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히고 만 소세키 전기 자료(埋もれた漱石伝記資料)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쿠마모토 고등학교(熊本高等学校)에서 나츠메(夏目) 선생님의 동료인 S라는 O물학 선생님이 있었다. 이학사(理學士)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학식이 있어서, 그 전문 방면에서는 어쨌든 일본 교육의 권위자라는 평판이 이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기행(奇行)도 전해졌다. 일본에 딱 둘인가 셋밖에 없는 표본을 여럿 가지고 있다는 자랑을 듣지 못한 학생이 없었다고도 한다. 복장 같은 것에도 무관심해서, 구깃구깃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꼴 등은 좀처럼 고등학교의 선생님처럼은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거야 어쨌든 간에, 그 당시 나츠메 선생님과 뭐든간에 잡담을 할 때 이 S 선생님 얘기를 하면 선생님은 “아, S말인가”하고 입을 크게 사각으로 벌려 혀 끝으로 아랫입술을 핥으시고는 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나서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큭큭 꽤나 웃기다는 듯이 선생님 특유의 웃음법으로 웃었다. 그럴 때에 선생님은 꼭 얼굴을 조금 붉히고는 왠지모르게 숫된 처녀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 선생님의 웃음의 의미를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인(畸人)으로서의 S 선생님의 기행을 떠올리시고 웃으셨을 것이라는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긴 세월이 흘렀다. 나츠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선생님에 관한 제가(諸家)의 추억담이나 뭔가가 여러 잡지를 장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날 뜻밖에도 옛날의 S 선생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3전우표를 두장인가 세장 붙인 대단히 무겁고 두꺼운 편지를 읽어보니, 거기에는 나츠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실로 자세하고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그 편지에 의하면, S 선생님은 어릴 적에 나츠메 선생님 댁 근처에서 살고있던 이른바 장난꾸러기동지였다는 듯, 그 당시의 여러가지 장난의 디테일이 실로 현실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일찍이 한번도 나츠메 선생님으로부터 그 어린시절의 S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이 편지의 내용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 처럼 예상외로 여겨졌다. 그리고 왠지 이것이 진짜일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S 선생님이 의식해서 거짓말을 일부러 쓰실 리도 없으므로, 상세한 부분에서는 기억의 오류나 착각은 있을지언정 대체로 사실임은 틀림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은 나츠메 선생님에 관한 하나의 자료로서 보존해 두면 후일 꼭 도움이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시의 대학 물리학부 물리교실의 내 방의 책상 서랍속에 다른 중요한 편지와 함께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위궤양에 걸려 휴직하고 틀어박혀버렸기 때문에, 교실의 내 방은 그대로 완전히 먼지가 쌓인 채로 긴 시간동안 방치되었다. 거기에 타이쇼 12년의 대지진이 덮쳐와서 교실의 건물은 대파되고, 붕괴는 면했지만 향후의 지진에서는 위험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내 병이 다 나아서 출근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원래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다른 건물의 목조 단층건물인 다른 교실의 한 방을 빌려서 임시로 살게 되었다. 그 때에도 아직 원래 교실의 방은 대부분 옛날 그대로 창고같은 형태로 보존되어 곰팡이와 먼지와 거미집의 지배에 맡겨두었으므로 이 S 선생님의 편지도 줄곧 그대로 서랍 안에서 긴 잠을 자고 있게 된 것이었다.

그 후에 내 생활에는 여러가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관동대지진 덕에 대학에 지진연구소가 설립됨과 동시에 나는 학부와의 연을 끊고 연구소원으로 전직하여, 한동안은 공학부가 있는 교실의 가건물의 임시사무소에 출입하였고, 연구소의 본 건물이 오나성됨과 동시에 그 쪽으로 이사했다. 이리하여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는 사이에 어찌 된 일인지 원래 방 책상 서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요 근래에 ‘B교수의 추억’을 쓸 때에 문득 그 B교수의 편지를 떠올림과 동시에 그 서랍과 S 선생님의 편지를 떠올리게 된 것이지만, 지금은 이미 옛 교실 건물은 완전히 철거되어 버렸고, 옛 책상 같은 것이 어찌 되었는지 행방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서랍 속의 옛 편지같은 것을 찾아낼 실마리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실로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S 선생님의 편지 내용을 떠올려보려고 아무리 애를 서 봐도, 이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닌데 어린 나츠메 선생님이 어딘가의 담 위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끼얹어 골려주고는 했다고 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다. 즉 구체적인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그 편지의 전체적인 인상은 선생님이 처치곤란한 악동 중의 악동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이야 어쨌든 어린 시절의 나츠메 선생님이 당시의 S 선생님의 기억 속에서는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더 옛날에 쿠마모토 시절의 나츠메 선생님이 ‘아, S말인가’하고 말하면서 이상한 웃음을 보이신 것도 떠올리게 되어 거기에서 또 여러가지 재미있는 암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S 선생님이 살아계시기만 하다면 다시 한번 잘 여쭈어봐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이미 어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혹시 S 선생님의 유족 내지는 친밀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고 다닌다면 그 단편이라도 어쩌면 회수할 가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의 유족이나 혹은 제자들이 생각도 못한 방면에 묻혀있는 자료가 의외로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지금 수집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예로서 또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선생님과 잡담중에 ‘아무래도 자네의 고향 사람들은 핑계를 대기만 해서 까다로워 어쩔 수가 없다네’하고 반쯤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무래도 옛날 기숙사에서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 미조부치 신마(溝淵進馬), 오오하라 테마(大原貞馬)라는 세 명의 토사(土佐) 사람과 같은 방이셨던가 옆방이셨던가 계셨던 적이 있어서, 그 때 이 세명이 터무니 없이 큰 소리로 하룻밤 내내 토론만 해서 시끄러워서 곤란하셨다는 것이다.

이 세 분들에게 여쭤보면 혹시 뭔가 학생시절의 선생님의 일면을 그릴 수 있을 만한 일화라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마구치씨는 돌아가시고, 오오하라씨는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미조부치씨는 내가 중학교 시절에 ‘라셀라스[각주:1]’를 가르치신 선생님이시며, 그 후 줄곧 고등학교장으로 일하셨으나 이 분도 최근 돌아가셨다.

또 한가지, 내가 학생 시절에 신세를 진 긴자의 어느 상점의 양자가 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 사람의 본가는 우시고메(牛込[각주:2])의 키쿠이쵸(喜久井町[각주:3])에 있는데, 그 바로 옆 뒷집인가에 나츠메라는 집이 있었고, 어릴 적 일이라 그 나츠메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없지만 그 집의 모습 같은 것은 꿈처럼 기억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생각지 못한 인연으로 선생님의 생애의 일부와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이 아직 여러 곳에 얼마든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같이 선생님과 친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주의하지 않으면 어쨌든 우리들만이 접촉한 선생님의 세계의 일부분을 선생님의 전체 위에 덮어버리고는 우리들에게 좋도록 선생님을 멋대로 만들어버릴 우려가 있다. 의식적으로는 사리사욕 없는 진정(眞情)에서 그리 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선생님께 있어서는 기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선생님의 아군이 아니거나 적이었던 사람들의 방면에서도 숨겨진 전기자료를 얻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의 증언이 아군의 그것보다도 오히려 당사자의 미점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도 가끔은 있는 일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응용심리학 쪽에서 잘 연구되는 ‘증언의 심리’, ‘추억의 오류’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기초로 하여 그러한 자료의 정리를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리는 100년 후에도 할 수 있다. 자료는 하루 늦어지면 영원히 잊혀진다. 나는 이 기회에 나츠메 선생님에 과한 온갖 숨겨진 자료가 수집되어 기록되는 것을 갈망하여 마지 않을 따름이다.


(쇼와 10년 11월 『시소(思想)』)

  1. 새뮤얼 존슨의 소설 [본문으로]
  2. 신주쿠구의 지역명 중 하나 [본문으로]
  3. 도쿄도 신주쿠구에 위치한 쵸의 이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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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案内者)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딱히 어디로 가겠다고 정해진 곳이 없다. 그럴 때는 여행안내기 종류를 펼쳐 보면 혹은 해안, 혹은 산중의 호수, 혹은 온천같은 갈만한 곳이 이리저리 너무나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일단, 가령 온천이라면 온천으로 정해서, 온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각 온천의 수질이나 효능, 주위의 명승고적등을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져서 이번에는 온천 전문 안내서를 찾아내서 읽어본다, 그러면 우선 막연히 대략적인 짐작이 오게 되는데, 아무리 상세한 안내서를 열심히 읽어본들 결국 진짜 어떤 곳인지는 스스로 가보지 않으면 알 리가 없다. 혹시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집에서 책만 읽고 있으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좋다. 다음으로 만약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도, 사람에 따라서 말하는 게 다들 달라서, 누구의 권위를 믿는 것이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실컷 알아보고 나서는, 결국 대충 주사위라도 던지는 듯한 우연한 계기로 목적지를 어떻게든 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말하자면 아카데믹한 정통파라고 불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이렇게 하면 큰 실망이나 터무니없는 오산을 낳을 걱정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주요한 명승고적을 깜빡 빠트릴 염려도 없다.
  하지만 이것과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여행이 하고싶어지는 동시에 일단 주사위를 던져서 갈 장소를 정해버린다. 혹은 우연히 읽고 있던 시편이나 소설 속에서 감흥에 젖은 장소로 정해버린다. 그리고 안내기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발과 눈으로 자유롭게 마음가는대로 돌아다녀본다. 이 방법은 어쨌든 여러가지 실책이나 곤란을 일으키기 쉽다. 또 이른바 명승고적등의 바로 앞을 지나가면서도 모르고 놓쳐버리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위험이 많은 비정통파다. 이것은 함부로 일반인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하지만 안전한 전자의 방식에도 단점은 있다. 읽은 안내서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서 둥지를 틀고, 그것이 자신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밖으로 나간 자기 자신은 말하자면 고리짝 안에 밀어넣어진 듯한 형태가 되어, 결국 안내기나 말한 사람이 온천에 들어가거나 관광을 하거나 향락을 하거나 한 것과 같은 것이 될 염려가 있다. 물론 이것은 안내서나 가르쳐 준 사람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 사람은 물론 그걸로 좋다.
  하지만 그래서는 일부러 길을 나선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불완전하기는 해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밟아서 보는 경치, 밟은 대지와 자신이 직접 딱 통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을 맛보지 않으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쨌든 안내서나 남의 말을 무시하거나, 혹은 일부러 피하려 한다. 편리와 언전을 사기 위해 자기를 파는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별난 사람은 어떤가 하면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놓치기 십상인 대신 어떤 안내기에도 써져있지 않은 좋은 것을 찾아낼 기회가 있다.
  나는 옛날에 두세명 일행으로 영국의 어느 별궁을 구경갔을 적에, 그 중 한 명이 계속 한 손에 베데커[각주:1]를 펼쳐서 손에서 떼지 않고, 한 방 한 방 이것과 맞춰보면서 상세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 베데커는 꼼꼼하게 한번 읽어보았는지 이곳저곳에 색연필로 세심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 방에 갔을 때에는 거기에 있는 창문 앞으로 일행을 불러모아, 베데커 속의 한 줄을 가리키면서 “이 창에서 보면 경치가 좋다고 써져있다네”라고 말했다. 일동은 그런가 하고 이 놓쳐서는 안될 경치를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학자다운 철저한 아카데믹한 방식에 감탄한 것과 동시에, 왠지 거기에서 설명하기 힘든 부족함 혹은 일종의 허무함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왠지 이래서는 자신이 베데커의 편집자가 되어 그 교정이라도 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 창문이 이상한 집착의 그물을 내 머리 위에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에 관련된 역사나 전고(典故)등은 베데커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지만, 창문에서 보이는 전경의 좋고 나쁨 정도는 자기 눈으로 찾아내는 선택을 허락받고 싶은 듯 한 기분도 들었다.
  베데커라는 것이 없었을 때의 부자유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하지만 가끔씩은 최신간의 베데커에 속는 일도 아주 없지는 않다. 어느 도시의 대학을 찾아갔더니 거기가 어떤 관공서가 되어 있거나, 이름높은 음식점을 찾아냈더니 임대 안내가 붙어있거나 하는 일도 있다.
  엉터리 안내기라도 되면 그런 실패는 더욱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완전한 안내기를 바라는 것은 원래부터 무리한 일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 곤란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안내기가 없어도 곤란하지만, 있어도 곤란한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교토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쿠로다니(黒谷[각주:2]나 킨카쿠지(金閣寺[각주:3]같은 곳에 가면, 안내하는 어린 스님이 건물의 각 부분의 집물(什物) 들의 내력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그 일종의 특별한 리듬을 붙인 말투도 시골 촌놈인 내게는 신기했지만, 그보다도 그 설명이 매우 기계적이고 말하고 있는 사항에 대한 정서의 반응이 전혀 없어서, 설명자가 단순히 정해진 소리를 내는 기계인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 무척 드물게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에 본 보물이나 맹장지의 그림등은 이미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그 때의 안내자의 일종의 말투와 공허한 표정만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때 한가지 곤란했던 것은, 내가 예를 들면 어떤 기물(器物)이나 그림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느긋하게 보고싶어도, 안내자는 모든 물품에 평등한 시간을 배당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멍하니 있으면 그 사이에 성큼성큼 먼저 가 버려서, 그 사이에 나는 많은 볼만한 것을 놓쳐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건 상관 없다고 생각해도 그곳을 보고 나서 나중에 동행자들 사이에서 딱 내가 놓친 훌륭한 것에 대한 화제가 나왔을 때에, 왠지 조금 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피하기 어려웠다.
  학교 교육이나 이른바 참고서에 의해 얻는 지식은, 여러가지 면에서 여행안내기나 각 장소의 안내자에게서 얻는 지식과 닮은 면이 있다.
  혹시 학교같은 감사한 시설이 없고, 그리고 오직 완전한 독학으로 현대문화가 품고 있는 광대한 지식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 곤란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헤매고 목적지를 헤매, 쓸모없는 노력을 낭비할 뿐, 결국 목적지를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해가 저물어 버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것을 이제와서 다시금 여기서 고찰해 논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학교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 딱 안내자에게 이끌려 걷는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좀 더 파고들어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안내기가 상세하고 치밀하며 정확하면 할수록, 이것에 대한 신뢰감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우리는 안심하고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일 없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없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무심코 그 안내기에 기록되지 않은 옆길에 숨겨진 귀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기회가 매우 많은 것도 틀림없다. 그러한 손실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여러 사람이 고른 여러 안내기를 널리 참조하는 것이 좋다. 다만 곤란한 것은, 이미 있는 안내기의 내용을 그대로 적당히 이어 붙여서 만든 것 같은 안내기가 많다는 데에 있다. 이런것에 비하면, 오히려 오류 투성의 안내기라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저자의 체험을 재료로 한 것일 경우는, 의외로 어떤 참고가 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완전하더라도 결국 안내기이다. 아무리 읽고 암송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여행의 대신이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안내기가 계통적으로 완비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읽는 사람의 감흥을 끄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로, 오히려 자주 양립할 수 없는 듯 한 경향이 있다. 이른바 안내기의 무미건조함에 비해서 훌륭한 문학자의 자유로운 기행문 혹은 예리한 과학자의 정리되지 않은 관찰기는, 그것이 아무리 좁은 범위의 소재에 한정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약동하는 산 체험에서 나타나는 것은 직접 독자의 가슴에 스며들고, 그리고 설사 그것이 틀렸을 경우조차도 쓴 사람이 진정 바라는 혼(魂)만은 강렬하게 독자에게 호소하여, 독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비슷한 것에 불을 당긴다. 그리고 적혀 있는 내용과는 관계 없이 거기에 다뤄진 토지 그 자체에 대한 흥미와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전문 학술 참고서에서도 이것과 닮은 경우가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문헌을 널리 조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엔치클로페디나 핸드북 같은 종류의 것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지만, 좀 더 파고들어서 정말로는 어떤지 알고 싶어진다면 이미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개개의 오리지널 논문이나 저서를 봐야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참조용 서적의 대부분을 애써 처음부터 끝까지 만연히 통독하고 암송했다 한 들,, 이미 어떤 ‘주제’를 가지지 않은 학생에게 있어서는 극히 효과가 낮아서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기가 쉽다. 또 이런 것에서 주제를 골라내는 것도, 될 것 같으면서도 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에 비해 각각의 연구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기술한 논문이나 저서에는, 설사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 어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거기에서 얻는 암시는 읽는 사람의 자발적인 활동을 유발하는 신비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자 자산의 연구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자신의 전문 외의 주제에 관한 좋은 논문 등을 읽어 보는 것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안내기만 의지해서는 언제까지고 자기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내기를 완전히 무시하면,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웅덩이나 화구(火口)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에 관계 없이 교과서와 노트만을 의지하는 학생이 많은 한편에는 또 현대 기성의 과학을 무시했기 때문에 모처럼 낸 좋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결국 실패하는 발명가나 발견자도 가끔 나온다.

  명승고적의 안내자가 가장 곤란한 것은 뭔가 좀 쓸데없는 것을 보려고 하면 No time, Sir! 같은 말을 하며 끌고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제한이 있다고 보면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스스로 구경하는데는, 다시 한번 혼자서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고, 다만 이 때 앞의 안내자가 ‘방해’만 안 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안내자나 선도자 중에는, 자기의 권위에 대한 신념에서 산출된 친절함으로 각각의 여행자의 자유로운 관조를 억제하는 자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자가 특별한 흥미를 가진 대상 앞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을, 그런 건 보잘것없으니 볼 것이 못된다고 보살피는 경우도 있다. ‘볼 만 하다’와 ‘보잘것없다’가 명백히 ‘상대적’인 경우에는 이건 난처하다. 안내자가 선의로 그러는 만큼 더욱 난처하다. 이런 종류의 안내자는 그 전문 영역이 좁으면 좁을수록 많아 보이지만, 이것은 무리도 아니다. 자신의 ‘땅’이외의 것은 모두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안내자 입장에서 말하면, 그 이끌고 있는 피안내자에게 너무 신뢰받아도 곤란한 상황이 제법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든 충실하게 따라오는 건 좋지만, 설마했더니 화장실까지도 꾸물꾸물 따라와서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 틀림 없다.
  뉴턴의 광학(光學)이 파동설의 보급을 방해했다던가, 라플라스의 권위가 열의 기계론[각주:4]의 발달에 장애가 되었다던가 하는 것은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짊어져서는 이러한 대가(大家)들은 아마 저승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책임의 절반 이상은 그들의 권위를 맹종한 후일의 학도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요즘 상대성이론의 발견에 즈음해서 또 다시 뉴턴이 참고인으로 끌려나와서, 그의 절대론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뉴턴을 죄인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죄인은 오히려 다른 곳에 많이 있다. 말하자면 뉴턴은 진리의 전당의 첫 번째 문만을 열고 나서 죽어버렸다. 그의 피안내자는 제1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에 제2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은 드물었다. 마침내, 최근에 아인슈타인이 갑작스레 제2의 문을 걷어차 열고 그곳에 영롱히 빛나는 기하학적 우주의 궁전을 발견했다. 하지만 제1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제2의 문에 도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 다음의 제3의 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는 도저히 예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지의 문에 부딪쳐서 그것을 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시 안내자 등의 신세를 지지 않은 떠돌이 시골뜨기여야 한다. 제3의 문은 어떤 귄위있는 안내기에도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무심코 안내자 같은것이 되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쿠로다니나 금각사를 안내하던 어린 스님도, 처음 그 건축물이나 고기물(古器物)을 접했을 때는 아마 여러가지 깊은 감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모든 흥미가 증발해버려서, 안내문을 모조리 암기할 수 있게 됬을 때에는 물품 자체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없어진다. 남는 것은 단지 ‘말’ 뿐이다. 눈은 그 말에 덮여서 ‘물건’을 보지않는다. 그리하여 탄바(丹波[각주:5])의 산속에서 나온, 관람자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영상을 이제는 다시 인식할 때는 없어져 버린다. 이것은 실로 그 사람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이러한 사람은 단지 자신이 담당한 건축물이나 미술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종의 물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절에서 카노 에이토쿠(狩野永徳[각주:6])가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에 ‘카노 에이토쿠가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즉시 이 사람의 눈을 덮고 가려서, 눈 앞의 그림 대신에 자기 머릿속에 들러붙어 곰팡이가 낀 자기 절의 그림의 영상만이 비춰진다. 설사 그 머릿속의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래서는 곤란하다.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된다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
  직업적 안내자가 이러한 불행한 경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매일 설명하는 것을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고 이틀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이라도 뭐든 지금까지 찾아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런 노력은 괴롭다. 그것을 하지 않아도 오늘 당장은 곤란하지 않다. 거기에 안내자가 빠지기 쉬운 ‘동굴’이 있다.
  뉘른베르크의 고성(古城)에서, 거기에 수집되어 있던 옛날의 대단한 형구(刑具) 여럿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름높은 ‘아이제르네 융프라우(Eiserne Jungfrau[각주:7])’의 앞에서 설명을 하던 안내자가 마침 젊은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병약한 듯 하고 안색도 나빠서, 왠지 모르게 어두운 용모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 들 중 학생인듯한 남자가 ‘실례지만 당신은 매일 몇번이고 그런 무서운 내용을 입에 담고 있는데, 그 때문에 신경을 상하는 일은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뭐라고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소리를 내어 숨을 들이쉬고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꽤나 잔혹한 질문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리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이 여자도 매일 자신이 반복하는 말의 내용에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거리끼는 것 없는 남자의 질문에 비로소 잊고 있던 내용의 무서움과 그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직업의 불쾌함을 떠올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것과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가르칠 때 자주 자기가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고 있는 상투적인 것의 안쪽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어떤 것을 지적당해서, 직업과학자의 약점을 아슬아슬하게 관통당하는 기분이 드는 일이 없지도 않다.
  안내자가 될 사람은 상당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폴리에 관광을 간 김에, 그리 멀지 않은 포추올리(Pozzuoli)의 옛 화구와 그 안에 있는 분기공(噴氣孔)을 보러 갔다. 전차에서 내려서 베데커를 의지해서 찾아가려고 하니, 곧바로 한 명의 안내자가 쫓아와서는 자꾸만 권한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것 같은, 그리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다. 전혀 상대를 할 생각이 없는데 어디까지든 끈질기게 쫓아와서, 그리고 헐떡이면서 끈덕지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에 화를 낼만큼의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그 시끄럼움을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서 그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나빴다. 처음에 정했던 안내료 외에도 여러가지 구실로 조금씩 돈을 뜯어갔고, 안내자를 고용한 만큼의 효능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마사인지 뭔지의 뭉치를 밀랍으로 굳힌 횃불을 강매당해 가져갔는데, 분기공의 근처에 오니, 안내자는 그것에 불을 붙여 구멍 위에서 휘둘렀다. 그리고 ‘증기의 분출이 늘어났으니 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어떤 변화도 없는듯이 보였다. 그러자 그는 거기와는 꽤 떨어진 뒤쪽의 화구벽의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증기를 가리키며 ‘저렇다’고 했다. 하지만 횃불을 휘두르기 전에는 그것이 나오지 않았는지, 또 얼마나 나왔는지, 나는 전혀 몰랐으니까, 결국 이 횃불 실험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 ‘실험’이 아마 매일 여기서 벌어지고 구경꾼들 중 몇할인가는 그것에 납득할 것이라고 치면, 그 일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지식의 안내자라고 불리며, 권위자라고 불리는 사람중에는 역시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피안내자가 납득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의 이름을 빌어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의 눈을 속이려는 비과학적 실험을 행한 자가 서양에는 옛날부터 제법 있었다. 그러한 경우에는, 거의 정해진듯이, 평생 과학에 대해서 반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군중, 특히 신문등에 의해 기성과학의 권위가 의심받고, 그러한 ‘발견’에 냉담한 학자가 공격당한다. 하지만 과학자로서는 내용의 가능불가능이나 개연성의 다소를 기성과학의 계통으로 비추어서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으므로, 혹시 만에 하나 그 판단이 빗나갔다면 그것은 실로 새로운 발견이며 과학은 그 덕분에 현저히 진보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판단이 틀린 것은 반드시 그 과학자의 과학자로서의 치욕이 되지는 않는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과학이 한걸음 나아갔다는 것이 된다. 그런 식으로 진보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예상이 빗나가는 쪽이 과학자로서 타당한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별개로, 순수하고 성실한 과학자라도 역시 인간인 이상 천려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포추올리의 횃불과 비슷한 실험이나 이론을 남들에게 제시하지 않을거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람[각주:8]이 발전기를 만들었을 때 당시의 대가 아무개는 한편의 논문을 써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의 기계에서는 전류가 걱정없이 유출되었다. 그 후에 이 기계에서 전류가 발생한다는 쪽의 증명이 점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대가의 논문을 잘 읽어보면 무작정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헬름홀츠가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현재 비행기가 만들어졌지 않았는가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엉뚱한 웅변이다. 현재에도 장래에도 새 처럼 날개를 자기의 힘으로 움직여서, 단지 그것만으로 새처럼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안내자도 가끔 이것돠 닮은 오해에서 일어나는 비난을 맏을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안내자가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다’는 의미로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을 배로 건너고는 ‘이런 식으로 건널 수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은 아마 어느쪽도 나쁘던가 어느쪽도 나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다. 의사가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이다.
  하지만 온갖 오해를 예상해서 그것에 대비하는 것은 신이라도 되지 않으면 어렵다. 여기에도 안내자와 피안내자의 곤란이 있다.

  내가 신세를 진 포추올리의 안내자는 헤어질 때 또 여분의 술값을 보채면서 느긋하게 따라왔다. 그것을 참으며 상대를 안 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더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내뱉어서, 나도 ‘이탈리아인은 더욱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답하고는, 그대로 영원히 헤어졌다. 나도 좀 나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건 역시 지식의 안내자에겐 없다.
  생각해 보면 안내자가 되는 것도 피안내자가 되는것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곤란은 ‘안내자는 결국 안내자이다’는 자명한 도리를 잊기 쉽다는데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경치나 과학적 지식의 안내에서는 이러한 곤란이 있다. 더욱 다른 여러 정신적 방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인가. 이쪽에는 더욱 심한 곤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사안에 따라서는 오히려 간단해 질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신앙’이나 ‘애정’같은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 내가 말하고 있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게 되고 그것은 ‘스승’이 되고 ‘벗’이 된다. 스승이나 벗에게 이끌려 잘못되어 광야의 길을 헤매도 원한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타이쇼 11년 1월, 카이조(改造)


  1. 베데커가 발행한 여행안내서, 여행안내서의 대표격으로 쓰임. [본문으로]
  2.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의 별원(別院)중 한 곳 [본문으로]
  3. 로쿠온지(鹿苑寺). 교토에 위치한 절. 킨카쿠지는 통칭. [본문으로]
  4. 熱の機械論. 열역학? [본문으로]
  5. 지금의 교토 일부와 효고현 일부 [본문으로]
  6.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유명한 화가 [본문으로]
  7. 원문에는 鉄の処女에 アイゼルネユングフラウ라는 루비가 달려있음. 영어로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유명한 고문기구 [본문으로]
  8. 제노브 테오필 그람(Zénobe Théophile Gramme). 벨기에의 전기기술자, 공학자. 최초로 고전압직류발전기를 만들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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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수행기(ゴルフ随行記)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한참 전부터 M군이 골프를 하자고 권해왔는데, 다소의 유혹은 느꼈지만, 지금까지는 완강히 저항하며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한번 골프장에 같이 가서 견학만이라도 해 보라고 해서, 올해 6월 말의 어느 수요일 오전에 둘이서 코마고메(駒込[각주:1])에서 정액택시[각주:2]를 잡아서 아카바네(赤羽)[각주:3]의 링크로 나갔다. 마른장마로 대표되는 날씨로,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 요령부득하게 개어서 태양이 내리쬔다기보다도 오히려 공기 자체가 하얗게 빛나는 듯 한 날씨였다.

  진재(震災)전과 비교하여 오우지(王子[각주:4]) 아카바네 일대의 변모가 격심한 것에 놀랐다. 요즘의 도쿄 근교의 모습을 일신시킨 인자(因子)중에서도 가장 유효한 것이라면, 콘크리트 포장도로일 것이다. 도로에 흙이 얼굴을 보이고 있는 곳에는 근대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들 한다.

  아라카와 방수로(荒川放水路[각주:5])의 수량을 조절하는 근대과학적 갑문 위를 지나 둑을 몇 정(1정은 약 109m) 하류로 내려가서 오른쪽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왼쪽으로는 링크가 펼쳐져 있다.

  클럽 건물은 언젠가 슬쩍 본 적이 있는 아사카무라(朝霞村)의 건물 등과 비교하면 꽤나 검소한 목조 단층건물로, 어딘가 시골의 학교의 운동장에라도 있을법한 인테리어의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휴게실의 흙바닥의 벽면에 멤버의 명찰이 죽 늘어서 있다. 핸디캡의 수로 등급별로 나열되어 있다고 하는데, 역시 잘 하는 사람의 수가 적고,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니 신기하다. 칠판에 경기의 득점표 같은 것이 쓰여 있다. 1등부터 10등까지 상이 나온다. 그렇다면 즐거움이 많을 것 같다. 상품은 다음 일요일에 전달한다고 되어 있다.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싯적의 기쁨을 부활시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M부인이 도착하였으므로 슬슬 나간다.

  일대의 지면보다 한 단 높은 잔디 위에 작은 술잔의 밑을 뚫어 엎어놓은 것 같은 원추형의 받침을 놓고, 그 위에 그 하얗고 예쁜 볼을 올려놓고, 그것을 저 클럽의 머리로 후려치면 특유의 유쾌한 소리가 난다. 날아간 공이 이제 떨어지기 시작하나 했더니 오히려 치솟아간 다음 떨어지는 일이 있다. 부인의 공이 가끔 도중에서 오른쪽으로 커브를 그린다. 공이 빗나가서 둑의 경사면에 떨어지면 벌금이라고 한다.

  강변의 갈대 속에서 끊임없이 개개비가 울고 있다. 초원에는 왜소한 협죽도(夾竹桃)가 딱 한송이 새빨갛게 피어있다. 예쁘게 잘라놓은 잔디 속에 서서 정확히 사출되려하는 하얀 공을 응시하고 있으면 잔디 자체가 자신을 태우고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사병의 징조가 아닌 듯 하다. 어떤 비교의 척도도 없는 온통 녹색의 시계는 우리의 공간에 대한 감각 기관을 무능하게 하는 것 같다.

  도중부터 문과의 N군과 함께하게 되었다. 세명의 플레이가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각각 확실한 특징이 있어서 재미있다. 클럽과 공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으 음색까지 각각 다른듯한 느낌이 든다. 과학자인 M군은 인테그랄 이펙트를 노리는 착실한 전법을 취하고 있는 듯 하고, 프랑스문학의 N군은 에스프리와 엘랑의 황홀경을 바라고 드라이브 하고 있는 듯 하고, M부인의 공은 그 근대적 활달함과 명랑함이 있지만 역시 어딘지 여성다운 상냥함과 나긋나긋함을 지니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말버릇이 나쁜 N군이 M부인의 공을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자꾸 휘는데"라고 말했지만 곧바로 N군 자신의 공이 오른쪽으로 휘어 아라카와의 물속에 그 모습을 빠트렸다. 부인의 흉중도 스스로 평온을 얻은 것 같다.

  캐디가 종달새의 둥지를 발견했다. 초원의 한가운데에, 어떤 차폐물도 없이 무한한 하늘을 향해 개방된 둥지 안에는 귀여운 알이 다섯개, 그 달갈형의 큰 쪽의 정점을 위로 향하고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상단 쪽이 현저히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있다. 그 색이 짙어지면 곧 부화한다고 캐디가 말한다. 빨리 부화하지않으면 만일 누군가의 오른쪽으로 휜 공이 떨어져서, 이 귀여운 다섯 생명의 알은 동시에 으깨져버릴 것 같다. 둥지는 작은 소쿠리모양을 하고 있어서, 생각보다 정교한 세공이다. 이것이야말로 본능적 모성애가 낳은 천연의 예술일 것이다.

  아라카와가 갑자기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더니, 코스가 어느새 180도 회전해서 귀환길이 되었다.

  캐디가 세명, 한명은 스마트하고 한명은 명랑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둘 모두 목덜미의 피부가 구릿빛으로 멋지게 물들어있다. 다른 한 명은 왠지 기운이 없어보이고 목덜미도 그다지 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물어보니 아직 신참이라는 것 같다. 아직 신참조차도 되지 않은 내 얼굴이 그 날 어땠는지는 나는 모른다. 피곤하지는 않은지 세명이 여러번 물었다.

  이 캐디같은 환경에 놓인 소년은 예를 들면 옛날 혼고 아오키당(本郷青木堂[각주:6])의 어린 점원처럼 대개 묘하게 약삭빨라지는 법이지만, 여기의 아이들은 그런 느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링크의 손님이 대체로 수수하고 성실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많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 캐디 중 한명이 링크의 연못에서 붕어를 한마리 잡아서, 볼을 씻는 사각 수통 안에 넣어놓고, 한바퀴 돌고 온 후에 꺼내러 왔더니 이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느긋한 세상에서조차도, 자기 손으로 확실히 잡고있지 않는 한 사유물의 소유권은 확정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 자기 실력 외에 믿을만 한 재산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골프도 계속 보고 있으니 제법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듯 하다. 적어도, 단순히 봉의 머리로 공을 때려서 날리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 겨우 한시간 반동안의 견학으로 잘 안 듯한 느낌이 든다. 이날 M군,N군의 해설을 들은 것으로만 생각해봐도, 모든 예도(藝道)에 공통되는 요령이 골프의 기술에도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의 자유, 풍류인 듯 하다.

  인간이 공을 날리거나 굴리거나 하는 유희의 종류가 대체 어느정도인지 셀수가 없을 정도로 있다고 한다. 근대적인 것이라도 골프 외에 테니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이 있고, 지금은 유행하지 않는 크리켓, 크로케나, 실내용으로는 탁구, 당구 그리고 예의 코린트 게임까지 있다. 옛날 일본에서도 테마리(手鞠[각주:7])나 다큐(打毬[각주:8])나 축국(蹴鞠[각주:9])은 꽤 오래되었다는 것 같다.

  인간뿐인가 하고 생각하면, 고양이 등이 기쁘게 종이를 뭉친 볼을 굴리는 것이, 어떤 직접적 이득이 되는 목적이 있어서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역시 스포츠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쥐를 잡거나 할 때에 필요한 운동의 민활함을 수련하는데에 유효할지도 모른다. 가축의 똥을 뭉쳐서 볼을 만들어 굴리는 쇠똥구리가 있다. 그것은 생활의 자원를 운반하는 노동이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보면 일종의 구기이다.

  물개는 코 끝에 공을 올려놓는 곡예가 능란하다. 그것은 이 동물에게 있어서는 그저 주인인 조련사에게 포상으로 신선한 생선 한마리를 받기 위한 노동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락을 위해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관객의 눈에는 훌륭한 하나의 구기로 감상될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동물에게 그러한 곡예를 습득할 수 있는 소질이 어째서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연속의 생활에 어떤 이것과 닮은 소행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동물의 경우에는 그들의 구기는 직접간접적으로 먹기 위한 노역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구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별개로, 보통은 어쨌든 비생산적인 유희이며, 일상생활의 일에서의 애보케이션(avocation)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로 간단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여러가지 공을 가지고 놀게 된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에는, 더욱 깊고 근원적인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인간의 문화의 서광시대(曙光時代)에 우리의 선조의 또 선조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과 인과의 연쇄 속에 살짝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상이 일어나지 못할 것도 없다.

  혹시나,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옛날에는 배를 채우기 위해 사용되었던 공이 지금은 배를 고프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셈이다.

  아카바네의 링크 한나절의 청유(淸遊)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액택시에 흔들리는 중에 이런 공상이 백일몽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덧붙여서,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동물계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다만 '연기'를 만들어서 그것을 들이마시는 곡예만은 완전히 인간에게 한정된 것 같다. 그러니 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 고유의 향락과 위안에 자원을 공급하는 전매국의 일은 이 점에서 가장 독자적인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전매국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당사자가 점점 연초에 관한 과학적 예술적 내지는 경제적 연구를 진행하여, 지금보다도 더욱 우량한 연초가 한층 염가에 공급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쇼와 9년 8월 '전매협회지(専売協会誌)')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42259.html

  1. 도쿄 토시마구(東京都豊島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2. 엔택(円タク). 요금 1엔으로 대도시의 시내를 달린 균일요금 택시. [본문으로]
  3. 도쿄도 키타구(東京都北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4. 도쿄도 키타구(東京都北区)에 위치함 [본문으로]
  5. 아라카와 중 인공하천 부분. [본문으로]
  6. 도쿄도 분쿄구(東京都文京区) 혼고 지역에 있었던 양과자점 [본문으로]
  7. 손으로 치며 노는 공, 그 놀이 [본문으로]
  8. 타구. 두 패로 나뉘어 말을 타고 달리며 하던 공놀이. 한국의 격구?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케마리(けまり)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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