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의 공부법(わが中学時代の勉強法)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내 출생지는 고치현(高知県)으로, 처음 중학교[각주:1] 입학시험에 응시한 것은 14세, 딱 고등소학교[각주:2] 3학년 때였다. 그 중학교란 지금의 고치현립제일중학교(高知県立第一中学)이다. 평소부터 그다지 건강하지는 않고, 게다가 공부도 변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그 때의 입학시험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났다. 하기는 성적에 대해서는 뭔가 뜻밖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부른 것인지, 당시의 나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3학년 때 시험을 쳤기로서니 실패하는 것은 역시 분하고 원통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리 공부도 하지 않았던 나도 다소 짜증을 내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빼어난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규칙바르게 학과(學課)의 복습, 수험 준비에 힘쓴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무난하게, 평범한 것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다음 해에 다시 시험을 쳐 보니 성적은 의외로 좋았다는 듯 1년 월반하여 한번에 2학년에 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한번 실패한 것도 만회하였으므로 연령이라는 점에서 봐도 그 전 해에 들어간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되었다.

  개중에는 1년 월반해 왔으니까 영어등은 좀 고생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이도 나는 고등소학교 2학년때부터 옆집에 사는 어느 선생님 댁에 가서 영어만은 배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던 소학교에서는, 3학년 때 부터 이미 영어를 가르쳐서, 4학년을 끝냈을 쯤에는 독본 셋 정도는 읽었기 때문에, 비교적 어렵다고 들은 영어과도 각별한 고생은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나는 시골의 외동아들로 말하자면 어떤 고생도 없이 느긋하게 자란 쪽이다. 따라서 이것이 공부법이라고 해도, 특별히 뭔가 새로운 구상도 없고, 그다지 힘들여서 공부한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내 학생시대를 회고하면, 고학(苦學)이라기보다 낙학(樂學)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물건이 필요하다. 저런 책을 사고싶다고 하면, 부모님은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 사 주셨다. 딱히 까다로운 잔소리를 듣지도 않았고, 공부에 대해서도 어려운 제한같은 것이 붙지도 않았다. 이것은 지금도 내가 부모님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부분이다.

  중학교에는 집에서 다녔는데, 그동안 집안일을 도와서 시간의 속박을 받은 등의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돌아와 그 날의 학과의 복습이나, 내일의 예습을 정확한 시간을 정해서 일정 범위 내에 일정한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라, 그 날 그 때에 맞춰서 일정한 시간은 자연히 정해지는 지극히 느긋한 방법을 취했다.

  일요일등이라도, 평소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와 같이, 정해진 공부도 하지 않고, 정해진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시골이니까 가끔은 친구 두셋과 놀러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즐겨서 놀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대체로 나 좋을대로 하며 자유롭게 보냈다.

  이런 식이었으니, 따라서 밤은 늦게까지, 아침은 일찍부터 기상해서 공부에 매달리는 등의 예(例)는 없고, 게다가 우리 집은 극히 평온, 원만한 가정이라서 언제든지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때에는 어떤 장애도 없이, 조용히 한가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어서, 특별히 공부의 시간을 정해 조바심을 내며 할 필요는 없었고 고통을 느끼면서 책상과 마주하는 것 같은 일은 더욱 없었다. 따라서 내 공부법은 가장 불규칙적이고 또 결코 대단한 노력가인 것도 아니었다. 환경도 역시 고학(苦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종일관 낙학(樂學)한 경우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부터는 이미 부모 슬하를 떠나있었고, 또 하나는 나이와 함께 사상도 조금씩이나마 굳어져 왔으므로, 중학교 시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공부도 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달리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 특별히 심한 공부나, 질서바른 독서법 등을 실행한 것은 아니다.

  소학교 시대부터 나는 학교 교과서 이외에 여러가지 잡다한 책, 잡지등을 마구 읽었다. 이것은 딱히 다독하는 것이 대단히 좋다고 자각해서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막연히 독서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쪽 일은 확실히 모르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책을 자주 보았다. 소학교에 있을 때는, 옛날 하쿠분칸(博文館)에서 나오던 '니혼쇼넨(日本少年)'을 비롯하여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외 그런 잡지나 책을 자주 읽었던 것이다. 부모님도 또 말하는 대로 사 주셨다.

  중학교에 가게 되고 나서는 소책자로 된 자연지리학, 지리서 같은 것을 수많게 읽고, 또 소설 등도 많이 읽었다.전술한대로, 나는 공부하는데도 제멋대로의 방법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학에 대단한 흥미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들리지만, 그다지 그렇지도 않았다. 단지, 이런 것에서 얻은 것인지, 작문은 학교에서도 제법 재주가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친척이 있어서, 거기에 가면 언제나 책을 내서는 손닿는대로 읽곤 했다. 그 중에서도 '핫켄덴(八犬伝)', '삼국지', '초한지'등은 대단히 힝므가 있어서 대부분은 통독하였다. 이것 덕에 스스로도 독서력이 대폭 증진했다고 생각했다. 뒤죽박죽 읽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독서력은 대단히 길러졌다. 폐해도 있으면 또 그것에서 오는 이익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책을 될수있는 한 빨리 읽고, 그래서 이해력을 키우는데는 꼭 많은 책을 읽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내 중학교 시절에 있어서의 성적은 3학년쯤 까지는 일단 중간 정도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좋은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목에 대해서도 딱히 호오는 없었고, 꽤 일정한 점수를 얻었지만, 단지 습자(習字)만은 아무리 해도 서툴렀다. 이래서 습자를 배우는 중에는 평균점수상 성적 쪽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상급생이 되면서 습자가 생략됨과 함께 성적도 확실히 좋아졌다. 그 외에 딱히 싫어하는 것도 없었던 대신에 또 각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중에서 지리만은 중학교 시절부터 특별히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될수 있는 한 이것을 어디까지든 연구해보자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어느 만큼은 고등학교에서는 공과(工科)에 들어가, 3학년 때 다시 물리로 옮겨, 이리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억에 도움이 되도록,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발췌쓰기라는 것을 자주 했다. 발췌쓰기라는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교과서 안의 중요점을 발췌하여 교과서의 바깥부분등에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 안에도 동물, 식물, 광물, 지리, 역사, 화학 처럼 주로 암기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나. 잠깐 예를 들어보면, 교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질문을 받았을 때, 전부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해도 아무리 해도 그 질문에 응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슴에는 떠오르지만 좀 정리되어 입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 주요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발췌하여 그 중요점만을 충분히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근본적인 사항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에 따라오는 지엽적인 것등은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나타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개략만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으면, 사상은 일관해서 비교적 정확한 답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혼자서 이 발췌쓰기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나는 교사가 자주 칠판에 도해로 보여주는 그림등도 그대로 직접 교과서에 써 놓았다. 이것은 기억하는데에 편리할 뿐만이 아니라 그 사항을 잊어버렸더라도 그 그림을 떠올리면 쉽게 기억을 불러올 수 있었고, 또 시험이 끝난 후 상당히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 그림만 보면 쉽게 교과서 안의 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따라서 내가 이용한 교과서는 참 더러운, 연필 발췌문, 도해 그림등으로 꽉꽉 더렵혀져 있다.

  똑같이 이렇게 한다면, 노트에 옮기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중학교 시대에는 그다지 노트에 표시하는 것은 하지 못했다. 교과서 외의 물건에 써 놓으면 일단 이것저것 읽을때마다 꺼내서 봐야하는게 귀찮다. 또 교과서를 펴 보면 한번에 발췌도 읽기도 가능하다는 편리성이 있어서, 일부러 나는 교과서를 더럽힌 것이다.

  고의로 게으름을 피웠다고 하면 왠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가 싫어졌을 때, 무리하게 노력하여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지 않고, 좋을대로 하면서 논다. 산책을 나가서 좋아하는 것도 보고, 매우 제멋대로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하루 놀면 지금까지 착잡해있던 두뇌가 신선해져서, 무엇을 읽어도 확실히 기분 좋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나는 독서를 해도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서 꼼꼼하게 읽을 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격상 그런 딱딱한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끔 어딜 가든 앉은 그대로 책을 집어 쭉 읽는 때도 있고 누워서 보는 때도 있으며 엎드려서 읽는 떄도 있다. 독서할 때의 태도는 거의 일정치 않았다. 말하자면 불규칙적인 방식이지만, 아무래도 내 성질이 거북하게 공부하기보다 편하게 내 맘에 들게 하는 쪽이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기억하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나 스스로도 제대로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독자제군도 이런 부분은 잘 참작하여 그중에서 좋은 점 만을 취해주었으면 한다.

다만 규칙바르게 공부하는 자들 중에는 매일 그 날의 노트를 반복하여 배운 부분만을 암기하려고 하는  자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 될수있는 한 강의에 있어서도 일단락을 지었을 때, 이전부터 필기해 온 부분과 연결하여 한번에 읽는 식으로 했다. 이 연결을 꾀하는 것은 내용을 기억하는데에 가장 필요한 것이고 조각조각난 단편적인 것들을 자세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항이 일단락 지어졌을 때 합쳐서 읽도록 하는 쪽이 전후관련하여 이해하는데도 형편이 좋고, 기억하기도 또한 대단히 쉬워지는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은 그리 몸이 건강하지 않았고, 운동도 딱히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시간은 거의 의무적으로, 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만 소학교 시절부터 광물, 곤충등의 채집에는 대단히 흥미가 있어서, 가끔 근처에 채집을 나갔다. 지금도 고향 집에는 이런 것들의 표본이 꽤 남아있을 정도로, 조금은 이런 일이 운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되신, 자양분은 가능한 많이 먹었다. 그 때문에 몸이 약한 것 치고는 특별히 병에 걸리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대로의 가정(家庭)이었으므로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고, 장난삼아 시시한 것에 고민하여 몸을 피로하게 한 일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아니고, 학교의 교과목이나 그 외에 것에 있어서도 곤란, 고통도 없었고 우선 학생시절은 느긋하게 살았던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부로 교제하여 재미있게 놀았던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원해서 하는 것 같은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시골이니까 집에 돌아오면 놀이 친구라고 해도 기껏 두셋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이도 근처에 살던 친적중에 딱 동년배가 왔으므로, 자주 그곳에 가서는 거기서 놀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대체로 나는 교제가 서투른 쪽이라 지금도 스스로 원해서 교제하려는 일은 없고, 단지 마음을 튼 약간의 벗과 깊게 교제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메이지 40년 12월)

http://www.aozora.gr.jp/cards/000042/card1695.html

  1. 구제(舊制)에서, 고등보통교육을 받은 수업연한5년의 남자중등학교 [본문으로]
  2. 구제(舊制)에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다음의 학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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