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자(案内者)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딱히 어디로 가겠다고 정해진 곳이 없다. 그럴 때는 여행안내기 종류를 펼쳐 보면 혹은 해안, 혹은 산중의 호수, 혹은 온천같은 갈만한 곳이 이리저리 너무나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일단, 가령 온천이라면 온천으로 정해서, 온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각 온천의 수질이나 효능, 주위의 명승고적등을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져서 이번에는 온천 전문 안내서를 찾아내서 읽어본다, 그러면 우선 막연히 대략적인 짐작이 오게 되는데, 아무리 상세한 안내서를 열심히 읽어본들 결국 진짜 어떤 곳인지는 스스로 가보지 않으면 알 리가 없다. 혹시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집에서 책만 읽고 있으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좋다. 다음으로 만약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도, 사람에 따라서 말하는 게 다들 달라서, 누구의 권위를 믿는 것이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실컷 알아보고 나서는, 결국 대충 주사위라도 던지는 듯한 우연한 계기로 목적지를 어떻게든 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말하자면 아카데믹한 정통파라고 불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이렇게 하면 큰 실망이나 터무니없는 오산을 낳을 걱정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주요한 명승고적을 깜빡 빠트릴 염려도 없다.
  하지만 이것과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여행이 하고싶어지는 동시에 일단 주사위를 던져서 갈 장소를 정해버린다. 혹은 우연히 읽고 있던 시편이나 소설 속에서 감흥에 젖은 장소로 정해버린다. 그리고 안내기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발과 눈으로 자유롭게 마음가는대로 돌아다녀본다. 이 방법은 어쨌든 여러가지 실책이나 곤란을 일으키기 쉽다. 또 이른바 명승고적등의 바로 앞을 지나가면서도 모르고 놓쳐버리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위험이 많은 비정통파다. 이것은 함부로 일반인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하지만 안전한 전자의 방식에도 단점은 있다. 읽은 안내서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서 둥지를 틀고, 그것이 자신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밖으로 나간 자기 자신은 말하자면 고리짝 안에 밀어넣어진 듯한 형태가 되어, 결국 안내기나 말한 사람이 온천에 들어가거나 관광을 하거나 향락을 하거나 한 것과 같은 것이 될 염려가 있다. 물론 이것은 안내서나 가르쳐 준 사람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 사람은 물론 그걸로 좋다.
  하지만 그래서는 일부러 길을 나선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불완전하기는 해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밟아서 보는 경치, 밟은 대지와 자신이 직접 딱 통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을 맛보지 않으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쨌든 안내서나 남의 말을 무시하거나, 혹은 일부러 피하려 한다. 편리와 언전을 사기 위해 자기를 파는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별난 사람은 어떤가 하면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놓치기 십상인 대신 어떤 안내기에도 써져있지 않은 좋은 것을 찾아낼 기회가 있다.
  나는 옛날에 두세명 일행으로 영국의 어느 별궁을 구경갔을 적에, 그 중 한 명이 계속 한 손에 베데커[각주:1]를 펼쳐서 손에서 떼지 않고, 한 방 한 방 이것과 맞춰보면서 상세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 베데커는 꼼꼼하게 한번 읽어보았는지 이곳저곳에 색연필로 세심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 방에 갔을 때에는 거기에 있는 창문 앞으로 일행을 불러모아, 베데커 속의 한 줄을 가리키면서 “이 창에서 보면 경치가 좋다고 써져있다네”라고 말했다. 일동은 그런가 하고 이 놓쳐서는 안될 경치를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학자다운 철저한 아카데믹한 방식에 감탄한 것과 동시에, 왠지 거기에서 설명하기 힘든 부족함 혹은 일종의 허무함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왠지 이래서는 자신이 베데커의 편집자가 되어 그 교정이라도 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 창문이 이상한 집착의 그물을 내 머리 위에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에 관련된 역사나 전고(典故)등은 베데커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지만, 창문에서 보이는 전경의 좋고 나쁨 정도는 자기 눈으로 찾아내는 선택을 허락받고 싶은 듯 한 기분도 들었다.
  베데커라는 것이 없었을 때의 부자유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하지만 가끔씩은 최신간의 베데커에 속는 일도 아주 없지는 않다. 어느 도시의 대학을 찾아갔더니 거기가 어떤 관공서가 되어 있거나, 이름높은 음식점을 찾아냈더니 임대 안내가 붙어있거나 하는 일도 있다.
  엉터리 안내기라도 되면 그런 실패는 더욱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완전한 안내기를 바라는 것은 원래부터 무리한 일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 곤란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안내기가 없어도 곤란하지만, 있어도 곤란한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교토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쿠로다니(黒谷[각주:2]나 킨카쿠지(金閣寺[각주:3]같은 곳에 가면, 안내하는 어린 스님이 건물의 각 부분의 집물(什物) 들의 내력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그 일종의 특별한 리듬을 붙인 말투도 시골 촌놈인 내게는 신기했지만, 그보다도 그 설명이 매우 기계적이고 말하고 있는 사항에 대한 정서의 반응이 전혀 없어서, 설명자가 단순히 정해진 소리를 내는 기계인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 무척 드물게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에 본 보물이나 맹장지의 그림등은 이미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그 때의 안내자의 일종의 말투와 공허한 표정만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때 한가지 곤란했던 것은, 내가 예를 들면 어떤 기물(器物)이나 그림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느긋하게 보고싶어도, 안내자는 모든 물품에 평등한 시간을 배당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멍하니 있으면 그 사이에 성큼성큼 먼저 가 버려서, 그 사이에 나는 많은 볼만한 것을 놓쳐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건 상관 없다고 생각해도 그곳을 보고 나서 나중에 동행자들 사이에서 딱 내가 놓친 훌륭한 것에 대한 화제가 나왔을 때에, 왠지 조금 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피하기 어려웠다.
  학교 교육이나 이른바 참고서에 의해 얻는 지식은, 여러가지 면에서 여행안내기나 각 장소의 안내자에게서 얻는 지식과 닮은 면이 있다.
  혹시 학교같은 감사한 시설이 없고, 그리고 오직 완전한 독학으로 현대문화가 품고 있는 광대한 지식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 곤란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헤매고 목적지를 헤매, 쓸모없는 노력을 낭비할 뿐, 결국 목적지를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해가 저물어 버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것을 이제와서 다시금 여기서 고찰해 논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학교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 딱 안내자에게 이끌려 걷는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좀 더 파고들어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안내기가 상세하고 치밀하며 정확하면 할수록, 이것에 대한 신뢰감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우리는 안심하고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일 없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없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무심코 그 안내기에 기록되지 않은 옆길에 숨겨진 귀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기회가 매우 많은 것도 틀림없다. 그러한 손실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여러 사람이 고른 여러 안내기를 널리 참조하는 것이 좋다. 다만 곤란한 것은, 이미 있는 안내기의 내용을 그대로 적당히 이어 붙여서 만든 것 같은 안내기가 많다는 데에 있다. 이런것에 비하면, 오히려 오류 투성의 안내기라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저자의 체험을 재료로 한 것일 경우는, 의외로 어떤 참고가 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완전하더라도 결국 안내기이다. 아무리 읽고 암송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여행의 대신이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안내기가 계통적으로 완비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읽는 사람의 감흥을 끄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로, 오히려 자주 양립할 수 없는 듯 한 경향이 있다. 이른바 안내기의 무미건조함에 비해서 훌륭한 문학자의 자유로운 기행문 혹은 예리한 과학자의 정리되지 않은 관찰기는, 그것이 아무리 좁은 범위의 소재에 한정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약동하는 산 체험에서 나타나는 것은 직접 독자의 가슴에 스며들고, 그리고 설사 그것이 틀렸을 경우조차도 쓴 사람이 진정 바라는 혼(魂)만은 강렬하게 독자에게 호소하여, 독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비슷한 것에 불을 당긴다. 그리고 적혀 있는 내용과는 관계 없이 거기에 다뤄진 토지 그 자체에 대한 흥미와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전문 학술 참고서에서도 이것과 닮은 경우가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문헌을 널리 조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엔치클로페디나 핸드북 같은 종류의 것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지만, 좀 더 파고들어서 정말로는 어떤지 알고 싶어진다면 이미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개개의 오리지널 논문이나 저서를 봐야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참조용 서적의 대부분을 애써 처음부터 끝까지 만연히 통독하고 암송했다 한 들,, 이미 어떤 ‘주제’를 가지지 않은 학생에게 있어서는 극히 효과가 낮아서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기가 쉽다. 또 이런 것에서 주제를 골라내는 것도, 될 것 같으면서도 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에 비해 각각의 연구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기술한 논문이나 저서에는, 설사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 어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거기에서 얻는 암시는 읽는 사람의 자발적인 활동을 유발하는 신비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자 자산의 연구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자신의 전문 외의 주제에 관한 좋은 논문 등을 읽어 보는 것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안내기만 의지해서는 언제까지고 자기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내기를 완전히 무시하면,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웅덩이나 화구(火口)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에 관계 없이 교과서와 노트만을 의지하는 학생이 많은 한편에는 또 현대 기성의 과학을 무시했기 때문에 모처럼 낸 좋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결국 실패하는 발명가나 발견자도 가끔 나온다.

  명승고적의 안내자가 가장 곤란한 것은 뭔가 좀 쓸데없는 것을 보려고 하면 No time, Sir! 같은 말을 하며 끌고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제한이 있다고 보면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스스로 구경하는데는, 다시 한번 혼자서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고, 다만 이 때 앞의 안내자가 ‘방해’만 안 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안내자나 선도자 중에는, 자기의 권위에 대한 신념에서 산출된 친절함으로 각각의 여행자의 자유로운 관조를 억제하는 자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자가 특별한 흥미를 가진 대상 앞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을, 그런 건 보잘것없으니 볼 것이 못된다고 보살피는 경우도 있다. ‘볼 만 하다’와 ‘보잘것없다’가 명백히 ‘상대적’인 경우에는 이건 난처하다. 안내자가 선의로 그러는 만큼 더욱 난처하다. 이런 종류의 안내자는 그 전문 영역이 좁으면 좁을수록 많아 보이지만, 이것은 무리도 아니다. 자신의 ‘땅’이외의 것은 모두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안내자 입장에서 말하면, 그 이끌고 있는 피안내자에게 너무 신뢰받아도 곤란한 상황이 제법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든 충실하게 따라오는 건 좋지만, 설마했더니 화장실까지도 꾸물꾸물 따라와서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 틀림 없다.
  뉴턴의 광학(光學)이 파동설의 보급을 방해했다던가, 라플라스의 권위가 열의 기계론[각주:4]의 발달에 장애가 되었다던가 하는 것은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짊어져서는 이러한 대가(大家)들은 아마 저승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책임의 절반 이상은 그들의 권위를 맹종한 후일의 학도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요즘 상대성이론의 발견에 즈음해서 또 다시 뉴턴이 참고인으로 끌려나와서, 그의 절대론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뉴턴을 죄인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죄인은 오히려 다른 곳에 많이 있다. 말하자면 뉴턴은 진리의 전당의 첫 번째 문만을 열고 나서 죽어버렸다. 그의 피안내자는 제1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에 제2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은 드물었다. 마침내, 최근에 아인슈타인이 갑작스레 제2의 문을 걷어차 열고 그곳에 영롱히 빛나는 기하학적 우주의 궁전을 발견했다. 하지만 제1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제2의 문에 도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 다음의 제3의 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는 도저히 예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지의 문에 부딪쳐서 그것을 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시 안내자 등의 신세를 지지 않은 떠돌이 시골뜨기여야 한다. 제3의 문은 어떤 귄위있는 안내기에도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무심코 안내자 같은것이 되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쿠로다니나 금각사를 안내하던 어린 스님도, 처음 그 건축물이나 고기물(古器物)을 접했을 때는 아마 여러가지 깊은 감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모든 흥미가 증발해버려서, 안내문을 모조리 암기할 수 있게 됬을 때에는 물품 자체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없어진다. 남는 것은 단지 ‘말’ 뿐이다. 눈은 그 말에 덮여서 ‘물건’을 보지않는다. 그리하여 탄바(丹波[각주:5])의 산속에서 나온, 관람자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영상을 이제는 다시 인식할 때는 없어져 버린다. 이것은 실로 그 사람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이러한 사람은 단지 자신이 담당한 건축물이나 미술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종의 물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절에서 카노 에이토쿠(狩野永徳[각주:6])가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에 ‘카노 에이토쿠가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즉시 이 사람의 눈을 덮고 가려서, 눈 앞의 그림 대신에 자기 머릿속에 들러붙어 곰팡이가 낀 자기 절의 그림의 영상만이 비춰진다. 설사 그 머릿속의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래서는 곤란하다.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된다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
  직업적 안내자가 이러한 불행한 경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매일 설명하는 것을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고 이틀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이라도 뭐든 지금까지 찾아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런 노력은 괴롭다. 그것을 하지 않아도 오늘 당장은 곤란하지 않다. 거기에 안내자가 빠지기 쉬운 ‘동굴’이 있다.
  뉘른베르크의 고성(古城)에서, 거기에 수집되어 있던 옛날의 대단한 형구(刑具) 여럿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름높은 ‘아이제르네 융프라우(Eiserne Jungfrau[각주:7])’의 앞에서 설명을 하던 안내자가 마침 젊은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병약한 듯 하고 안색도 나빠서, 왠지 모르게 어두운 용모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 들 중 학생인듯한 남자가 ‘실례지만 당신은 매일 몇번이고 그런 무서운 내용을 입에 담고 있는데, 그 때문에 신경을 상하는 일은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뭐라고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소리를 내어 숨을 들이쉬고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꽤나 잔혹한 질문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리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이 여자도 매일 자신이 반복하는 말의 내용에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거리끼는 것 없는 남자의 질문에 비로소 잊고 있던 내용의 무서움과 그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직업의 불쾌함을 떠올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것과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가르칠 때 자주 자기가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고 있는 상투적인 것의 안쪽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어떤 것을 지적당해서, 직업과학자의 약점을 아슬아슬하게 관통당하는 기분이 드는 일이 없지도 않다.
  안내자가 될 사람은 상당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폴리에 관광을 간 김에, 그리 멀지 않은 포추올리(Pozzuoli)의 옛 화구와 그 안에 있는 분기공(噴氣孔)을 보러 갔다. 전차에서 내려서 베데커를 의지해서 찾아가려고 하니, 곧바로 한 명의 안내자가 쫓아와서는 자꾸만 권한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것 같은, 그리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다. 전혀 상대를 할 생각이 없는데 어디까지든 끈질기게 쫓아와서, 그리고 헐떡이면서 끈덕지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에 화를 낼만큼의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그 시끄럼움을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서 그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나빴다. 처음에 정했던 안내료 외에도 여러가지 구실로 조금씩 돈을 뜯어갔고, 안내자를 고용한 만큼의 효능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마사인지 뭔지의 뭉치를 밀랍으로 굳힌 횃불을 강매당해 가져갔는데, 분기공의 근처에 오니, 안내자는 그것에 불을 붙여 구멍 위에서 휘둘렀다. 그리고 ‘증기의 분출이 늘어났으니 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어떤 변화도 없는듯이 보였다. 그러자 그는 거기와는 꽤 떨어진 뒤쪽의 화구벽의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증기를 가리키며 ‘저렇다’고 했다. 하지만 횃불을 휘두르기 전에는 그것이 나오지 않았는지, 또 얼마나 나왔는지, 나는 전혀 몰랐으니까, 결국 이 횃불 실험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 ‘실험’이 아마 매일 여기서 벌어지고 구경꾼들 중 몇할인가는 그것에 납득할 것이라고 치면, 그 일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지식의 안내자라고 불리며, 권위자라고 불리는 사람중에는 역시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피안내자가 납득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의 이름을 빌어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의 눈을 속이려는 비과학적 실험을 행한 자가 서양에는 옛날부터 제법 있었다. 그러한 경우에는, 거의 정해진듯이, 평생 과학에 대해서 반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군중, 특히 신문등에 의해 기성과학의 권위가 의심받고, 그러한 ‘발견’에 냉담한 학자가 공격당한다. 하지만 과학자로서는 내용의 가능불가능이나 개연성의 다소를 기성과학의 계통으로 비추어서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으므로, 혹시 만에 하나 그 판단이 빗나갔다면 그것은 실로 새로운 발견이며 과학은 그 덕분에 현저히 진보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판단이 틀린 것은 반드시 그 과학자의 과학자로서의 치욕이 되지는 않는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과학이 한걸음 나아갔다는 것이 된다. 그런 식으로 진보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예상이 빗나가는 쪽이 과학자로서 타당한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별개로, 순수하고 성실한 과학자라도 역시 인간인 이상 천려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포추올리의 횃불과 비슷한 실험이나 이론을 남들에게 제시하지 않을거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람[각주:8]이 발전기를 만들었을 때 당시의 대가 아무개는 한편의 논문을 써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의 기계에서는 전류가 걱정없이 유출되었다. 그 후에 이 기계에서 전류가 발생한다는 쪽의 증명이 점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대가의 논문을 잘 읽어보면 무작정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헬름홀츠가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현재 비행기가 만들어졌지 않았는가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엉뚱한 웅변이다. 현재에도 장래에도 새 처럼 날개를 자기의 힘으로 움직여서, 단지 그것만으로 새처럼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안내자도 가끔 이것돠 닮은 오해에서 일어나는 비난을 맏을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안내자가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다’는 의미로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을 배로 건너고는 ‘이런 식으로 건널 수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은 아마 어느쪽도 나쁘던가 어느쪽도 나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다. 의사가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이다.
  하지만 온갖 오해를 예상해서 그것에 대비하는 것은 신이라도 되지 않으면 어렵다. 여기에도 안내자와 피안내자의 곤란이 있다.

  내가 신세를 진 포추올리의 안내자는 헤어질 때 또 여분의 술값을 보채면서 느긋하게 따라왔다. 그것을 참으며 상대를 안 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더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내뱉어서, 나도 ‘이탈리아인은 더욱 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답하고는, 그대로 영원히 헤어졌다. 나도 좀 나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건 역시 지식의 안내자에겐 없다.
  생각해 보면 안내자가 되는 것도 피안내자가 되는것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곤란은 ‘안내자는 결국 안내자이다’는 자명한 도리를 잊기 쉽다는데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경치나 과학적 지식의 안내에서는 이러한 곤란이 있다. 더욱 다른 여러 정신적 방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인가. 이쪽에는 더욱 심한 곤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사안에 따라서는 오히려 간단해 질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신앙’이나 ‘애정’같은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 내가 말하고 있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게 되고 그것은 ‘스승’이 되고 ‘벗’이 된다. 스승이나 벗에게 이끌려 잘못되어 광야의 길을 헤매도 원한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타이쇼 11년 1월, 카이조(改造)


  1. 베데커가 발행한 여행안내서, 여행안내서의 대표격으로 쓰임. [본문으로]
  2.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의 별원(別院)중 한 곳 [본문으로]
  3. 로쿠온지(鹿苑寺). 교토에 위치한 절. 킨카쿠지는 통칭. [본문으로]
  4. 熱の機械論. 열역학? [본문으로]
  5. 지금의 교토 일부와 효고현 일부 [본문으로]
  6.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유명한 화가 [본문으로]
  7. 원문에는 鉄の処女에 アイゼルネユングフラウ라는 루비가 달려있음. 영어로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유명한 고문기구 [본문으로]
  8. 제노브 테오필 그람(Zénobe Théophile Gramme). 벨기에의 전기기술자, 공학자. 최초로 고전압직류발전기를 만들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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