 그 편지를 후에 타키타[각주:3]씨에게 보여드리니, 이것은 지독하다고 말하시며 나츠메 선생님을 힐문하셔서, 선생님이 타키타씨에게 사과 편지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당시 나츠메 선생님의 면회일은 목요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낮에 놀러 갔습니다만, 타키타씨는 밤에 가셔서 나츠메 선생님이 옥판전(玉版箋)[각주:4]등에 여러가지 것을 써서 주셨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츠메 선생님의 것은 꽤 많이 가져가셨습니다. 서화골동(書畵骨董)을 사는 것에 열심이셔서, 타키타씨 자신이 얘기하신 겁니다만, 아무것도 살 기분이 안 들어서 니혼바시(日本橋)의 중로(中路)를 서성이고 있을 때, 하니와(埴輪)[각주:5]등을 발견해서 1시간도 지나기 전에 천엔인지 천오백엔 분을 산 일이 있다고 합니다. 뭐 모든게 그런 장단이었습니다. 진재(震災)이후는 몸이 약하다는 이유도 있어서인지 수집벽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뵌 것은 확실히 4,5월 경이었습니다만, 신바시연무장(新橋演舞場)의 복도에서 누가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길래 뒤돌아봤어도 잠시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 몸집 큰 사람이 굉장히 말라서 작게 된 얼굴에 희미하게 붉은 기가 도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항상 말했던 것입니다만, 타키타씨는 토쿠토미 소호(徳富蘇峰)[각주:6], 미야케 유지로(三宅雄二郎)[각주:7] 같은 분들부터 쭉 내려와서 우리보다도 더 나이 어린 사람들까지 원고를 통해 교섭이 있어서, 여러 작가들의 일화를 알고 계셔서 혹시 이후 츄오코론(中央公論)[각주:8]의 편집을 누군가에 양보하고 한가한 때가 온다면, 그러한 추억록(追憶錄)을 쓰시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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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쿄대의 다른 이름 [본문으로]
  2.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 소설가,평론가,영문학자 [본문으로]
  3. 타키타 쵸인(滝田樗陰), 1882~1925, 츄오코론의 편집장으로 유명. [본문으로]
  4. 혹은 옥판선지(玉版宣紙), 선지의 일종으로 화선지보다 두껍고 빛이 희고 결이 고움 [본문으로]
  5. 일본의 흙인형 [본문으로]
  6. 1863~1957, 저널리스트, 역사가, 평론가 [본문으로]
  7. 미야케 세츠레이(三宅雪嶺)의 본명. 1860~1945, 평론가, 철학자 [본문으로]
  8. 메이지 시대에 창간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잡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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