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신사(香水紳士)

오사카 케이키치(大阪圭吉)


1
  시나가와(品川[각주:1])역에서 바로 앞 자리에, 그 제멋대로인 손님이 타자, 쿠루미씨(クルミさん)는 완전히 기운을 잃고 말았다.
  “오늘은 아주 날씨가 좋으니까, 코우즈(国府津[각주:2])에 계시는 숙모 댁에서는 후지산가 아주 잘 보여요.”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기쁘게 집을 나왔을 때의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 좌석의 구석에 웅크린 채 완전히 기가 죽어서, 창문 너머로 뒤쪽으로 지나가는 교외에 가까운 거리의 지붕들을, 풀이 죽은 채 지켜보는 것이었다. 
  도쿄역 출발 오전8시 25분의, 이토(伊東[각주:3])행 보통열차다.
  그 열차의 삼등차의, 구석자리의 좌석에, 쿠루미씨는 딱딱하게 굳어서 앉아있는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객차 안에는 신록(新綠)이 온 하코네(箱根)나 이즈(伊豆)로 나가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다.
  하지만 쿠루미씨는 하코네나 이즈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훨씬 가까운 코우즈의 숙모님 댁에 가는 것이었다.
  코우즈의 숙모님 댁에는 사촌언니인 노부코(信子)씨가 있다. 노부코씨는 쿠루미씨보다 다섯살 연상인 21세로, 이달 말에 결혼한다. 쿠루미씨는 일요일을 이용해서 처녀시절의 노부코씨에게 작별과 축하를 전하는 것도 겸해서 숙모님 댁으로 가는 것이었다.
  객차의 선반 위의 보자기 안에는 엄마가 부탁한 축하선물이 들어있다. 어젯 밤, 엄마와 둘이서 신주쿠(新宿)에 나가서 마련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때 같은 가게에서 엄마는 모르도록 자신만의 축하선물이라는 의미로 산 물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쿠루미씨의 제복 주머니 안에 몰래 숨겨 놓았다.
  귀여운 빨간 리본을 묶은, 작고 아름다운 세공이 된 나무상자에 들어가 있는 향수였다.
  “뭔가 나만의 축하선물을 주고싶어……”
  라고 생각하여,
  “뭘로 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떠오른 물건이었다.
  “이거, 내가 준비한, 축하 선물……”
  그렇게 말하고, 살짝 노부코씨에게 전달할때의 즐거움을, 어젯 밤 부터 가슴속에 그리고 있던 쿠루미씨였다.
  그 향수의, 귀여운 나무상자와 함께, 쿠루미씨의 주머니 안에는 츄잉껌과 캐러멜이 들어있었다. 즐거운 잠깐의 여행을 즐기기 위한 준비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쿠루미씨는, 오늘의 코우즈행을 이미 사흘이나 전부터 밤에도 잠들지 못할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아침이 되었을 때는, 이미 밥도 제대로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안돼요, 쿠루쨩. 밥은 잘 먹고 가야지…”
  어머니가 그렇게 타일러도,
  “그래도 먹고싶지 않은걸요. 혹시 배가 고파지면, 오오후나(大船[각주:4]에서 샌드위치를 살거에요. 그곳의 샌드위치, 정말 맛있는걸요.”
  “어머, 정말 깜찍하기도 하지. 어디서 그런 걸 들었니?”
  “정말, 무슨 소리세요. 작년 여름에 카마쿠라(鎌倉)에서 돌아올 때, 엄마가 사 주셨잖아요…”
  그래서 일찍 집을 나와, 들뜬 마음으로 도쿄역에 온 쿠루미씨다.
  일요일이라, 열차는 상당히 붐볐지만, 그래도 객실의 가장 구석자리에, 아직 아무도 않지 않은 훌륭한 박스석을 발견했다.
  가장 구석자리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쿠루미씨를 기쁘게 했다.
  “여기라면 껌을 씹든 샌드위치를 먹든 부끄럽지 않을거야”
  마음껏, 한시간 반의 짧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창가의 자리를 잡아서, 유리창을 힘껏 밀어서 연다. 그러면 기분 좋은 5월의 산들바람이, 장난을 치듯 흘러들어온다.
  이윽고, 벨이 울리고,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쿠루미씨의 즐거운 짧은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고 1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열차가 시나가와 역에 멈추자, 쿠루미씨의 박스로 한 사람의 동승객이 끼어들어왔다. 그리고 그 손님 덕에, 순식간에 쿠루미씨는 완전히 풀이 죽어서 좌석 구석에서, 웅크려버린 것이었다.

2
  그 손님은, 나이는 40전후의, 눈매가 묘하게 날카로운, 얼굴도 몸도 몹시 큰, 양복을 입은 신사였다.
  중절모를 깊숙히 눌러 쓰고, 쥐색 스프링 코트 주머니에, 왠지 오른손을 계속해서 찔러넣은 채였다.
  처음에, 신사는 객차로 들어오더니, 통로에 선 채로 재빨리 객차 안을 둘러본 다음, 아직 다른데도 자리가 있는데도 문득 쿠루미씨 쪽을 보더니, 제법 만족한듯한 표정을 잠깐 보이고는, 곧바로 다가와서, 쿠루미씨의 눈 앞 자라에, 큰 몸을 사양하지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쿵 앉은 것이었다.
  그리고 웃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마치 가면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쿠루미씨의 얼굴을, 몸을 유심히 보았다.
  모자는 쓴 채로,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이다.
  쿠루미씨는 오싹해져서 몸을 웅크리고는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열차는 어느새 신록으로 가득 찬 오오모리(大森[각주:5])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하늘은, 멋지도록 맑은 날씨다.
  보통때라면, 이미 이 쯤에서, 슬슬 츄잉껌을 씹기 시작했을텐데, 지금은 그럴수도 없다.
  “모처럼 생긴 즐거움도, 이래서는 완전히 엉망이야”
  쿠루미씨는, 옆얼굴 쪽에 신사의 기분나쁜 시선을 느끼면서, 몰래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신사는 쿠루미씨에게서 얼굴을 돌리고는, 창쪽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코트의 왼쪽 주머니에서 왼손으로 신문을 꺼내더니, 여전히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부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신문을 펼쳐서, 그것을 얼굴 위에 덮듯이 하면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창 밖을 보고 있어도, 쿠루미씨는 그 동작을 잘 알 수 있었다.
  가끔, 창밖에서 흘러들어온 상쾌한 바람을 맞아, 신문이 펄럭펄럭 운다. 그러면 신사는, 그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이쪽을 보는 듯 했다.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
  쿠루미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왠일인지 묘하게 몸이 움츠러들어서 손이 나가질 않는다. 애당초 이 신사가 끼어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 몸을 한번도 안 움직인 쿠루미씨다. 게다가 창문을 닫으려고 하면 어쨌든간에 신사의 머리 뒤로 한 손을 가져가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신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으로 밖을 보고 있던 쿠루미씨에게 뭐라 하지도 않고 거친 기색으로 유리창을 닫아버렸다.
  쿠루미씨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신사의 언짢은 기분이, 쿠루미씨의 마음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또 다른 큰 이유가 있었다. 쿠루미씨는, 신사의 오른손을,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시차의 창문을 닫을때는, 반드시 양손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지금 일어난 신사도 이 때 처음으로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양손으로 창문을 닫은 것인데, 딱 그 오른손이 창 밖을 보고 있는 쿠루미씨의 얼굴 앞에 와서 멈췄다. 하지만 창문이 닫히자, 재빠르게 신사는 그 손을 빼서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방금 전의 자세로 돌아가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쿠루미씨는 신사의 오른손을 보고 말았다.
  그 손은 중지가 뿌리부터 없어서, 네 손가락이었다.
  “아, 상이군인이실까?”
  순간, 쿠루미씨는 그렇게 생각하여,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혹시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소녀일까! 그런 훌륭한 분과 동석한 것을 유쾌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곧바로 쿠루미씨의 머릿 속에는 뭉게뭉게 하나의 의혹이 떠올랐다.
  “하지만, 혹시 군인아저씨라면 어째서 그 훌륭한 부상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감추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만약 군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상처를 입은 분이라고 해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숨길 리는 없다.
  쿠루미씨는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전보다도 더 몸이 조이는 느낌이 들어, 더욱 웅크려서, 창문 너머로, 한동안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3
  얼마 가지 않아 열차는 요코하마를 통과했다.
  “어쩌면 요코하마에서 내릴지도 몰라”
  그렇게 몰래 마음 속에서 생각했던 쿠루미씨의 바람도, 완전히 배신당해서 신사는 여전히 쿠루미씨의 눈앞에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읽고 있던 신문을 모자를 쓴 채로 얼굴 위에 올려놓은 채, 아무래도 졸기라도 시작한 듯, 가벼운 코골음이 들려온다. 이런 식이라면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코우즈보다도 먼, 오다와라(小田原[각주:6])나 아타미(熱海[각주:7]) 근처까지 갈지도 모른다.
  쿠루미씨는, 결국 포기해버렸다.
  “이러면 이미, 오오후나의 샌드위치도 못 먹게 되어버렸어.” 신사는 졸고있는 듯 하니까, 샌드위치를 산다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소리를 내서 깜빡 눈이라도 뜬다면 오히려 난처하다.
  쿠루미씨는, 살짝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츄잉껌도 캐러멜도 아직 그대로 있다.
  쿠루미씨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밖을 보았다.
  창 밖은 상쾌한 신록으로 감싸인 쇼난(湘南[각주:8])의 산야가, 아름다운 5월의 태양빛을 받으면서, 마치 축음기의 레코드처럼 빙글빙글 끝도 없이 전개되어간다. 그런 경치를 바라보면서, 쿠루미씨는 어떻게든 자신의 기분을 북돋아서 오늘 아침의 기운을 되찾으려고 노력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북돋아지기는 커녕, 이 때 오히려 별건 아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까부터, 조금씩 미끄러지고 있던 신사의 얼굴 위의 신문이, 이 때 버석하고 소리를 내며 신사가 옆으로 앉아있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쿠루미씨는 철렁했다.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며 신사의 얼굴과 신문을 번갈아보았다.
  물론 이대로 그냥 두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 때 쿠루미씨는 무심코 움찔했다.
  신사의 얼굴은, 뒤쪽의 등받이와 창틀 사이로 끼어들어가듯이 해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모자가 앞으로 미끄러져서, 절반쯤 감추어져 있지만, 그것은 아까 그대로의 얼굴이다. 쿠루미씨가 놀란 것은 그 얼굴이 아니라 떨어진 신문 쪽이다. 그 신문은, 떨어진 기세로 뒤집혀서, 아까까지 신사가 열심히 읽고 있던 면이 나와 있는 것이다. 쿠루미씨는 정말 아무생각 없이 그 신문을 본 것이지만, 무심코 움찔해서, 자칳 소리를 낼 뻔 했다.
  그것은 3면 기사로, 오른쪽 위의 지면에, 다음과 같은 무서운 문자가 커다란 활자로 인쇄되어있었다.

    복면의 강도, 오늘 새벽 시부야의 XX은행을 덮쳐서 은행의 돈을 강탈하여 달아나

  그것이 표제였고, 그 다음으로 작은 문자가 몇줄이나 이어지고, 그리고 다시 전보다는 좀 작은 문자지만, 한층 두려운 제2의 표제가 인쇄되어 있었다.

    범인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로, 중지가 없는 네 손가락의 오른손이 가장 큰 특징, 범인이 흉기를 들이댔어도 침착했던 숙직원의 관찰

  쿠루미씨는, 갑자기 눈앞이 어질어질해져서, 무심코 등받이에 기대고 말았다.

4

  어쩜 이렇게 무서운 일이!
  몸 속의 피가 두근두근 역류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묘하게 몸이 긴장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움직일 수도 없다.
  “잘못 본거면 좋을텐데!”
  쿠루미씨는 열심히 자신을 내리눌렀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뭉게뭉게 두려운 생각이 떠올라왔다.
  ─그래, 양복을 입은 사람은 어디에도 있고, 덩치가 큰 남자도 몇명이 있을지 몰라. 그리고 중지를 상처입어 잃은 분도 넓은 도쿄에는 몇명이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세가지 특징이 셋 모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게다가 이 신사는 극단적일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네 손가락의 오른손을 숨기고 있잖아! 그러고보니 객차에 들어왔을 때의 태도도 굉장히 이상했어!”
  쿠루미씨는 덜덜 몸을 떨었다.
  ─아마 이 신사는 처음 객차에 들어왔을 때,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고 쿠루미씨 한사람 뿐인 이 자리를 발견하고, 상대를 소녀라고 얕잡아봐서 그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을 것이 틀림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젯 밤 그런 무서운 일을 해서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아타미나 하코네로 도망가는 도중에 그만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쿠루미씨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바로 눈 앞의 신문기사에 의하면, 범인은 흉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멍청하게 소리라도 냈다간, 어떤 꼴이 될지 모른다.
  “몰래 차장님께 알려볼까?”
  하지만 그런 것을 했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상대가 그처럼 무서운 남자라면 오히려 소란을 피워서 평화로운 승객들 사이에서 실수라도 일어난다면 그쪽이야말로 큰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미 쿠루미씨는 돌처럼 굳어버려서 소리를 내고 싶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굳은 채로, 조심조심 다시 한번 신문을 본다.
  “침착한 숙직원의 관찰”
  이라는 표제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조금은 쿠루미씨의 마음 속에 밝은 것이 보였다.
  “그래, 침착해야 해”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며, 과감히 신사의 얼굴을 본다.
  졸던 것이 완전히 잠들어버린 것 같다.
  열차는, 어느새 몇개인가 역을 통과해서, 점점 코우즈에 가까워져 간 것 같다.
  문득, 쿠루미씨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말하기 힘든 분함이 솟아오르는 것을 자각했다.
  생각해보니, 큰 일이 되어버렸다. 모처럼 즐거워야 할 여행이 덕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모르는 어른과 동석은, 보통 사람이라도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았던 오늘의 여행에, 하필이면 두려운 도적신사와 합승이라니! 문득 사이 쿠루미씨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 이 객차 안에 이런 두려운 신사가 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만이 알고 있다. 이대로 모르는 척 하고 코우즈에 내려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자신같은 소녀의 몸으로, 이렇게 떨고 있는 듯 겁을 먹고 있는데,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멀리, 마츠하라(松原) 너머로 본 적이 있는 코우즈의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슬슬 짐을 내려놓아야 해.”
  급히 정신을 차리고 쿠루미씨는 과감히, 조용히 일어났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마치 꿈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아서, 좀처럼 선반의 보자기꾸러미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윽고 내릴 수 있었다.
  신사는 여전히 졸고 있다.
  이 때, 출하 선물이 들어가 있는 그 보자기꾸러미를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서 문득 쿠루미씨의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번뜩였다. 그러자, 전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쿠루미씨의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눈은, 갑자기 생기있게 빛났다.
  잠시간 쿠루미씨는 어찌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창 밖으로 코우즈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쿠루미씨는 제복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빨간 리본이 묶인, 작고 예쁜 나무상자를 꺼냈다.
  그것은, 노부코씨를 축하하려고 몰래 사 온 그 향수였다.
  쿠루미씨는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은 손놀림으로, 덜덜 떨면서도 그 아름다운 리본을 풀고, 레테르를 떼고,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고, 안에서, 둥글고 귀여운 향수의 병을 꺼내서, 그 마개의 봉인을 뜯었다.
  쿠루미씨는 조용히 몸을 숙였다.
  마개를 뺀 향수병을 졸고있는 신사 쪽으로, 두근두근 떨면서 내밀고, 내밀었나 싶더니 재빨리 병 입구를 아래로 기울여서, 신사의 양복에, 아까운 기색도 없이 줄줄 내용물을 흘려버렸다.
  열차는, 코우즈역에 멈췄다.
  아직도 잠들어있는 신사를 남긴 채, 쿠루미씨는 열차를 뒤로 했다. 그리고 역을 나와서는, 마치 불이라도 지른 것 같은 긴장된 얼굴을 하고, 바로 역 앞의 파출소의 앞에 섰다.

5

  쇼난에서 이즈의 마을들에 걸쳐서, 경찰전화가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오다와라에서 이토에 이르는 열한 정거장의 출구에는, 날카로운 눈을 한 사복의 경찰아저씨들이 눈이 아니라, 코를 벌름벌름 거리면서, 마치 여행객같은 모습으로 살짝 서기 시작했다.
  여기는 아타미 역이다.
  오전 10시 46분, 이토행 열차가 도착하자, 많은 승객들이, 넓은 플랫폼으로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한명의 이상한 신사가─전신에 굉장한 향수 냄새를 확 풍기는 신사가 오른손을 스프링 코트의 주머니에 넣은 채, 왠지 대단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고, 코를 벌름벌름 거리면서 사람들 사이를 헤치듯이 하며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신사가 발산하는 강하고 격렬한 향기를 맡고, 놀란듯이 멈추어 서서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혹은 질린듯한 얼굴을 하고 신사를 되돌아보고 눈으로 쫓았다.
  그러자 신사는 결국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면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빠른 걸음이 되었다.
  그러자 그 몸에서 나오는 향기는 스스로 일으킨 바람을 타고, 더욱 더 퍼져서, 한층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서서, 이상한 듯 신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사는 울 것 같이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갑자기 이번에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더욱 심하게 당황하기 시작하여 당황한 발걸음으로 플랫폼에서 지하도로, 지하도에서 역 출구로, 때마침 불어온 상쾌한 5월의 산들바람에, 정차장 전체에 때아닌 향수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면서 뛰쳐나갔다.
  이런 신사가, 역의 출구에서 아까부터 코를 벌름벌름거리면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아저씨들을 속일 수 있을 리는 없다. …

  그날 밤, 도쿄의 집으로 돌아온 쿠루미씨에게, 경시청의 높은 경찰아저씨와, XX은행의 지배인, 그리고 신문사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진을 찍히거나 여러가지 질문을 받거나 한 후에, 은행의 지배인이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 덕에 우리 은행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뭔가 사례를 하고 싶은데, 무엇을 바라나요?”
  그러자 쿠루미씨는 잠깐 망설였지만, 살짝 말했다.
  “그런가요? 그러면, 모처럼이니까, 제가 써 버린 그 향수를 사 주실 수 있나요? 왜냐하면 저, 그 물건을 사촌 언니인 노부코씨에게 선물할 생각이었거든요.”
  “아니아니, 아가씨. 우리는 더 많은 사례를 하고싶어요. 그건 그렇고, 자, 뭐든지 좋으니 바라는 다른 것을, 한가지 더 말씀해보세요.”
  그러자, 쿠루미씨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는, 부끄러운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면, 저,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요”

(끝)

  1. 지금의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역의 이름 [본문으로]
  2. 현재의 카나가와현(神奈川県) 오다와라시(小田原市)에 있는 지명 [본문으로]
  3. 현재의 시즈오카현 동부에 위치한 시 [본문으로]
  4. 카나가와현 카마쿠라시(鎌倉市)에 있는 지역의 이름. [본문으로]
  5. 도쿄도 오오타구(東京都 大田区)에 있는 지명 [본문으로]
  6. 카나가와현 서부에 있는 시 [본문으로]
  7. 시즈오카현에 있는 시, 카나가와현과 접해있음 [본문으로]
  8. 카나가와현 사가미만(相模湾)의 연안지방을 일컫는 말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